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한국이 코로나19 백신 부족사태에 시달리던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 차관을 선두로 한 정부 대표단이 미국 모더나 본사를 찾았다. 모더나 본사가 있는 곳은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우리 정부 대표단은 모더나측에 당초 약속된 물량(2021년 4000만 회분)을 조속히, 원활히 공급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서 동시에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에 정신 없었던 신생 제약사 모더나는 이렇다 할 확답을 내놓을 형편이 아니었다. 1박 2일 단 3시간 면담 후 ‘빈손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대표단을 비판하는 여론이 비등했고, 나아가 우리도 서둘러 백신 주권을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3년째, 세계가 바이오 산업 중심지 미국 보스턴을 주목하고 있다. 보스턴은 지난 2014년 기준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안지역(bay area)을 제치고 미국 최대 바이오 클러스터로 등극했다.1 이곳에는 사노피 화이자 노바티스 등 세계 20대 제약사 중 19곳이 본사 또는 지사를 두고 있고, 모더나 같은 스타 기업들도 속속 배출되는 중이다.
팬데믹 첫 해인 2020년 보스턴이 속한 매사추세츠주에 위치한 벤처기업들에 투자된 돈은 약 5조8000억 달러(약 7000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2 2021년에는 1분기에만 전년도 자금 조달액의 4분의 3인 4조3000억 달러(약 5200억원)를 끌어 모을 정도로 막대한 자금이 쏟아졌다.
사람도 모이고 있다. 2020년 매사추세츠주 바이오∙제약분야 고용률이 전년도 대비 약 5.5% 증가하는 등 2005년부터 15년간 이 분야 고용이 92% 늘었다. 매사추세츠주 바이오산업 진흥을 위해 설립된 매스바이오(MassBio)는 “2024년까지 이 지역 바이오∙제약 분야에 4만명 가량의 인력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연구실(lab) 수요도 폭증하는 중이다. 2020년에서 2021년 사이, 이 지역에는 500만 ft2 의 연구실이 새로 생겨났다. 1893년에 문 열어 13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지역 유명 농산물 마켓 루쏘(Russo)가 부동산 개발회사에 4000만 달러에 팔리는가 하면(부동산 개발회사는 여기에 바이오 연구실을 지을 예정), 1919년 월드시리즈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난 현장인 보스턴의 명물 벅민스터(Buckminster) 호텔마저 바이오 연구실로 탈바꿈하기 위해 4250만 달러에 팔리는 등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보스턴은 어떻게 세계 바이오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나. 최악의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짚어봤다.
1) https://www.genengnews.com/topics/drug-discovery/top-10-u-s-biopharma-clusters-8/
2) https://www.massbio.org/industry-snapshot/
◆ No.1 바이오 클러스터로 부상한 보스턴
특정 지역에 바이오∙제약 산업이 얼마나 집적해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는 여럿 있다. 먼저 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미국 국립보건원)이 해당 지역 병원과 학교 등 기관에 지원해준 지원금 규모다. 미국의 대표적인 바이오 전문 매체 Genetic Engineering & Biotechnology News(GEN)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보스턴 지역으로 향한 NIH 펀딩 규모는 37억1000만 달러로 미국 내 최대였다. 2위는 뉴욕∙뉴저지 지역(33억 달러), 3위는 메릴랜드∙워싱턴DC 지역(30억 달러) 순이었다.
해당 지역 기업과 기관들이 보유한 특허숫자도 중요 척도다. 이 기준으로는 샌프란시스코가 1만2777개, 보스턴이 9099개로 뒤지지만, 연구실 면적 규모로는 보스턴 지역이 샌프란시스코를 앞서는 등 종합 점수에서 보스턴이 1위를 기록했다. 2013년까지는 샌프란시스코가 줄곧 1위였지만, 2014년부터 보스턴이 1위로 앞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 mRNA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를 필두로 한 이 지역 스타트업이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이런 추세는 더욱 굳어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1분기에만 10여곳의 지역 바이오 신생기업들이 상장해 주식시장에서 21억 달러의 자금을 끌어 모으기도 했다.
