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옴표‧중계 저널리즘’ 극복 방안과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중심으로 연합뉴스 김연정 연수기관: 조지타운대학교
들어가며
최근 국내 언론의 정치 기사는 정치인들이 SNS에 올리는 단편적인 말들을 따옴표로 인용해 전달하고, 여야 정치인들이 서로를 비방하는 내용을 공방 형태로 실시간으로 전하는 데 급급한 게 현실이다. 다른 정치 세력을 ‘적’으로 인식하는 양극단 진영 정치가 갈수록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언론이 외부 시비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여야 보도량의 기계적 균형만 맞추려 신경을 쏟고, 정치권력에 대한 검증 보도는 손 놓다시피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이런 분위기는 선거 때 더 뚜렷해진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의 언론 보도를 보면 여느 매체를 가릴 것 없이 대선 후보들의 유세 일정과 연설을 실시간 중계하고, 주요 정당의 후보가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자극적인 말들을 뽑아내 전달하기 바쁜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라 불릴 정도로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막강한 만큼 대선 후보가 내세운 공약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음에도 공약 관련 기사는 발표 내용을 깔끔하고 압축적으로 요약 정리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에 정치부 기자로서 이런 관행에 점차 젖어들고 있었던 게 아닌지 반성하면서, 어떻게 하면 단순한 인용, 중계식 보도를 벗어나 정치인의 말과 행적, 신상, 선거 공약 발표에 대한 검증 보도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자 이 연구주제를 선정하게 됐다.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대형 선거가 치러진 ‘글로벌 선거의 해’ 2024년에 단연 주목받는 선거는 미국 대선이었다. 미국은 그간 대선 언론 보도에 있어서 ‘감시(watch)’와 ‘사실 확인(check)’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치러진 몇 차례 대선에서 국내 언론에 유행처럼 번진 ‘팩트체크’ 열풍도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미국의 대선 기간 미국 언론의 선거 보도 기사가 공방을 단순 중계하지 않으려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주요 매체가 정책 공약을 어떻게 보도하는지 살펴보고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했다.
한국 언론, 대선 검증 보도 잘 하고 있나
‘따옴표 저널리즘’, ‘중계 저널리즘’이 일상화된 국내 언론
최근 몇 차례에 걸친 대선 기간 우리나라 언론의 보도 양상을 보면 단편적인 중계식 보도가 주를 이룬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거대 양당 후보를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이 SNS에 올리는 글, 거대 양당 후보와 정당이 보도자료로 쏟아내는 공약 발표 내용 등을 그때그때 단발성으로 소개하기 바쁘다. 원내 정당 대선 후보들을 초청해 실시되는 TV 토론 때도 사후에 일부 팩트체크가 이뤄지긴 하지만, 각 후보가 어떤 발언을 했고 후보들 간에 어떤 공방이 오갔는지 소개하는 게 기사의 주된 내용이다. 심지어 경쟁 후보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의혹 제기 내용도 ‘따옴표 인용 방식’의 기사 형태로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반적으로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 혹은 ‘중계 저널리즘’1)이 관행으로 자리잡아가는 듯한 모습이다.
2022년 치러진 20대 대선을 돌아보면 국민의힘 윤석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대한 기사들도 이런 양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각 당 경선 과정에서 본선 레이스까지 정치인의 SNS를 소재로 한 기사들, 여야가 논평으로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내용을 ‘공방’ 형태로 묶은 기사들, 거대 양당 후보의 공약을 발표 그대로 잘 요약해 전달한 기사들이 언론 매체에서 주를 이뤘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2025년 6월 치러진 21대 대선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인용 결정 후 60일 만에 치러진 ‘조기 대선’이었던 만큼 대선 후보와 정책 검증 보도가 한층 더 부실한 편이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대통령 선거가 맞물려 돌아간 데다 유력 대선 후보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항소심 선고 등 굵직한 일정이 더해지고 국민의힘은 단일화 추진 과정 논란 속에 5월 10일에야 후보를 최종 확정지으면서, 언론 매체들은 후보 및 정책 검증 보도는커녕 벌어진 일들을 보도하기에 바빴다.
