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mersive VR을 중심으로 SBS 이종훈 연수기관: UCLA
1. 들어가며
1) 올드 미디어(Old Media)의 소멸
TV로 대표되는 ‘올드 미디어’는 이미 넷플릭스와 같은 OTT에 주인공 자리를 허용하고, TV에 국한돼 있던 동영상 서비스 이용 방식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스트리밍 동영상 소비환경으로 확장되고 있다. TV는 원하는 걸 보기 위해 ‘나를 TV에 맞춰야 하는 디바이스’이지만 OTT는 정반대이다.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내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언제든지 즐길 수 있다. 넷플릭스의 창시자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인터넷 기반의 서비스가 지금의 TV 방송을 대체한다는 ‘코드 커팅(Cord Cutting)’의 시대가 올 것임을 주장해 왔고 그의 예언은 정확히 적중했다. ‘TV는 더 이상 필수 불가결한 플랫폼이 아니라 모바일의 보조 수단’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2)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진화
OTT의 성공은 기존 미디어 플랫폼의 판세를 갈아 엎는 대혁명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 중심엔 ‘스트리밍(Streaming)’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의 진화와 1인 1모바일 시대의 도래가 큰 몫을 했다. 이는 ‘전화가 전보를 대체했고, TV가 라디오의 시대를 뛰어 넘듯’ 기술의 발달과 진화에 의해 파생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해석 가능하다. 혁신적이었던 전화의 발명, 그리고 유선전화에서 선이 없는 모바일로의 진화, 또 유선 코드가 있는 곳에서만 사용 가능했던 컴퓨터가 소형화 경량화되면서 어느 곳이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노트북으로 진화된 것 모두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가져온 엄청난 변화이다. 이같은 혁신적인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과 미디어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OTT 스트리밍 서비스는 오랫동안 대세를 유지하겠지만 그 뒤에 펼쳐질 ‘포스트 스트리밍 시대’에 대한 전망은 예측 불가이다. 분명 스트리밍을 대체할 수 있는 또 다른 테크놀로지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미디어 생태계는 그에 맞춰 또다른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격변하는 최첨단 미디어 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테크놀로지 변화의 흐름을 면밀히 들여다 보면 미래 미디어 플랫폼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예측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가상현실 그리고 몰입 (Immersive VR)
VR(가상현실)은 컴퓨터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첨단 기술을 말한다. 머리에 장착하는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인 HMD(Head Mounted Device)를 활용해 체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데 이 같은 가상현실은 현재 전 세계 최첨단 테크놀로지 산업 분야에서 단연 화두가 되는 분야이다.
과거 VR이라는 개념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미래의 얘기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VR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서 가상세계가 점점 실제세계처럼 리얼하게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헤드셋(Headset)을 장착하고 가상세계 안으로 들어가면 내가 시선을 돌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실감나는 모습이 펼쳐지고 그 세계에 몰입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얼마나 더 실감나게, 더 몰입감이 느껴지도록 만드느냐가 현재 VR 테크놀로지의 핵심이며 그 기술의 중심에 ‘Immersive Technology’1)가 자리잡고 있다.
1) ‘몰입’의 시대… 가상현실 세계를 더 깊고 풍부하게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관심을 받은 새로운 테크놀로지 기술 중 하나는 바로 ‘메타버스(Metaverse)’였다. 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상현실 VR(Virtual Reality)을 뛰어넘는 개념으로 여겨졌다. 많은 전문가들이 시공간의 물리적 제약이 극복되는 혼합 공간 ‘메타버스’가 소셜 미디어 이후 온라인 공간의 주된 소통 방식이 될 것이라고 전망을 해왔다.
하지만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 못 하다는 반응이 많다. 메타버스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나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바타처럼 가상세계 속에 실존하는 개념인데, 최근 들어 VR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가상이 아닌 현실세계에 좀더 집중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다시 말해 지금은 메타버스의 가상보다 현실세계의 경험을 더 깊고 풍부하게 해주는 가상현실 VR의 ‘몰입형 기술'(Immersive Technology)에 포커스가 더 맞춰져 있다.
올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2)에서도 ‘몰입(Immersive)’이 화두였다.