■ 보스턴 지역 바이오 제약 업체들은 지난해 1분기에만 전년도 전체의 4분의 3 규모인 43억 달러의 벤처자금을 끌어 모았다
■ (출처=MassBio)
보스턴에 바이오 생태계가 형성되기 시작한 데는 1977년 케임브리지(찰스강 북쪽 하버드대학교와 MIT대학교가 위치한 행정구역) 시의회에서 재조합 DNA 실험을 합법화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3 당시 미국에선 생태계 교란과 환경 변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유전자 조작 실험이 금지됐지만, 조지 월드와 매튜 메셀슨 박스 등 하버드 생물학과 교수들이 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해 합법화를 이끌었다. 이듬해 하버드와 MIT 출신 과학자들이 재조합DNA를 연구하는 바이오젠(Biogen)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지금은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 등 신경과학 연구의 선구자로 유명해진 바로 그 회사다.
찰스강 남단에서 바라본 켄달 스퀘어 전경.
/ 김은정 기자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 보스턴 지역에는 1000여개 이상의 바이오 기업들과 연구소, 병원 대학교가 포진해 ‘보스턴 바이오 생태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특히 케임브리지에 자리한 켄달 스퀘어(Kendall Square)에는 이들 생명과학 기업들이 밀집해있어, ‘지구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1마일스퀘어(mi²)’로 불린다.
3) https://www.nytimes.com/1977/02/08/archives/cambridge-council-allows-harvard-dna-research.html
◆ 왜? 어떻게?
① 우수한 인재들
전문가들은 보스턴이 바이오 클러스터로 부상하게 된 첫 번째 비결로 주저 없이 인재 풀(pool)을 꼽는다. 보스턴에는 하버드 MIT 등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 35곳이 밀집해있어 각 나라의 브레인들이 심화 연구를 위해 매년 몰려든다. 이 똘똘한 학생들은 학교마다 있는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벤처기업을 설립할 기회도 가질 수 있다. 하버드대학이 2011년 설립한 창업지원프로그램인 ‘하버드 이노베이션 랩’은 학생 및 졸업생들에게 멘토링과 워크샵을 통해 창업을 도와주는 한편, 경쟁프로그램에서 1등한 팀에게는 7만5000달러의 창업지원금을 안겨주면서 창업을 독려한다. LG생명과학 신약연구소장 출신으로 2008년 보스턴에 ‘제노스코’라는 바이오 회사를 창업한 고종성 대표는 “인재가 풍부한 보스턴이야말로 신약개발 업체들에겐 세계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이 지역이 낳은 인재를 얘기할 때 모더나 공동창업자이자 MIT 교수인 로버트 랭거(Langer∙73)를 빼놓을 수 없다. 랭거 교수는 1974년 MIT에서 화공학 박사학위를 딴 뒤 학교에 남았지만, 상아탑에만 갇혀 있는 보통의 교수들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그는 이제까지 1250편의 논문을 쓰고 1050개의 국제 특허를 출원했다. ‘역사상 논문 인용수가 가장 많은 공학자’로 꼽힌다. 그의 특허는 세계 제약회사, 화학회사, 병의원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1987년 첫 회사(Enzytech)를 설립한 이래 2011년 모더나를 공동 창업하기까지, 총 40여개 회사를 세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운영하는 연구실 ‘랭거 랩’에는 매년 100여명의 석∙박사 및 박사후과정 학생들이 1000만 달러(120억원) 규모의 연구비를 쓰면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연구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이 랩을 거쳐 크고 작은 바이오 기업을 설립한 경우도 많다.
랭거 교수는 지난해 11월3일 한국과학기술원과 가진 특별대담에서 “무엇이 보스턴을 특별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보스턴에는 하버드와 MIT가 있다. 세계 랭킹 1∙2위다. 특히 MIT는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넘버 원이다. 불과 2마일 거리에 위치한 이 두 대학에서 엄청난 학생들이 배출되고, 이는 매우 특별한 부분”이라면서 “우수한 이 지역 인재들을 붙잡기 위해 (기업을 만들기 위한) 벤처캐피탈과 변호사가 몰려온다”고 말했다. 그 역시 우수한 인재를 첫 번째 비결로 꼽은 것이다.
② 임상까지 속전속결, 세계 최고의 병원들
베스 이스라엘 디커니스 메디컬 센터, 보스턴 아동병원, 브리검 여성병원, 브로드 연구소, 케임브리지 헬스 얼라이언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등 하버드대학교 연계 병원 및 연구소가 이 지역에 총 19곳에 달한다. 소아 병원부터 암센터까지, 다양한 분야 연구를 임상 시험할 수 있는 수탁기관이 밀집한 것은 매우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우호적인 환경이다. 학교는 이들 병원과 손잡고 NIH(미국 국립보건원)로부터 조 단위의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실제 NIH 연구비 지원액수 기준 상위 5개 병원 중 3곳이 보스턴에 위치한 곳들(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브리검 여성병원, 보스턴 아동병원)이다.
