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1) 연구 배경
2014년 일본에서 발표된 ‘마스다 보고서’는 ‘지방소멸’이라는 단어와 함께 896곳의 일본 지방자치단체(地方自治体) 이름을 제시했다. 저출생과 고령화. 두 현상이 심화되면서 일본의 인구는 일극(一極), 즉 도쿄로의 쏠림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다소 당연한 논리로 귀결된 보고서다. 하지만 소멸 예상 명단에 들어간 지역들에게 이 문서는 마치 살생부와 같은 충격을 던져줬다.
일본의 총무상을 지냈고, 2011년부터는 일본 지방창성회의의 대표를 맡은 마스다 히로야 (増田 寬也) 도쿄대 교수가 2040년이면 ‘사라질지도 모를’ 896개의 시(市), 정(町), 촌(村)의 구체적인 리스트 내놓은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보고서가 부른 논쟁과 논란을 동력으로 삼아 일본은 이 보고서가 발표된 바로 그 해, 정부의 최대 과제로 ‘지방창생(地方創生)’을 꼽아들었다. 이어 2020년까지 도쿄와 지방의 전출 인구수를 맞추기 위한 창생종합전략을 발표했다.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창생법’도 제정돼 ‘마을(まち)·사람(ひと)·일(しごと) 창생본부’가 꾸려졌다.
정책이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2020년도의 숫자가 나와야겠지만, 일본의 인구는 여전히 연간 12만 명(2017년 기준)이 도쿄 권으로 초과 유입되고 있다.
일본은 도시와 지방, 대도시권과 주변 지역권의 관계를 꾸준히 조정해왔다. 마스다 보고서가 나오기 5년 전인 2009년, 일본 정부는 지방 인구유출 완화를 위한 ‘지역부흥협력대(地域おこし協力隊)’를 창단시켰다. 지방에서 살거나 활동하려는 젊은이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해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시간을 훨씬 거슬러 올라가면, 1970년 오사카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도 도시와 지방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비슷한 역할을 했다. 당시 철도청은 신칸센이 개통되면서 손님을 모으기 위한 ‘디스커버 재팬(ディスカバ ジャパン)’ 캠페인을 시작했다. 일본 국내여행의 붐이 일어난 것은 이때부터다. 도시민들이 지방으로 가서 그 지역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 혹은 먹을 수 있고, 살 수 있는 특산물을 즐기며 소비한다. 즉, 지방이 도시에 사는 이들의 여행지가 되는 국내여행의 패턴이 정착된 것이다. 경제와 정치, 인력이 집약된 도시의 힘을 지방으로 이전시켜 균형을 맞추려는 움직임은 수 십 년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2019년 지금의 일본은, 1970년대 혹은 1990년대와는 상황이 다르다. 매년 기록적인 경제성장률을 견인하던 대도시는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한다. 인구는 줄었고, 평균 연령은 고령화됐다. 경제활동인구에서 젊은이가 차지하는 비중도 줄었다. 저성장 시대다.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의 변화가 ‘뉴노멀(New normal)’로 대체된 지금은 이전까지의 대도시-지방 사이의 관계 혹은 상관성이 유효하지 않다.
오히려 규모의 팽창이 전제되지 않았던 작은 지방의 특성이 힘을 갖는 시대가 됐다. 성장 없이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지역의 힘이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고도경제성장기였던 1970~80년대 산업·도시화가 부른 문제를 지역단위로 해결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만들어졌던 마을 만들기(まちつくり) 조직이 이제는 시민운동의 성격을 띠며 일본의 풀뿌리 사회의 소통의 매개가 된 경우도 많다.
2014년 제정된 ‘창생법’은 도입초기부터 인구 재생산, 즉 여성의 출산에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지방의 소멸’에 대한 정의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소멸’이라는 단어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은 중앙 혹은 지방정부가 정책을 만들어 행정을 집행하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하지만 ‘지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가 사라지는 것일 뿐’라는 반론처럼, 사람이 사는 곳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행정구역은 이에 따라 재조정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살지 않게 된 지역이 있는가하면, 새로 인구가 유입돼 마을이 형성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마을과 지역, 동네의 잠재성, 즉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여부다.
2) 연구의 필요성
한국에서도 ‘소멸’의 위기감을 갖고 있는 지역들이 있다. 저성장 시대의 일자리는 도시에 더욱 집중된다. 1인 가구와 젊은 층은 선호하는 삶의 방식은 사회적인 기능이 집적된 대도시다.
