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개청 100주년 – 미국은 어떻게 매력적인 관광대국이 됐나

by
@

연수보고서 다운로드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개청 100주년 – 미국은 어떻게 매력적인 관광대국이 됐나 동아일보 기자 전성철 연수기관: 노스캐롤라이나대



1. 들어가며

미국 국립공원관리청(The National Park Service, 이하 NPS)은 필자처럼 미국에서 연수나 유학을 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익은 이름이다. 편의상 국립공원관리청으로 의역했지만 NPS는 그보다 훨씬 다양한 자원을 다루는 곳이다. 미국의 모든 국립공원(National Park)은 물론 다양한 기념물(National Monument), 각종 보호지역(Conservation)과 역사유적(Historic Site)이 모두 NPS의 관리대상이다. 다시 풀어 말하자면, 미국인과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관광목적으로 방문하는 장소 중 상당수가 NPS가 관리하는 곳들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연수를 한 2016년은 NPS가 문을 연 지 100년째 되는 해여서 곳곳의 국립공원과 유적지 등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필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저널리즘 스쿨에서 연수를 하는 기간, 개강 전후 시기와 방학을 이용해 3개월 가량을 미국 전역을 여행했고, NPS가 관리하는 50여 곳 이상의 관광지, 유적지를 방문했다. 이 보고서는 그 과정에서 필자가 보고, 듣고, 느낀 점들과 언론보도 등 다양한 자료를 중심으로 작성했다.


2. NPS의 역사와 현황

NPS는 1916년 8월 25일, 미국 의회가 제정한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조직법(NPS Organic ACT)에 따라 세워졌다. 원래 이전까지 미국의 국립공원과 유적지들은 내무부(Department of the Interior)가 담당했다.

NPS의 역할은 크게 보면 두 가지인데, (1)담당 지역의 생태적 또는 역사적 자원을 현상대로 보존하는 것과 (2)그것들을 공익적인 목적 또는 국민의 즐거움을 위해 이용 가능한 상태로 관리하는 일이다. NPS가 관리하는 지역은 전국적으로 59곳의 국립공원을 포함해 412곳(2008년 말 기준)에 이른다. NPS는 직원 수도 2만1989명이나 되는 큰 조직이다.

NPS가 관리하는 국립공원 중 가장 오래된 곳은 옐로우스톤 내셔널 파크다. 옐로우스톤은 NPS가 만들어지기 44년 전인 1872년에 이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옐로우스톤, 그랜드캐년과 함께 미국의 3대 국립공원으로 꼽히는 요세미티 내셔널파크는 옐로우스톤보다 12년 앞서 1864년 미국 최초의 주립공원으로 지정됐지만 관리주체가 연방으로 이관되는 시점이 늦었기 때문에 첫 번째 국립공원 타이틀을 놓쳤다.

NPS는 앞서 언급했듯이 국립공원만을 관리하는 곳이 아니다. NPS의 관리대상은 내셔널 파크보다 넓은 개념인 내셔널 파크 시스템(National Park System) 전체인데, 여기에는 역사적 유적을 비롯해 내셔널 모뉴먼트라는 이름이 붙은 다양한 국가적 보물들이 포함된다.

NPS는 관리대상이 다양한 만큼 관리방식에서도 유연한 모습을 보인다. NPS 관리지역 중 어떤 곳은 개발을 완전하게 제한하지만, 데스밸리 내셔널 파크의 경우에는 내셔널 파크로 지정된 지역 안에 여전히 광산회사의 채굴이 이뤄지고 있는 식이다. 이는 NPS가 관리하는 33만8000㎢ 지역 중 1만7000㎢ 이상이 국가가 아닌 민간 소유인 것과도 관련이 있다.


3. NPS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1) 인문학적 상상력

미국은 물리적 환경만 놓고 보면 땅이 넓고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지역이 많아서 여행을 하기에는 돈이 많이 들고 불편한 점이 많은 나라다. 하지만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매년 국제관광기구가 집계하는 방문자 수와 관광수입에서 선두권을 달리는 데에는 국립공원 등 다양한 ‘보물’들과 이를 명품으로 포장해내는 NPS의 지혜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가 미국 여행을 하면서 인상 깊게 본 NPS의 강점 중 하나는 ‘인문학적 상상력’이다. 데스밸리 내셔널 파크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 1위는 ‘단테스 뷰 포인트'(Dante’s View Point, 아래 사진)다. 단테스 뷰 포인트는 데스밸리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주도로에서 1시간가량 구불구불한 길을 자동차로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산 정상이다. 이곳에 도착하면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래로, 바닷물이 말라붙으며 생겼다는 하얀 소금 자국과 화산재가 뒤덮은 검은 땅이 뒤섞인 기묘한 풍경이 나타난다.

