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2월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은 아무 도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 큰 충격이었고 이 충격파는 곧 하나의 물음으로 이어졌다. 북한체제의 가장 큰 중심이 사라진 위기가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의문이 었고 이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 것이다. 언론과 국내외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 를 언급하기 시작했고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 갖가지 예측과 보도가 터져 나왔 다. 북한 체제가 김정일이나 그 이전의 김일성에서 보듯 지도자 개인에 모든 권력이 집중돼 있고 지도자 1인을 통해서 국가의 모든 결정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 상황을 새 로 등장한 20 대의 후계자가 온전히 이어갈 지에 대한 의구심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4년이 지난 지금 김정은 체제는 적어도 내부적으로는 위기상황을 드러내 지는 않고 있다. 김정은은 당과 군 등 권력기구를 안정적으로 장악한 상태로 파워엘 리트 내부의 급격한 동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은 풍작과 함께 경제상 황도 상대적으로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 때문에 미국 워싱턴이나 뉴욕의 북 한 관련 세미나에서도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의 급작스런 붕괴가능성은 낮다는 관측 을 내놓고 있다.2) 또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의 지지도도 아버지 김정일 때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3) 물론 지난 1월의 4 차 핵실험에 이은 장거리미사일로 대외 적으론 이전보다 훨씬 높은 제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도발은 북한에게는 위기 의 대외적 요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부적으론 김정은 체제의 성과로 선전되는 이 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체제 세습을 추구했던 다른 독재국가들이 대부분 위기를 맞았던 것과 달리 북한의 3 대 세습이 적어도 아직까지는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개인독재체제를 유지시켰던 시스템이 새로운 지도자에게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국가의 권력체제를 자체인 군과 노동당이라는 제도적 권력이 김정은에게 성공적으로 계승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은 지구상 어느 국가보다도 더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리더십을 만들었던 체제유지 장치가 작동 됐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이전의 공산국가들이나 다른 독재국가들과 비교해 서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를 구축하고 그것에 의지하는 정도가 가장 강했고 이것이 지금의 새 지도자 김정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도자의 신화에 강력히 기대고 있는 북한의 모습은 이 신화에 위협이 가해질 경우 나타나는 북한체제의 신경증적 반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김정은을 ‘ 위대한 지도 자’ 라는 거짓 신화에 기댄 모순적 인물로 그린 영화 ‘ 디 인터뷰(the Interview)’ 의 개 봉 당시 이를 막기 위해 북한이 벌인 영화사 해킹과 테러협박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또 김정은에 대한 비판을 담은 탈북자단체의 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 매체들의 격렬한 반발과 위협도 지도자의 권위를 그 어떤 것보다 중시하는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김정은의 지도자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 새로운 신화의 특성과 형성과정을 들여다본다면 북한의 새 체제가 얼마나 안정적일지 또 변 화무쌍한 북한의 행동패턴을 예측하는데도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이 연구는 바로 이 점에 초점을 두고 가장 카리스마적 지배가 이뤄지고 있는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신화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1) 한국은행은 북한의 경제가 지난 2014년 1퍼센트대 성장을 하는 등 김정일이 사망한 2011년이후 4년 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 한국은행, ‘2014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 2015.5.17.)
2) 전 국무부 북한 담당 분석관인 로버트 칼린도 최근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강연에서 평양 에선 중산층들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업이 생기는 등 경제적 안정이 보여지고 있다며 앞으로 김정은 정권이 40 년간 더 유지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라는 전망을 내놨다. (Robert Carlin, 2015.12.1., 뉴욕 Koreasociety 강연)
3)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탈북자들에게 한 조사결과 김정은에 대한 북한 주민의 지지율이 50% 이상일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62.7% 로 지난 2011년 김정일에 대한 조사에서 나온 55.7% 를 크게 앞질렀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15. 8월)
냉전시기에 탄생한 다른 국가들, 특히 공산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특정한 정치지도 자에 권력이 집중된 정치체제를 가졌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북한은 지도자에 대한 권력의 집중도, 그리고 지도자의 리더십을 향한 대중 동원에서 다른 국가들을 훨씬 능가한다. 이런 북한의 정치체제를 설명하는 틀로 다음과 같이 기존 이론이 응용되거 나 더 나가 북한체제에 특화된 새로운 개념이 제시돼 왔다.
우선 막스 베버가 제시한 정치권력과 권위의 유형이다. 막스 베버는 지배의 세 가 지 형태로 관습에 의한 전통적 지배, 법과 제도에 의한 지배, 그리고 개인의 카리 스마에 의한 지배를 들었다. 이런 베버적 분류에서 볼 때 북한은 가장 대표적인 카 리스마 지배 국가라 할 수 있다. 북한 체제만큼 지도자의 인적 통치가 법과 행정력 같은 제도적 통치를 압도하는 체제는 현재 없고 역사적으로도 희귀하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정권을 잡았던 여느 독재국가들과는 달리 근 70 년에 걸쳐 3 대 세습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그렇게 지도 자의 카리스마가 영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를 두고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 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 가족국가’ 론이다. 미국의 북한 연구자인 찰스 암스트롱은 북한의 초기 국가형성단계를 설명하면서 유교적 가족주의와 스탈린주의의 결합이라고 설명했다. 즉 김일성은 국가 전 권력기관의 수장이면서 동시에 모든 주민들의 가부장적 아버지 로 자리매김하면서 굳건한 리더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찰스 암스트롱, 2006)
두 번째는 일본의 와다 하루키가 제시한 ‘ 유격대 국가’ 다. 김일성이 1930 년대와 40 년대 만주 등에서 활동했던 이른바 ‘ 항일유격대’ 행적을 일종의 영웅에 의한 건국 이라는 건국신화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과 그의 게릴라집단이 일본과 싸워 세운 나라라는 신화를 만들고 이를 통해 김일성과 그와 함께 했던 게릴라집단에 의 권력집중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유격대 신화를 전 사회의 운영원리로 해 결국 전체 주민들을 유격대 대원처럼 다스리는 국가라는 설명이다.( 와다 하루키, 2002)
세 번째는 ‘ 극장국가’ 론이다. 원래 인류학에서 나온 용어를 정병호, 권헌익 등 북한연구자들이 응용한 것으로 지도자의 지배력이 물리적 권력보다는 신화와 문화적 텍스트 등 상징권력에서 나오는 국가를 의미한다. 북한이 지도자의 카리스마를 유 지하기 위해 지도자가 창시했다는 이념을 제시하고 그 이념을 담은 대형구조물과 아 리랑 축전 같은 문화행사를 열면서 주민들을 감화시키고 자발적 충성을 얻어내는 과 정을 설명하는 논리이다.( 정병호· 권헌익 2013)
이들의 개념은 모두 북한이란 국가가 지도자의 인격적 권위와 위엄에 의해 운영되 는 카리스마 국가이면서 동시에 그 영속성을 위해 어떻게 신화를 만들고 리더십을 창출해 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물론 국가와 신화의 관계는 북한만의 전유물은 아 니다. 각기 다른 장소와 또 시간적 차이라는 시공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수 천만 명의 사람들을 한 국가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신화이며 이 런 점에서 신화는 국가를 형성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볼 수 있다. ( 베네딕 트 앤더슨, 2002; 유발 하라리, 2015 등)
그러나 북한은 단기간에 인위적으로 국가신화를 만들어 냈으며 앞서 설명했듯 김일 성과 김정일,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에 맞게 각기 다른 신화가 나타났고 나타 나고 있다. 지도자 개인에 대한 신화이며 동시에 그것이 주민들을 북한이라는 하나의 정치체 안에 묶는 수단이란 점에서 정치체제 북한의 신화이며 지도자 신화이다.