일본의 인구이동의 특징을 보면, 한국과는 다른 흐름이 있다. 지방에서 태어나→학업 혹은 일자리를 위해 대도시로 이동했다가→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U턴’. 도시 출신이→지방으로 이주해 거주하는 ‘I턴’. 지방에서 태어나→대도시로 떠났다가→고향 근처 대도시 혹은 다른 지방으로 이주하는 ‘J턴’. 이 같은 지방-도시 사이의 역흐름은 ‘사토리 세대’(1980년대 후반~1990년대 출생자 중 출세, 성공뿐 아니라 취직 등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젊은이들을 구분지은 말)가 등장하면서 뚜렷해졌다. 고향에서 대학까지 졸업해 그 곳에서 취직하는 성향의 20대가 많은 것도 한국과 다른 성향이다.
하지만 저성장시대 양국의 시민들은 달라진 주거 및 거주에 대한 문제의식과 새로운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안정적인 가구 수입을 확보해 의식주를 해결하고, 내가 살고 싶을 삶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인가. 이 같은 도시의 ‘뉴노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일본과 한국 양국의 ‘소멸하지 않는 지방’이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1인당 총생산액, 소득 및 소비액 등 이전까지 중요시됐던 경제적 수치로는 표현되지 않는 대안들이다.
1) 키노시타 히토시(木下斉)
2. 연구에서 보고자 하는 것
이번 연수보고서는 새로운 태어난 마을, 혹은 새로 주목받는 동네가 사라지는 지역보다 10배나 많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시민들의 지속가능한 거주. 이는 대도시나 지방이나 지역의 경제가 전제조건이다. 특히 지역 혹은 지방의 경제활동은 과거 지역민에게 강조됐던 ‘향토성’이 아닌 동네의 ‘희소성’을 발굴해 가치를 재발견하는 주체들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제시되는 사례에서는 지역 및 동네의 공간들은, 소유 형태에 상관없이, 일정한 공공성(公共性)을 띠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재산권은 사유 혹은 국유(시유)로 구분돼있지만, 시민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공유지 성격을 갖는 공간이다. 공원과 회관 등 행정의 영역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공간의 공공성(공유)이 소유 형태와 상관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일본의 사례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한국 시민의 입장에서도 눈여겨볼만한 부분이다.
3. 실제 연구의 내용 : 공공성을 갖게 된 공간 사례
1) 공유 녹지의 재발견 : 모두의 정원
부촌의 골목길을 지나가다 커다란 대문 창살 틈으로 파랗게 깔린 정원을 들여다본 경험이 있다. 계절에 따라 꽃과 잎의 색깔이 바뀌면 집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그런 집에서는 마당은 보는 것만으로도 확실한 휴식이 될 것 같았다.
이 대문을 열어 주민 누구나 마당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한 집들이 있다. 문 안쪽으로는 나무가 울창한 숲이 우거진 곳도 있고, 정갈하게 가꾼 정원이 있는 곳도 있다. 여러 가지 채소를 심은 텃밭도 있다. 개인 소유의 주택 혹은 사유지를 동네 주민에게 공개하는 이 프로젝트는 일본 정부가 ‘도시녹지법’에 따라 시행 중인 ‘시민녹지제도’다. 300㎡ 이상의 토지소유자가 5년 이상 녹지를 상시 개방(연말연시를 제외하고 오전 9시~오후 5시, 동절기는 오후 4시까지)하면 재산세와 도시계획세의 10%를 감면해준다. 개방 기간을 20년 이상으로 늘리면 시민녹지로 계약한 토지의 평가액을 20% 줄여주기 때문에 상속세 감면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세타가야구(世田谷区)는 도쿄 시내에서 이 같은 시민녹지가 가장 많은 구다. 도쿄의 남서쪽으로 가장 외곽에 위치해 가나가와현(神奈川県)과 경계인 이 곳은 녹지도 도쿄 23구 중 가장 많다. 특히 세타가야는 시민녹지로 등록하면 감세 이외의 혜택이 하나 더 있다. 자원봉사단이 개방된 녹지를 관리해 준다. 정원이나 마당을 찾아오는 주민들을 위한 행사도 기획해 준다. ‘세타가야 마을 만들기 트러스트’가 더 많은 녹지를 시민들에게 개방하기 위해 진행하는 활동이다. 녹지 보존을 목적으로 트러스트 운동이 이뤄지는 곳은 도쿄23구 중 세타가야뿐이다.
