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트럼프, 그리고 두 나라 민주주의의 1년 중앙일보 권호 연수기관: 노스캐롤라이나대
Ⅰ. 서론 ― 관저 앞의 새벽, 그리고 1년의 자연실험
2025년 1월 14일 밤, 후배에게 윤석열의 한남동 관저 앞 취재를 지시했다. 이튿날 새벽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앞둔 시점이었다. 현장에 일찍 나가 있으라 이르면서도, 마지막에 붙인 말은 취재 지시가 아니라 당부였다. “한 마디 더 듣겠다고 무리하지 마라. 부디 다치지 마라.” 2016년 겨울 시경캡으로 박근혜 탄핵 찬반 시위를 지휘하며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그 말을, 8년 만에 다시 하고 있었다. 두 번의 탄핵 국면 사이, 한국 정치의 현주소가 그 한 문장에 응축돼 있었다.
이 연구는 그 겨울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SNS)가 대통령제 민주국가에서 더 위험하게 작동하는가, 그 위험은 보수 진영에서 더 두드러지는가. 눈앞에는 두 명이 있었다. 극우 유튜브에 의존한 채 12·3 비상계엄으로 치달은 윤석열, 그리고 2020년 대선 불복과 의사당 난입을 거쳐 재집권한 도널드 트럼프였다.
연수생 입장에서 행운이라 할 만한 건, 계획서를 쓰던 시점엔 결과가 유동적이었던 변수들이 연수 기간 1년 동안 대부분 값을 냈다는 점이다. 당시(2025년 1월) 윤석열의 파면 여부는 헌법재판소에 걸려 있었고, 조기 대선의 성립과 결과도, 트럼프 2기의 실제 궤적도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예측의 영역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변수들은 모두 결론이 나오거나 그 윤곽이 짙어졌다. 한국은 헌재의 파면(2025년 4월 4일)과 조기 대선(6월 3일)을 거쳐 정권이 교체됐고, 미국은 트럼프 2기의 첫 1년을 통과하며 그 색채를 뚜렷히 하고 있다.
Ⅱ. 관찰 1 ― SNS와 확증편향: 두 대통령의 서로 다른 문법
윤석열에게 SNS는 세계를 인식하는 창(窓) 그 자체였다. 그는 레거시 미디어를 불신했고, 극우 유튜브가 전하는 ‘시중 여론’을 국정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계엄이라는 파국의 밑바탕에도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 있었다. 주목할 것은 이 서사가 파면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6년 6ㆍ3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그 증거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는데, 이번 사태의 인과 구조는 의미심장하다. 근본 원인은 선관위가 투표용지 인쇄 하한을 선거인 수의 60%에서 50%로 낮춘 내부 지침이었는데, 한 근거가 ‘선거 후 남는 용지가 부정선거에 악용된다’는 음모론에의 대응이었다. 음모론이 행정 결정에 침투해 사고를 부르고, 그 사고가 다시 음모론에 연료를 공급한 것이다. 음모론이 원인이자 결과가 되는 순환이 완성됐다.
더 결정적인 것은 이 국면의 주역에 대통령이 없다는 사실이다. 제1야당 대표는 “오염된 선거”라며 선거 중단을 요구했고, 부정선거를 주장해온 정치 유튜버는 전국 선거 무효를 외쳤다. ‘재선거’ 요구가 ‘부정선거론’으로 번지며 개표소 봉쇄 시위에 인파가 운집했다. 서사가 특정 인물에 국한된 게 아니라 정당ㆍ유튜브ㆍ거리로 분산돼 자생하는 ‘정보 하부구조’가 됐다는 뜻이다. 다만, 이 사태에는 사전투표율을 반영하지 않은 선관위의 실제 행정 실패가 존재했고 참정권 침해도 실재했으므로, 정당한 진상 규명 요구와 부정선거론은 층위를 구분해 읽어야 한다.
트럼프에게 SNS는 인식의 창이 아니라 권력의 도구였다. 이 비대칭이 윤석열과의 결정적 차이다. 윤석열이 SNS의 수용자였다면 트럼프는 발신자였다. 그는 트루스소셜을 통치의 확성기로 삼았고, 비판적 언론을 “국민의 적”으로 규정하는 문법을 1기부터 이어왔다.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2025년 여름, 트럼프-머스크 결별이다. 2기 초기 정부효율부를 이끌던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의 감세·지출 법안을 두고 충돌한 끝에 갈라섰고, 두 사람은 각자 소유한 플랫폼 ― 머스크의 X, 트럼프의 트루스소셜 ― 에서 공개 설전을 벌였다. 세계 최대의 두 소셜 플랫폼이 각각 정치 권력의 사적(私的) 무기로 기능하는 장면은, SNS와 권력의 융합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확증편향이 보수 진영에서 더 두드러진다는 애초 가설은 긍정하기 어렵다. 데이터부터 갈린다. 유튜브 뉴스 이용의 확증편향이 보수 채널 이용자에게서 주로 관찰된다는 분석(한정훈)1과, 정작 확증편향층은 50·60대·특정 지지층에서 두드러진다는 반론(STI)2이 공존한다.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택하는 순간 연구는 이념 시비에 갇힌다. 더 중요한 것은 확증편향이 진영의 문제라기보다 매체 구조의 문제라는 점이다. 알고리즘 추천, 폐쇄적 정보 소비, 플랫폼의 사유화라는 조건은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보수 진영 안에서도 플랫폼을 매개로 적대가 폭발한 트럼프-머스크 사례가 그 방증이다. 따라서 가설 1은 “보수가 더 취약한가”에서 “대통령제라는 권력 구조가 이 취약성을 어떻게 증폭하는가”로 바꿔야 한다.
