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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ICBM 발사에 따른 동북아 정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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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ICBM 발사에 따른 동북아 정세 변화 TV조선 차장 정동권 연수기관: UC버클리
1. 서론

2017년 7월5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지 42시간 만에 긴급회의가 열렸다. 슬로바키아 출신 미로슬라브 옌자 유엔 정치문제 담당 사무차장은 모두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쏘아올린 발사체는 사거리로 볼 때 ICBM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의 입에선 “불가피하다면 상당한 군사력을 사용할 채비도 돼 있다”는 강도 높은 발언이 나왔다.
흥미로운 장면은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로 발언권이 넘어갔을 때였다. 블라디미르 러시아 차석대사는 자국 국방부 분석을 인용해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전술적 기준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ICBM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헤일리 미 대사는 “유엔 사무총장 뿐만 아니라 미국, 심지어 북한 스스로도 ICBM이라고 했다. 나머지 세계가 ICBM으로 판단하는 근거가 궁금하다면 얼마든지 제공할 용의가 있다”며 설전을 벌였다.
미·러간 신경전을 반영하듯 회의 종료 후 미국 주도로 작성된 규탄 성명 초안 채택이 러시아의 이의제기로 무산됐다는 보도1)가 흘러나왔다. 안보리 차원의 대북 추가제재 수순에 러시아가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읽혔다. 유엔 주재 러시아 대표부는 안보리 의사진행 과정이 노출된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거부권 행사가 아니라 ICBM 표현에 대한 수정을 요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날 회의는 안보리 순회의장국 순번에 따라 중국 주재로 열렸다. 중국 측은 북한 발사체를 ‘탄도미사일’로 지칭하면서도 안보리 결의안 위반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겨냥해 모든 회원국이 한반도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자제하고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북핵 문제를 여전히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동아시아내 패권 경쟁 틀로 접근하고 있음을 재확인시킨 셈이다.
북한 도발 대응을 위해 열렸던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는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유관국들의 지정학적 딜레마와 전략적 선택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북핵위기 고조와 한반도 사드 배치 등을 둘러싼 동북아의 외교적 긴장관계가 한·미·일과 북·중·러간 신냉전 구도를 깨운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본 연구는 북핵 위기 전개과정에서 ICBM 발사 시험이 갖는 의미와 미국, 중국, 러시아의 선택지를 이해하는데 있다. 나아가 출범 6개월을 맞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 인사 스타일을 통한 대북정책 방향도 가늠해보고자 한다.

1) “Russia objects to U.N. condemnation of North Korea, says test was not ICBM”(July 7, 2017)
www.reuters.com/article/us-northkorea-missile-un-idUSKBN19R2CO

2. 美 대북정책 ‘게임체인저’, 북한 ICBM

북한이 ICBM 발사 이후 보인 행보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인공위성’,‘우주개발’ 등 그간의 위장용 표현을 쓰지 않고 ICBM 발사의 전략적 가치를 직접 선전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시험발사 이튿날“대형중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로켓을 짧은 기간에 우리 식으로 새롭게 설계하고 제작했다”고 했다. 이어 미사일을 이동식 발사차량(TEL)에 실어 지하갱도로 이동하는 모습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사전 발사징후 탐지가 사실상 불가능한, 이동식 ICBM 보유 사실을 국제사회에 홍보한 셈이다.
당근과 채찍을 토대로‘도발→추가제재→긴장고조→대화모색’을 되풀이해온 종래 ‘길들이기’식 대북접근법도 전면 재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미국은 자국 최대의 경축일인 독립기념일에 북한 ICBM 실험이 단행됐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2017년 7월4일(현지시간) 미국 독립기념일 당일 미국 주요 방송사 메인뉴스 머리기사를 장식한 건 북한의 ICBM 발사였다. 축사를 위해 백악관 트루먼 발코니에 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화면엔 미국이 직면한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미국의 대응을 촉구하는 기사 타이틀로 채워졌다.