오다큐선이 도쿄에서 달리는 마지막 지하철역인 세이조가쿠엔마에(成城学園前駅)는 단독주택들이 늘어선 거주지에 위치해 있다. 이 동네의 ‘세이조산초메 작은 숲(成城三丁目小さな森)’을 2019년 1월 말 찾았다. 고쿠분 절벽을 따라 가파른 언덕에 지어진 집안 마당이었다. 정원 입구부터 절벽을 따라 아래쪽으로 벽돌로 만든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마다 심어진 꽃들을 따라가면 내려가면 가장 아래에는 작은 연못도 보인다. 이날 ‘오픈 테라스’에 찾은 주민들은 계단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같이 차를 마셨다. 마당 안에 가득한 낙엽을 포대자루에 넣고 물과 함께 섞어 비료를 만드는 이야기도 들었다. 방문객들을 맞이하며 이것저것 설명해준 사람들은 집주인 부부, 그리고 정원 관리를 맡은 세타가야 재단의 봉사자들이다. ‘작은 숲’에 들른 주민들은 나무가 우거진 푸름을 만끽하는 것과 함께 이 집의 담벼락 넘어 풍경도 덤으로 얻어간다. 저 멀리 하늘과 맞닿은 곳에 후지산과 아타고산이 보였다. 문이 닫혀있었다면 몰래 담을 넘지 않고서야 보지 못할 이 풍경을 앞에 두고 동네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세이조산초메 작은 숲’은 도시녹지법에 따른 ‘시민녹지’는 아니다. 집주인이 특정한 날을 정해 세타가야 트러스트와 같이 공개 행사를 하는 세타가야구의 ‘작은 숲’으로 지정된 공간이다. 500㎡ 규모로 시민녹지 세제 혜택 등을 받을 수 있는 곳이지만 집주인은 ‘작은 숲’으로만 등록해 1년에 두세 차례 공개 행사를 하고 있다. 세타가야 마을 만들기 재단은 2005년부터 동네에서 자발적으로 공개한 개인 소유의 정원이나 숲, 삼림에 대해 자원봉사단과 녹지를 관리하는 독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법적으로 등록된 시민녹지 15곳뿐만 아니라 50㎡ 이하의 공간을 대상으로 한 ‘작은 숲’도 17곳을 관리하고 있다.
세타가야는 구내 녹지의 60%가 사유지다. 사유지를 개방하면 재단과 공동으로 녹지를 관리할 수 있다는 유인이 결국 세타가야 구민 전체의 공익적 가치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특히 세타가야 트러스트의 ‘작은 숲’ 지정은 조류나 곤충 등 자연 생태를 보존하자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세이조산초메 작은 숲’에서는 여름이 되면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 마당에 살고 있는 나비와 새 등을 관찰하고 전문가의 해설을 듣는 자연교실도 열린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문을 열어, 주민들과 공유하는 것은 간단한 개념인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결정은 아니다. 세금 혜택을 감안하더라도, 사생활이 노출 등은 감내해야 하는 숙제다. 개방한 주민과 방문한 주민 사이의 배려도 필요하다. 세타가야 재단은 ‘지역 커뮤니티의 잠재력을 키워보자’는 차원에서 작은 숲 제도를 추진했다고 설명한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동네’가 되려면 이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을 만들어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판단이었던 것이다.
세타가야에는 고도 성장기였던 1980년, 급증하는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단법인 ‘세타가야구 도시정비공사’가 꾸려졌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트러스트 형태로 변화됐지만, 오랫동안 마을 문제에 대해 고민해온 기구였던 만큼 녹지에 대해서도 활동이 이어졌다. 일본에서도 마을 만들기 주체가 녹지까지 관리하는 것은 드문 사례다. 소유권에 얽매이기 보단 ‘범위의 경제’를 생각해 도시 구성원 중 공적이익을 최대로 생산할 수 있는 주체를 찾아보는 힌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사례는 녹지와 반대로 향후 도시문제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빈집의 공공성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알아본다.
