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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재난·재해 보도와 예방 및 대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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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재난·재해 보도와 예방 및 대처 방식 KBS 차장 김상협 연수기관: UCLA
서론 : 100년 만에 맞은 캘리포니아 폭우

올 겨울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실로 오랜만에 최악의 홍수 피해를 겪었. 지난 2월 캘리포니아 주 최대 도시인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한 캘리포니아 주 남부 일대에 6년 만에 최악의 폭우가 휩쓸어 4명이 사망하고 산사태·홍수로 인한 침수·정전 피해가 잇따랐다. 세계 최고의 IT 기업들이 몰려 있는 새너제이 지역에는 100년 사이 최대 규모의 홍수로 주민 만 4천 명이 긴급 대피했다. 최근 5년간 가뭄 피해를 겪고 있던 캘리포니아 지역에 모처럼 내린 단비는 반가웠지만 지나치게 많은 양의 비가 한꺼번에 내리면서 평소 강우량이 적기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에 때아닌 홍수 피해를 안긴 것이다.
일부 미국 언론들은 지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지난해 루이지애나 홍수, 캘리포니아 대형 산불에 이어 또한번 닥친 대형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지만 대체적으로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수 년 만에 겪은 홍수임에도 불구하고 주 정부와 기초자치단체들이 비교적 잘 대처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본격적인 홍수 피해가 시작되기도 전인 2월 초에 LA 시는 2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비상사태운영위원회(Emergency Operation Board)를 즉각 소집해 도시 비상사태 준비에 대한 논의를 미리 시작했다. 이 때는 사망 피해 등이 전혀 없었던 시점이었고 이틀 정도 강우량이 늘어난 시점이었지만 기상청이 폭우 예보를 내리자 LA 시는 한 발 먼저 기민한 대응을 내린 것이다. 비상사태운영위원회 의장은 경찰청장, 부의장은 소방청장이며 이 밖에도 각종 정부기관, 단체 등 30개 가까운 유관 부서의 책임자들이 신속하게 위원으로 참석해 만약의 사태를 준비했다. 평소 대형 산불과 지진 등으로 재난을 경험한 LA 시는 이미 지난 1980년 미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재난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고 예방을 강화하기 위해 통합재난관리기구인 EOO(Emergency Operation Organization)를 구성했고 시장 직속으로 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본론 : 캘리포니아 주 정부와 미국 언론의 재난 대응 방식