이렇게 북한이 지도자의 카리스마에 좌우되는 나라라면 그 지도자가 사망했을 때 카리스마는 어떻게 되는가? 후계자가 전임지도자의 카리스마를 이어받고 안정적인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이 결국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북한은 이미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카리스마를 승계한 경험이 있고 이 과정에서 후 계자의 역할에 대한 나름의 공식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로동신문 같은 공식매체에서 드러나는 후계자론을 분석한 연구들을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 다. 북한에서 후계자는 미래의 수령으로 본질적으로 수령과 같은 권위를 가지며 수 령과 혈연으로 연결되며 전 인민의 추대를 받아야 하며 수령의 철학을 체계화해야 하는 등의 사명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오경섭, 2012)
결국 이상과 같은 북한의 국가적 특징과 후계자 요건을 고려한다면 북한의 후계자 김정은의 리더십 구축은 전 지도자 김일성, 김정일의 신화와 철학을 이어받는 한편 자신의 색깔로 체계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전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카리스마 권력을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신화를 만드는 건축물과 문 학작품, 대규모 행사에 의지하는 상징권력을 쓰게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결국 3대째 카리스마적 독재권력을 세습시킨 유일한 현대국가로 볼 수 있는 북한의 정치체제의 핵심을 보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결국 이제 집권 5년째로 접어든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어떤 지도자 신화를 만들어 자신의 권력행사를 정당화하고 있는지 신화의 내용과 구조를 규명하는 게 첫 번째 연구문제이다.
두 번째로는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신화와 신화의 구축과정이 미국이나 한국과의 대화 등 북한의 대외적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예측해보고자 하는 것이 이 연구의 또 다른 방향이다.
1.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새로운 신화의 내용은 무엇이고 두 지도자들과 비교해 가지는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가?
2.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신화가 미국과 한국 등과의 대화 등 북한의 대외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은 북한판 건국신화의 주인공이라 할 김일성, 그리고 무려 30여 년 간 후계자수업을 거쳐 지도이념을 세운 김정일과 달리 수 년 만에 후계자로 결정된 김정은의 압축적인 지도자 신화 형성과정의 특징을 비교하는 것이다. 앞서 연구의 이론적 배경에서 제시했던 것처럼 북한은 카리스마의 제도화를 위해 국가철학 형태로 지도자의 신화를 창조하고 예술작품과 공연을 통해 그 신화를 주민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결국 김정은만을 위한 신화창조와 대중동원이 이뤄질 것이며 이를 위해 기존의 앞선 지도자들의 신화가 재해석되거나 수정될 수도 있다. 새 지도자를 위해 만들어질 북한의 국가적 서사의 방향을 예상해보고자 한다.
에서는 앞선 연구문제를 통해 들여다본 김정은의 신화의 특성과 리더십 강화를 위한 북한체제의 행동이 미국이나 한국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지를 보겠다. 북한은 미국을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으로 보기 때문에 지도자의 신화 강화를 위해서는 외부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이에 미국이나 우리나라와의 협상 과정도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만들고 있는 새로운 지도자 신화가 대화과정에 어떻게 영향을 주게 될지 살펴볼 것이다.
내러티브(narrative)는 시간적이며 인과론적인 경로에 따라 의미 있게 연결된 일련의 사건들을 언어나 영상 등 여러 가지 기호를 통해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세이모어 채트먼, 1995) 주로 민담이나 소설, 영화 등이 허구의 이야기들을 지칭하지만 넓은 의미로 논픽션의 기사문이나 전기, 광고 등도 연속의 사건들을 엮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역시 내러티브의 구조를 갖고 있다.
이렇게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체에서 사건들이 결합하는 방식이나 서로 맺고 있는 연관 관계 또는 질서를 가리킨다. 이야기는 사건들의 결합 방식이나 연관 관계를 통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것인데,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 속에 숨겨진 구조를 들여다보는 게 내러티브 분석이다.
이런 내러티브 분석의 기본적인 목적에 이야기체로 된 텍스트 안에 들어 있는 더 깊은 의미, 즉 신화나 이데올로기 등을 추출하고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내러티브의 구조를 분석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통합체 분석과 계열체 분석으로 나뉜다.
통합체분석은 이야기의 순차적인 전개를 살펴보는 방식으로 프로프의 민담분석이 대표적이다. 그는 러시아의 민담들을 분석해 모든 민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일정한 유형을 가지고 인물들의 행위도 기능적으로 동일한 목적을 수행하고 있음을 밝혔다. 즉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동일한 유형의 인물을 가지고 비슷한 성격의 사건들로 이뤄져 있으며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단계별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1) 준비 | 2) 전개 | 3) 전이 | 4) 투쟁 | 5) 귀환 | 6) 인정 |
인 물 | 역 할 |
---|---|
1) 악당 | 주인공과 싸움 |
2) 제공자 | 주인공에게 마법적인 물건을 제공함 |
3) 조력자 | 주인공을 도와 힘든 일을 달성하게 함 |
4) 공주와 그의 아버지 | 도와줄 사람을 구하거나 어려운 과제를 줌 |
5) 파견자 | 주인공에게 사명을 부여하여 파견함 |
6) 주인공 | 무언가를 찾아나서거나 악한과 싸움 |
7) 가짜 주인공 | 주인공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체가 탄로남 |
또 이런 서사구조가 민담뿐만 아니라 헐리웃 영화 등 현대적 서사에도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현대적 텍스트들의 구조를 이해하는 주요한 방법이 되고 있다.
계열체 분석은 내러티브 안에서 나타나는 이항대립의 양상을 통해 함축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으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Levi Strauss)가 고안한 분석법이다. 즉 이야기의 진행과정에서 대립적으로 나타나는 기호들을 연결하면 ‘선 대 악’, ‘자연과 문화’, ‘제3세계와 서구’ 등의 대립하는 함축적 의미를 내러티브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내러티브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분석대상인 텍스트내의 인물과 행위, 사건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고 어떤 큰 의미, 즉 신화나 이데올로기를 감추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렇게 내러티브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나는 소재들이 각각 기존의 사회적인 지식체계나 집단적 이야기들 즉 담론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볼 수도 있다. 즉 특정시대에 특정한 집단이 공유하면서 의미를 전달하는 담론들이 내러티브상에서 어떻게 서로 경쟁하고 연결돼 큰 이야기를 만드는지 분석할 수 있다. 텍스트 안에서의 담론의 경쟁과 연결을 보는 것으로 서사물이 어떻게 사회적 의미를 재생산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지 추론할 수 있다.