2) 소유권과 관리의무 : 마을의 폐가가 다시 주민의 집으로
인구 1억2700만 명. 주택 6200만 채, 평균 가족 구성원 2.47명. 일본의 집과 관련된 통계수치다. 여기에 최근 골치가 아픈 숫자가 추가됐다. 800만 채. 빈집의 숫자다. 일본은 1998년 이미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규모가 전체 주택의 10%를 넘었다. 빈집의 35%(2014년 기준. 국토교통성)가 소유주가 사망하면서 그대로 방치된 폐가다. 초고령사회 접어든 일본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인 셈이다.
특히 오래된 단독주택이 폐가가 되면 집 주변의 물리적 안전과 치안문제로 이어지는데, 철거 등 조치까지는 지난한 절차가 필요하다. 주민이 민원을 넣어도 사적 자산을 지자체가 임의로 처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14년 빈집대책특별조치법을 제정해 대부분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만들어 해결책을 찾고 있다.
홋카이도(北海道) 남부 무로란시(室蘭市)에서는 2017년부터 방치된 폐가를 같은 동네주민에게 무상으로 양도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경제적인 부담이나 신체적인 제약으로 주택을 더 이상 관리하기 어렵거나, 소유자가 사망했지만 직계가족 등이 상속을 원하지 않는 사례가 늘면서 마련한 방책이다. ‘주민안전과 마을치안에 위험한 건축물’로 판단된 빈집의 원래 소유자가 관리 의지가 없을 경우 시에서 ‘무상으로 양도한다’(상속자의 상속권 포기)는 동의를 받는다.
이후 해당 주택의 반경 1㎞ 내 거주하는 주민 중 철거 등 안전 조치와 향후 관리를 맡겠다고 지원하는 이에게 소유권을 넘기는 것이다. 개인뿐 아니라, 법인이나 지역의 반상회(町內會), 자치회에게도 빈집의 소유권을 넘길 수 있다. 새 주인에게는 철거비용의 90%(상한 150만 엔)까지 시에서 보조한다. 마을의 안전한 주거환경을 위해 무상으로 소유권을 넘기는 것이기 때문에 주택이 철거되더라도 해당 토지는 10년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주택 재건축도 불가능하다.
오사카 남쪽에 위치한 와카야마현(和歌山県) 타나베시(田辺市)도 주민에게 폐가를 넘기는 비슷한 제도를 시행 중이다. 1년 이상 비어있는 집 가운데 붕괴의 우려가 있는 주택이 대상이다. 무로란시의 조례와 차이점은 시(市)가 소유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빈집의 시장 거래를 중개한다는 점이다.
타나베시는 기존 소유자(혹은 상속자)가 방치된 주택(토지)의 매각을 준비할 수 있도록 빈집 철거비용의 3분의 2(상한선 50만 엔)까지 지원하고, 조치가 끝나면 해당 터를 같은 동네 주민에게 팔 수 있도록 중개에 나선다. 이 지역 주택가 골목에 방치돼 있던 25.5㎡ 규모(대지 면적 43㎡)의 단층 목조주택은 원래 소유자가 약 59만 엔을 들여 집을 철거했다. 이 때 시에서 지급한 보조금이 약 35만 엔 정도였다. 여기에 상속 등기비 9만 엔, 소유권 이전 등기비용 10만 엔(잡비 1만 엔)이 들어갔다. 원래 주인은 이 집을 다른 동네 주민에게 39만 엔에 팔았다. 해체할 때 시에서 받은 보조금을 제외한 비용(철거, 상속, 소유권 이전, 건물 멸실)을 합한 정도의 금액에 매매가가 형성된 것이다. 시(市)는 원 소유주에게 ‘이 집은 최소거래가 이상은 받을 수 없다’는 점과 ‘불량 주택을 철거할 때 보조금이 있다’는 점을 들어 향후 관리 가능한 주민에게 집의 소유권이 넘어가도록 유도한다. 빈집을 사들여 관리할 주민에게는 ‘동네에 빈집이 방치되고 있다는 불안감을 없애고, 안전한 통학로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역적인 이익을 위해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야마가타현(山形県) 츠루오카시(鶴岡市)는 도심(중심 시가지)의 빈집을 더 적극적으로 도시 재원으로 활용하려고 고민 중이다. 관리 의지가 없는 소유자에게 집을 기부 받은 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젊은 세대(30~40대 세대주 중심)나 다른 도시에서 전입하려는 이주민에게 싼값에 공급하는 것이다. 주택수요가 있는 중심 시가지의 빈 집과 빈 땅을 시에서 ‘기금화’했다고 볼 수 있다. 관리할 의지나 여유가 없는 소유자에게 주택(땅)을 넘겨받아 시에서 세금을 들여 철거 등의 조치를 취한 뒤 택지용(도로용도 포함)으로 확보해 두는 셈이다. 빈집을 지역의 경제활동인구가 사는 집으로 바꾸면 방치될 우려 없이, 지속적인 주거지로 유지된다.