워싱턴 정가와 언론에선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거론2)할 정도로 직접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주류 언론 가운데는 북한내 핵시설 정밀타격과 특수부대를 이용한 김정은 제거작전, 사이버전, 해상봉쇄 등을 미국의 선택지로 공론화3)하기도 했다.
전임 행정부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비판해온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기업과 금융기관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이전 행정부의 패턴을 답습하지 않고 고강도 제재로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미·중간 형성됐던 대북제재 공감대가 흔들리고 있는 것도 미국이 독자제재에 속도를 올리고 있는 이유다. 북한의 이번 ICBM 실험발사 성공으로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미국 본토 안보의 직접적인 변수로 부상한 만큼 기존 6자 회담 채널 대신 실력행사를 통한 억지(Deterrence)나 북·미 직접협상을 요구하는 미국 조야의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2) “Hawaiians, Alaskans contemplate their new reality: living within North Korean missile range”(Business Insider, July 7, 2017)
www.businessinsider.com/r-hawaii-alaska-contemplate-coming-into-north-korean-missile-range-2017-7?r=UK&IR=T
3) “NKorea Missile Is New Threat to America: What Are The Options Now?” (July 7, 2017)
www.nbcnews.com/nightly-news/video/nkorea-missile-is-new-threat-to-america-what-are-the-options-now-984260163823

3. 무역통계로 본 중·러 양국의 대북 태도 변화

북한의 후견국 역할을 자처해온 중국은 지난 2월 북한과의 교역량 1위품목이던 석탄 수입 중단을 선언했다.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을 위한 조치”라는 게 중국 상무부의 설명이었다. 발표 닷새전 발생한 북한 김정남 암살 사건과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북극성-2’ 도발에 대한 대응 차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북중 무역 통계를 들여다보면 올들어 중국이 단행한 석탄 수입중단 조치를 대북제재 고삐를 옥죄는 차원으로 해석하기 힘든 흐름이 드러난다. 북·중 무역 분석엔 국제연합(UN)이 보유한 국제 무역통계 데이터베이스인 UN Comtrade와 무역통계정보회사인 Global Trade Atlas 자료를 사용했다. 무역통계가 없는 북한 대신 회원국인 중국 상무부가 대북 수입·수출 규모를 집계해 국제기구에 다달이 보고하는 월별 통계자료다. 중국의 경우 월별 무역량 집계마감과 공표시점까지의 간극 때문에 통상 특정 시점의 통계치는 2~3달 이후 공개된다. 때문에 최근 ICBM 발사를 전후한 무역량 변화 대신 북한의 ICBM 발사시험 가능성이 제기된 지난해 말과 올해 초를 전후한 추세 변화 분석에 주력했다.
중국의 월별 대북 수출입 통계는 연간으로 보면 1월부터 12월까지 알파벳 ‘M’자와 유사한 추세를 보인다. 중국이 북한으로부터 수입하는 물품 가운데 금액 기준으로 40% 안팎을 차지하는 1위 교역품인 무연탄 등 광물성 연료 거래 규모가 북한내 연료 수요가 증가하는 겨울철에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북·중간 무역 흐름은 2016년 들어 이 M자형 연간 추세선을 크게 벗어났다. 2016년 1월 4차 핵실험과 4월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발사시험, 9월 5차 핵실험 등 북한의 도발 시점마다 큰 변곡점을 찍으며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특이한 점은 중국이 동북아 세력균형을 뒤흔드는 북한의 군사도발 대응 차원의 조치는 대북 수출이 아닌 수입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단행했던 2016년 1월, 중국의 대북한 수입액은 전년 같은 달에 비해 3% 줄어들었고, 대북 수출액은 1.3% 늘었다. 함경남도 신포 동북쪽 동해상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실험으로 동북아 주변국을 놀라게 했던 4월 중국의 대북 수입과 수출은 각각 22.3%, 1.5% 감소했다. 특히 지난 2월 김정은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이 불거진 후 중국은 북한 석탄 수입 중단을 선언했는데, 그 직후인 지난 3, 4, 5월 중국의 대북 수입 규모는 각각 전년 동월비 -52.3%, -42.4%, -34%로 석달 연속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대북 수출 규모는 같은 기간 전년보다 39.1%, 7.5%, 3.4%씩 꾸준히 늘었다. 이 때문에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동참 압박을 대북 수입규모 축소로만 대응하는 반쪽짜리 제재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중국의 북한산 석탄 수입 중단 배경엔 국제사회에서의 위신을 고려했거나, 트럼프 행정부의 호의를 얻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는 분석4)을 내놓기도 했다.

북·러간 교역에서도 이같은 경향은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전체 교역규모는 중국의 2~5%에 그칠 정도로 미미하지만 국제사회의 추가제재 목소리가 높아진 지난해 이후 수입 규모는 제자리 걸음인 반면 수출 규모는 꾸준히 상승세를 그렸다.
또 하나의 특징은 중국과 러시아 모두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따라 대북제재에 적극성이 고스란히 통계에 반영됐다. 2012년 미국과의 신대국관계(New Power Partnership)를 제안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이후 안보리 대북제재안에서도 미국과의 보폭을 맞추는 등 과거 사회주의 혈맹국보다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중시하는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로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설정되면서 대북 추가제재보다는 한반도 정세안정을 위한 대화에 방점을 찍었다. 적극적인 대북 옹호로 돌아섰다기 보다는 ICBM 발사로 미국 본토 일부가 북한 핵미사일 사정권에 들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예상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수순인 것으로 보인다.