북한의 1대 권력자인 김일성의 생애는 북한의 모든 공식매체, 영화와 공연 등 모든 예술작품의 주제가 돼 왔다. 결국 그의 개인사가 북한 사회 전체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특히 개인의 일생이지만 우리 민족이 겪은 현대사의 사건들을 중요 소재로 삼으면서 김일성 개인의 이야기가 민족의 이야기 북한의 역사 그 자체로 동일시된다. 물론 개인의 일생을 민족과 국가의 신화로 만들기 위해서 지도자인 김일성의 일생과 북한의 역사는 완전히 조작되고 날조된다. 즉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로 일반적인 민담이나 소설, 영화의 이야기 창작과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매체나 창작텍스트들을 통해 기존 연구자들이 정리하거나 혹은 지도자의 일생만 축약해 소개한 북한의 공식매체를 통해 본 그 이야기구조는 다음과 같다. 프로프의 내러티브 진행구조를 따르며 동시에 전형적인 영웅 신화로 축약된다고 볼 수 있다.4)
1) 대동강변의 초가집에서 태어난 김일성이 조국해방의 꿈을 안고 떠난다.
2) 이역 땅에서 청년장군으로 성장하여 여장군과 결혼해 그의 뒤를 이을 김정일을 얻는다.
3) 백두산에서 소수의 부하들과 함께 일본군과 싸워 이기고 고향으로 개선한다.
4) 다시 나라를 위협하는 안팎의 적들을 물리치고 북한을 ‘사회주의 낙원’으로 건설한다.
5) 북한에서 ‘민족의 수령’으로 인정받다 죽어서는 아들 김정일이 만든 궁전에서 안식을 취하며 영원히 추앙을 받는다.
이 이야기구조는 전형적인 영웅 신화이다. 즉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고 고난과 과제를 해결하면서 결국은 주인공이 속한 사회의 평화와 안녕을 가져온 뒤 그 공로를 인정받는다는 내용이다. 물론 북한은 이런 김일성의 영웅 신화를 우리 민족의 근대사속에 집어넣어서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싸워 민족을 해방시킨 영웅으로 조작한다.
비슷하게 김정일의 경우도 영웅 신화가 만들어지는데 김정일의 경우는 김일성 신화속의 조력자로 아버지를 도와 북한의 사회주의를 건설한 또 하나의 주역이다. 즉 김정일의 아버지이자 북한 건국의 아버지인 김일성 신화속의 조력자인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 사후에는 김정일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새 신화의 주인공이 되면서 또 다른 김정일판 건국신화가 만들어지게 된다. 결국 김정일이 북한의 현재는 물론 국가 형성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북한만의 역사를 창작해내는 것이다.
1) 백두산아래 오두막에서 태어난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을 따라 길을 떠난다.
2) 아버지로부터 재능을 물려받고 청년장군으로 성장한다.
3) 북한을 지키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아버지를 돕는다.
4) 선군사상을 창시해 군대를 키우고 미국의 위협 속에서 북한을 지킨다.
5) 강력한 국가건설을 위해 노력하다 숨진 영원한 장군으로 인정받는다.
결국 김일성, 김정일 모두 그들의 생애가 하나의 영웅설화로 꾸며지고 그 영웅의 업적이 북한이란 국가의 건설과 수호가 되면서 동시에 건국신화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화의 효과는 다중적이다. 우선은 김일성, 김정일의 ‘민족 영웅’으로 창작된 역사가 민족의 역사가 되면서 지도자로서 개인의 카리스마가 정당화된다. 두 번째로는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더 나가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가계도가 신화로 창작된 만큼 김씨 일가의 세습이 동시에 정당화되는 것이다. 즉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를 정당화하면서 세습까지 정당화하는 두 가지 효과를 갖고 있으며 이를 위해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족의 영웅사로 신화는 창작되고 있는 것이다.
4) 정병호, “극장국가 북한의 상징과 의례”, 『통일문제 연구』, 제 54호, (2010년 하반기), p10
국가가 지도자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신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식기록물, 문화예술창작품, 건물이나 탑 등 상징조형물, 대규모 군중동원행사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 또 내용적으로는 지도자의 개인적 자질, 성장과정, 지도자가 중심이 돼 이룬 국가적 성취 등이 동원돼 신화를 만든다.
북한의 지도자신화를 다룬 기존 연구는 대개 지도자에 대한 신격화나 우상화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매체에서 소개하는 김일성, 김정일의 문헌이나 행적 기사를 분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여러 다양한 상징물을 통해 북한의 지도자 신화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북한의 최대 규모 군중동원 공연인 ‘아리랑대축전’이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권력세습의 이야기를 문화적으로 표현해 낸 것이고 이 축전에 집단체조나 카드섹션 형태로 참가함으로써 수만 명의 북한주민들이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고 분석한 시각도 있다.(정병호, 2010) 또 각지에 세워진 김일성, 김정일의 동상이나 평양의 주체사상탑 등 대규모 상징조형물이 지도자의 권력을 상징하고 대중들의 일상생활에 투영돼 조작을 조작으로 느끼지 않는 상징정치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고 보는 연구도 있다.(이승현, 2012)
또 주민들을 대상으로 우상화나 신격화가 어떤 과정으로 전개되는지를 보면서 개인의 지도력부각, 호칭의 변화, 가계의 우상화와 개인 신격화, 상징물, 교육과 학습, 출판물과 문화예술의 창작, 업적에 대한 대내외선전 등으로 나눠보는 보는 시각도 있다. (이윤규, 2014)
이 보고서에서는 조선중앙통신에 김정은의 노작, 현지지도 등의 이름으로 소개된 문헌과 행적기사를 주요 분석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이런 기록물과 기사가운데서도 김정은의 생애를 특징적으로 서술하거나 그의 활동과 업적에 대해 권위를 부여하는 내용들을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다. 그 외에도 김정은을 다룬 북한의 교과서나 소설, 영화 등에서의 서술내용도 분석하게 될 것이다. 기록물이나 기사들은 북한 매체의 원문을 분석하겠지만 교과서나 영화 등은 접근의 한계 상 국내외 언론에 소개된 내용도 포함할 것이다.
김정은은 2009년 9월 28일 북한의 제3차 당대표자회의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됨으로써 김정일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등장했다. 그리고 불과 2년여 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함으로써 권력을 승계 받게 된다. 김정일이 20년 이상 후계자 수업을 받았고 북한의 선전기관들이 김정일이 권력을 사실상 장악한 1990년대 이후 점진적으로 김정일의 신화를 만들어 간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짧은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후계자로 등장한 직후부터 지도력과 권위를 부각시키기 위한 신화 만들기가 시작됐으며 지금도 완성되지 못한 단계로 신화화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김정일의 경우 권력을 이양 받은 뒤부터 기존의 김일성의 신화와 비슷한 내용으로 천천히 개인의 자질과 업적이 우상화된 반면 김정은의 경우는 개인자질을 강조하는 창작물이 단기간에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북한에선 2013년 교육과정 개정으로 김정은 관련 과목이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이란 이름으로 신설됐다. 김일성, 김정일을 위시한 북한 지도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가르치는 정치사상 교과의 하나로 추가된 것이다. 김정은 과목은 초급 중학교에서 매주 1시간씩 모두 102시간, 우리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고급중학교에선 매주 1시간씩 모두 81시간씩으로 김일성, 김정일 과목보다는 비중이 약간 작지만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고 볼 수 있다. (조정아 등, 2015)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경우 성장기의 활동과 일화 위주로 이 ‘혁명활동’과목이 채워졌지만 김정은의 경우는 나이와 경력이 짧은 점 때문인지 이 과목의 절반정도가 김정은의 성장기 활동을 다뤘고 나머지는 권력승계이후의 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김일성이나 김정일 이상으로 개인적 자질을 크게 우상화하고 있다.