폭우 피해가 난 이후 LA 시청에 자리잡은 비상운영센터를 방문했다. 이 센터에는 주조종실(Main Control Room)과 미디어센터, 교육실, 관리실, 책임자실, 회의실 등 6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었다. 운영센터의 지휘권은 발생된 재난 유형에 따라 결정되며 범죄와 폭동, 테러 등은 경찰청장이 지휘하고 이외엔 소방청이 주관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 중 하나는 대민홍보분야 담당관이라는 직책을 시장실 직속으로 배치하고 있는데 언론에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언론들의 지나친 취재 경쟁에 따른 결정적인 오보를 막기 위해 사실상 정부와 언론이 거의 동시에 재난과 관련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폭우 사태 때도 사망 피해 등에 관한 정부의 소스(source)를 NBC, ABC, CBS, FOX 등 미국의 4대 방송은 물론 KTLA 등 남 캘리포니아 LA 카운티와 오렌지 카운티에 위치한 지역 방송국에까지 동일하게 관련 정보를 제공했고 언론들은 여기서 받은 소스에 기반한 팩트만 방송을 통해 전달했다. 대형 재난이 국가에 큰 피해를 끼쳐 공동체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재난 상황을 가장 정확하고 신속하게 국민에게 전달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나아가 재난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 방지와 수습에 최선을 다하는 언론의 기본 의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그 수 많은 언론들이 취재 경쟁을 잠시 접고 정확한 소스에 따른 침착한 보도에 집중한 것이다. 언론들 사이의 차이점은 얼마나 많은 양의 생방송을 하느냐, 뉴스 특보 시간을 늘리느냐 정도였으며, 그나마도 기상청의 홍수 경보와 대피령이 내려진 이후에는 거의 동시에 뉴스 특보를 진행해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불안감을 덜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론이 가장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인 재난으로 인한 피해자를 우선 배려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일도 모든 언론사들이 예외없이 지켰다. 4명의 사망자와 수 백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했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취재를 자제해 이들의 인터뷰보다는 재난 상황에 대한 보도, 예방 대책 등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KBS를 비롯해 복수의 공영 방송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방송과 신문은 대부분 민간이 운영하는 만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재난과 같은 비상사태 앞에서는 철저히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줬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공중 보건, 도로망, 상하수도, 통신망 등이 운영 주체와 상관없이 공적인 통제와 지원을 받는 것처럼 언론은 공동 자산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보도 태도는 언론의 재난보도 등에 대한 전문화와 교육 등이 모두 비영리단체, 대학이나 공익재단 등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데도 기여한다. ‘저널리즘과 트라우마를 위한 다트센터(Dart Center for Journalism & Trauma)’, ‘전쟁과 평화 보도를 위한 재단(Institute for War & Peace Reporting)’, ‘국제언론인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Journalists)’, ‘언론인보호위원회(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 등은 모두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단체들이다. 이들 비영리단체들은 주정부와 언론사들이 출연한 기금으로 운영된다. 우리나라 언론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형 재난 앞에서 침착하고 정확한 보도를 할 수 있는 또다른 기반은 재난보도 매뉴얼이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매뉴얼로는 국제언론인센터에서 만든 ‘재앙과 분쟁보도(Disaster and Crisis Coverage)’와 언론인보호위원회에서 만든 ‘언론인 안전 지침서(Journalist Security Guide)’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 국제언론인센터 매뉴얼은 크게 재난보도와 언론인 보호로 구분돼 있다. 재난 섹션에는 ‘보도.편집국의 준비사항, 재난보도 계획안, 기존의 재난 현장, 보도의 시작과 지원방안, 개인적 준비, 위기보도 운영방침, 보도 요령, 안전 유지방안 및 후속조치, 인터넷 자료 활용 방안’ 등이 있다. 보도 뿐만 아니라 ‘외상증후군의 이해와 징후, 트라우마의 본질, 희생자 및 생존자 접촉 요령, 영상기자의 도전, 위기를 통한 지원 방안, 자신 돌보기’ 등도 포함돼 있다.

매뉴얼에는 언론사들의 실무적인 준비 내용도 마련돼 있는데 예를 들면 ‘재해 인근의 모든 직원 및 연락처 파악, 보도· 편집국 인력을 포함한 전 직원을 활용한 비상근무 체계, 즉시 보도가 가능할 수 있는 보도시작 안내서, 역할 분담표, 주요 관공서 및 관련기관 연락망, 유휴 인력 접촉, 재난관련 안전 정보 등을 확인하기 위한 정보원 확보’ 등이 있다.
가장 중요한 보도·편집국 책임자의 재난보도 운영과 관련한 내용을 보면 최대한 차분하고 냉정하게 보도·편집의 분위기를 유지할 것, 각자 영역에서 필요한 일을 조율하는 중재자를 반드시 둘 것, 부정확한 정보 및 충격적인 장면이 나가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 현장 기자들이 과로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외부의 지원을 요청할 것 등이 명시돼 있다. 특히 보도 원칙으로 ‘침착할 것, 분명하고 정확하고 같이 아파할 것, 상황을 악화시키거나 공황을 유발시킬 수 언어를 피할 것, 현장을 있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묘사할 것, 생방송 전에는 긴장을 풀기 위해 심호흡을 할 것, 눈물 등의 자연스러운 감정은 무난하지만 신뢰를 잃을 수 있는 격정적인 표현은 자제할 것’ 등 아주 구체적인 매뉴얼에 포함돼 있었는데 이번 홍수 사태 때도 거의 현장에서 지켜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선진 매뉴얼을 우리나라 언론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지키지 않을 경우에 대한 페널티가 강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론 :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재난 보도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비가 그쳐 홍수 피해가 거의 마무리 되가는 시점에서도 이 곳 언론들은 각종 뉴스 시간에 생방송으로 최종 피해 집계는 물론 앞으로의 예방 대책 등에 대한 집중 보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언론들이 한물 간 뉴스라고 취급하지 않는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등 다소 지루한 뉴스 내용도 있었지만 그만큼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 예방은 중요하다는 인식이 앞섰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언론들은 정부를 무조건 비판하기 보다는 언론 스스로가 방재기관으로 사회적 책임과 함께 안전 불감증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우리 언론들이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