유권자는 ‘정책선거’ 원하는데…공약 기사는 ‘검증 생략’, ‘불친절’
지난 20대 대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22년 2월17일 유권자 1천5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2)에서 응답자들은 후보자 선택 시 고려하는 사안으로 ‘인물·능력·도덕성’(40.5%)에 이어 두 번째로 ‘정책·공약’(35.1%)을 꼽았다. ‘소속 정당’은 12.7%였다. 이처럼 대선을 대하는 유권자들의 인식은 많이 변했지만 국내 언론이 대선 기간 주요 후보들의 공약을 보도하는 방식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20대 대선 당시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국내 언론의 선거 보도가 ‘사실 확인’, 즉 ‘검증’ 보도를 체계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코로나19 한복판에 치러진 20대 대선에서 자연스레 코로나19 관련 양당의 경제 정책 대결이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여야 후보들의 공약은 ‘표(票)퓰리즘’으로 흘렀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전국민 추가 재난지원금으로 1인당 30만∼5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 총 15조∼25조원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고,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50조원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추가 손실보상 지원책을 내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피해에 대한 손실보상 규모로 100조원 카드를 내놓았고,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소상공인 표심을 의식해 이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당시 주요 언론사들이 사설 등을 통해 ‘여야가 50조, 100조라는 선거용 말잔치를 벌이고 있다’, ‘재원 조달 계획은 뒷전’이라고 일부 지적을 내놓았을 뿐, 충실한 공약 검증이 이뤄지지 못했다.
2025년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21대 대선에서는 공약 검증 보도가 한층 더 부실했다. 물론 다급하게 치러진 대선이었기에 주요 정당과 대선 후보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무로 제출하는 10대 공약 이외에 정책이나 공약 자체가 부실했고 언론 매체들이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분석하기 쉽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각 후보의 공약을 점검하는 보도는 충분치 못했다.
미국 언론, 대선 후보·정책 검증 보도 어떻게 하나
2024 美 대선, 갑작스런 후보 교체에 검증 보도 중요성↑
2024년 11월5일 치러진 미국 대선은 반전과 극적인 상황의 연속이었다. 2024년 6월 말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대선은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재선 실패 후 4년 만에 대권 재도전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턴 매치’이자, 역대 최고령 후보 간 대결 구도였다. 하지만 2024년 6월 27일 CNN 주최로 열린 대선 후보 TV 토론을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인지력 저하 논란이 증폭되고 민주당 내부에서 후보 교체론이 확산한 끝에 갑작스레 민주당 대선 후보가 카멀라 해리스 당시 부통령으로 교체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포기를 선언하고 해리스 부통령을 자신을 대체할 후보로 지명한 시점은 7월21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공식 선출된 시점은 8월22일이었다.
대선이 불과 석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갑작스런 민주당 대선 후보 교체로 검증 보도의 중요성이 더 커졌고, 미국 언론은 더 분주해졌다. 당시 현직 부통령 신분이긴 했지만 대선 후보가 된 만큼 인물과 도덕성, 정치적 역량, 국정 운영 방향 등 전방위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 모든 공개 발언이 검증 대상…‘팩트체크 시스템화’
미국 언론은 2024년 대선 과정에서 TV토론에 연설, 회견까지 전방위에 걸쳐 사실 확인 작업을 진행하며 ‘가짜 뉴스’와 ‘거품 낀 공약’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대선 후보 및 부통령 후보 간 TV토론이 끝나면 수십 건의 팩트체크 기사가 쏟아졌고,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이 끝난 뒤에도 마찬가지로 팩트체크 기사가 당연하게 뒤따랐다.