초급중학교 및 고급중학교의 김정은 혁명 활동 교수 참고서는 김정은의 ‘위대성’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소재로 김정은의 어린 시절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초급중학교 교수참고서 | 고급중학교 교수 참고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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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제목 | 내용 | 단원제목 | 내용 |
제1과 ‘백두산 권총을 틀어쥐시고’ |
김정은의 사격술에 대한 일화 |
제1장 ‘김정은 원수님께서 지니신 비범한 천품’ |
성장기의 일화 들 |
이런 교과서 외에도 북한의 매체들을 통해서 김정은이 성장기에 보여준 ‘비범한 자질’이 선전되고 있다. 이런 일화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 김정은은 3살 때 처음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 9살 때 3초안에 10발의 총탄을 쏴서 목표를 다 맞추고 큰 구멍을 내는 명사격술을 보여줬다.
– 3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해 8살이 되기 전에 굴곡지고 장애물이 많은 비포장도로를 질주했다.
– 초고속보트도 시속 200km로 몰아 외국운전사를 두 번이나 이겼다.
– 3살 때 어려운 한시를 붓으로 척척 써내려가 주위를 감탄케 했다.
– 청소년기 2년간의 유럽유학기간에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어 등 4개국 언어를 완전히 습득했다.
– 15만발의 축포를 발사한 2009년의 야외축포행사때 기술자도 하지 못한 축포자동발사 컴퓨터 프로그램을 5일 만에 스스로 만들었다.
–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GPS를 활용한 포병술의 향상방안’이란 논문을 쓴 포병술의 대가이다.
대부분 현실성 없는 과장이거나 거짓사실들로 김정은의 개인적 능력을 비범하게 표현하기위해 창조된 일화들이다. 특히 사격술과 같이 군사적 재능을 강조한 내용이 많다. 김정일 이후 북한의 정치지도사상이 선군사상인 것과 연결되며 뒤에서도 서술하겠지만 영웅화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전혀 현실에 맞지 않는 과장에 군사적 재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김일성이나 김정일 선대 지도자들의 성장기에 대한 교과서 서술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큰 차이도 나타난다. 김일성의 경우 10살도 안된 시절부터 일본군을 혼내주고 물리쳤다거나 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등으로 민족사의 사건을 소재로 삼는데 비해 김정은의 경우에는 개인의 자질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김정은의 나이자체가 30대로 젊기 때문이지만 더 큰 이유로는 후계자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후계자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된 2008년에 들어서야 존재를 처음으로 북한주민들에게 드러낸 만큼 그 이전 시기에 북한체제에서 주요한 활동을 했다고 조작하기 힘든 것이다.
이 때문에 민족과 역사속의 신화로 쉽게 조작된 김일성과 김정일에 비해서 ‘능력의 비범함’만 강조하는데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사격술이나 운전술 같이 개별적인 능력에 얽힌 일화들로 성장배경을 채우고 있다. 다른 선대 지도자들이 개인적 비범함을 역사적 사건 속에서 발휘했다는 형식을 통해 쉽게 민족의 영웅으로 영웅설화를 만들어간 것에 비하면 한계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김일성과 김정일의 성장기 이야기는 일제 식민지시대나 6.25전쟁 같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함으로써 일본이나 미국을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그에 맞선 북한의 자주노선을 강조하는 북한사회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연결되고 지도자 개인의 신화가 민족의 신화로 쉽게 조작된다. 반면 적어도 김정은의 성장기 이야기는 이런 북한사회의 역사적 담론을 끌어오는 효과가 전 지도자들에 비해서는 적은 것이다.
‘김정은의 혁명활동’ 교과에서 보이는 특이한 내용 가운데 하나는 김정은이 김정일, 그리고 김일성에게 보이는 효심을 강조한 부분이다. 초급중학교 교수참고서를 통해본 전체 21개 단원 가운데 3개 단원이 이렇게 김정은이 앞선 지도자들에게 보이는 충성이나 효심을 다루고 있다.5) 또 고급중학교 교과서도 전체 3장 가운데 두 번째 장을 김정은이 김정일을 보좌했던 활동들을 설명하는데 다루고 있다.6)
교과서들은 수업의 목적을 김정은이 김정일의 선군혁명을 보좌하면서 아버지 김정일의 건강과 권위를 지킨 것에 대해 인식시키고 김정일에게 충정을 다한 김정은의 위대성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7) 구체적으로 우선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의 현지지도나 참관 등의 행사를 직접 준비하면서 행사의 성공을 돕고 김정일의 건강에 무리가 없게 챙겼다는 개인적 효도의 내용이 서술된다. 두 번째로는 김정일의 주요업적인 선군사상의 확립과 선군정책을 통한 북한체제 수호를 보좌했다는 내용으로 김정일 시대에 이뤄진 핵실험이나 ‘광명성 2호 발사’때 군사적 역량을 발휘해 핵실험이나 로켓발사가 무사히 이뤄지게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로는 김정일의 사후에 이뤄진 조치들로 김정일의 장례식과 금수산기념궁전 안치 등에 김정은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다룬다.
이렇게 ‘효’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지도자가 주민들의 정치적 지도자 뿐 아니라 어버이로 자리매김하는 ‘가족국가’로서의 북한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김일성이나 김정일 모두 북한의 아버지였기에 당연히 후대 지도자는 인민들을 대표해 지도자를 효성으로 모셔야 한다는 논리이다. 또 이런 효성은 김정은에게는 가족국가를 이끄는 리더십의 원천이 된다. 국가의 아버지를 효성으로 모신 아들로서 그 또한 새롭게 국가의 아버지로 리더십을 이어받게 되는 것이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직계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이른바 ‘백두혈통’의 논리가 작용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물론 김정은은 김정일에 비하면 백두혈통의 신화를 뒷받침할 배경이 부족한 단점을 안고 있다. 김정일의 경우 아버지 김일성과 어머니 김정숙이 항일투쟁을 하던 백두산의 오두막에서 태어났고 유격대원 속에서 자라난 것으로 미화되며 많은 일화를 갖고 있다. 반면 김정은은 그의 어머니 고영희가 북한에서는 천대받던 재일교포여서 출생의 미화가 쉽지 않은 큰 단점이 있다. 또 그의 출생 시기는 이미 북한의 체제 확립기로 그의 출생자체를 극적으로 만들 요소도 부족하다.
