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아픈 것만큼 서러운 일이 또 있을까. 가족도 친척도 없는 낯선 땅에서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기면 어디로 가야 할지부터 막막하다. 하물며 그곳이 의료비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미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 사이에는 의료비에 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떠돈다. 병원에 한번 다녀왔다가 수백만 원을 냈다거나, 구급차를 한번 탔다가 수천 달러를 청구받았다는 식이다. 실제로 워싱턴에서 활동하던 한 국내 특파원은 이마를 다쳐 피가 흐르는데도 주변에서 구급차를 부르려고 하자 “절대 부르지 마!”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만큼 미국 의료비는 한국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우리 가족도 미국에 온 뒤 감기나 몸살 정도로 동네 병원을 찾은 적은 있지만, 큰 병에 걸리거나 응급실에 갈 일은 없었다. 그러던 지난 9월 중순, 그 막연한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다.
새벽 5시, 남편이 죽겠다고 했다
일요일 새벽이었다. 깊이 잠들어 있는데 남편이 나를 깨웠다. “나 정말 죽을 것 같아.” 잠에서 깬 남편은 이미 한참 전부터 혼자 통증과 씨름하고 있었다. 옆구리를 누군가 쥐어짜는 것처럼 아파 잠에서 깼고, 스트레칭도 해보고 물도 마셔봤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는 것이다.
남편은 얼마 전 운전하다가 비슷한 통증을 겪은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 처음 경험하는 증상이라 AI에 물어봤더니 신장결석일 가능성이 있다는 답을 들었단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이 사라져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남편은 제대로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침대와 거실을 오가며 몸을 웅크렸다. 신장결석에 따른 요로결석 통증은 출산의 고통에 비견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극심하다고 한다. 평소 웬만한 통증에는 엄살을 부리지 않는 남편이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나 역시 AI에 물어보기 시작했다. 온찜질이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을 보고 뜨거운 물에 수건을 적셔 남편의 옆구리에 대줬다. 집에 있던 미국 진통제 ‘애드빌’도 먹였다. 하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당장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미국에서 감기에 걸리면 종종 방문했던 CVS 약국의 미닛클리닉(MinuteClinic)이 먼저 떠올랐다. 예약하거나 당일 방문해 비교적 가벼운 질환을 진료받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감기나 몸살과는 차원이 달랐다.
검색 끝에 집 근처 어전트케어(Urgent Care)를 찾았다. 응급실보다는 가벼운 질환을 신속하게 진료하는 곳이다. 그런데 ‘긴급 진료’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오전 8시가 돼야 문을 열었다. 새벽 5시부터 남편은 집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개원 시간만 기다렸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응급실로 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에서 응급실에 가면 엄청난 돈이 든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였을까. 우리 부부 모두 일단 조금 덜 비쌀 것 같은 곳부터 찾아가자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의료 전문 영어가 막막할 땐 한국어 통역을
오전 8시가 되자마자 남편을 차에 태웠다. 운전대를 잡은 내 옆에서 남편은 몸을 웅크리고 끙끙거렸다.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무척 길게 느껴졌다.
어전트케어에 도착해서도 바로 의사를 만날 수는 없었다. 내가 접수하는 동안 남편은 대기실 소파에 거의 드러누워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20분쯤 기다렸을까. 간신히 진료실에 들어갔다.
또 하나의 장벽은 의료 영어였다. 일상생활 영어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만 전문적인 의료 용어는 전혀 다른 문제다. 더구나 통증으로 정신이 없는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영어로 정확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행히 남편은 미리 AI 번역으로 본인의 증상을 정리해 놓았다. 옆구리가 어떻게 아픈지, 언제부터 통증이 시작됐는지, 과거에도 비슷한 증상이 있었는지 등을 영어로 적어놓은 것이다. 막상 의료진을 만나자 말할 정신조차 없어 휴대전화 화면을 의료진에게 그대로 보여줬다.
진료 과정에서 더 반가운 것은 한국어 통역 서비스였다.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태블릿으로 한국어 통역사와 연결할 수 있었다. 의료진이 영어로 설명하면 통역사가 한국어로 전달하고, 우리가 한국어로 질문하면 다시 영어로 옮겨줬다.
낯선 의료 환경에서 이 서비스는 생각보다 훨씬 든든했다. 전문적인 의료 용어를 모두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필요한 설명을 충분히 듣고 질문할 수 있었다. 워싱턴 일대에 한국인이 많이 살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방문한 의료기관에서는 언어 때문에 진료를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의료진은 신장결석이 의심된다며 응급실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권했다. 우선 강한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해 주었는데, 잠시 후 남편의 표정이 눈에 띄게 편안해졌다.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사람다운 얼굴이 됐다.
문제는 응급실까지 어떻게 가느냐였다. 의료진은 구급차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비용부터 떠올렸다. 구급차를 타면 기본으로 수천 달러가 나오는 것 아닐까. 보험이 적용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행히 남편은 진통제 덕분에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됐다. 결국 직접 운전해서 가겠다고 했다. 의료진은 권고한 이송 방법을 따르지 않고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데 따른 위험을 설명했고, 우리는 모든 책임은 우리가 지겠다는 관련 서류에 서명했다.
의료진에게 가까운 응급실을 추천받아 다시 차를 몰았다. 미국 생활 1년여 만에 처음 가보는 응급실이었다.