기부 받는 건물(땅)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재건축이 가능해야 한다. 또 임차권이 설정되지 않았고, 재해 방지를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 없는 곳이어야 한다. 세금도 미납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츠루오카시는 이 사업에 들어가는 재원은 기부채납 토지, 토지 재매각 시 이익금, 기금의 운용 이자로 충당하고 있다. 2014년 제도를 도입한 뒤 3년간 4건(6채)의 빈집 기부를 받았다.
한국 역시 빈집은 총 주택의 6.5%(2015년 기준)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하지만 빈집을 기금화하거나, 같은 동네의 다른 주민에게 소유권을 넘기는 방식의 해결법은 심리적 저항감이 클 수 있다. 사적재산을 관리(처분)하는데 공적자금을 투입되는 것, 부동산 소유권을 특정개인에게 무상 혹은 낮은 가격(최저거래가)에 넘기는 것이 시장의 논리 혹은 형평성의 관점에서 타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와세다대학 도시지역연구소(都市·地域研究所) 소장인 소다 오사무(早田 宰)교수를 만나 이에 대한 일본 사회의 생각을 들어봤다.
-일본의 주거정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부(중앙)주도로 이뤄진 경험이 대부분이다.
=일본의 주거 정책은 영국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다. 영국은 1880년대 사회 보장법으로 주거 문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허용했다. (주거는) 경제(소유권)의 문제이긴 하지만, 일본은 ‘정부가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또 일본 사람들은 ‘집은 같이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메이지 시대 이후 많이 퇴색됐지만, 예전엔 사정이 힘든 이웃들의 집을 동네에서 함께 지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지났지만 여전히 그 영향이 사회 전반에 남아있는 것 같다. 같은 골목에 사는 이웃집의 청소도 돕는 것이 그런 것이다.
-지진과 재해가 많았던 환경적인 영향도 있을까.
=지진이 일어나면 건물이 무너져 사상자가 나오는 경우보다 화재로 인한 경우가 많다. 일본의 오래된 건축물 대부분이 목조다. 화재의 경험이나 불안감 때문에 빈집의 경우 위험하니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한다는 데 대한 합의가 있다.
-계속 월세가 오르는 도심과 빈집이 늘어나는 지방. 지역마다 처해진 여건이 다르다.
=일본 역시 주거 문제는 지역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도호쿠(東北) 지역은 의외로 문제 크지 않지만 시코쿠(四国) 지역 특히 야마나시현(山梨県)은 상황이 심각하다. 어떤 지역이든 역 주변(번화가와 중심부)은 문제가 없다. 무로란시의 경우 개인주의적 접근을 하고 있다. 소유권이 말소된 토지와 주택을 지자체에서 무상으로 다른 이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권리를 양도받은 사람은 해당 건물의 수리, 보수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진다. 반면 츠루오카의 빈집 은행은 사회 자유주의적 접근이다. 츠루오카의 빈집 문제는 마을의 문제이기 때문에 지자체가 수리 보수해서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접근법 역시 당연히 다르다. 도쿄의 세타가야구의 경우는 마을 만들기 재단 등이 있어 다양한 접근의 정책을 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시민들이 스스로 일구는 방향이 좋다고 생각한다.
-폐가가 많은 문제가 낳기는 하지만, 소유권을 무상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빈집을 방치했을 때의 위험성 및 불편과 세금을 투입해서라도 처리하는 것의 사회적 비용 혹은 효용의 차이를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빈집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면 관리의 효율성과 지속성을 위해서는 무상으로 소유권을 이전하더라도 후자를 택하게 되지 않겠나.
다음은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호텔의 경영이 지역 경제를 위한 공간으로 확장된 사례다.