4) CRS ’중국의 북한산 석탄 수입 중단, 미국 협력 끌어내려는 조치’(VOA, 2017년 5월4일)
www.voakorea.com/a/3836559.html

4. 美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지난 4월30일 월스트리트저널엔 외교참사에 가까운 해프닝 기사가 실렸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김관진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비용은 미국이 부담할 것이라 했다가 수시간 뒤 번복했다5)는 내용이었다. 불과 사흘전 1조원이 넘는 사드 비용을 한국에 청구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설명하는 형식으로 동맹국인 한국을 안심시켰다가 곧바로 향후 비용부담 관련 양국간 협상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며 자신의 발언을 정정한 것이다.
맥매스터 안보보좌관에게서 비롯된 촌극의 이면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은 9일뒤 블룸버그 기사6)에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맥매스터의 사드비용 해명 관련 기사를 읽고 격노해 수화기 너머 맥매스터에 고함을 질렀다는 복수의 백악관 관료 전언이었다. 한국에 적당히 부담을 지우려던 자신의 시도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구체적 통화 내용도 언급됐다.
이 해프닝은 트럼프 행정부가 내건 ‘미국우선’(America First) 외교정책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다. 동맹국과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물론 국제무대에서 역대 정부가 유지해온 글로벌 가치도 언제든 금전적 이득을 위한 협상도구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한달여 뒤인 지난 6월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하며 스스로“파리(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노력)가 아니라 피츠버그(위축된 미국 굴뚝산업)를 대변하기 위해 선출된 대통령”이라고 강조7)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트위터를 통해 북핵 해법을 중국이 부담해야 할 채무로 간주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북한 ICBM 발사 다음날인 지난 5일에는 “북·중 무역이 지난 1분기 40%나 증가했다. 중국이 우리와 함께 (대북협조)하는데도. 하지만 우린 그렇게라도 시도했어야 했다“는 트위터 글8)을 남겼다.
군사적 우위와 강력한 제재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정책기조로 내세우면서도 트위터를 통한 압박 제스처만 취하고 있는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제임스 울시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핵위기 속에서도 백악관이 트위터를 이용한다면 진짜 재앙”이라고 했다. 또 북·미간 직접 대화나 협상 대신 강력한 제재를 위한 중국 유인책 등 협력 강화를 주문했다.
취임 6개월이 지나도록 미 행정부내 대북정책 실무를 책임지는 핵심 자리가 대부분 공석인 것도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등은 이른바 ‘한반도 라인 3인방’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2017년 7월 현재 매튜 포틴저 NSC 선임보좌관 자리를 제외하곤 3개의 포스트 중 국무부와 국방부 동아태 차관보 2자리는 여전히 공석이다. 수전 손튼과 데이비드 헬비 등 부차관보급 인사의 대행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이밖에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해 북핵과 미사일 관련 의견개진을 할 수 있는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 역시 공석이다.
워싱턴 정가에선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백악관 참모간 알력다툼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외교관 등 ‘늘공’(직업 공무원) 대신 협상에 능한 사업가 출신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사스타일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선 후보시절부터 이란 핵문제 해법은 물론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전략적 인내라는 명분 하에 사실상 문제를 방치해왔다는 비판을 해온 만큼 조직내 긴장을 유지해서 어느 일방으로 흘러가게 하지 않게 하고, 모든 이슈를 헙상카드로 살려두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접근법도 북한 문제를 직접 다루는 정공법보다 사실상 중국기업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이나 한반도 주변 무력시위 등으로 중국을 우회적으로 압박해 협상비용을 낮추는 쪽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5) “National Security Chief Tells South Korea U.S. Will Pay for Defense System”(Wall Street Journal, April 30, 2017)
www.wsj.com/articles/national-security-chief-tells-south-korea-u-s-will-pay-for-defense-system-1493523260
6) “Washington Loves General McMaster, But Trump Doesn’t” (Bloomberg, May 8, 2017)
www.bloomberg.com/view/articles/2017-05-08/washington-loves-general-mcmaster-but-trump-doesn-t
7) “Trump: Elected to represent Pittsburgh, not Paris” (CNBC, June 1, 2017)
http://www.cnbc.com/video/2017/06/01/trump-elected-to-represent-pittsburgh-not-paris.html
8) https://twitter.com/realDonaldTrump/status/882560030884716544

