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지난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며 밀어붙인 관세 정책은 미 연방대법원의 위법 판결로 한 차례 제동이 걸린 뒤 불확실성이 커진 모습이다.
지난 2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대규모 글로벌 보편 관세(기본 10% + 상호주의에 따라 추가 관세)를 부과한 것에 대해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위법 판결을 내렸다. IEEPA법이 대통령에게 무제한으로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준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해당법이 무효가 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법률을 근거로 우회 작전을 펼쳤다. 국제수지 적자시 150일간 최대 15%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무역법 제122조를 끌어와 전 세계 수입품에 ‘10% 보편 관세’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낸 것이다. 그러나 지난 5월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은 “현 상황은 이 조항을 쓸 만큼 심각한 국제수지 위기가 아니다”라며 해당 관세 조치에 또다시 위법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불복해 즉각 항소했고, 지난 6월 연방항소법원은 행정부 손을 들어줬다. 2심 본안 판단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정부가 관세를 계속 걷을 수 있도록 허용하라는 것이다. 150일의 시한부 효력을 지닌 글로벌 관세 10% 조치는 7월 말 만료를 앞두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사이 무역법 301조(불공정, 차별적 무역관행이 미국 통상에 부담을 줄 경우 관세 부과 등을 통해 대응할 권한)를 적용한 새 관세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처럼 엇갈리는 사법부 판단으로 혼란이 커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더욱 전선을 넓히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유럽 국가들이 디지털서비스세(DST) 도입을 강행할 경우 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모든 상품에 즉시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디지털서비스세가 자국의 테크 기업을 표적으로 겨냥한 것이라고 보고 보복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드라이브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관세 정책의 성과는?
트럼프 대통령은 고율의 관세를 통해 미국의 수입을 줄이고, 무역 적자를 축소하며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이끌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도출된 거시경제적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 2월 미 연방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전체 무역적자(상품, 서비스 포함)는 9010억 달러로 전년 대비 0.2% 감소하는 데 그쳤다. 서비스 무역흑자가 확대된 결과 수출 증가율이 수입 증가율을 약간 웃돌아 적자폭이 일부 상쇄되었으나 이는 당초 공언했던 정책적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제조업 부흥을 위해 가장 중시했던 상품수지만 따져보면 적자 규모가 전년 대비 2.1% 오히려 더 확대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아울러 관세를 올려 수입 총량을 억제하겠다는 계획과 달리 작년 전체 수입은 4.7% 증가했다. 기업들이 관세 변수를 고려해 미리 재고를 쌓아둔 여파로 보인다.
제조업을 되살리겠다는 목표도 환상에 그치고 있다. 수입 비용 증가와 정책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지난 1년간 미국 제조업에선 8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증발했다. 미국 기업들이 관세 폭탄을 맞은 중국 대신 조달국가를 타국으로 전환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을 단행했을 뿐,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회귀시키는 ‘리쇼어링(Reshoring)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미국의 대(對)중국 수입은 약 30% 가량 감소했으나 베트남, 멕시코, 인도, 동남아시아로부터의 수입이 급증하며 그 공백을 고스란히 대체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무역정책이 미국 경제를 수입 의존에서 벗어나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무역 상대국만 바꾼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진단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 경제가 고율의 관세 파고 속에서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 않고 연착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당초 관세 총액은 미국 전체의 경제 규모(GDP)나 전체 소비시장 크기에 비하면 미미한 비중이었고 글로벌 기업들이 관세를 피해 수입선을 재빠르게 다변화하면서 충격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언제 또 관세가 바뀔지 모른다”는 극심한 불확실성은 미국의 수입 기업들이 장기적인 설비 투자와 혁신을 미루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미 보스턴 연방준비은행의 작년 9월 보고서에 따르면 관세 영향을 받고 있는 중소기업의 45% 이상은 이로 인한 원가 및 비용 상승 압박이 최소 1년 이상 장기화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 치솟은 원재료 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기까지 약 2년의 유예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답했다. 관세 인상 초반에는 이윤을 줄여가며 버티겠지만, 결국에는 늘어난 비용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작년 평균 2.7%에서 올해는 3%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제학자 파블로 파이겔바움은 지난 5월 브루킹스연구소 팟캐스트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유연한 대처와 상대국 통화 가치의 하락이라는 환율 효과 덕분에 미국 경제가 관세 폭탄에도 큰 타격 없이 버텨낸 것이지, 관세 정책이 제조업을 부활시키거나 무역 구조를 개선하는 등의 당초 정책적 목표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美 언론 경제기사 분석
미 언론은 이 사안을 다각적인 저널리즘 방법론으로 추적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진위를 엄밀하게 따지는 ‘팩트체크(사실확인)’ 메커니즘이 돋보인다. 독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각 발언을 ‘True’, ‘False’로 결론 짓기도 하고, 일종의 거짓말 지수를 만들어 발언의 왜곡 수준을 정밀하게 평가하고 있다.