Ⅲ. 관찰 2 ― 대통령제의 구조적 리스크
트럼프 2기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단일행정부 이론(Unitary Executive Theory)’이다. 그는 취임 직후 독립 규제기관을 대통령 통제 아래 두겠다는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법이 정한 해임 사유 없이 연방준비제도 이사와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실적제도보호위원회(MSPB) 위원 등 독립기관 인사를 잇달아 해임했다.3 “나라를 구하는 자는 어떤 법도 위반하지 않는다”는 나폴레옹의 문구를 인용한 그의 통치 철학은, 삼권분립을 견제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취급한다.
이 권력 집중은 곧 사법부와 충돌했다. 관세가 상징이다. 트럼프는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했으나, 연방항소법원(2025년 8월)에 이어 연방대법원이 2026년 2월 판결에서 해당 법이 대통령에게 관세 권한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이를 무효화했다.4 우편투표 제한·시민권 확인을 담은 선거 관련 행정명령도 복수의 연방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설계한 연방제와 견제 장치가,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얼마나 쉽게 시험대에 오르는지를 1년의 기록이 보여준다.
미국형이 행정명령과 인사권을 통한 점진적 침식이라면, 한국은 비상계엄이라는 단발적·파국적 형태로 폭발했다. 미국형은 제도를 우회하는 지구전이고, 한국형은 제도를 정면으로 부수는 속결전이다. 전자는 법원의 개별 판결로 하나씩 제동을 걸어야 하고, 후자는 헌재의 단일 결정으로 승부가 갈린다.
Ⅳ. 관찰 3 ― 결정 변수는 ‘제도적 복원력’이었다
계획서의 제목은 “SNS가 대통령제에 더 위협적인가”였다. 1년의 관찰이 내놓은 답은, 위협의 크기를 실제로 좌우한 것은 SNS도 대통령 개인도 아닌 제도의 ‘복원력’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극한값을 찍고도 되돌아왔다. 계엄 선포에서 국회의 해제 의결까지 약 2시간 반, 탄핵소추에서 헌재 파면까지 111일. 국회·헌법재판소·시민이라는 세 층위의 견제가 순차적으로 작동했고, 파면 직후 곧바로 조기 대선으로 권력을 재구성했다. 파열은 컸으나 복원은 빨랐다.
미국은 반대다. 파열은 없었으나 침식이 상시화됐고, 그 제동은 사실상 법원이라는 단일 장치에 기대고 있다. 2기 출범 이후 행정부 조치를 둘러싼 소송은 500건을 넘어섰고 상당수가 법원의 잠정 제동으로 이어졌지만5, 이 견제는 개별 사안마다 소송으로 다투는 지구전이다. 공화당이 다수인 입법부는 대통령과 사실상 한 몸이 됐다. 남은 제동장치가 법원 한 곳뿐이라면, 그 복원력은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두 나라가 이 위기에 내놓은 응답도 정반대다. 한국은 대통령제 자체를 손보려 한다. 12·3 계엄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가 극적으로 부각되면서 2026년 4월 4년 연임제·결선투표제·국무총리 국회 추천제·계엄 시 국회 통제권 강화를 담은 개헌안이 발의됐다.
반면, 미국은 제도를 대통령에게 맞추려 한다. 단일행정부론은 헌정 구조를 대통령 중심으로 재해석하는 시도인데, 위기의 해법을 ‘더 강한 대통령’에서 찾는 셈이다. 같은 대통령제, 같은 SNS 환경, 유사한 성정의 지도자를 겪은 두 나라가 정반대의 응답을 내놓고 있다는 사실은, 향방을 가르는 것이 기술(SNS)이나 개인이 아니라 정치 공동체의 선택임을 다시 확인시킨다.