3) 지역의 경제공동체 : 마을에 묵는 호텔
‘야네센(谷根千)’라는 지명은 야나카(谷中), 네즈(根津), 센다기(千駄木)라고 하는 도쿄 타이토구(台東区)의 3곳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걸어서 10~15분 거리에 있는 세 곳의 풍경은 비슷하다.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좁은 골목 양쪽으로 2층짜리 낡은 목조건물이 빼곡하다. 전쟁 후 물자가 부족해 대부분 나무로 주택을 지었던 시절의 집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도쿄 변두리에 위치해 있어 전쟁 중 폭격은 빗겨갔고, 지진과 같은 큰 재해도 겪지 않았다. 하지만 도심 재개발의 순위에서도 밀려났다. 현대화 이후 이렇다 할 개발 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낙후된 지역으로 남았다.
시부야나 신주쿠 등지에서 지하철로 30~40분정도 떨어진 야넨센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부터다. 주말이면 만쥬(饅頭)와 센베이(煎餅) 등 일본식 전통과자의 맛집으로 입소문이 퍼진 상점 앞에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을 선다. 철쭉축제로 유명한 네즈신사가 근처에 있기는 하지만, 이 지역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네 전체를 거닐기 위해 찾아온다. 개발되지 않아 일본의 다이쇼(大正)·쇼와(昭和)시대의 정취가 남아있는 서민촌. 일본 시민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동네 안쪽으로 골목에 검정 벽이 인상적인 2층짜리 목조건물. 60년 전, 쇼와시대에 지어진 이 건물에는 ‘hagiso(하기소)’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카페로 바뀐 1층에 앉아서 천장과 벽면을 안쪽에서 바라보면,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 지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나무 기둥과 뼈대가 보인다.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 건물 안에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경험을 하려는 20~30대 방문객들이 카페 밖에서 줄을 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1층 구석에 화랑으로 쓰고 있는 작은 전시 공간을 지나 2층 계단을 올라가면 뜻밖에도 호텔의 리셉션이 나온다. 이곳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호텔 ‘hanare(하나레)’의 투숙객들이 체크인을 하는 곳이다.
2015년 문을 연 호텔 ‘하나레’는 객실로 쓰는 다다미방 다섯 칸과 공용 화장실, 샤워 부스 외 다른 시설은 아무것도 없는 숙박시설이다. 하지만 머무는 동안 목욕도 할 수 있고, 일본식 아침도 먹을 수 있다. 종이접기, 기모노 등 일본 문화를 체험할 수도 있다. 일본식 먹거리(和式)와 부채, 젓가락 등 기념품도 살 수 있다. 체크인을 하면서 받는 종이 한 장에 손님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이 모든 것이 적혀 있다. 야넨센 지도다. 호텔이 아니라 마을에서 묵는 숙소. 호텔을 찾은 손님들이 야넨센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레’ 호텔의 콘셉트이다.
숙박비에는 목욕비, 조식비가 포함돼 있다. 지도에 표시된 목욕탕 중 한곳을 골라, 일본의 센토(銭湯)를 경험할 수 있다. 식사는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던 하기소 1층 카페에서 쌀밥과 미소시루(된장국), 반찬 몇 가지가 같이 나오는 일본식(和食) 조식을 먹는다. 200미터가 안 되는 짧은 거리에 70여개 상점이 몰려있는 시장골목 ‘야나카긴자(谷中銀座)’, ‘테라마치(寺町)’라는 별명에 걸맞게 동네 골목마다 있는 절과 신사도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돼 있다. 서예나 다도 등 문화체험이 가능한 사찰도 있다. 걸어 다니기가 힘든 손님은 동네 자전거 가게에 가서 대여를 한다. 하나레 투숙객들은 마을지도를 들고 마을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건축가 미야자키 미츠요시(宮崎晃吉)가 재건축해 운영하고 있는 하나레 호텔은 실제 주민들의 일상이 만들어지는 반경 수 미터~수십 미터 안에서의 경험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도쿄도(東京都)나 타이토구(台東区)를 기준으로 한, 거대 행정 단위보다 훨씬 작은 단위의 경제 생태계 안에서 여행객들이 머물게 하는 셈이다.
교토대학교 이나가키 켄지(稲垣 憲治) 프로젝트 연구원는 하나레의 숙박이 호텔 자체의 수익뿐 아니라, 호텔이 위치한 마을 전체가 돈을 벌 수 있는 순환구조를 만든다는 점을 분석을 했다. 객실 5개를 운영하며 연 1900만 엔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하나레’를 통해 연간 500만 엔(2017년)의 지역 수입이 발생한다. 비슷한 규모(매출 기준)의 호텔이 발생시킨 지역 수입이 100만 엔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5배에 달하는 경제효과다. 직원 6명(아르바이트 3명)이 일하는 작은 사업장이지만 호텔의 경영이 지역 수익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훨씬 크다는 것이 이나가키 연구원의 설명이다. 지역 공청회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왔다. 하나레 손님 중 동네 가게에서 저녁식사를 하거나 술은 마신 경험을 한 경우는 80%, 동네 가게에서 기념품이나 잡화, 음료수 등을 산 사람도 80%에 달했다. 자전거 대여점은 25%, 문화 체험(퉁소불기, 기모노 입어보기, 인력거 타기 등)은 5%의 이용률을 보였다.