또한 장기간 이어지는 이슈인만큼, 사건 진행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꾸준히 업데이트 해주는 프로세스도 정착시켰다. 미국 언론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을 다루는 방식을 분석해보고, 여기서 한국 언론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도출하고자 한다.
1. 팩트체크
트럼프 2기 행정부 초반, 관세 정책이 쏟아지던 시점의 언론 보도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용한 수치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데이터 중심의 수학적, 제도적 팩트체크가 주를 이뤘다. 반면 올해 들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 부과가 실제 무역수지 적자 개선 효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한 정책 효과 검증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WP의 피노키오 지수
워싱턴포스트(WP)는 뉴스룸 산하에 2~3명으로 구성된 팩트 체커팀을 두고 있다. 2007년 발족된 이 팀은 상시적으로 정치적 주장과 발언을 검증한다. 투명한 검증을 위해 가능한 한 원자료를 직접 링크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데, 가장 유명한 특징은 정치인의 사실 왜곡 정도에 따라 1~4개의 피노키오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소 과장되거나 일부 사실을 생략했다면 ‘1 피노키오’, 명백한 거짓말이라면 ‘4 피노키오’다. 작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로 하루 30억달러를 벌고 있다”는 주장이 ‘4 피노키오’를 받았었다.

이미 허위라고 밝혀졌는데도 그런 주장을 반복할 경우엔 ‘Bottomless 피노키오(끝없는 피노키오)’ 등급도 매긴다. 독자들의 직관적 판단을 돕는 피노키오 지수를 개발한 것도 신선하지만, 독자들의 반론이나 추가 자료 제출을 환영하는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다. 팩트체크는 ‘끝난 작업’이 아니란 것이다. 새로운 정책 변화나 법원 판결을 반영해 팩트체크 기사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자신들이 틀릴 가능성 또한 열어둔다. WP는 자신들의 팀, ‘The Fact Checker’에 대해 ‘정치인의 공적 주장을 근거 자료로 검증하고 그 과정과 출처를 독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며,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언제든 결론을 수정하는 팩트 체킹 저널리즘 프로젝트’로 정의한다. 다만 트럼프의 관세 정책과 관련한 WP의 팩트체크에서 기존 판정을 공식적으로 번복한 사례는 아직까지는 없다.
PolitiFact(폴리티팩트)의 진실 측정기
폴리티팩트는 팩트체크 보도 영역에 특화된 독립 비영리 매체다. 정치인들의 공약과 발언을 검증한 보도로 2009년 미국 국내 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받아 유명해졌다. 현재 20~30명 수준의 대규모 팩트체크팀을 갖고 있다. 폴리티팩트는 자체 개발한 ‘Truth-O-Meter’로 진실 정도를 측정한다. 평가는 True(사실), Mostly True(대체로 사실), Half True(절반이 사실), Mostly False(대체로 거짓), False(거짓), Pants on Fire(명백한 거짓) 등 6단계로 나뉜다. WP처럼 ‘판정하는 팩트체크(judgment-oriented fact-checking)’ 방식이다. 어느정도 진실에 가까운지 명쾌하게 판정을 내려줌으로써 독자가 신속하게 사실을 인지할 수 있게 돕는다.
일례로 지난 2월 애비게일 스팬버거 버지니아 주지사(민주당)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정책으로 미국 가정이 각 1700달러가 넘는 관세 비용을 부담했다”고 주장하자 폴리티팩트는 이를 심층 검증해 ‘대체로 사실’이란 판단을 내렸다. 기존에 발표된 3개 연구기관의 데이터를 수집해 비교 분석한 결과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대체로 비슷한 수치가 도출됐다는 것이다. 폴리티팩트는 보도의 공정성을 위해 정파가 다른 중도 우파 성향 단체의 수치도 활용하는 한편, 팩트체크를 위해 활용한 원자료의 링크를 그대로 공개해 독자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폴리티팩트와 유사한 기관으로는 ‘FactCheck.org’가 있다. 정당이나 언론사 소속이 아닌 독립 기관 ‘Annenberg Public Policy Center(안넨버그 공공정책 센터)’가 운영한다. 다만 검증 발언에 등급을 매기지는 않고, 사실관계를 하나하나 서술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독자가 팩트체크 기사에 나온 근거를 따라가며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2. 비주얼저널리즘
관세 정책 보도는 필연적으로 방대한 정량 데이터와 수치를 동원해야 한다. 자칫 기사가 딱딱하거나 읽기 어려워질 수 있는데, 이때 그래프와 같은 시각화 자료는 전달력을 높이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예컨대 지난 1월 워싱턴포스트(WP)는 ‘연방 소득세를 전면 폐지하고 관세 수입으로 국가 재정을 충당하겠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말도 안 되는 계산(The Math Doesn’t Add Up)’이라며 비주얼 그래픽으로 정면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돈(6조 달러)과 2025년 미국 재무부가 관세로 벌어들인 수입(약 2640억 달러)의 22배 격차를 1칸=10억달러로 명시된 거대한 바둑판 형태의 사각형 비주얼 그래프로 대조시켜 비교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줬다.