MWC 2023(Mobile World Congress)는 세계 3대 IT 전시회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의사 결정권자들이 모이는 최대 모바일 박람회로 신기술과 신제품을 소개하는 경연장이다. 특히 프랑스 통신회사 오랑주는 돔 안에 들어가 할 수 있는 ‘몰입형 달리기(Immersive Run)’ 체험을 선보여 VR과 실생활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를 해 눈길을 끌었다.
2) 애플도 가세한 가상현실… “아이폰 이후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
가상현실 영역의 상용화는 어쩌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삶 속에 들어온 건지도 모른다. 소문만 무성했던 애플의 혼합 현실(Mixed Reality) 헤드셋 ‘Apple Vision Pro’가 지난 6월 세상에 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애플은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연례 개발자 회의(WWDC)를 열고 현실과 가상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비전 프로를 공개했다.
Apple의 CEO인 팀쿡(Tim Cook)은 “오늘은 컴퓨팅 방식에 있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라며, “Mac이 개인 컴퓨터를, 그리고 iPhone이 모바일 컴퓨팅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Apple Vision Pro는 우리에게 공간 컴퓨팅을 선보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즉 그동안 랩탑이나 핸드폰을 통해 실행했던 기능들을 이제는 헤드셋을 통해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걸 강조하며 비전 프로를 “아이폰 이후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3) ‘피바디(Peabody)’에 신설된 ‘Immersive Media’ 영역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미디어 플랫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방송 미디어 업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바디 어워즈(Peabody Awards)’는 올해 83회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새로운 장르 하나를 추가로 신설했다. 바로 ‘Immersive Media’영역이다. 1940년 대부터 수상자를 배출해 온 피바디 어워즈는 원래 라디오 프로그램에만 상을 수여했지만 1948년에는 TV 영역을 추가했고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WWW (월드와이드웹)을 통해 배포되는 작품에도 수상작을 발표하고 있다. 미디어 플랫폼의 진화에 발맞춰 시상 카테고리를 능동적으로 확대해 온 것이다.
피바디3) 어워즈는 자신이 표방하는 모토에서 보듯, 해마다 사회 문제와 우리 시대의 새로운 목소리를 반영하는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그 목소리에 주목하며 이를 적극 반영해 수상작을 선정한다. 이번에 ‘Immersive Media’ 영역이 피바디 어워즈에 새로 추가됐다는 것은 그만큼 가상현실, 그 중에서도 몰입형 VR (Immersive VR) 작품들이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 영역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4) “Reeducated”.. 미디어 플랫폼의 가능성을 엿보다
올해 피바디 어워즈 ‘Immersive Media’ 영역의 수상작으로 선정된 New Yorker의 ‘Reeducated’는 지금까지 자료로 남아 있지 않은 은밀한 중국 수용소 내부의 모습을 일러스트레이션과 몰입형(Immersive) 비디오 기술을 이용해 가상공간(VR)속에 담아낸 Immersive VR 다큐멘터리로, 중국이 위구르족 등 기타 소수 민족에 대해 벌인 잔인하고 조직적인 구금 상황을 가상현실 이지만 실감나게 재현해 호평을 받았다.
헤드셋을 착용하고 다큐멘터리를 보면, 소수 민족들이 감금돼 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 몰입감이 뛰어나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화면이 360도 회전하며 내 시선의 흐름과 동일하게 전환되기 때문에 마치 수용소 안에 직접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온다. 노트북이나 모바일로 볼 경우에도 노트북의 위치를 360도 돌릴 때마다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수용소 안의 다른 장면들이 나의 시선에 맞춰 화면에 보여진다. ‘Reeducated’를 제작한 감독 Sam Wolson은 필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은 자신의 프로젝트 중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가장 도전적인 프로젝트였으며 매우 복잡하고 어려우면서도 방대한 작업의 연속 이었다며 수상 소감을 전했다.
