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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플랫폼 중심의 뉴스 콘텐츠 유통과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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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플랫폼 중심의 뉴스 콘텐츠 유통과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대하여 한국경제신문 차장 이정호 연수기관: 조지아대학교
1. 들어가며

ICT 기술 발전과 함께 이른바 플랫폼 중심의 새로운 IT 생태계가 부상하면서 미디어 콘텐츠의 소비는 물론 뉴스 콘텐츠의 소비 행태에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플랫폼은 단순히 생산자와 개별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선형적 유통망 체계가 아닌 복수의 생산자, 공급자와 다수의 소비자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IT 플랫폼은 이동통신 기술과 통신 하드웨어 기술 발전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미디어 플랫폼 중심의 IT 생태계에선 기존의 ‘C(콘텐츠)-N(네트워크)-P(플랫폼)-D(디바이스)’ 가치사슬 체계가 모호해진다. 우버가 단 한대의 택시도 보유하지 않고 사업을 영위하듯, 페이스북은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고 콘텐츠 유통의 중심에 서서 수요자 중심의 규모 경제를 실현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고 있다. 미디어 분야 플랫폼 사업자들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1990년대 인터넷 시대 초창기 디지털 미디어는 단순히 기존 신문이나 방송 콘텐츠를 디지털로 변환시켜 주는 기술적 수단으로 치부됐지만, 현재는 모바일 중심의 통신 미디어가 대중 미디어?뉴스 소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과거 뉴스 수용자로 불리던 사람들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모바일 기기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뉴스를 소비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구글과 같은 검색 플랫폼은 수많은 뉴스 중에서 이용자 개인이 관심을 갖는 분야의 뉴스만 선별적으로 검색해 볼 수 있게 해준다. 페이스북 역시 뉴스 공유 서비스를 통해 친구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선별해 공유하는 뉴스를 볼 수 있는 서비스 제공한다.

이처럼 AI 알고리즘을 통한 뉴스 선별은 효율성 및 편리함이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반대로 관심이 없는 정보로부터 이용자를 차단할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 이용자 개인의 관심, 이념 및 정치 성향에 맞는 콘텐츠만 선별적으로 제공함으로써 뉴스 및 정보의 ‘버블’ 속에 갇히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 뉴스 소비 행태의 변화

미국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2018년 미국 성인(3425명 표본 조사)의 75%가 TV를 통해 뉴스를 습득하고 있다. 하지만 TV 뉴스 의존도는 2016년 80%보다 5% 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온라인 모바일을 통한 뉴스 접근은 같은 기간 12%에서 20%로 훌쩍 뛰었다. 종이 신문의 영향력은 2년 전에 비해 더욱 약화됐다.

응답자 연령별 편차는 더 벌어진다. 상대적으로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18~50세 이하와 50세 이상의 통계 결과는 극명하게 갈린다. 신문과 모바일 중 선호하는 뉴스 소비 수단은 50대 이상에서 신문(32%), 온라인(43%)로 나타난 반면 18~50세 연령군에서는 온라인(76%)이 신문(8%)을 압도했다. 아래 통계 조사에서도 역시 가장 선호하는 뉴스 소비 플랫폼을 묻는 질문에 온라인 모바일을 선택한 응답자 비율이 가장 많이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모바일을 통한 뉴스 소비로 뉴스 이용의 주기성이 파괴됐다는 지적도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뉴스 소비는 잠자는 시간 이외에 어느 시간대나 일정하게 유지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뉴스 이용 시간대가 분산되면서 언론사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에 걸쳐 새로운 뉴스를 공급해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된다.

3. 새로운 뉴스 유통 통로로 자리매김한 소셜 미디어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부상한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은 뉴스 생태계에까지 강력하게 미치고 있다. 구글, 야후와 같은 포털 플랫폼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뉴스 콘텐츠 유통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3분의 2(68%)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접하고 있다.

가장 이용 비중이 높은 소셜 미디어는 페이스북(43%)과 유튜브(21%), 트위터(12%), 인스타그램(8%) 순이다. 젊은 세대들이 소통의 수단으로 삼는 소셜 미디어 속에서 자연스럽게 뉴스 콘텐츠들이 노출되며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서 뉴스를 얻는 이유에 대해서는 편리성을 뽑은 응답이 21%로 가장 많았고 이어 사람들과의 소통(8%), 속보성(6%) 등이 뒤를 이었다.