보통 대기업이나 외지인이 짓는 호텔은 지역 밖에서 자금이 투자된다. 고용 역시 외부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호텔의 이익, 종업원 급여는 상당부분 지역 밖으로 유출된다. 반면 호텔 서비스의 대부분을 이미 동네 안에 존재하는 상점, 가게 등으로 분산하는 ‘하나레’와 같은 호텔은 필연적으로 지역경제와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가까운 가게에서 자전거를 빌려 산책을 하고, 골목에서 우연히 찾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호텔에서 받은 지도에 적힌 절을 찾아가 문화 체험교실에 참가한다. 집으로 돌아가며 사가는 기념품도 호텔 근처 가게에서 고른다.
리셉션과 레스토랑, 목욕탕과 기념품 가게가 모두 호텔 안에 모여 있는 방식이 아닌, 마을 전체가 손님을 맞는 이 같은 ‘분산형 호텔’은 최근 일본 곳곳에서 생기고 있다. ‘하나레’와 마찬가지로 호텔이 마을의 상권과 투숙객의 접점을 만들어 여행을 통한 경험을 동네 단위로 확장시켜주는 방식이다. 2017년 비슷한 콘셉트로 숙밥업을 하고 있는 일본 업체들이 모여 ‘마치야도(まちやど)’라는 협회를 발족했는데 ‘하나레’를 포함해 일본 전역에 20곳이 등록돼 있다.(2019년 2월 기준) 여행 콘텐츠로 ‘동네의 일상’을 제공해 마을경제의 활성화, 지역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촉매제가 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2)「地域の稼ぎ」を増やすまちづくりの手法とは?https://project.nikkeibp.co.jp/atclppp/PPP/report/021800169/
3) 日本まちやど協会 http://machiyado.jp
후쿠오카(福岡)의 호스텔 ‘스텐 바이 미(Stand By Me)’도 마찬가지 콘셉트를 가진 숙소다. 이 곳 1층 식당에서는 30가지 메뉴를 팔고 있는데, 모두 호스텔이 위치한 주오구(中央区) 덴진역 인근 음식점들의 조리법을 받아 만든 것이다. 여행객에게만 유명한 음식보다, 실제로 주민들이 자주 찾는 식당을 소개해, 투숙객들이 주변 가게도 방문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지역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그 인물의 이름을 딴 메뉴를 만들어 소개하기도 한다.
호텔은 생산보다는 소비가 이뤄지는 서비스 사업장이며 지역 내 경제활동과 단절되기 쉬운 직종이다. 관광업의 특징이기도 하다. 여행객들이 늘었다고, 반드시 지역경제가 발전하지만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모객을 위한 호텔의 경영활동과 마을경제의 활성화 사이에 교집합이 있다는 점을 ‘분산형 호텔’이 증명하고 있다. 이 같은 선순환은 지역적으로 특색을 가지고 있는 즉, 관광지로서 잠재력이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호텔이 지역의 경제공동체의 일원이 돼 마을의 가치를 높이는 경영방식을 찾아간다면 지자체와 같은 공공영역이 아닌 민간영역에서도 지방의 경쟁력을 고민하는 (낮은 단계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구조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4. 결론
한국은 2020년 7월 장기미집행 도시공원의 일몰을 앞두고 있다. 개인 소유의 땅이라도 지방자치단체가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하면, 공원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1999년 헌법재판소는 “(도시계획시설 지정 뒤)장기간 공원 조성이 집행되지 않았다면, 재산권 침해”라고 판결했고, 이에 따라 20년 넘게 공원화되지 않은 땅은 2020년 지정효력을 잃게 됐다. 공원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의 116곳(95.6㎢) 중 사유지인 39.6㎢정도가 앞으로도 녹지로 남아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 된 것이다. 서울시는 2017년까지 사유지 4.91㎢(1조8500억 원)을 매입했다. 2002년부터 따지면 연 평균 1100억 원씩이다. 올해는 우선보상대상지 1.60㎢를 추가로 사들일 계획이다.