때문에 대신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을 어떻게 보좌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그 행위 자체를 미화함으로써 혈통신화의 이미지를 효를 통해 간접적으로 끌어오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지도자 신화가 가진 ‘혈통의 특별함’ 때문에 생긴 것이 지도자의 효도 이야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5) 조정아 등 『김정은 시대 북한의 교육정책, 교육과정, 교과서』, 통일연구원 연구총서 2015., p71
6) 조정아 등 『김정은 시대 북한의 교육정책, 교육과정, 교과서』, 통일연구원 연구총서 2015., p77
7) 주성하, ‘김정은 우상화 교재 최초공개’,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블로그, http://blog.donga.com/nambukstory/archives/103756
북한 지도자들의 활동 가운데 특징적인 것은 현지지도 또는 현지방문이라는 공개 활동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북한의 각 지방에 있는 공장과 농장, 학교, 군대 등을 방문해 현지의 주민들과 만나고 방문지의 상황에 맞춰 지시를 내리는 행사를 가져왔다. 이는 최고지도자가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을 순회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보여주는 것으로 근대 초기 유럽 군주들의 ‘군주의 행차’ 의식과 유사한 정치활동이다. (권헌익·정병호, 2013) 근대군주들이 행차를 통해 국가영토와 국민전체를 아우르는 권력과 권위를 보여준 것과 유사하게 북한에서도 현지지도관행을 통해 지도자의 권위를 세운다. 특히 현지지도가 펼쳐진 각 방문지에는 주민들과 만난 지도자의 방문당시 모습을 그린 그림 등 기념물이 세워지고 방문지에서 한 지도자의 말은 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학습되어진다.
또 현지지도는 선대지도자의 권위를 후계자에게 승계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김정일의 경우도 후계자로서 자리 잡기 시작하던 1970년대부터 김일성의 현지지도를 함께 수행함으로써 권력승계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가족국가로서의 효성이라는 미덕이 전 지도자의 전통적 권위를 후계자에게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경우도 후계자로 등장한 2009년부터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활동이 제한됐던 만큼 김정은이 아버지를 수행해 현지지도에 참여한 것으로 공개된 것들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에서야 김정은이 수행했다고 사후적으로 공개하는 현지지도도 등장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월 11일 방송한 기록영화의 사례를 들어 보겠다. 이 기록영화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2015년 12월 삼천 메기공장을 방문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과거에도 김정은이 김정일과 함께 이 공장을 찾은 적이 있다며 그 활동을 적었다는 비석을 보여준다. 즉 김정일과 김정은이 지난 2001년 5월과 9월에 2차례 이 공장을 방문해 지도했다는 것이다.8)
김정은의 존재가 북한주민들에게 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2001년에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수행했을 리 없고 설사 그랬다하더라도 15년이 지나서야 공개될 리 없는 만큼 이것은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이 그랬던 것처럼 선대로부터 이어지는 전통적 권위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일 가능성이 크다. 즉 아버지를 도와 북한의 경제건설을 이끌었다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단초인 것이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권력승계가 이뤄진 2011년부터는 김정은의 공개 활동은 무척이나 빈번하게 이뤄진다. 2011년 123건에서 2012년 168건, 그다음 2013년에는 236건으로 정점을 찍고 2014년부터는 172건으로 줄어든다. 이 수치는 김정일의 권력승계 첫 해인 1995년의 26회, 2년차인 96년의 50회, 97년 52회 등과 비교하면 월등히 많다.
이렇게 김정은이 단기간에 활발한 공개 활동을 한 이유는 김정일과 비교해 리더십을 구축할 시간이 없었던 것을 보충하기 위해서로 볼 수 있다. 김정일의 경우 김일성의 사망으로 권력을 승계하기 20여 년 전부터 권력 장악을 계속해왔던 반면 김정은은 2009년 이후 불과 2년 밖에 시간이 없었고 상대적으로 미약한 카리스마적 권위를 채우는 수단으로 현지지도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지지도들은 김정은의 다양한 활동과 말들을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장으로 그때그때 기능한다. 즉 이런 현지지도를 다룬 북한 매체들의 보도들을 보면 김정은 리더십이라는 큰 ‘서사’를 만드는 작은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8) 북, “김정은, 17세 때 김정일 현지시찰 2차례 수행” 첫 공개(2016년 1월 11일 연합뉴스 보도)
북한 초급중학교의 ‘김정은의 혁명활동’과목을 교수참고서를 통해 살펴보면 21개의 단원 중 6개가 김정은의 현지지도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9) 그런데 이 모두의 주제는 ‘김정은의 인민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19과 ‘창전거리의 노동자가정을 찾으시어’를 보면 김정은이 평범한 노동자 가정을 방문해 집들이를 축복해줬다는 내용으로 김정은의 노력으로 평양의 창전거리에 고급아파트가 건설됐고 평범한 노동자부부가 좋은 집에 살게 된 것을 김정은이 기뻐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정은이 어린 자녀를 직접 무릎에 앉혔고 술을 집주인에게 직접 따라줬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이야기가 만드는 김정은의 이미지는 우선 친근함이라고 할 수 있다. 최고지도자가 평범한 가정을 찾고 어린이나 가장에게 직접 선물을 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권력자에 대한 거리감을 줄여준다. 두 번째는 ‘어버이’로서의 이미지 창출이다. 주민들의 삶을 살피는 모습이나 어린이를 직접 어루만지는 것은 사회적인 아버지로서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교수참고서에서도 직접적으로 이 목표를 드러내서 ‘사회주의 대가정의 어버이’라는 결론을 이끌도록 하고 있다.
사업소나 군부대 방문에서도 이런 모습은 드러난다. 기념촬영 방식으로 도열한 사람들 속에 자리 잡는 게 아니라 병사들이나 노동자들 무리 속에 자리한 모습의 사진들이 노동신문 등에 자주 나타나고 있고 심지어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는 모습 등도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지난 2012년 8월에 서해안 무도의 진지를 찾았을 때는 평범한 목선을 타고 이동하는 사진까지 공개했고, 같은 해 5월에 만경대 유희장을 방문해서는 직접 잡초를 뽑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활동은 앞선 지도자들의 현지지도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김정일의 경우에는 현지지도를 다룬 사진들은 방문지의 시설을 둘러보고 지시를 전달하는 모습, 연단에서 촬영하는 기념사진 등으로 정형화되어 있다. 특히 주민들과의 스킨십은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반면에 김정은 언제나 주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거리를 좁히고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은둔형의 지도자였던 김정일과는 대조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고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카리스마를 따라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지만 김일성의 경우보다 친근함의 강조정도는 더 강해 보인다.
이런 현지지도에서 보여 지는 모습들이 만드는 지도자 신화는 한마디로 하면 친근한 영웅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대중들에게 직접 다가가고 즉흥적인 행동도 노출하며 거리감이 없애는 건 젊은 지도자가 가진 생명력으로 인격적 리더십을 만드는 빠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일의 경우 1970년대 냉전시대부터 20년 이상 권력승계 작업을 했기 때문에 북한사회의 제도속의 준비된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만든 것과 많은 차이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즉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기와 2000년대 초반의 남북화해시대 등을 거쳐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민생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또 무엇보다 권력승계 기간이 적었던 젊은 지도자로서 인격적 리더십을 만들어야했던 상황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북한의 교과서나 공식매체인 조선중앙통신 등에서 김정은의 활동을 소개하는 내용들을 종합하면 위와 같은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9) 조정아 등 『김정은 시대 북한의 교육정책, 교육과정, 교과서』, 통일연구원 연구총서 2015., p71
2016년 들어 북한은 스스로 수소탄이라고 밝힌 핵실험에 이어 미사일용도로 개발된 장거리로켓발사를 연이어 단행하면서 한반도에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핵무기의 소형화 등 기술적 발전을 위해서 또 핵을 장거리 미사일에 실어 보낼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행보이다. 이를 통해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고 북한을 의도적으로 무시해왔던 미국정부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대립이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의도를 보인 것이다.