5) “VR은 스토리텔링 최적의 플랫폼”… “10년 내 1인 1기기”
VR(가상현실)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미국 조지아 대학 가상환경 랩 (Games and Virtual Environments Lab)4)의 Grace Ahn 교수는 필자에게 VR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키고 많은 조언을 해 주었다. 그는 지난 2019년, 40세 미만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중 교육 연구 및 공공 서비스 공헌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 한 명에게 미국 저널리즘 및 매스커뮤니케이션 교육 학회가 주는 ‘크리그바움 언더40’ (KrieghbaumUnder 40)’ 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실력 있는 VR 분야 전문가이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가상현실 관련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초창기 기술 수준은 사이버 멀미(Simulation Sickness 가상환경에서 사용자가 느끼는 멀미 증상)를 느낄 정도였고 그래픽도 육안으로 픽셀이 보일 정도로 형편없어 몰입감이 실망스러웠다고 전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책에서 라디오, 영화, 인터넷, 모바일’ 등 인류의 정보 전달 욕구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었던 플랫폼들은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켜 왔고 가상현실 역시 차세대 혁신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VR은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최적의 플랫폼”이며 스마트폰처럼 10년 안에 ‘1인 1기기’ 형태로 모두가 가상 환경을 언제든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럴 경우 모바일 스마트폰을 이용해 누구나 OTT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처럼 미래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다니면서 VR 세계의 경험뿐 만 아니라 영화와 음악을 감상하고 뉴스와 유튜브를 보며 동시에 친구와 영상전화를 하는 등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New Yorker의 피바디 수상작 ‘Reeducated’를 만든 Immersive VR 다큐멘터리 감독 Sam Wolson에게 가상현실이 미래 미디어 플랫폼으로서 어떤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하고 있던 필자에게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자신은 기술의 미래에 대해 할 말이 많지 않고 미래를 너무 많이 추측하기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함정이 될 수 있다며 끝내 대면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는 가상현실이 지니는 미디어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는 걸까?
물론 변화무쌍한 미디어 플랫폼의 미래를 미리 예단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은 전도 유망해 보이는 기술이라도 몇 십년 아니 몇 년 후에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지 아니면 외면을 받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미디어 산업이 소비자 주도의 생태계라는 점. 진화된 기술이 이용자의 니즈(Needs)를 얼마나 잘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 성패가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 VR, 특히 ‘Immersive VR’은 미디어 플랫폼으로서의 잠재적 미래 가치를 충분히 지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술의 발달은 늘 상상을 현실로 바꾸곤 했다. 초창기 벽돌처럼 크고 투박했던 무선 전화기가 손 안에 쏙 들어오는 핸드폰으로 진화 했듯 지금은 무겁고 착용하기 불편한 헤드셋이 점점 소형화 과정을 거쳐 언젠가는 선글라스처럼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스며들 지도 모른다. 기술이 더욱 진화해 헤드셋이 아닌 눈 안에 쏙 들어가는 콘택트 렌즈 형태로 제작될 날도 오지 않을까. 곧 현실이 될 수 있는 상상 속 미래의 모습이다. 애플이 꿈꾸는 것처럼 현실과 가상공간을 넘나들며 일상생활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좋더라도 결국 기술을 활용하는 건 사람”이라는 미국 조지아 대학 Grace Ahn 교수의 충고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앞으로 사람이 기술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가치를 어떻게 구현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라며, VR의 기술적 진화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사회과학적인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테크놀로지의 진화에 따른 미디어 플랫폼의 혁신은 매우 가치 있는 변화이겠지만 기술에 대한 맹목적 맹신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미래의 어떤 미디어 플랫폼이 시청자와 구독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지 저널리스트로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에 대비한 능동적이고 발 빠른 대응과 대처는 언론사 종사자로서 선택이 아닌 생존이 걸린 이슈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Peabody Awards Webpage (https://peabodyawards.com)
- Apple Vision Pro Webpage (https://www.apple.com/apple-vision-pro)
- Orange Webpage
(https://mastermedia.orange.com/publicMedia?t=pmAHTtN4q0) - New Yorker Webpage
(https://www.newyorker.com/news/video-dept/reeducated-film-xinjiang-prisoners-china-virtual-reality) - “50cm 떨어져도 촉감 오네” 5G 넘어 다가올 놀라운 6G시대 MWC2023
- 1 Immersive Technology :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을 실제와 거의 근접한 수준으로 재창조하는 첨단기술로 'Immersive'를 '몰입' 또는 '실감'으로 해석해 사용하고 있다.
- 2 MWC(Mobile World Congress)는 전 세계 IT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최대 모바일 박람회로 바르셀로나에서 올해 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개최됐다.
- 3 Peabody Awards honors excellence in storytelling that reflects the social issues and the emerging voices of our day. (https://peabodyawards.com)
- 4 올해부터 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CACHE)로 명칭이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