매체마다 팩트체크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2008년 대선부터 팩트체크 페이지를 운영해 온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선거에서도 대선 후보들의 발언에 대해 ‘피노키오(Pinocchio)’ 평가 시스템을 사용, 신뢰도를 표시했다. 각 발언의 정확성, 맥락, 데이터 근거를 검토해 피노키오 별점 1~4단계로 신뢰도를 평가한 것이다.
뉴스 통신사인 AP는 ‘AP Fact Check’ 시리즈를 통해 모든 후보자들의 발언을 균형 있게 검증했다. AP는 특히 통계 기반 검증을 중요하게 여기며 경제 지표, 정부 보고서, 비영리 싱크탱크 자료를 출처로 활용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팩트체크 전문기관 ‘폴리티팩트’는 대선 기간 후보들의 주요 발언 등을 ‘진실검증기(Truth-O-Meter)’를 사용해 진실(True)부터 새빨간 거짓말(Pants on fire)까지 6단계로 구분했다. 거짓말 정도를 지수화해 영화평론가들의 별점처럼 기사마다 표시했다.
이처럼 매체마다 운용 방식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미국의 거의 모든 언론 매체가 팩트체크 검증 보도를 활발히 진행했다는 점은 동일했다.

이미 알려져 있듯 TV토론 팩트체크는 미국 언론에서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2024년 대선 국면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후보 해리스 부통령 간 TV토론은 2024년 9월10일 ABC 방송 주최로 단 한 차례 열렸는데, 이때 방송, 신문을 가리지 않고 미국 주요 언론사들이 팩트 체크에 뛰어들었다. 토론 도중 각자의 플랫폼을 통해 30~40여건의 실시간 팩트 체크를 시도한 것이다.
일례로 뉴욕타임스(NYT)와 CNN은 각각 40여건과 30여건의 두 후보 발언에 대해 ‘거짓'(false), ‘맥락 필요'(context), ‘과장'(exaggerate), ‘오해 소지'(misleading) 등으로 판단하며 사실 여부를 가렸다. 팩트체크 대상이 된 발언은 해리스 후보에 비해 트럼프 후보가 훨씬 많았다. NYT는 트럼프 후보의 33개 발언을 팩트체크해 그중 16개를 ‘거짓’으로 판단했고, 해리스 후보의 발언도 8건을 팩트체크해 2건을 ‘거짓’으로 판단했다. CNN은 총 31개 발언을 팩트체크했는데 26개는 트럼프 후보 발언이었고 5건이 해리스 후보 발언이었다.
이들 언론은 트럼프 후보 발언 중 “나는 1월6일(의사당 난입)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 해리스 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및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협상하기 위해 갔지만, 3일 후 전쟁이 시작됐다”, “우리는 이전에 본 적 없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으며 이는 21%에 달한다”, “해리스 부통령은 마르크스주의자” 등을 ‘거짓’으로 판단했다.
또한 이들 언론은 해리스 후보 발언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공황 이후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며 백악관을 떠났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등을 ‘거짓’으로 판단했다.
미국 언론은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질 수 있는 부통령 후보 간 TV 토론에 대해서도 팩트 체크를 실시했다. 2024년 10월 1일 진행된 공화당 JD 밴스와 민주당 팀 월즈 부통령 후보의 TV 토론 때 주요 언론들은 방송과 온라인을 결합한 실시간, 사후 팩트체크 체계를 가동, 후보들 발언의 사실 관계를 신속히 유권자에게 전달했다.

미국 언론의 대선 보도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유세·캠페인이나 기자회견 역시 후보들의 발언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팩트체크 대상으로 삼는 점이었다. 선거 기간 후보들의 모든 공개 발언과 행적이 팩트체크 대상에 오르는 것이다.