흥미로운 조사는 응답자의 63%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뉴스들이 특정 이슈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지 못한다고 답한 것이다. 이 중 15%는 오히려 이런 뉴스들이 특정 이슈나 상황에 대한 혼란을 부추긴다고 응답했다. 간편함 때문에 소셜 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얻으면서도 정작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뉴스에 오히려 혼란스러워하는 이용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4. 사회 양극화 부추기는 필터버블

미디어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 중심의 뉴스 소비는 언론의 의제 설정(agenda-setting) 기능을 약화시킨다. 플랫폼에서는 종이신문 1면 뉴스와 가십거리 뉴스가 뒤섞여 있거나 동등하게 취급받게 된다. 신문 1면 헤드라인이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중요 의제에 대한 여론 형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플랫폼이 사용하는 개인 추천 AI 알고리즘은 ‘필터버블’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필터버블이란 인터넷 정보제공자가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개인 맞춤형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하면서 이용자는 필터링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현상이다. 이용자의 관심에 따른 정보만 받게 되면서 비슷한 성향 이용자들만 모이면서 정보 편식이 나타날 수 있다.

개인 추천 알고리즘은 이용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반대 의견이나 관심이 없는 정보로부터 이용자를 차단하고 이용자 개인의 관심, 이념 및 정치 성향에 맞는 콘텐츠만 선별적으로 제공함으로써 버블 속에 갇힐 수 있다. 버블에 갇혔을 때 개인은 다양한 관점으로 사고할 기회를 놓치고 자신의 이념 성향을 강화시키게 되는 한편 사회적으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결국 사회 전체의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각 미디어 플랫폼이나 소셜미디어 기업이 이 같은 필터버블 해소를 위한 알고리즘 재편에 나서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른다.

익명 검색엔진 덕덕고(DUCKDUCKGO) 조사에 따르면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은 로그인 된 가입자는 물론 로그 아웃을 한 가입자들에게도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한 맞춤형 검색 결과를 제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전역에서 76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총기 규제’(gun control)를 검색한 결과 62개의 서로 다른 검색 결과가 나왔다. 76명 각 개인에게 있어 로그인과 로그아웃 상태에서의 검색 결과에도 큰 편차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로그인 상황은 물론 로그아웃 상황에서도 자신의 사회 정치적 성향이 반영된 검색 결과가 나타나 필터버블 현상이 강화된다는 지적이다.

5. 나오며

적극적인 뉴스 콘텐츠 소비자들조차 이제 소셜미디어의 정제되지 않은 정보 혼란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미디어)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등이 이미 개인정보 수집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쪽으로 뉴스 검색 시스템을 개편하고 있지만 필터 버블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최근 뉴스 서비스를 개편한 한국의 네이버 역시 여전히 에어스(AiRS·AI Recommender System) 알고리즘 기반의 자동 추천 기사 시스템을 적용하며 필터 버블 부작용에 대한 불씨를 남겨놓고 있다.

다시 퓨리서치센터 연구로 돌아가보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얻는 사람들이 그 뉴스 콘텐츠에 대해 가장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점은 바로 부정확성(31%)이다. 편향적(11%), 낮은 품질(10%) 등이 뒤를 이었다. 자신이 대하는 뉴스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벽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필터 버블과 뉴스 불신 등 부작용을 가중시키는 미디어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의 뉴스 콘텐츠는 거꾸로 신뢰할 수 있는 미디어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구글, 페이스북 등 신종 미디어 플랫폼의 위협을 극복하고 온라인 구독자 수를 늘려가는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즈 등 기존 미국 종이 신문사들의 전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키 톨리버 킹 워싱턴 포스트 마케팅 부사장은 “독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미디어를 찾고 있으며 양질의 콘텐츠에 비용을 지불하기를 원한다”며 “뉴스의 미래는 이들 콘텐츠를 유료화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2018년 워싱턴포스트의 월 평균 순 방문자 수는 8800만여명이다. 2015년 이후 84% 이상 증가한 수치다. 워싱턴 포스트의 성공 이면에는 신뢰할 수 있는 고품질 기사 콘텐츠와 이를 찾는 충성 독자, 온라인 구독 유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경우다.

적극적인 유료화 정책을 편 워싱턴 포스트의 생존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속보 기사, 가십 기사가 넘쳐나는 미디어 홍수의 시대 속에서도 결국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신뢰성이다. 미국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보듯 공짜, 가짜 뉴스들이 범람하는 미디어 플랫폼과 소셜미디어에 이미 익숙해진 이용자들은 이제 편향되지 않고 신뢰성을 갖춘 고품질 뉴스 콘텐츠를 갈망하고 있다.

미디어 플랫폼에 종속되다시피 한 국내 언론사들이 워싱턴 포스트와 같이 플랫폼에서 독립하기 위해선 신뢰성에 기반을 둔 차별화된 콘텐츠 생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선제적 투자와 적극적인 유료화에 대비하기 위한 독자 분석틀 마련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