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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스테이트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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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맨해튼은 맨해튼 밖에서 보는 게 가장 아름다워.”
(2) “업스테이트 가을이 그렇게 멋있어.”

저보다 1년 먼저 뉴욕으로 발령받아 딸과 함께 맨해튼에 살고 있던 아내가, 연수 전부터 제게 했던 말입니다. 뉴욕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제는 저 역시 이 말들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뉴욕주에 뉴욕시(흔히 NYC로 표기)가 있고, 뉴욕시는 맨해튼·브루클린·퀸즈·브롱스·스태튼아일랜드, 이렇게 다섯 개의 자치구로 구성돼 있습니다.
흔히 ‘뉴욕을 여행한다’는 것은 ‘맨해튼을 여행한다’로 인식됩니다. 여기에 브루클린 덤보(DUMBO)에서 맨해튼 브리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일정이 더해지면 우리에게 익숙한 뉴욕 여행의 윤곽은 거의 완성됩니다. 행정 주소 역시 맨해튼은 관용적으로 ‘New York, NY’라 쓰이고, 다른 자치구는 ‘Brooklyn, NY’, ‘Queens, NY’처럼 구 이름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이 작은 차이에서도 맨해튼 중심의 인식이 드러납니다.

맨해튼을 중심으로 하는 뉴욕 여행 정보를 다룬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블로그는 이미 충분히 많습니다. 이전 연수자들의 연수기에도 뉴욕 생활, 여행 관련 유용한 정보가 잘 정리돼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겹치지 않는 주제이면서, 개인적으로 애정을 갖게 된 ‘업스테이트 뉴욕(Upstate New York)’을 다뤄보려 합니다.

업스테이트는 뉴욕주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으로, 뉴욕주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뉴욕시와 롱아일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 전반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저는 이 지역을 ‘북쪽’을 뜻하는 노던(Northern)이나 노스(North)라는 말로 부르지 않는다는 점도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습니다.
실제 서쪽에 가까운 버펄로나 로체스터, 상대적으로 남쪽에 인접한 허드슨 밸리 역시 업스테이트로 불립니다. 공업화의 흔적이 남은 도시,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도시, 그리고 자연이 생활 반경 안에 들어와 있는 마을 등 성격이 전혀 다른 장소들이 하나의 이름 아래 묶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지역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맨해튼과는 분명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앞서 (2)번 문장에서 언급한 대로 업스테이트의 가을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는 단풍의 색감보다 9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애플 피킹입니다. 뉴욕주는 미국 내 사과 생산량이 전국 2~3위권에 속하는 지역으로, 업스테이트 전역에 대규모 과수원이 분포해 있습니다. 뉴욕시를 빠져나와 차로 1~2시간만 달리면 비교적 쉽게 과수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애플피킹 체험하러 방문한 피시킬 팜스

제가 방문했던 곳은 피시킬 팜스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체험을 경험해 본 적이 있지만, 규모 등에서 확실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품종의 사과나무가 넓은 부지에 분포해 있었고, 사과 크기나 상태도 우리가 흔히 마트에서 접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아내는 “여기는 진짜 먹을 수 있는 사과를 따는 게 한국과 다르네”라고 말했습니다. 다들 힘겹게 한가득 들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욕심을 부리지 말자고 했지만, 직접 사과를 따다 보니 어느새 나눠준 한 봉지가 가득 찼고, 집에 돌아와 지인들과 나눠 먹게 됐습니다.

업스테이트에는 하이킹이나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자연 명소들이 많습니다. 트레일을 따라 폭포와 바위 지형이 이어지는 왓킨스 글렌 주립공원, 뉴욕시보다 기온이 낮고 고도가 높아 단풍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시작되는 베어 마운틴, 허드슨 밸리를 따라 형성된 소규모 도시들이 대표적입니다. 캐츠킬 지역에는 숙소 공용 공간에 화덕이 상시 설치된 곳도 많아, 쌀쌀한 저녁에 스모어를 즐기기에도 적합합니다.

뉴욕주 관광청에 소개된 가을 풍경들/출처 www.iloveny.com

코넬대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학도시 이타카 역시 인상적인 장소였습니다. 대규모 상업 시설보다는 평범한 일상에 적합하게 형성된 소규모 공간들과 자연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타카가 위치한 핑거 레이크스 지역에는 다양한 와이너리들이 분포해 있었는데, 아쉽게 방문은 못해봤습니다.

또 업스테이트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을 몇 개 구독하고 있는데, 올라오는 게시물을 보면 겨울의 업스테이트도 또 다른 선택지처럼 보입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 특성상 스키 리조트가 잘 발달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동 거리는 다소 길지만 1980년 동계올림피 개최지인 레이크 플래시드처럼 가보고 싶어 저장해 둔 장소도 몇 곳 있습니다.

화이트페이스 마운틴,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 올림픽 알파인 스키 경기가 열린 장소로 유명한 곳 / 출처 www.iloveny.com

맨해튼 밖에서 보는 스카이라인

다만 업스테이트는 비교적 여유로운 일정으로 뉴욕 여행을 계획했거나 주요 관광지를 이미 경험해 본 경우에 고려할만한 후보군입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1)번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실제 ‘맨해튼은 맨해튼 밖에서 보는 게 가장 아름답다’는 말은, 차를 타고 저녁 무렵 맨해튼으로 돌아오며 멀리서 스카이라인을 바라볼 때 자주 하게 됩니다. 빌딩 숲 안에 있을 때보다 강 건너에서 바라볼 때 맨해튼의 윤곽이 훨씬 또렷해지기 때문입니다.

차량 없이 맨해튼을 여행하는 경우라면, 이런 스카이라인을 가장 간단하게 감상하는 방법으로 페리 이용을 추천합니다. 다양한 페리 노선이 운행 중인데, 페리를 타고 이동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 됩니다.
대표적으로 퀸즈의 헌터스 포인트(페리 정류장 이름도 동일)를 추천 합니다. 맨해튼 동쪽, 이스트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위치로, 미드타운 스카이라인을 정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엠파이어빌딩, 크라이슬러 빌딩을 비롯해 가장 최근에 완공 된 JP모건 체이스 본사 빌딩까지 미드타운 고층 건물들이 한 프레임에 들어옵니다. 날씨가 좋다면 레스토랑 야외 좌석에서 식사하며 보면 더욱 좋습니다.
이동 방법도 간단합니다. 맨해튼 동쪽 강변에서 페리를 타고 한두 정거장, 10분 남짓 이동하면 됩니다. 관광 일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맨해튼을 ‘밖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코스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헌터스 포인터에서 바라본 맨해튼 스카이라인 / 출처 인스타그램 @hunterspointsou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