일자 | 핵과 로켓 실험 내용 | 비고 |
---|---|---|
2012년 12월 12일 | 북한 은하3호 장거리 로켓발사, 위성궤도 진입성공 | 김정은 평양의 로켓발사지휘소 찾아 참관 |
2013년 02월 12일 | 제3차 핵실험 실시(인공지진 관측규모 4.9) | |
2015년 12월 10일 | 김정은 수소탄 보유 공식 언급 | 평양의 사적지 찾은 자리에서 언급한 것으로 북매체보도 |
2016년 01월 06일 | 북한 ‘수소탄 실험’ 발표 | |
2016년 02월 07일 | 북한 은하3호급 로켓 발사, 위성궤도 진입성공 | 김정은 발사현장서 참관 |
그런데 최근의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북한 내부의 정치적 면에서 보면 과거와는 조금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즉 최근 일련의 핵실험 등을 다룬 북한 매체의 보도를 보면 과거 김정일 시대와 비교해 볼 때 지도자 김정은의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관여를 강조하는 내용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김정일 사망 직후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2012년 초부터 바로 이런 보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북한의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1월 20일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김정은이 핵실험을 진두 지휘했다고 주장한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시절의 10대에 군사원로도 무색게 하는 영장의 자질을 완비하신 김정은 동지께서는 인공지구위성 발사와 핵실험 등 나라의 위력을 최강으로 다지기 위한 작전을 진두지휘해 원수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셨다”10)
여기서 말하는 핵실험은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에 이뤄진 1,2차 핵실험을 말하며 인공지구위성 발사는 2009년 4월에 있었던 ‘광명성2호’ 발사를 의미한다. 길게는 6년 전에 있었던 핵실험을 뒤늦게 김정은이 지휘했다고 사후적으로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2006년의 첫 핵실험 당시에는 대외적으로나 북한 주민들에게도 김정은의 존재자체가 알려지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핵실험들과 로켓발사를 모두 김정은이 주도한 것으로 뒤늦게 보도하고 있는데 특히 이런 보도가 김정은 체제의 출범직후 바로 시작된 것이다. 특히 위의 보도를 보면 김정은이 10대 시절부터 ‘명장’으로 군사적 자질이 뛰어났다며 이 자질로 핵실험 등을 지휘했다고 결부시키고 있다. 이를 영웅서사의 면에서 풀면 다음과 같이 연결된다.
결국 김정은 체제 출범 직후 나온 핵실험주도 보도는 영웅서사라는 이야기를 만드는 요소로 볼 수 있다. 특히 김정일 생전과 비교하면 김정은의 영웅 신화에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라는 성취가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6년의 1차 핵실험 등에서도 김정일의 최종 결정의 산물임은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현장에서 직접 지휘했다거나 그의 구체적인 지시행위가 있었음을 강조하기 보다는 김정일이 만든 선군정치의 결과물이라는 식으로 김정은의 경우보다는 간접적으로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김정일의 경우 선군정치사상과 체제를 만든 것이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의 최대 업적으로 선전돼 온 것과 맥을 같이한다. 반면 김정은의 경우에는 이런 기존 성과가 없기에 새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그의 최대 업적으로 급히 선전돼야 했으며 이를 통해 영웅서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성취’와 ‘안정달성’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7일 있었던 이른바 ‘광명성 4호 발사’에서의 김정은의 지휘가 낳은 결과물이라는 강조는 두드러진다. 조선중앙TV등 북한의 매체들은 김정은이 전용기까지 타고 현장에 가서 참관하고 지휘했다는 내용을 발사 후 즉각 보도했다. 특히 5일 뒤인 2월 11일에는 김정은이 현장의 참관대에서 발사를 지켜보는 모습과 타고 간 전용기의 내부까지 영상으로 공개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 과거 김정일의 경우는 로켓 발사를 참관하지 않거나 참관한 경우에도 지난 2009년의 4월의 ‘광명성 2호’ 로켓발사 때처럼 현장 대신 평양의 위성관제소에서 참관한 것을 사후에 짧게 보도했기 때문에 대조적이다.
보도문에서도 ‘김정은의 직접 지휘’에 대한 강조는 여러 차례 반복된다. 발사 직후 나온 조선중앙통신의 이란 기사는 로켓발사에 대한 북한 내부의 발표문격인 기사이다.
“우리 당과 국가,군대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주체105(2016)년 2월 6일 지구관측위성 《광명성-4》호를 발사할데 대하여 친필명령하시였다.
김정은동지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으며 진행된 지구관측위성 《광명성-4》호의 성공적발사와 관련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우주개발국 보도가 발표된다.”
또 북한의 대표적인 선전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도 2월 13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의 의미를 평가하는 라는 머리기사를 올렸는데 여기서도 로켓발사가 김정은의 지휘로 이뤄진 북한을 강국으로 만든 성과라고 강조하고 있다.
“첨단과학기술의 집합체이며 정수인 《광명성-4》호의 완전성공은 절세위인들의 빛나는 선견지명과 탁월한 령도가 안아온 고귀한 결실이다…오늘 《광명성-4》호가 성과적으로 발사된것은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고결한 충정과 숭고한 도덕의리심, 무비의 담력과 천변만화의 지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을 기어이 관철하실 확고부동한 결심을 지니시고 위성의 성과적 발사를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시였다.”
10) 연합뉴스, 北매체 “김정은 핵실험 진두지휘”, 2012년 1월 20일.
김정은의 리더십을 정당화하는 지도자신화는 아직도 한참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경우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매체들은 ‘절세위인의 혁명생애와 업적’이란 용어를 쓰며 하나의 정리된 영웅신화로 생애와 주요저작들을 정리하고 있다. 북한이 최대규모의 국가공연으로 열고 있는 아리랑축전의 주제도 북한이란 국가를 건설한 지도자들의 삶을 통해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것인데 여기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삶은 각각 반제국주의 투쟁을 통한 북한 건설, 북한의 주체적 삶을 지켜낸 선군정치 등으로 영웅 신화가 된다.(정병호, 2010)
김정은의 영웅 신화는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영웅이 성장하는 이야기의 전개구조가 아직 완벽히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즉 프로트 등 신화연구자가 정리한 것처럼 ‘준비-전개-전이-투쟁-귀환-인정’을 갖춘 완벽한 김정은 영웅 신화를 담은 북한의 공식역사자료나 영화, 소설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북한의 교과서나 뉴스매체를 통해서 볼 수 있듯 총체적 관점에서는 영웅의 서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전개) 북한 각지, 해외를 여행하며 자질을 키운다.
(전이) 귀향해 인민군, 김일성대 등에서 뛰어난 군사적 자질을 보인다.
(투쟁) 북한이 미국 등의 위협을 받는다.
(귀환 및 인정) 핵실험과 로켓발사를 지휘해 북한의 안전을 보장받는다.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만들어간다.