나아가 미 언론들은 디지털 플랫폼의 강점을 극대화한 인터랙티브 차트(Interactive Chart)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래프에 마우스 커서를 갖다대면 이에 반응해 해당 부분의 정확한 수치가 반응형 팝업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지면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기사를 읽을 때의 장점 중 하나다. 독자는 필요한 정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바로 확인할 수 있어 필요한 데이터를 찾는 시간이 크게 단축된다. 아울러 작은 숫자까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전체 그래프만 보고 사실을 왜곡하는 오류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 역할도 수행한다.

동시에 독자들은 데이터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직접 만지고 탐색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래프 속 데이터를 구석구석 살펴보며 사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조간 신문에 2D 그래프와 함께 보도된 기사를 온라인에 노출할 때 인터랙티브 차트 형태로 한 번 더 가공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면 훨씬 기사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주요 언론은 데이터 시각화를 디자인 부서의 부수적 작업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대신 이를 ‘비주얼 저널리즘(visual journalism)’의 핵심 영역으로 규정한다. 각종 시각화 자료가 기사 속 장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핵심 서술 방식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디자인팀은 초기부터 취재기자와 협업해, 시각화 방식을 고민하기도 한다. WP는 자사 디자인팀(Graphics) 소개글에서 “30명의 비주얼 저널리스트들의 조직” “기자들과 나란히 협업하며 저널리즘이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경험되는 방식을 함께 설계하는 융합형 시각 저널리즘 조직” 이라고 강조한다. 디자인팀을 명실상부 뉴스룸 내부의 취재 조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 WP는 2020년 그래픽 부서를 확대하며 신입 직원을 모집할 때 ‘graphics reporters’를 여러명 채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3. 현장감 있는 르포
미국 정부의 관세 인상이 자국민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복수의 연구에서 드러나고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지난 2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관세의 90%는 미국 기업과 미국민이 부담했다. 초반엔 관세 인상에 따라 증가한 비용을 감내하던 기업들은 점차 그 비용을 물건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고, 이는 장바구니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거시경제 지표가 다 담아내지 못하는 민생 현장의 분위기를 다룬 미국의 르포 기사는 뚜렷한 몇가지 특징을 지닌다.
사례는 풍부하게
미시적인 소비자 르포 영역에서 가장 독보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매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개별 사례를 도입부의 일시적 환기 장치로 짧게 활용한 뒤 신속하게 거시 경제지표 분석으로 넘어가는 구성을 취하는 반면, WSJ은 사례를 보다 풍부하게 보여주는 편이다. 작년 10월 WSJ의 기사 ‘Grocery Prices Keep Rising. Frustrated Consumers Are Trying to Adapt’를 보면 스테이크 가격이 급등해 정육점에서 항의하지만 결국 구매하는 사례자의 딜레마를 마치 카메라 앵글로 포착한 듯 현장감 있게 묘사한다. 이어 또다른 소비자 인터뷰, 할인 쿠폰을 쓰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유통 기업 CEO의 현상 진단, 공식 물가 통계 추이, 관세 폭탄의 나비효과라는 전문가 발언 등 순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사례가 단순히 기사 도입부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의 뼈대를 관통하는 핵심 동력인 구조다.
WSJ의 또다른 소비자 르포인 작년 11월 ‘Will Trump’s Trade War Break America’s Addiction to Cheap Stuff? 기사’는 코로나 팬데믹 시절, 테무(Temu)나 쉬인(Shein) 등 중국 초저가 쇼핑 플랫폼에서 값싼 제품을 습관적으로 사던 미국 소비자들이 관세 장벽 이후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4명의 사례를 통해 추적한다. 중국 쇼핑앱을 삭제하고 명상앱을 다운로드한 여성이나 쇼핑 하울 대신 절약 영상을 제작하는 것으로 방향을 튼 SNS(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 사례가 입체적으로 배치된다. 특히 89세 케이 워시번(Kay Washburn)의 사례에서는 그녀의 10대 시절부터 팬데믹 시기의 소비 행태, 그리고 최근의 고물가에 따른 심리 변화까지 깊게 파고들어 독자들의 몰입을 극대화했다.