모든 공간이 개인 아니면 국가(지자체) 소유로 양분된 도시에서 공원이 갖은 역할은 단순한 녹지의 제공을 넘어선다.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고, 모두를 위해 관리하는 공유지. 이 같은 개념이 유일하게 적용되는 도시 공간이다. 하지만 새로 조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지와 관리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시설물이 공원이다. 서울에서 시 혹은 구가 아닌 주체가 공원을 관리하는 곳은 성동구의 ‘서울숲’ 정도다. 서울시는 서울역고가를 공원으로 바꾼 중구의 ‘서울로’도 민간위탁 관리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세타가야의 트러스트 재단과 같은 공공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단체에 공원 관리를 위탁한 경험은 없다.
일본의 ‘시민녹지’처럼 부지를 개방하면 감세 해택을 주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사유지를 공유하는(혹은 기존 공원으로 유지하는) 유인책이 될 수 있다. 세타가야구와 같이 트러스트 조직이 구성돼 녹지의 공익성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단체가 활동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이는 장기적인 경험이 축적돼야 가능한 이야기다. ‘시민녹지’를 제도적으로 도입하더라도 초기에는 공원을 관리하고, 사유지를 개방하기 위해 세금이 투입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도시공원의 일몰을 계기로 사유지, 특히 개인이 소유한 녹지공간의 공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볼 수 있다.
인구감소에 따른 필연적 현상으로 한국 역시 빈집이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이 집계한 빈집규모는 1995년 37만 가구에서 2017년 126만가구로 4배가 늘었다. 2018년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빈집법)이 제정된 것도 빈집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빈집법’에 따르면 방치된 주택을 정비하는 책임은 지자체가 진다. 하지만 재정난을 겪고 있는 지자체가 국비 지원 없이는 철거비용도 감당하기 쉽지 않다. 특히 빈집이 급속하게 늘어나는 지역일수록 재정사정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빈집을 방치한 소유주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등 처벌 방식도 구체화된 것이 없어 동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현생법상 빈집(0.1%)은 나대지(0.2~0.3%)보다 지방세가 적기 때문에 폐가를 적극적으로 처분할 유인도 없다.
한국은 빈집 문제가 일본의 상황과 비슷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소유주가 관리할 의지가 없는 폐가를 어떻게 지역의 주거지로 흡수할 것인지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단, 주택 정책은 도시의 규모, 위치에 따라 상황, 이해관계가 큰 차이를 보이는 만큼 지역단위에 맞게 대안이 검토돼야 할 것이다.
한국의 ‘동’(洞) 규모의 마을경제를 대상으로 경영이 이뤄지고 있는 일본의 ‘분산형 호텔’은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관광(방문)객 확대정책과 맞물려 붐이 일고 있다. 일본은 2017년 외국인이 국내에서 관광을 하며 소비한 금액(약 4조5000억 엔)이 반도체 등 전자부품을 수출한 금액(4조225억 엔)을 넘어섰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내년까지 외국인 방문객을 연간 4000만 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는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 중심의 관광만으로는 수용이 불가능한 규모다. 지방의 작은 마을까지도 보고, 즐길 거리를 찾아 외국인 혹은 관광객들이 와야 한다.
한국도 속초와 군산 등 역사적 혹은 지리적 특색이 분명한 지방 도시는 카페와 식당 등 자영업을 시작하려는 20~30대층이 유입되는 ‘I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은 극히 제한적으로,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지역 활동에 대해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갖는 시선도 많다. 일본의 ‘분산형 호텔’에서 얻을 수 있는 힌트는 지역경제가 장기적으로 동력을 가지려면, 지역의 희소성을 발굴해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역의 경제 주체들이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궁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지역의 가능성을 보고 서울 등 대도시에서 창업 혹은 취업을 위해 이주한 청년들과 혹은 외지 자본이 지역 토박이 층과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5. 참고문헌
- 「地方公共団体の空き家対策の取組事例2」 国土交通省
- 「젊은이가 돌아오는 마을, 인구감소 시대 마을 생존법」 후지나미 다쿠미(옮긴이 김범수), 황소자리
- 「로컬전성시대, 로컬의 최전선에서 전하는 도시의 미래」 어반플레이, 어반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