앞서 구조를 분석해 본 김정은의 지도자 신화는 그 신화를 받아들이고 믿게 되는 대상인 북한 주민들에게 1차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이 지도자 신화를 학습하고, 신화의 내용에 바탕한 신문과 방송 등에 노출되며 각종 선전그림과 조형물 등을 일상적으로 보고 때로는 스스로가 대형공연, 행진 등에 참여하면서 신화를 일상화하게 된다.
그럼 이런 신화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 일상적으로 노출돼 신화를 허구가 아닌 실체로 믿고 실천하는 북한 주민들과는 달리 외부에선 만들어진 허구임을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워낙에 비현실적인 개인숭배의 양상 때문에 김정은의 지도자 신화는 분석이나 평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희화화되거나 아예 무관심의 영역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나 김정은의 신화 속에서 모두 대립하는 적국으로 묘사되는 미국 내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특히 2015년 후반기부터 미국 대선 후보들의 경선이 시작되면서 후보들의 대북정책이나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도 잇달아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초기에는 북한에 대한 논의는 수면에 가라 앉아 있었다. 이슬람공화국의 테러가 터지면서 미국정가의 관심도 대테러정책에 쏠리고 이란과의 핵협상도 타결되면서 대외정책의 중심이 중동에 집중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발사이후로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양상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에 따라서 북한에 대해 언급을 피해왔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북한 핵실험에 대해선 “북한의 목표는 세계를 협박해 불량정권에 가해진 압박을 완화하려는 것 인만큼 이런 깡패 짓에 굴복할 수 없다”고 밝혔다.11) 버니 샌더스 후보도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매우 고립된 국가로 우려스럽다며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화당 후보들 가운데 트럼프는 지난 1월 9일 유세에서 김정은을 미치광이 같다고 비판하면서도 20대 중반의 나이 때 정권을 장악한 것에 대해선 인정해줘야 한다며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해서 평가하는 듯한 언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1월 11일 폭스비즈니스 방송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조처를 해야 한다며 중국만이 김정은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밝혔다. 다른 공화당 후보들도 마찬가지여서 마코 루비오 후보는 북한의 로켓발사 직후 “북한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한 것은 잘못이었고, 김정은 같은 정권에 맞서기 위해 미국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12)
그러나 이러한 미국 대선후보들의 인식은 북한의 새로운 위협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입장표명 정도로 김정은의 리더십 자체에 대한 평가로 보기는 어렵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김정은의 리더십유지 동력에 대한 분석은 많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몇가지 분석을 보면 우선 로버트 칼린(Robert Carlin)은 김정은이 고위급관리들에 대해 무자비한 숙청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기이하게 보는 시각도 많지만 역사적으로 전례가 많은 일이라며 리더십의 취약성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로버트 칼린, 2015년 11월 강연) 미 해군연구소의 켄 가우스(Ken Gaus)는 김정은 정권이 명령의 리더십에 기반을 둔 수령체제로 계속 작동하기는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며 다른 체제로의 변형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앞으로 2에서 5년 사이가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고 이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하면 정권위기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13)
이상과 같이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현재의 안정 정도에 대한 표면적인 평가정도이지 이 리더십을 유지시키는 내부의 역학을 들여다보거나 리더십유지를 위한 북한 내부의 논리가 어떻게 북한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줄지 고려하는 분석은 드물다고 하겠다.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김정은의 지도자 신화의 내용은 앞서 분석한 대로 김정은 개인의 자질 특히 군사적 능력에 대한 강조, 주민들에게 다가서는 친근한 지도자의 모습, 핵무기와 로켓발사의 성공을 지휘해낸 성과 등의 구성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개인적 자질에 대한 비이성적인 우상화나 친근한 지도자상 강조 등은 북한 내부의 정치적 요소로 대외적 영향력은 작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014년 12월 김정은 정권을 정면으로 풍자한 영화 ‘디 인터뷰(The Interview)’가 개봉할 당시 북한이 극도의 신경질적인 반응과 함께 영화제작사 소니픽쳐스를 해킹한 사건은 북한에서 지도자신화가 가지는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김정은이 실제로는 아버지의 그늘에 열등감을 느끼고 서양문화에 깊이 빠져있는 우스꽝스런 인물로 그려졌다. 김정은의 지도자 신화를 만들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자신들의 체제에서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고 순조롭게 개봉되도록 놔두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김정은 지도자 신화를 해칠 수 있는 외부세계의 창작물이나 선전물에 대해 북한이 계속 극도의 예민한 반응을 보일 것임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김정은 개인의 자질이라는 지도자 신화의 요소도 북한의 대외적 행동에 변수지만 이보다 더 비중이 크고 우리나라나 미국 등 외부세계에도 영향을 줄 요소는 김정은 신화 속에서 핵과 미사일 발사가 가지는 의미이다. 핵무기나 미사일 발사를 지도자의 성공신화의 주요한 이벤트로 삼고 있는 건 북한의 지도자 신화가 우리나라나 미국 등 주변국가의 이익과 바로 충돌하는 주요 지점이기 때문이다. 우선 고려해야할 것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의 성공이라는 사건이 이미 북한의 주요한 매체들, 공연, 문학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고 북한이란 국가의 성취, 지도자의 업적으로 선전되고 있는 점이다.
즉 사회주의 강성대국이란 국가의 목표, 이를 지휘해가는 김정은의 신화의 주요한 상징요소로 핵과 미사일 발사 성공이 자리한 것이다. 핵실험과 군사적으로 미사일로 사용될 로켓발사의 성공을 통해 북한의 비대칭 군사력을 확실히 보여준 성과는 북한이 의식하고 있는 미국의 위협에 대한 확실한 안전장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과는 온갖 상징작업을 통해 지도자 김정은의 신화의 한 부분이 된다. 핵과 미사일 기술에 대한 투자와 진보, 이 과정을 지휘하는 김정은의 지휘는 북한이란 국가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서사가 된다.
결국 북한에 있어 핵과 미사일은 군사적 가치 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적인 이념, 신화적 가치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핵과 미사일의 폐기는 단순히 북한의 주요한 무기의 폐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김정은 영웅신화 즉 국가적 신화의 폐기를 의미한다.
역시 김일성이나 김정일 시기에도 핵과 미사일은 계속 개발 중이거나 일정수준 생산돼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와 지금은 이념적 가치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앞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지도자 신화를 간략히 서술했듯이 김일성은 항일유격대를 이끌고 일본의 식민 지배를 끝내 북한을 건국한 영웅으로 김정일은 김일성을 뒷받침하고 새롭게 선군사상을 만들어 북한을 지키고 자리 잡게 한 영웅으로 미화되고 있다. 이 두 선대 지도자들에게 핵과 미사일은 중요한 성과일수는 있어도 신화의 핵심은 아니었다.
김일성의 경우 사망 직전인 1994년 미국과 제네바합의를 체결하면서 경수로를 제공받는 대신 핵개발을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이 합의이후 김일성의 사후에도 한동안 ‘한반도 비핵화는 유훈’이라고 통용되며 김일성의 뜻으로 북한 내에서도 존중되었다. 물론 부시행정부 들어 북미간의 대립 끝에 이 합의는 파기되고 북한은 핵개발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비핵화에 나서기로 했던 김일성의 결정은 그에 대한 신화와는 전혀 충돌하지 않았고 한때나마 북한 내에서 존중되었다. 그리고 핵개발을 다시 재개하면서도 북한은 부시행정부가 약속을 깼기 때문에 비핵화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입장변화를 정당화했다. 즉 김일성의 지도자 신화는 손상 받지 않은 것이다.
