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어디로 가야 할까?
우리 가족이 자주 찾은 곳은 내셔널갤러리였다. 영국 국립 미술관으로 소장품이 2600여 점이 넘고 매해 수 백만명의 관람객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입장료가 무료이고 사전 예약 없이 가도 줄을 서면 입장이 가능한 곳이라 잠시 들르기도 괜찮은 곳이다. 한국처럼 지하철 역사마다 화장실이 있지도 않고 설령 있어도 돈을 내야 하는 런던에서 ‘오아시스’ 같은 곳이기도 했다. 들어간 김에 명화 한 점 더 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이번 연수를 통해 많이 얻어가는 것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나에겐 미술일 것이다. 예술에 무지한 터라 한국에서 좋은 그림 전시회가 열려도 찾아가볼 생각을 못한 나에게, 런던은 이래도 미술관에 안 가볼래 하고 손짓 하는 도시였다. 좋은 작품을 수 없이 가진 미술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셔널갤러리 뿐만 아니라 그 옆의 초상화미술관, 템즈강변에 포진한 코톨드갤러리와 테이트 모던, 테이트 브리튼 등이다. 이곳에서 고흐와 모네, 터너 등 세계적인 작가를 만날 수 있는데, 더 많은 자극을 받은 것은 당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폭을 넓혀준 작품들이었다.

이런 매력을 극대화 시키는 런던만의 장점은 미술관과 박물관 입장이 무료라는 것이다. 입장료가 비싸다면 방문하는 동안 다 봐야겠다고 욕심을 부렸을 테고 그러면 유명한 작품들을 찍고 가기에 급급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음 번에 다시 방문할 수 있다는 여유가 있다면 작품을 보다 더 천천히 감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박물관도 훌륭하다. 영국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은 문명과 자연을 다루는 ‘끝판왕’이다. 여기에 영국 해양박물관과 런던 도크랜드박물관, 전쟁박물관, 영란은행 박물관까지 본다면 17~20세기를 관통하는 바다와 제국의 시대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모두 무료다.

물론 모든 곳이 무료로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코톨드갤러리 같은 경우는 성인 입장료가 12파운드다. 미술관에 따라 상설전시가 무료여도 기획전시의 경우 입장료를 받는 경우도 많다.

이것을 헤쳐나갈 방법도 있다. 학생 할인이 가능한 곳도 있지만, 영국의 각종 멤버십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내셔널 아트 패스에 가입하면 유료 미술관인 코톨드갤러리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식이다. 내셔널 아트 패스는 성인 2명과 어린이를 묶은 ‘가족’ 회원권의 경우, 1년 회원비가 145파운드인데 자동이체로 가입하면 25%를 할인해 112.5파운드에 가입할 수 있다. 내셔널 아트 패스는 미술관 등 200곳 이상에 무료 입장할 수 있고, 미술관 유료 기획전시 등을 반값에 볼 수 있는 혜택을 준다. 우리 가족의 경우 메리 로즈 박물관과 빅토리호 등 볼거리가 많은 포츠머스 히스토릭 독야드(가족 입장권 115파운드)를 방문할 때 이 패스를 활용해 본전을 한꺼번에 뽑았다.
런던 근교에 머문다면 히스토릭 로얄 팰리스 멤버십도 추천한다. 이 멤버십에 가입하면 런던 타워, 햄프턴 코트 팰리스, 켄싱턴 팰리스에 몇번이고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성인 2명과 어린이들을 묶은 가족 1년 회원권이 135파운드인데 현금 자동이체로 구입하면 125파운드에 살 수 있다. 멤버십에 가입하지 않고 개별 입장권을 사면, 런던타워는 성인 37파운드, 어린이청소년 18.5파운드이고, 햄프턴 코트 팰리스는 성인 32파운드, 어린이청소년 16파운드를 내야 한다. 햄프턴 코트 팰리스는 헨리 8세 등 영국 왕이 살았던 궁으로 정원이 아름답고, 내부도 튜더 왕조의 생활상과 기록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아 자주 찾은 곳이다. 햄프턴 코트 팰리스를 두 번만 방문해도 히스토릭 로얄 팰리스 멤버십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

또 영국에서 유명한 멤버십이 잉글리시 헤리티지다. 이 멤버십에 가입하면 스톤헨지와 도버성 등 영국의 유서 깊은 장소 100여 곳 이상을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이 멤버십 가입비는 연간 가족 회원권이 144파운드인데 20% 할인 행사때 가입해 115.2파운드를 결제했다. 우리 가족은 이 멤버십을 이용해 스톤헨지를 방문했는데, 스톤헨지의 1회 가족 입장권 가격은 71.6파운드였다. 영국에선 잉글리시 헤리티지 외에 내셔널 트러스트도 많이 찾는 멤버십이다. 문화 유산뿐만 아니라 자연공원 등을 방문할 때 유용하다.
한국에선 국립중앙박물관 입장료 유료화를 두고 찬반 의견이 나뉜다. 관람객이 폭증하는 상황에서 입장료를 무료로 놔둘 경우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되어 관람 환경이 나빠지고, 새로운 예술 작품을 구입할 예산이 부족하다는 게 유료화를 찬성하는 입장이다. 문화적 수요는 점점 높아지는데 국립중앙박물관처럼 서울 도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수준 높은 전시는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유럽 다른 나라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유료 입장이 대부분이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은 32유로, 베르사유 궁전은 25유로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은 25유로, 안네 프랑크의 집은 16.5유로였다. 높아진 환율을 감안하면 한 곳당 3만원~5만원은 내야 입장할 수 있는 셈이다.

런던의 미술관 등이 처음부터 전부 무료였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까지 유료와 무료 미술관이 섞여 있었던 영국은 2001년 12월 1일부터 정부가 지원하는 모든 박물관의 상설 전시관에 무료 입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세웠다. 2011년 이 정책의 10년 성과로 미술관과 박물관의 입장객이 크게 늘었다는 보고서를 낸 영국 문화부의 제레미 헌트 장관은 “우리의 무료 박물관과 미술관은 문화가 소수의 행운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임을 보장한다”고 말했다. (https://www.gov.uk/government/news/ten-years-of-free-museums)
런던의 사례를 보면 예술을 모두가 향유할 수 있도록 무료 입장 정책을 고수하는 게 이상적이다. 누구나 쉽게 예술 작품을 접할 수 있다면 그만큼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이 높아지고, 예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회와 인사이트 또한 모두에게 열리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를 위해 런던의 미술관이 하는 정책도 세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가능한 쾌적한 관람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전 예약제를 도입해 관람객 수를 조정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후원과 기부를 요청한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에 입장할 때는 후원을 요청하는 키오스크 사잇길을 통과한 뒤에야 전시관에 들어갈 수 있다. 미술관, 박물관마다 멤버십 제도도 있어서 사전 전시 관람이나 더 편한 관람 혜택도 제공한다.
한국도 어떤 정책이 공익에 부합할지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일단 입장료 유료화와 무료화로 나누기 보다, ‘국중박’으로 쏠리는 문화적 수요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더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건립이 필요한 건 아닌지 검토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