예컨대 워싱턴포스트(WP) 팩트체커팀은 2024년 8월23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해리스 후보의 수락 연설을 분석하며 여러 주장에 대해 사실 여부를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당시 해리스 후보의 연설 문장을 하나하나 검증했는데 일례로 해리스의 발언 중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사회보장과 메디케어를 삭감하려 했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는 주장은 ‘대부분 거짓(mostly false)’이라고 판단했고 “트럼프는 관세(tariffs)를 통해 중산층에게 연간 4천 달러의 부담이 돌아가게 할 것이다”는 주장은 ‘일부 과장된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팀은 2024년 7월18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후보가 수락 연설을 했을 때도 그의 발언에 대해 사실 여부를 평가하거나 근거가 뒷받침된 주장인지 팩트 체크를 했다. 일례로 “나는 대통령 재임 당시 범죄율을 50% 줄였다”는 주장에 대해 ‘특정 도시 기준 수치로 과장된 발언’이라고 짚었고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닌 폭정을 경험 중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 근거가 전무한 선동성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TV토론 ‘실시간 팩트체킹’ 도입 확대…‘신속성‧정확성’ 동시 추구
2024년 미국 대선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대통령 후보 및 부통령 후보 간 이뤄진 TV토론 때 주요 매체에서 진행한 ‘실시간 팩트 체킹’ 작업이 안정적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실시간 팩트 체킹’은 2016년 미국 대선 때 처음 도입됐고 2020년 대선 때는 대다수 언론사들이 시도했었다. 이는 허위 정보의 확산을 신속히 차단하고 사실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도입한 방식으로, 그 취지대로 허위 정보가 순식간에 기정사실화되고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막는 데 적지 않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표적인 팩트체크 플랫폼 ‘폴리티팩트’(PolitiFact)는 2024년 대선에서도 라이브 형태로 대선 후보 TV 토론 발언을 시시각각 검증했다.
폴리티팩트는 대선 후보 TV 토론이 방송되는 동안 모바일 앱과 온라인 웹사이트를 통해 접속할 수 있는 ‘라이브 팩트 체킹 블로그(Live fact-checking Blog)’를 오픈하고 각 후보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1~2문장으로 검증 메모를 남기고 ‘True, Mostly True, Half True, Mostly False, False, Pants on Fire’ 등 6단계로 구분하는 라벨을 붙였다. 30~60초 이내에 후보자 발언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첫 코멘트를 남기고 이후 근거와 링크를 보강하는 식이었다. 대표 사례는 트럼프 후보가 “오하이오 스프링필드에 온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고 있다”고 한 발언으로, 폴리티팩트는 즉각 ‘Pants on Fire(새빨간 거짓말)’ 등급으로 판단하면서 스프링필드 시와 경찰이 “신고나 증거가 전무하다”고 밝힌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해리스 후보가 ‘트럼프 후보의 관세 정책이 도입되면 중산층에게 연간 4천 달러의 부담이 늘 것’이라고 한 발언도 과장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폴리티팩트는 토론 직후에는 라이브 스트림을 닫고 항목별 서술 내용과 근거 자료 링크를 한데 모아 2~3시간 안에 ‘Harris-Trump debate fact-check’라는 제목의 종합 기사로 재정리했다. 토론 하루 다음날에는 각 후보의 발언 중 몇 퍼센트(%)가 거짓이었는지 등에 대한 그래픽과 데이터 시각화 자료를 만들어 SNS 카드로 제작했다.
뉴욕타임스의 경우에도 ‘팩트 체크 라이브(Fact Check Live)’라는 실시간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토론 중 발언을 하나씩 따라가며 짧은 팩트 체크를 제공하고 해설을 달았다. 정치, 경제 등 각 분야를 커버하는 수십 명의 자사 기자를 배치해 모바일 앱, 웹 사이트에서 연결되는 라이브 블로그에 ‘거짓(False)’ ‘맥락 필요(Need context)’ 등의 짧은 검증 메모와 판단의 근거로 삼은 정보의 출처 링크를 올리는 방식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2024년 9월10일 대선 후보 TV토론 때 트럼프 후보가 “아이티 이민자들이 애완동물을 먹고 있다”고 발언하자마자, 팩트 체크 라이브창을 통해 즉시 “신뢰할 만한 보고 없음”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실시간 팩트 체킹을 할 때 두 후보자가 발언한 모든 문장에 대해 검증 메모를 일일이 표시할 수 없는 만큼, 쟁점이 될 만한 발언이나 수치를 언급한 발언, 음모론성 주장을 우선적으로 골라서 방송에서 각 후보가 발언한지 1분 이내에 검증 메모를 업데이트했다. 이후 TV토론이 끝나자마자 새벽 1시경에 짧은 검증 메모들을 ‘Top 20 claims we checked’라는 형태의 긴 기사로 재정리했다. 라이브 페이지에서 ‘False’로 표시했던 항목에 대해 근거들과 전문가 인터뷰를 추가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다음날 해당 발언들에 대해 데이터와 그래픽 해석을 덧붙인 심층 기사를 냈다.