이 기사에서 케이 워시번은 고교 시절 드레스를 한 벌 사기 위해 50시간동안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러한 ‘결핍의 시대’를 지나 팬데믹 시기에는 ‘쉬인’에서 한두 시즌 입을 목적으로 5.95달러 주고 바지를 사는 ‘과잉의 시대’에 진입한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고물가 상황에 직면해 쇼핑 습관을 바꾸겠다고 결심한다.
WSJ은 평면적으로 ‘현재 물가 때문에 힘들다’고만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물의 삶을 세밀하게 보여준 뒤 이것이 요즘의 사회 현상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독자들이 스스로 깨닫게 했다. 개별 사례가 구조를 설명한다는 사례 기반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4. 리빙저널리즘(Living Journalism)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워낙 변화도 잦아 가끔 기사를 보는 독자들은 파편화된 정보만 보기 쉽다. 이렇게 방대하고 복잡한 장기 이슈의 흐름을 따라가려면 단발성 스트레이트 기사로는 부족하다.
이에 다수 언론사들은 하나의 마스터 페이지(Tracker)를 만들어 이슈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뒤 새로운 판결이나 데이터가 나올 때마다 지속적으로 내용을 보강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른바 ‘리빙 저널리즘’, ‘업데이트형 데이터 저널리즘’이다.
WSJ의 질문형 정책 트래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과 관련해, WSJ은 독자들이 궁금해할 5대 질문을 정해두고 그에 대한 설명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한다. 일종의 Q&A 방식이다.

WSJ가 설정한 고정 질문은 현재 어떤 관세가 시행 중인지, 어떤 국가들이 관세 대상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인지, 소비자들에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법적 권한과 상태는 어떤지 등 5가지다.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대표 질문들이다. 새로운 판결이나 추가 발언이 나오면 기존 기사 위에 업데이트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정보는 제외하고 궁금증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기자는 기사 업데이트가 쉽다는 게 장점으로 보인다.

타임라인형 이슈 트래커
AP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을 시간 순으로 나열, 꾸준히 정책 변화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엔 관세 정책이 어땠는지부터 시작해 바이든 정부의 관세 기조,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관세 관련 굵직한 사건까지 시간의 흐름에 맞춰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이런 타임라인형 업데이트 기사에 강하다. 투자자나 기업전략가 등과 같은 블룸버그 통신의 주요 독자들에게는 실체적 사실의 선후 관계와 정책의 실시간 유효 상태가 경제적 의사결정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데이터를 누적하는 타임라인형 이슈 업데이트 방식을 선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Ⅳ. 맺으며
관세 장벽을 높이면 국내 산업이 보호되고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는 정치적으로 매우 매력적이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이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미국 현지에서 체감하는 경제적 현실은 정반대다. 예컨대 미국의 토마토 가격은 지난 1년 새 무려 40%나 급등했다. 미국은 봄철 토마토 소비량의 대부분은 멕시코에 의존하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코산 토마토에 17%의 보복성 관세를 부과하면서 토마토 소비자 가격이 껑충 뛴 것이다.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자 식품을 담는 통조림 캔과 음료 캔 제조 원가도 영향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1캔당 1달러 중후반대에 살 수 있었던 캠벨 수프는 이제 2달러선을 돌파했다. 가격인상 이후 캠벨은 저소득층 소비자들이 대거 마트 자체 브랜드(PB) 저가 수프로 갈아타고 있다며 올해 매출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경제학의 오래된 명제인 “관세는 수출국이 아니라 수입국의 소비자가 낸다”는 사실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정치적 구호와 현실 사이의 깊은 괴리는 오늘날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또 미국 주류 매체들이 관세라는 통상 이슈를 다루는 방식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와 이를 보도하는 우리 언론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첫째, ‘단발성 받아쓰기’를 넘어선 지속 가능한 ‘리빙 저널리즘(Living Journalism)’의 필요성이다. 한국의 통상 보도는 주기적인 정부 통계치나 정부 대책, 외신 속보가 나올 때 단발성으로 보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관세와 무역 전쟁은 수년에 걸쳐 기업의 공급망과 가계 경제를 바꾸어 놓는 장기 서사다. 독자가 언제 접속하든 파편화된 정보가 아닌, 사안의 거시적 맥락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아카이브형 저널리즘이 필요하다.