MIT 기계공학박사 출신인 한국인 손광민씨가 현지에 설립한 파스트(PhAST)도 매사추세츠 종합병원과 브리검 여성병원과 협력해 기술을 구현하고 있다. 이 회사는 환자의 체액 샘플에서 균을 배양해 미생물 감염에 대한 검사를 하는 기존 방식 대신, 배양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영상화해 감염 유무 및 균의 종류를 파악하는 영상진단기 개발을 하고 있는데, 이들 주요 병원과 협력해 환자들의 소변과 혈액 샘플을 통해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③ 연구 조력 인프라
바이오 연구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실험실과 장비가 필요하다. 돈이 많이 든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랩 벤치(의자) 하나당 월 4000~5000불’이 시세처럼 굳어져있다. 연구원이 7명 정도인 아주 작은 벤처기업일지라도 벤치가 대략 10개는 필요하다고 한다. 아무 도움도 없이 머리만 가지고 신생 벤처를 만들기엔 장벽이 상당히 크다.
이 때문에 여러 조력자들이 생겨났고, 이것이 보스턴을 특별하게 만든 세 번째 비결로 꼽힌다. 바로 랩센트럴(LabCentral)과 같은 비영리 연구조력 단체들이다. 2013년 출범한 랩센트럴은 주 정부가 500만 달러의 마중물을 대고 민간에서 2배의 투자금을 받아 시작했다. 단순 공유오피스가 아니라 화학 또는 생화학 실험을 위한 웨트랩(Wet lag)을 제공한다. 실험공간과 기구들을 모두 빌려주기 때문에 초기 창업의 벽을 넘길 수 있게 도와주는 게 특징이다.
물론 여기 진입하는 것도 철저한 경쟁이다. 자신들이 가진 기술력과 향후 비전을 보여주면 경쟁을 통해 선발되는 특전을 누린다. 투자자본 750만 달러 이하, 매출 300만 달러 이하의 신생 기업들만 입주할 수 있으며 최대 2년까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현재 60여개 신생기업 200~300여명의 과학자들이 여기서 미래의 모더나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로슈 화이자 노바티스 바이오젠 등 대형 다국적 제약사들과 LG생명과학 같은 우리나라 업체도 랩센트럴을 지원하면서 미래 될성부른 떡잎을 ‘배양’하는 중이다.
이제까지 랩센트럴을 거쳐간 107개 기업 중 70% 이상이 랩센트럴 인근 5마일 이내에 회사를 세웠고, 3000여개 이상의 바이오테크 일자리가 창출된 것으로 집계됐다.4
MIT 졸업생들이 1999년 설립한 공유오피스 개념의 케임브리지 이노베이션 센터(CIC)나 존슨앤존슨그룹이 설립한 임대 실험공간 JLAB 등도 이 지역 바이오 클러스터에 싹이 움트도록 만드는 조력자들이다.
매사추세츠 주 내 바이오 기업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1985년 설립된 비영리단체 매스바이오(MassBio)도 주요 조력자다. 매스바이오는 연례 컨퍼런스를 열어 투자자와 기업들의 네트워킹 기회를 마련해주고, 채용센터도 운영하며, 바이오 기업들이 당면한 이슈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해 나아간다. 2021 회계연도 예산안에는 제약업체들이 약값을 소비자물가지수(CPI)보다 2% 이상 높일 경우 처벌하겠다는 조항이 들어갈 뻔했으나, 매스바이오의 적극적인 만류로 무산됐다.5 이들은 주 정부 국회의원들 중 바이오 산업에 관심이 많은 의원들로 꾸려진 ‘매사추세츠 주정부 국회의원 바이오테크 이익단체’와 함께 주요 현안 관련 토론회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4) https://labcentral.org/uploads/assets/LABCENTRAL_2020IMPACT.pdf
5) https://www.massbio.org/news/recent-news/legislative-update-2020-recap/
◆ 한국 바이오의 현주소와 가야 할 길
굳이 세계 산업 경쟁력 순위를 따지지 않더라도6, 한국 바이오 제약 산업은 아직 걸음마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7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는 평균 5년 이상 벌어져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진단키트와 시약 수출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국내 제약기업 규모가 영세8 하고 신약개발보다는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 위주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7일 보스턴 현지에서 주미한국대사관 주최로 열린 ‘위드 코로나 시대, 보스턴 바이오 생태계 진출 전략’ 세미나에 참석했다. 참석자들 대부분은 사업 기회를 찾아 보스턴으로 온 업계 관계자들이었다.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승주 박사(오름테라퓨틱 대표)는 “한국은 차도 잘 만들고, 스포츠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고, ‘오징어게임’에서 보듯 드라마도 잘 만든다. 못하는 게 사실상 제약바이오 말고는 없어 보인다”면서 “역사가 짧아서인가? 그렇지 않다. 동화약방을 시작으로 1890년대에 근대 제약산업이 태동했다. 의료시스템이 부족해서인가? 코로나 K방역은 FDA에서도 보고 배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가 생각하는 이유는 결국 ‘돈’이었다. 신약 하나를 제품화하는 데 보통 12년이 걸린다. 평균 70만 시간, 423개의 리서치가 필요하고, 개발 비용도 중위값이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시장규모가 1%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1조나 투입해 12년을 기다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6) Statistica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세계 바이오테크 산업 매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8%, 한국은 2.8% 수준으로 집계됐다.