이같은 사례는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실시간 팩트체크를 어떤 방식으로 해 나가면 되는지 하나의 ‘표준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TV토론에서 나온 ‘공포·과장형 주장’을 실시간 거짓 판정으로 우선 차단하고, 토론이 끝난 뒤에는 근거를 확충한 보강 기사를 냄으로써 ‘신속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형태인 셈이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는 TV 토론을 주관한 ABC 방송사 앵커가 토론 도중 대선 후보 발언을 즉석에서 검증하는 ‘실시간 팩트체크’를 실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토론 진행자들이 트럼프 후보의 허위 주장에 대해 토론에 개입해 즉각적으로 사실을 바로잡는 보기 드문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예컨대 트럼프 후보가 이민 관련 문제에서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로 온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잡아먹고 있다”고 말하자, 진행자는 “ABC뉴스가 그 곳 시청 관리자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그와 같은 구체적인 보고가 없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후보가 낙태 관련 토론에서 “아기가 태어난 뒤에 죽이는 주(州)가 있다‘고 주장하자, 진행자는 ”태어나자마자 아기를 죽이는 것을 합법화하는 주가 없다“고 바로잡았다. 트럼프 후보가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범죄율이 급증했다“고 주장하자 진행자는 ”연방수사국(FBI)은 미국에서 전반적인 폭력 범죄가 실제로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반박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 후보 측에서는 토론이 불공정한 구도에서 이뤄졌다며 공정성 논란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대선 후보가 허위 사실이나 근거 없는 주장을 하는 데도 사회자들이 이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사회자가 적극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역할을 한 것을 지지하는 여론도 있었다.
후보 입장차 한눈에 보여주는 정책·공약 분석 보도
미국 언론의 정책‧공약 분석 보도에서 또 한 가지 눈길을 끈 부분은 양당 후보가 확정된 뒤 해리스와 트럼프 후보의 정책을 분야별로 비교한 기사를 종합적으로 다룬 점이었다. 쟁점 현안을 비롯해 정치‧외교‧경제‧사회‧복지‧문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차를 유권자들이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깔끔하게 총망라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뉴욕타임스는 양당 대선 후보가 정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4년 9월 9일 ‘Where Kamala Harris and Donald Trump Stand on the Issues’라는 제목의 기사3)를 통해 해리스와 트럼프 후보의 정책을 분야별로 자세히 비교했다. 이 기사는 낙태, 범죄, 민주주의, 경제, 이민, 보건 의료, 외교정책, 교육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을 간명하면서도 상세하게 정리했다. 그동안 파편처럼 조각조각 보도돼 온 수많은 공약 관련 기사들을 일일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이 기사만으로 쟁점 현안에 대한 두 후보의 입장을 한꺼번에 알 수 있도록 정리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 언론의 정책‧공약 분석 보도에서는 언론 매체가 유권자들이 주목해서 살펴볼 만한 주제를 정한 뒤 그에 대한 대선 후보의 정책을 비교하면서 해당 정책으로 인해 예상되는 파급 효과와 영향 등을 분석해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정보를 제공하려 노력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AP는 2024년 9월 4일 ‘Election 2024’ 섹션의 기사4)에서 초고소득자‧기업에 대한 두 후보의 과세 정책을 비교해 다뤘고, 같은 날 ‘Election 2024’ 섹션의 또 다른 기사5)에서는 두 후보의 ‘미국 경제 회복 전략’을 비교 분석했다. 공약 발표 내용을 수동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유권자들이 민감해할 수 있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세 정책’, ‘경제 회복 청사진’ 등의 주제를 능동적으로 정해 각 후보의 입장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팩트체크 전문기관인 폴리티팩트는 2024년 10월 13일 ‘How Donald Trump and Kamala Harris want to change your taxes’ 제하 기사6)에서 두 후보의 과세 정책을 비교 분석했다. 이 기사에서는 두 후보가 내세운 과세 정책이 각 가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국 경제와 정부 부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한 내용도 함께 다뤄졌다.