이곳에 단테스 뷰 포인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가 14세기에 쓴 ‘신곡(神曲)’에 등장하는 지옥 같은 모습이라는 이유에서다. 데스밸리 지역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600년 전 사람인 단테를, 캘리포니아의 사막으로 불러낸 셈이다. 한국 관광지의 대부분이 원 지명이나 역사적 의미 등에 치중해 이름을 짓다보니, 순 우리말이나 어려운 한자 이름이 많아 이름만으로는 어떤 곳인지 쉽게 알기 어려운 것과 비교된다. 외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힘은 인문학적 상상력에 나오는 이런 파격적인 작명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2) 어린이를 유혹하는 공원

NPS가 관리하는 국립공원이나 역사유적, 각종 보호구역과 기념물은 사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여행하는 가족들 입장에서는 ‘가고 싶지만, 걱정스러운’ 관광지다. 살아있는 자연과 지리, 역사를 가르치고픈 욕심만 놓고 보면 아이들을 업고서라도 가고 싶은 곳들이지만, 그런 교육적인 가치는 아이들의 흥미와는 반비례하기 마련이다.

NPS가 각 사이트의 비지터 센터에서 운영하는 주니어 파크 레인저스(Junior Park Rangers) 프로그램은 이런 부모들의 고민을 덜어주는 훌륭한 ‘사탕’이다. NPS 직원들(파크 레인저)은 사이트 내에서 단순한 공원직원이 아니라 경찰관 역할까지 하기 때문에, 보이스카우트를 연상시키는 갈색 제복을 입고 방패모양의 배지를 달고 근무한다. 파크 레인저들의 이런 모습은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나 소방관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에게는 선망의 캐릭터다.

NPS가 이런 어린이들의 마음을 읽어내 만든 프로그램이 주니어 파크 레인저스다. NPS의 비지터 센터에서는 아이들에게 워크북을 무료로 나눠준다. 워크북은 어린이들에게 연령대별로 다른 문제와 미션을 준다. 공원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동물이나 식물을 관찰하는 미션을 준다거나, 캠핑장에서 야영을 할 때 곰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를 풀게 하는 식이다. 파크 레인저들은, 어린이들이 해온 숙제를 검사한 뒤, ‘공원(또는 유적지)을 지키는데 앞장 서겠다’는 선서를 받고 아이들에게 자신이 달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주니어 파크 레인저 배지를 나눠준다. 이 배지에는 해당 사이트의 특징이 담긴 그림이 새겨져 있고, 어떤 곳에서는 해당 공원에서 서식하는 나무로 만든 배지를 주기도 한다. 필자의 자녀들은 이 배지를 수집하는 재미에 빠져, 배지가 있는 곳이라면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찾아가는 일도 지겨워하지 않았다.



(3) 시민참여로 만들어지는 공원

시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NPS는 미국 NPS의 또 하나의 숨은 강점이다. 미국 NPS 사이트에는 VIP(Volunteers In Park)라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이 곳곳에서 일한다. VIP 프로그램은 1969년 제정된 관련법에 근거해 운영되고 있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모두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봉사활동을 한다. 2005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NPS 사이트에서는 13만7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연간 520만 시간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는 급여로 환산하면 9,126만 달러에 해당하는 노동이다.

유명 국립공원에서 종종 눈에 띄는 예술인 거주지원 프로그램(Artist-In-Residence)도 NPS가 운영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NPS는 화가와 사진가, 조각가, 작가, 작곡가 등 다양한 예술인들에게 공원 내에서 살면서 그들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국립공원은 전체 국립공원의 절반이 넘는 29곳에 이른다. 예술가들의 섬세한 관찰과 창작을 통해 탄생한 작품과 결과물들은 NPS가 관리하는 공원으로 세계인들을 불러모으는 매력적인 낚싯줄이 된다.

NPS가 관리하는 사이트 중에는 시민 주도로 발굴, 복원된 곳도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유명한 관광도시 찰스톤에 위치한 찰스 피크니(Charles Pickney) 히스토릭 사이트는 그런 곳이다. 찰스 피크니는 미국의 연방헌법에 서명했던 국부들 중 한 명으로, 찰스 피크니 히스토릭 사이트는 그가 생전에 살았던 플랜테이션 농장에 속한 저택이다. 이곳은 찰스 피크니가 세상을 떠난 후 오랜 기간 버려진 땅이었는데, 1980년대에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벌어진 모금운동을 발판으로 저택과 인근 땅을 다시 사들이고 발굴과 복원 작업을 거쳐 NPS에 포함됐다. 시민참여로 만들어진 유적인 만큼, 지역 주민들에게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장소다.


4. 맺음말

NPS가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이트들이 가진 장점은 앞서 열거한 것들 외에도 많다. 국립공원 내에 훌륭한 골프장이나 호텔을 개발해 운영하면서도, 위대한 자연유산의 보존이라는 중요한 목표를 훼손하지 않는 균형감각. 각 공원마다, 해당 공원이 가진 매력을 극한까지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NPS의 이런 모습들은 여전히 경직된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역사유적의 관리, 운영에 좋은 벤치마크가 될 수 있다. 국립공원, 역사유적의 부흥은 단순히 날 것, 옛 것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지갑을 열어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로운 창조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