다만 타임라인 형태로 정보를 업데이트해 관리하는 것은 비용이나 인력 소모가 커 미국 대표 일간지에서도 잘 시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비영리 연구기관들이 데이터베이스 구축 목적으로 하나의 대시보드에 누적 업데이트를 하는 ‘이슈 트래커’ 서비스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 환경을 고려하면 여러모로 부담이 큰 타임라인식 이슈 트래커 보다는 Q&A 방식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WSJ 모델이 적합해보인다.
둘째, ‘수학적 팩트체크’와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유기적 결합이다. 정치인의 발언을 검증해 등급을 매기는 WP의 ‘자신감’을 보며 결국 언론의 가장 큰 역할은 정확성에 있다는 점을 다시 깨닫는다. 마감 시한에 쫓기는 현장 기자 개인이 정량적 데이터 검증까지 완벽히 수행하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현장 기자들에게 검증의 무게를 모두 감당하게 하기 보다는, WP처럼 독립적 팩트체킹 전담부서를 제도화하는 구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짧은 사례와 통계, 전문가 멘트’를 적당히 섞은 경제기사 작법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미국 소비자 르포를 보면 공식 통계가 있어도 사람 이야기, 개별 케이스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한 사람의 사례가 사회 구조를 보여주는 축소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WSJ 소비자 르포는 경제 기사 역시 사회면 심층기사처럼 사람이 중심이 되는 내러티브 서사로 쓸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우리도 어려운 통계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을 기본 바탕으로 삼되, 풍부한 사례로 독자들의 정책 이해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셋째, 뉴스룸 내부의 융합을 통한 ‘비주얼 저널리즘’의 주류화다. 복잡한 통상 법률(무역법 122조, 301조 등)과 수조 달러 단위의 재정 수치는 텍스트만으로 독자를 설득하기 어렵다. WP의 ‘바둑판형 사각형 그래프’나 실시간 ‘인터랙티브 차트’처럼, 데이터 시각화는 기사의 단순한 장식이 아닌 그 자체로 강력한 서술 방식(Storytelling)이다. 한국 언론도 그래픽 디자인 부서를 기사의 후가공 조직이 아닌, 취재 초기 단계부터 기획을 함께 설계하는 뉴스룸 내 핵심 취재 조직으로 격상시키고 관련 인프라 투자를 늘려야 한다.
<참고자료>
- U.S. Bureau of Economic Analysis and U.S. Census Bureau, “U.S. International Trade in Goods and Services: December and Annual 2025,” February 19, 2026, https://www.bea.gov/sites/default/files/2026-02/trad1225.pdf.
- “Trump says tariffs help America. Estimates suggest they cost families about $1700,” PolitiFact, February 2026, https://www.poynter.org/fact-checking/2026/do-trump-tariffs-cost-families-1700-dollars/.
- “About The Fact Checker,” The Washington Post, January 7, 2019, https://www.washingtonpost.com/politics/2019/01/07/about-fact-checker/.
- The Washington Post Editorial Board, “Trump’s tariff promises don’t add up. Here’s the math,” The Washington Post, January 15, 2026,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interactive/2026/trumps-tariff-promises-dont-add-up-heres-math/.
- “Grocery Price Inflation: Customer Reactions,” The Wall Street Journal, https://www.wsj.com/economy/consumers/grocery-price-inflation-customer-reactions-346487f7.
- Chip Colwell, “Will Trump’s Trade War Break America’s Addiction to Cheap Stuff?” The Wall Street Journal, November 14, 2025, https://www.wsj.com/economy/consumers/will-trumps-trade-war-break-americas-addiction-to-cheap-stuff-ff21df9e.
- Federal Reserve Bank of Boston, “Who Will Pay for Tariffs? Businesses’ Expectations about Costs and Prices,” Current Policy Perspectives, September 2025, https://www.bostonfed.org/publications/current-policy-perspectives/2025/who-pays-for-tariffs.aspx.
- “Tariffs, Margins and Higher Prices: What Retailers Are Forecasting Under Trump,” The Wall Street Journal, January 14, 2025, https://www.wsj.com/business/retail/trump-tariffs-higher-prices-forecast-5233d6c4?mod=Searchresults&pos=3&page=1.
- “Trump’s Tariffs: What Is Imposed, Who Is Affected and How They Work,” The Wall Street Journal, https://www.wsj.com/politics/policy/trump-tariffs-tracker-what-to-know.
- “Trump’s tariffs have launched global trade wars. Here’s a timeline of how we got here,” AP News, https://apnews.com/article/trump-tariff-england-trade-war-e8300b457256d4c23d64928c09ce2b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