나가며
한국과 미국의 정치 환경이나 법‧제도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많지만, 두 나라 모두 ‘정치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고 상당수 유권자들은 이미 지지 정당이 정해져 있어 ‘정책’을 놓고 대결하는 선거가 되기 힘들다는 점은 서로 꼭 닮아 있다. 언론 환경을 보더라도 두 나라는 기존 주류 언론이 대중들로부터 점차 신뢰와 영향력과 잃어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언론 매체가 대선 보도에 있어서 ‘팩트체크’ 시스템을 확고히 정착시켜 나가려 힘쓰고, 그 일환으로 ‘대선 후보 TV토론 실시간 팩트체킹’과 같은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해 나가는 점은 한국 언론에 주는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미국 언론이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후 대선 후보의 모든 공개 발언을 검증 대상으로 삼아 사실 관계를 따져보는 체계를 갖추고 있는 점은 ‘따옴표‧중계 저널리즘’이 만연한 국내 언론이 참고해서 따라갈 만한 부분일 것이다. 상대 후보에 대한 의혹 제기, 정책 공약 발표, 대선 후보 수락 및 유세 연설 등을 보도할 때 국내 언론 매체 대부분은 후보의 발언을 요약 정리해 전달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후보들의 모든 공개 발언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가려내 해당 기사에서 함께 짚고 넘어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대다수 매체가 시도한 ‘대선 후보 TV토론 실시간 팩트체킹’의 경우 언론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는 신선한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고 본다. 이 같은 시도가 상대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의혹 제기, 가짜 뉴스 확산을 발 빠르게 차단하는 데 적지 않은 효과를 내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만큼, 국내에서도 시도해볼 만한 방식이라 생각한다.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축적해 온 기자 수십 명이 미리 준비한 데이터를 토대로 팩트체킹에 나선다 해도 실시간으로 대선 후보들의 발언에 대해 참/거짓 판단을 내리고 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로, 엄청난 노력과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팩트체크의 신속성과 정확성을 좌우할 아카이브 구축, 특정 분야에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팩트체크에 능숙한 언론인 육성 등의 사전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미국 언론이 대선 후보의 정책 공약을 보도하는 방식도 유의미하게 살펴볼 부분이 있다. 각 후보의 정책 공약 발표 내용을 그때그때 파편적으로 다루기보다, 유권자들이 관심을 갖도록 후보들의 공약을 분야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유권자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제 분야 정책‧공약 관련 발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실현 가능성과 재원 조달 방안 등을 심도 있게 따져보는 분석 기사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 정치인 SNS 인용 보도의 문제와 대안, 관훈저널 2021 가을호, 23쪽.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유권자 1천510명 대상 ‘20대 대선 투표의향 조사’, 2022.2.17. 연합뉴스
- Where Kamala Harris and Donald Trump Stand on the Issues, 뉴욕타임스, 2024년 9월 9일
- Election 2024 : How Harris and Trump differ on taxing the rich, AP, 2024년 9월4일
- Election 2024 : Raise taxes on the rich or cut them? Harris, Trump differ on how to boost the US economy , AP, 2024년 9월4일
- How Donald Trump and Kamala Harris want to change your taxes, 폴리티팩트, 2024년 10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