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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등 환율에 대처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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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값이 1년반 사이 0.2파운드 올랐다.
2024년 재단 해외 연수기를 보면, 영국의 수퍼마켓 웨이트로즈(Waitrose)에서 살 수 있는 PB(자체) 브랜드 우유 가격은 4파인트(2.27리터)에 1.55파운드였다. 그런데 2026년 3월에 확인한 이 우유의 가격은 1.75파운드다. 게다가 파운드환율도 그때보다 크게 오르면서 2024년 당시 1.55파운드는 2650원였지만, 2026년 1.75파운드는 3500원(3월24일 환율 기준)에 이른다. 원화 기준으로 보면 우유 가격이 850원이나 오른 셈이다.

영국 웨이트로즈에서 팔리는 우유

영국의 물가는 높은 것으로 원래 유명하다. 그래도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낮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우유, 소고기 등 낙농 제품이나 감자, 당근 등 채소류 같이 식탁 위에 오르는 음식 재료의 가격은 싼 편이었기 때문이다. 우유 가격만 살펴보면, 한국 쿠팡에서 파는 2.3리터(영국 우유 4파인트 용량과 비슷한) 서울우유의 가격은 6280원이다. 한국 이마트몰에서 팔리는 노브랜드 우유 900ml의 가격은 2260원으로, 아직은 영국의 우유 가격이 저렴하다.

영국의 물가는 브렉시트(BREXIT)와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며 가파르게 상승했다. 영국 BBC의 최근 기사를 보면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석유와 가스 수요가 증가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커졌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에너지 가격이 다시 한번 급등했다”면서 “그 후에도 식품 가격 상승 등의 이유로 물가 인상률은 2% 목표치를 훨씬 웃도는 수준을 유지했다”고 분석했다. 지금도 슈퍼마켓에 가면 슬그머니 오른 가격표들이 보인다. 지난해 3.75파운드에 샀던 요거트는 어느새 4파운드가 되어있다.

세인즈버리에 진열된 요거트

영국인들은 식품 가격이 이렇게 오르는 것에 어떻게 대응할까? 일단 한국과 비슷하다. 좀더 저렴한 상품들을 찾는데, 코스트코 등 대형 할인점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 더 싸게 파는 슈퍼마켓도 찾아 나선다. Class(계급)가 있는 나라답게 영국은 슈퍼마켓도 계급적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으로서 영국 사회가 계급적이라는 것을 느끼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슈퍼마켓이었다. 영국에서 제일 고급 슈퍼마켓은 웨이트로즈를 꼽는다. 웨이트로즈에 가보면 다른 슈퍼마켓에 비해 더 다양한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선식품 매장의 크기가 훨씬 크고 음식의 원재료를 더 많이 구비해 놓고 있다. 그 다음으로 꼽는 것은 막스앤스펜서(M&S)다. 이 곳은 과자 등 맛있는 간식류가 많아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더 대중적인 곳은 세인즈버리(Sainsbury)와 코옵(co-op), 테스코다. 세인즈버리와 코옵, 테스코의 상품은 최상급 품질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가깝다. 예를 들어, 12개 들이 계란은 세인즈버리에서 3.6파운드에 파리는데 웨이트로즈에 가면 4파운드가 넘는 식이다. 다른 곳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승부하는 슈퍼마켓은 아스다(Asda)나 리들(Lidl), 알디(Aldi)다. 이곳에 가보면 매장에 가공식품류가 더 많이 보인다. 이외에도 냉동식품이 많은 아이스랜드나 다이소처럼 균일가를 내세워 상품을 파는 ‘파운드랜드’도 있다.

킹스턴 파운드랜드 매장

한국의 경우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을 소비자의 소득수준에 맞춰 브랜드를 골라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마트나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에 진열된 상품의 구색이나 가격이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영국의 슈퍼마켓은 자체 브랜드 경쟁력을 내세운 PB상품도 많다.