4. 결론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문제 해법에서의 한국 운전석론을 강조했다. 최근 베를린 선언을 통해 밝힌 이른바 ‘3불(不) 원칙9)‘도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데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한 선제적 장치였다. 하지만 한국은 운전석이든, 조수석이든, 뒷좌석이든 안전벨트 없이 북핵 문제의 충격을 온몸으로 떠안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주도적 역할을 위해선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 인식과 교감부터 동조화하고 넓히는게 선결돼야 한다.
한·미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인식과 교감 수준은 양국 집권당의 정치적 성향의 동질성이나 이질성에 따라 상관관계를 보여왔다. 대북정책에 대한 인식과 교감수준에 따라 한·미 관계도 부침을 거듭해온게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에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 대북정책도 대화를 통한 설득으로 기운 반면, 공화당 정부는 압박카드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 브루스 클링너 연구위원은 북한이 1990년대 클린턴과 김대중 행정부의 온건주의 정책 하에서 국제 비핵화 협정을 위반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과거 한·미간 대북정책의 이질성이 가장 크게 부각된 시기는 노무현 정부 때였다. 한국의 진보정권과 미국의 보수정권의 이질감도 작용했지만, 양국 정상이 북핵 리스크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차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북한의 핵위협과 핵능력을 과소평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북한의 핵무기가 실질적인 안보위협이 아니며, 대미 협상용으로서의 핵보유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에 기인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한·미간 불협화음은 북핵 리스크 억제하지 못하고 되려 키웠다.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 인식을 드러낸 2003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고, 강경 일변도의 압박에 6자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후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1기 행정부는 대북 인식의 이질성보다 동질성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이 북핵 리스크를 키웠다는 판단에 집권 초기부터 “북한이 움켜쥔 주먹을 펴기만 하면 언제든 손을 내밀 용의가 있다”며 대화를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비핵개방 3000’을 제시했다. 북한이 핵만 포기하면 10년내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로 만들어 주겠다는, 일종의 바이아웃 구상이었다.
탄핵으로 중도하차한 박근혜 정부 역시 취임 초기부터 북한의 핵 개발을 최대 안보위협으로 규정하고, 중국을 지렛대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 ‘통일 대박’으로 발전시키자는 구상을 펼쳤다.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소극적으로 돌아선 것도 외교적 자구책 도출에 한몫했다. 하지만 사드문제 등을 놓고 미·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 북핵문제에서 레버리지를 잃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화를 기반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협력 정책은 한·미 복식조를 다시 북핵문제의 코트로 불러세우는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조야에서도 기존 대북정책에 대한 실패 논란과 함께 대북정책에서 강경모드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대북인식 우려를 씻은 것도 큰 성과다. 북한이 핵 소형화와 운반체인 ICBM 개발에 사실상 성공한 것으로 간주되면서 북핵문제는 북한의 의도대로 더 이상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한 ‘2+4’가 아니라 북·미, 북·중, 북·러, 북·일을 모두 유관국이 아닌 당사국으로 바꿔놓았다. 문재인 정부가 북핵문제 해결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선 동맹국인 미국 못지않게 중국과 러시아의 선택지도 미리 읽어내는 혜안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강화를 추구하는 중국. 모든 외교문제를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재점검하기 시작한 미국. 그리고 미·중 양강 사이에서 북핵 문제를 지렛대 삼아 국제사회의 발언권 지분을 챙기려는 러시아. 향후 상당기간 지속될 대북제재 국면 속에서 파국을 피하기 위해선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이를 주변국에 설득해 나가는 진정성과 성의를 먼저 남북대화 재개 용의의 제스처로 보일 필요가 있다. 중단된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면 사드배치 등을 둘러싼 미·중간의 불협화음이 초래한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에서 자연히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9)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6일(현지시간) 구 베를린시청 베어홀에서 열린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을 통해 “①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②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고, ③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3불 원칙을 밝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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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덕, 북핵위기에서 미국과 북한의 전략선택, 세종연구소, 2011
박홍서,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대응:‘왕이 이니셔티브’의 배경과 함의, 중국학연구 77집, 2016
David Horowitz, Big Agenda: President Trump’s Plan to Save America, Humanix Books, 2017
Gideon Rachman, Easternization : Asia’s rise and America’s decline : from Obama to Trump and beyond, Other Press, 2016
Robert Daniel Wallace, North Korea and the science of provocation : fifty years of conflict-making, McFarland & Company, Inc., 2016
Sung Chull Kim and Michael D. Cohen, North Korea and nuclear weapons [electronic resource] : entering the new era of deterrence, Georgetown University Press, 2017
Victor D. Cha, David C. Kang, Nuclear North Korea,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