김정일의 경우에도 2006년 10월 9일의 1차 핵실험으로 핵개발을 본격화했지만 이후 6자회담과 북미 양자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이루며 핵시설 폐기작업을 벌인 바 있다. 이때도 핵 폐기에 나선다는 입장변화는 김정일의 기존 신화와 상충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정은의 지도자 신화에서 핵과 미사일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볼 때 앞선 지도자들처럼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전제로 한 핵 폐기는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한은 김정은 취임이후부터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처럼 북한도 핵무기 보유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핵보유국’ 지위에 올라야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데 주력했다. 즉 과과탓?핵 포기를 대가로 미국에게서 안전을 보장받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이젠 핵은 유지하면서도 군축 등 다른 명목으로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이런 북한의 핵과 미사일 보유의 기정사실화는 북한의 국가신화 즉 김정은의 영웅 신화에서 이미 핵과 미사일이 빠질 수 없는 핵심요소가 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김정은 시대의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은 미국과 한국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군사력인 동시에 국가신화의 핵심자산으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내부정치나 미국 등 외부와의 대화에서 핵은 북한에 있어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인식이 대두되고 있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요구하는 평화협정도 핵폐기는 배제하고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의 안전보장을 꾀하는 평화협정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이런 노선아래서는 핵폐기를 목표로 한 6자회담의 재개는 어렵고 재개돼도 의미를 살리기는 어려울 것이란 견해도 힘을 얻고 있다.14)
12) https://marcorubio.com/news/marco-rubio-north-korea-nuclear-test-2016/
13) “북한 당장은 아니지만 체제변형 과정서 붕괴 가능성”, 연합뉴스, 2015년 10월 31일자
14) Victor Cha, Ralph Cossa, Scot Synder,
국가를 지키고 국가를 이끄는 사상을 만들어낸 영웅인 지도자의 신화를, 믿고 배우고 그 신화를 재현해내는 각종 텍스트와 의례 속에서 사는 게 북한 주민들이다. 경제적 상황보다 정치가 삶을 규정하는 것이고 상징과 의례를 따르고 실천하는 것으로 국민의 삶이 이뤄지는 극장국가의 전형이 북한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신화를 통해 북한은 주민들을 통제하고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성공하고 있지만 이런 자기중심적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 논리는 무시되고 외부세계와는 단절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더구나 앞서 지적했듯 이미 지나간 전쟁이나 역사적 고난 속에서 재창조해낸 건국신화형태의 지도자 신화를 가진 것이 김일성과 김정일인데 비해 김정은의 지도자신화는 현재적이란 점에서 위험성이 있다. 특히 핵무기와 미사일이라는 현대적 군사력에 바탕을 둔 신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북한이 미국이나 우리나라 등 외부로부터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핵과 미사일의 포기가 있어야 하지만 이는 국가적 신화의 전면적인 변경을 의미한다는 점은 앞서 지적한 것과 같다. 그렇다면 외부세계의 노력을 통한 평화적인 비핵화나 북한의 개방은 불가능할 것인가?
지도자 신화를 포기한 북한 체제는 결국은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기에 북한은 신화 만들기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신화의 포기는 불가능하지만 신화의 재창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금처럼 비범한 군사적 자질을 가지고 외부국가가 어쩌지 못할 무기를 만들어낸 영웅이라는 서사를 북한이 다른 줄거리로 대체할 수 있을지 또 그럴 의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1차 핵실험 직전까지 김정일 시대의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 지도자 김일성의 유훈이라며 미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도자 신화의 측면에서 이를 해석하면 ‘핵무기개발로 자위권을 확보해낸 지도자’라는 신화 대신 ‘확실한 평화를 보장받고 경제개발에 나서는 지도자’라는 새로운 서사를 만들 의지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김정은 정권은 핵보유국지위를 인정받고 기정사실화하려는 노선으로 나아가고 있어 과거 김정일 정권이 보였던 비핵화 움직임을 단기간에 다시 보여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과거에 존재했던 입장이란 점에서 또 북한 또한 경제개발에 대한 욕망은 크다는 점에서 상황의 변화 가능성은 있다. 결국 신화의 중심인 김정은 자신이 핵과 장거리 미사일이라는 무력적 상징 없이도 자신을 영웅으로 정당화시킬 서사를 만들 능력과 의지를 보이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북한이 유래가 없는 3대 세습을 이어가고 있고 주민들에게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이끌어내고 있는 원천은 김일성부터 시작해 지금의 김정은도 만들어가고 있는 지도자 신화에 있다는 것이 연구의 시작이었다.
이 지도자 신화를 분석하기 위해 이 연구는 신화나 영화, 소설 등의 이야기들의 일반적인 구성요소와 연결 구조를 들여다보는 내러티브 분석의 틀을 빌렸다. 김정은 체제의 등장직후부터 북한의 교과서와 뉴스매체, 창작물에서 무수히 나타난 김정은을 찬양하고 우상화하는 텍스트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이런 다양한 형태의 텍스트에서 나타난 김정은에 대한 작은 이야기들은 김정은의 삶을 거대한 영웅설화로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특별한 혈통을 갖고 태어난 소년이 어려서부터 비범한 자질을 보이고 북한내외로 여행을 떠나 능력을 키우며 돌아와서는 군사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특히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진두지휘해 북한을 외부세계의 위협으로부터 구하는 영웅이 된다’는 줄거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김정은의 영웅 신화는 앞선 지도자들인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만드는 원천이면서 북한의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학습하고 의례를 통해 익히는 사회의 중심원리가 되고 있다.
특히 김일성과 김정일의 지도자 신화는 과거의 전쟁과 중요 사건들을 소재로 만들어낸 일종의 건국신화에 가까운 반면 김정은의 신화는 현재도 만들어지고 있는 진행형이다. 특히 신화의 핵심적 요소 즉 영웅의 최대 업적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핵과 미사일의 포기는 국가신화의 변경까지 의미하게 되기 때문에 비핵화는 북한 내부의 논리구조상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전망할 수 있었다.
결국 체제붕괴 외에 북한이 스스로 비핵화와 개방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찾아보면 북한사회를 지배하는 원리인 지도자 신화가 새로운 줄거리로 다시 쓰여 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신화의 전면적 교체는 결국 체제의 위기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나타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도 과거와 달리 국가배급 대신 각지에 작은 시장에 의지해 생활을 해나가는 이른바 ‘장마당 세대’가 출현해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줄고 있고 외부세계를 통한 정보전달도 커지는 등 변화는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결국 이는 현재의 지도자 신화가 가지는 비현실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어 북한정권 스스로도 이 신화를 바꿔나가야 할 필요는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북한은 앞으로도 김정은의 영웅 신화를 계속 유지해 가겠지만 그 안의 작은 이야기들은 조금씩 바뀔 수 있다. 핵무기 등 군사적 성취의 신화화는 앞으로도 계속 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 외에도 어떤 방향으로 ‘작은 이야기’들을 끌어들이고 신화의 구조 안에 집어넣을지 관측하는 건 북한의 선택을 읽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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