의사 얼굴은 잠깐, 청구서는 한참 뒤에
응급실에서도 접수부터 다시 시작했다. 어전트케어에서 받은 서류를 제출하고 그곳에서 어떤 처치를 받았는지 설명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도 함께 갔는데, 의료진은 응급환자들이 드나드는 진료 구역에 아이가 들어오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결국 남편만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아들과 밖에서 기다렸다.
남편에게 나중에 들은 응급실 이야기는 예상과 조금 달랐다.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CT 촬영 등을 받았지만 의사를 직접 만나는 시간은 놀랄 만큼 짧았다고 한다. 처음 만난 의사는 남편으로부터 간단한 증상 설명을 듣더니 신장결석이 의심된다며 “정말 아팠을 텐데 잘 견뎠다”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수액을 맞으며 두세 시간 가까이 대기한 끝에 CT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단은 신장결석이었다. 두 개의 결석이 발견됐고, 그중 하나가 요관으로 내려오면서 극심한 통증을 일으킨 것으로 보였다. 문제가 된 결석은 3㎜ 정도여서 자연 배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의사는 약을 처방하고 귀가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남편 말로는 마지막에 의사를 만난 시간도 1~2분 남짓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3분 진료’가 짧다고들 하지만, 미국 응급실이라고 의사와 오랫동안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신기했던 것은 퇴원할 때였다.
남편이 간호사에게 “이제 가도 되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병원비는 어디서 내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지금은 낼 필요가 없다고 했단다. 그렇게 아무런 결제도 하지 않고 응급실을 나왔다.
한국에서는 병원 문을 나서기 전에 수납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미국 응급실에서는 나중에 청구서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얼마가 나올지도 모른 채 병원을 나서는 기분이 묘했다.
CVS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 세 종류를 70~80달러에 구입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도 남편은 통증이 재발해 진통제로 버텨야 했다. 다행히 다음 날부터는 상태가 호전됐다. 이제 남은 문제는 병원비였다.
며칠 뒤 아들 축구 연습장에서 만난 미국인 학부모에게 남편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본인 역시 신장결석으로 응급실에 가본 경험이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얼마나 아팠겠느냐며 깊이 공감했다. 슬쩍 병원비가 얼마나 나왔는지 물어보니 보험이 있었는데도 본인 부담금이 2000달러 정도였다는 것이다.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우리도 1000달러쯤은 나오겠거니 대략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니. 그래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날아온 청구서는 그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8000달러 청구서가 4000달러로 줄어든 사연
응급실을 다녀온 지 일주일쯤 지나자 청구서가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첫 청구서에 적힌 금액은 무려 8000달러가 넘었다. 우리 돈으로 1000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다.
겨우 응급실에서 두세시간 머물며 간단한 검사를 받고 수액을 맞았는데 이렇게 많은 돈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숫자를 마주하니 입이 벌어졌다.
그런데 청구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더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병원 측에서 이미 비용의 50%를 자체 할인해 놓은 것이다. 미국 의료보험이 없는 환자에게 적용하는 이른바 무보험 환자 할인(Self-pay discount)이었다. 실제 내라고 청구한 금액은 4000달러 남짓이었다.

처음에는 8000달러를 보고 놀라고, 다음에는 그 돈을 절반이나 깎아줬다는 사실에 놀랐다. 도대체 미국 병원비의 원래 가격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CT 판독 등 영상의학 관련 비용이 별도로 청구됐고, 의사 진찰비도 따로 날아왔다. 응급실에서 잠깐 만났다는 의사의 진찰비만 수백 달러였다. 여러 기관이 각자 비용을 청구하다 보니 할인 전 청구액을 모두 합하면 거의 1만달러에 가까웠다.
영상의학 관련 청구서에는 별도의 할인이 적용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전화해 미국 의료보험이 없다고 설명하며 할인을 요청했다. 그러자 상담원은 별다른 실랑이 없이 그 자리에서 약 300달러를 깎아줬다. 1000달러 가까웠던 금액이 600달러대로 내려갔다.
전화 한 통으로 수십만 원이 줄어든 것이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의료비 청구서를 받더라도 무조건 적힌 금액 그대로 내기보다 할인 대상인지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모든 병원이나 청구기관이 똑같은 할인율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가족은 미국 현지 의료보험 대신 한국에서 해외 주재원 등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의료보험에 가입해 왔다. 지금은 미국 병원에서 받은 청구서와 진료 기록을 모아 한국 보험사에 보상을 청구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아직 최종 정산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가입한 보험의 보장 범위에 해당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 장기 체류할 계획이라면 의료보험만큼은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현지 단체보험이든 한국에서 가입하는 해외 체류자 보험이든 보장 한도와 자기부담금, 응급실과 구급차 이용 조건 등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보험 종류에 따라 실제 부담액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미국 의료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졌다. 의료비가 상상 이상으로 비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막연히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의료기관의 진료 체계는 나름대로 잘 갖춰져 있었다. 한국어 통역 서비스도 있었고, 환자의 상태에 맞춰 검사와 치료가 이어졌다. 복잡한 청구 과정에서도 직접 문의하면 할인받을 방법이 있었다.
물론 한밤중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는데도 병원비 걱정에 응급실 대신 아침까지 문 여는 곳을 기다렸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씁쓸하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비용 걱정보다 필요한 응급진료를 받는 일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아프지 않기만을 바랐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됐다. 미국 의료비는 두려워할 만하지만, 미리 준비하고 제도를 알아두면 막상 아플 때 대처할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남편의 신장결석 덕분에 우리 가족은 미국 의료 시스템을 온몸으로 배웠다. 수업료가 1만 달러에 달할 뻔한,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현장 수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