7) 한국 바이오 의약품의 글로벌 수출시장점유율은 최근 증가 추세이기는 하나, 2019년 기준 0.67% 수준이다.
8) 2020년 기준 국내 42개 바이오벤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이 보유한 현금성자산 합계는 1조2000억원으로, 중국 바이오벤처 한 곳이 보유한 현금에도 못 미친다.
2021년 10월7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메리어트호텔에서 ‘보스턴 바이오 생태계 진출 전략’ 세미나가 열렸다. /김은정 기자
이 박사는 “이 때문에 바이오 제약산업은 자본시장 의존도가 매우 높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 자본시장 규모가 세계 시장의 2%에 불과해 돈 비리기도 역시 쉽지가 않다는 것. 미국은 제약시장 규모가 세계의 40% 수준인데, 자본시장 역시 40%로 큰 덕분에 개발비용을 수월하게 조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현정 삼양바이오팜 미국법인 대표는 “한국 사람들이 굉장히 똑똑해서 과학과 기술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신약개발을 해 본 경험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약을 FDA 승인을 받고 시장에 내놓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연구 방법부터가 달라지는데, 이런 목표를 갖고 연구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한국에서 제네릭을 하던 프로세스로는 신약을 개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정훈 BW바이오메드 대표도 “보스턴에는 케임브리지 이노베이션 센터(CIC)나 랩센트럴(Lab Central) 같은 플랫폼이 있어 돈 많이 드는 창업 초기를 비교적 수월하게 넘길 수 있다”고 했다. 보스턴의 성공 비결인 ①번(넘쳐나는 우수 인재)과 ②번(인접한 세계 최고의 병원들)을 따라잡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③번(연구 조력 인프라)부터라도 벤치마크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정부도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바이오 산업 육성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7월 인천 송도를 ‘한국형 생명공학 창업기업 지원기관’ 후보지로 선정하고, 2500억원을 투입해 2025년부터 ‘K바이오 랩허브’를 본격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 K바이오 랩허브의 모델이 된 것이 바로 보스턴의 랩센트럴(LabCentral)이다.
송도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국내 대표적인 바이오 기업이 있고, 2026년 송도 세브란스병원이 문을 여는 등 산-학-연-병 네트워크가 가장 잘 구축된 곳으로 꼽힌다. 인천시는 송도 4·5·7공구 일원에 바이오 기업, 연구소 등이 모인 92만㎡크기의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했다. 인천자유경제구역청에 따르면 이곳에 지난해 8월 기준 바이오 제조사 13곳, 연구소·서비스 기업 20곳, 관련 대학 3곳이 들어서있다. 이 클러스터는 2030년이면 200만㎡로 커질 전망이다.
다만, 이제까지 많은 산업 육성 과정이 그러했듯이 시설만 대거 만들어놓고 보여주기식 “돌격 앞으로”를 외칠 것이 아니라, 실제 기업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소프트웨어를 실질적으로 손 봐서 일을 되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승주 박사는 우리나라 바이오 벤처기업들도 쉽게 자금을 끌어오려면 해외 주식시장에도 교차상장(cross-listing)을 허용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더 큰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 받을 수 있도록 국내 거래소에 공개된 기업의 해외 중복 상장도 허용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복제약과 내수 위주의 저위험∙저수익 경영을 해왔던 국내 바이오 산업. 이번 팬데믹을 기점으로 보스턴의 성공사례를 통해 한 단계 도약하는 역량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