Ⅴ. 관찰 4 ― 제도 아래의 복원력: 아이들을 대하는 온도
지금까지의 관찰은 차갑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불안정하고, 안정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 복원력에도 의문을 갖게끔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미국이 여전히 우리가 알던 미국임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은 분명히 있었다. 특히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렇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관람하던 날, 인터미션 중 몸이 불편한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붐비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길을 터줬다. 한 신사는 아이가 혼자 움직이기 어려워 보였는지, 별다른 망설임 없이 도움을 자청하며 함께 들어갔다. 계산된 배려라기보다 몸에 밴 반응에 가까웠다.
스쿨버스는 말 그대로 도로 위의 절대적 존재다. 아이를 내려주려 정차하면, 중앙분리대가 없는 도로에서는 반대편 차량까지 멈춰야 한다. 어기면 높은 벌금과 면허 정지가 뒤따른다. 규정이 엄격해서라기보다, 그 규정을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더 인상적이다. 주말의 클럽 스포츠도 그랬다. 두 아들이 뛰는 축구 경기장의 공기는 한국과 사뭇 달랐다. 부모들은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가리지 않고 이름을 부르며 응원했다. 경기가 끝나면 양 팀 부모들이 마주 서서 손을 들어 터널을 만들고, 결과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그 사이를 뛰어 지나간다. 경쟁은 있었지만, 적대는 남지 않는 구조다.
이 장면들은 통계도 판례도 아니다. 그러나 앞의 분석이 놓친 층위를 가리킨다. 법원·국회·선거라는 형식적 제도가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지탱하는 ‘앞면’이라면, 낯선 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반사적 배려, 스쿨버스 앞에서 반대편 차선까지 멈춰 서는 무언의 합의, 승패보다 경험을 먼저 쥐여주고 결과와 무관하게 터널을 만들어 주는 문화는 그 ‘뒷면’이다. 지도자는 흔들려도, 아이를 대하는 방식은 흔들리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진짜 내구성은 어쩌면 정치가 아니라, 이렇게 일상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Ⅵ. 결론 ― 두 겹의 복원력, 그리고 저널리즘의 과제
애초 질문 “SNS는 대통령제 민주국가에 더 위협적인가”에 대한 잠정적 답은 세 가지다. 첫째, SNS는 대통령제에서 더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그 실체는 SNS 자체가 아니라 SNS가 증폭한 확증편향이 집중된 권력과 결합할 때 발생한다. 둘째, 확증편향은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매체 구조의 문제이므로, 논의는 “보수가 더 취약한가”에서 알고리즘·플랫폼 사유화로 옮겨가야 한다. 셋째, 최종 결정 변수는 제도의 복원력이다.
다만 그 복원력은 두 겹이었다. 법원·국회·선거라는 앞면과, 일상의 시민 문화라는 뒷면. 한국은 형식적 제도의 복원은 세계가 놀랄 만큼 빠르고 강했지만 ‘노 키즈존’으로 상징되는 일상의 온도는 되물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 미국은 형식적 견제가 흔들리는 중에도 아이를 ‘남의 아이’로 두지 않는 시민적 저력이 남아 있다. 앞면이 튼튼하다고 뒷면이 보장되지 않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의 내구성은 이 두 겹이 함께 두꺼울 때 비로소 확보된다.
저널리즘의 함의도 여기서 나온다. 대통령이 레거시 미디어를 불신하고 SNS를 인식의 창(윤석열) 또는 권력의 무기(트럼프)로 삼는 시대에, 전통 언론의 역할은 축소가 아니라 재정의를 요구받는다. 확증편향 생태계 바깥에서 검증된 사실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일, 제도적 견제 장치의 작동을 감시하고 기록하는 일은 복원력의 앞면을 지탱한다. 동시에 스쿨버스 앞에 멈춰 선 자동차와 축구 경기장의 손터널처럼, 뒷면을 이루는 일상의 온도를 포착해 기록하는 일 역시 저널리즘의 몫이다.
관저 앞의 후배에게 건넨 “다치지 마라”는 당부가 개인의 안전을 넘어 민주주의의 안전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되는 지점, 그 확장이 이 1년의 기록이다.
- 한정훈, 「한국인의 유튜브 뉴스 이용과 확증편향성」, 『아시아브리프』 통권 146호(서울대 아시아연구소, 2023. 12).
- STI, 「미디어의 이용과 확증편향층의 형성 및 그 특징」(2023. 3, 전국 만18~69세 1,056명 조사).
- 행정명령 ‘Ensuring Accountability for All Agencies’(2025. 2. 18) 및 연방준비제도 이사 리사 쿡 해임(2025. 8) 등 독립기관 인사 해임.
- 미 연방대법원 Learning Resources, Inc. v. Trump(2026. 2. 20)에서 IEEPA 근거 관세 무효. 앞서 연방순회항소법원(2025. 8)도 동일 취지 판단.
- 2기 출범 이후 행정부 조치를 둘러싼 소송 추적치(Just Security) 및 관련 분석(CNN, 2026. 1) 종합. 500건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