흥미로운 곳은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온라인 유통 시장을 개척한 ‘공룡’으로, 한국의 온라인 시장을 장악한 쿠팡은 아마존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쿠팡이 공산품에 이어 식품까지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지만, 영국에선 아마존 때문에 테스코, 세인즈버리 등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시장을 잃고 점포를 철수한다는 이야기는 아직 보지 못했다. 영국 식료품 시장만 떼어놓고 보면 온오프라인 합쳐 테스코가 대략 시장점유율 28~29% 수준을 차지하며 1위를 달리고 있고, 세인즈버리는 약 15~16% 수준으로 2위다. 그 뒤를 아스다, 알디, 리들이 잇는다.

영국 유통업체의 식품 시장점유율.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가디언 기사를 보면 테스코는 매출의 14%가 가정의 온라인 주문으로 나오고 있고, 매출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또 온라인에서 오프라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며, 영국 온라인 식료품 판매량의 37%를 점유하고 있다고 했다.  (https://www.theguardian.com/business/2025/oct/19/tesco-britain-biggest-retailer-dominates)

아마존이 온라인 식품 시장에서 크게 앞서가지 못하는 것은 사회, 주거 시스템 때문으로 보였다. 일단 영국 아마존은 쿠팡처럼 새벽배송을 하지 않는다. 한국처럼 대규모 아파트 단지나 빌라가 밀집된 곳이 존재하지 않고, 여전히 공동현관에 열쇠를 쓰는 곳이 많은 상황에서 새벽에 현관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빠른 시간 내에 배송을 끝내기는 어려운 구조다. 아마존을 사용해보니 주문 뒤 다음날 오전 정도에 상품을 받아볼 수 있는 게 가장 빠른 배송 속도다.

또 줄을 서도 느긋하고, 차로가 좁아 마주 오는 자동차에게 양보가 일상화되어 있는 영국에선 모두가 새벽 배송을 필요로 할 만큼 바쁘지 않아 보였다. 퇴근 시간도 빠르니 집에 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르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니 한국에 필요한 건 배송의 ‘속도’가 아니라 삶과 일터의 ‘속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스다 배송 트럭.

팍팍한 물가 사정을 헤아리는 서비스도 인기다. 음식점이나 카페, 슈퍼마켓에서 그날 팔리지 않은 상품을 묶어 영업시간 종료 전에 저렴하게 내놓는 서비스다.  ‘Too good to go’ 앱을 깐 뒤 자신의 집 근처에서 이른바 ‘서프라이즈 백’을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막스앤스펜서는 감자와 샌드위치 등을 묶은 15파운드어치를 반값인 7.89파운드에 내어준다. 카페에선 크로와상 등 빵 12파운드어치를 묶어 4파운드에 판다.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이 들어있으면 재미도 있고, 쏠쏠한 서프라이즈가 된다. 이른바 ‘가성비’가 있는 서비스이다 보니 얼릉 챙기지 않으면 매진되는 경우가 많다.

Too good to go 앱 화면 갈무리

환율이 1파운드당 2000원을 넘나들고 있다. 연수를 준비할 때만 해도 1파운드당 1700원대였는데 많이 오른 셈이다. 환율이 1900원을 넘어설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었다. 연수를 오게 되면 기사로만 느껴지던 환율과 물가가 현실이 된다. 그러다 1900원 후반대가 ‘뉴노멀’로 자리를 잡은 뒤엔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자 오히려 편해졌다. 소중한 연수 기간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환율을 확인하며 ‘일희일비’할 순 없다고 마음을 잡았다.

그러다 올해 3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자, 금융시장 불안으로 환율은 이제 2000원을 넘길 기세다. 2000원을 넘긴 건 2009년 9월 전세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시민들이 값싼 상품을 찾아 슈퍼마켓을 순례하고, ‘서프라이즈 백’을 찾는 것은 이같은 세계 정치 경제 흐름 속에는 때때론 부질 없는 것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파도는 넘을 수 있지만 쓰나미는 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 이번 전쟁은 쓰나미가 될 것인가? 일단 오늘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점심 급식 가격(여기는 무상급식이 아니다)을 불가피하게 인상할 수 밖에 없다는 이메일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