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우리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은 청와대(대통령실),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소수의 공무원이 은밀히 모여 협의한 뒤 일방적으로 ‘깜짝 발표’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왔다. 이 때문에 대규모 신도시 계획안이 발표되면 해당 지역 거주민은 물론 지자체장까지 반대를 표명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졌다. 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주택공급의 핵심관계자들은 1급정보를 토대로 투기를 벌이는 등 심각한 부작용도 발생했다. 그간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정부의 일방적이고 하향식으로 이뤄지는 주택공급 방식 대신에 지역주민과 연계한 상향식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번번히 큰 힘을 얻지 못 하고 소멸되기 일쑤였다. 이에 주택공급과 규제 등 전반에 있어 시민사회와 협업하며 이를 반영하는 미국 오레건주 포틀랜드의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 우리 정책의 개선점을 모색해보기로 한다.
1.심각한 주택난에 시달리는 포틀랜드
포틀랜드시는 미국 오레건주의 경제 중심지로 나이키 등 유명 기업의 본사가 자리해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2021년 조사 기준 거주 인구는 64만 1,200명으로 인근 도시인 워싱턴주 시애틀(73만 3,900명)보다 규모가 작다. 하지만 인텔 연구소와 반도체 공장 등이 다수 포진한 힐스버러(Hillsboro) 등 광역권 인구를 포함하면 251만 명에 달할 정도다. 포틀랜드는 우수한 거주여건과 문화적 포용력 등이 알려지면서 인구 유입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광역이사업체인 유나이티드 밴 라인(United van lines)이 공개한 수치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포틀랜드를 포함한 오레건주는 버몬트(vermont)주에 이어 미국서 2번째로 인구 유입이 많은 주로 꼽혔다. 1유나이티드 밴 라인은 주와 주를 이동한 이사물량(Cross state movers)을 통계해 공개했는데 2017년 오레건주를 떠난 사람은 35%인 반면 새로 들어온 사람은 65%에 달했다. 오레건으로 신규 유입한 사람의 기존 거주지를 살펴보면 인근 워싱턴주, 캘리포니아주 뿐 아니라 동부 끝자락인 뉴욕도 포함됐다.
오레건의 대표 도시인 포틀랜드에 이 같은 막대한 인구유입은 심각한 주택문제를 양산했다. 부동산시장조사 전문기업인 레드핀(Redfin) 보고서2 에 따르면 포틀랜드의 지난 2021년 주택 임대료 상승률은 39%를 기록해 미국 모든 도시 가운데 1위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 도시 평균(15%)의 2배가 넘는 수치였다. 포틀랜드를 이어 텍사스주 오스틴(35%), 뉴저지주 뉴어크(33%), 뉴욕주 나소카운티(33%), 뉴욕주 뉴욕시티(33%) 등이 30%를 넘는 높은 임대료 증가율을 보였다. 밥 웰런 이코노스웨스트(EcoNorthwest) 선임 연구원은 이와 관련 포틀랜드 지역뉴스인 코인과 인터뷰에서 “포틀랜드는 높은 주택 수요를 충족할 만큼 충분한 아파트가 없다”며 “2020년부터 포틀랜드 주택가격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주택 임대료가 심각하게 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3. 또 포틀랜드 지역언론인 KGW가 부동산시장 전문분석업체인 야디 매트릭스(Yardi Matrix)의 분석을 인용한 보도를 보면 지난해 포틀랜드의 평균 주택 임대료가 월 1,700달러로 미국 평균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4
1) 출처: 심플포틀랜드플로어스 웹사이트(https://www.simplefloorspdx.com/blog/oregon-its-where-people-are-moving/)
2) 출처: Redfin Press release (2022년 3월 21일)
3) 출처: koin 뉴스 https://www.koin.com/local/multnomah-county/through-the-roof-portland-rent-hike-fastest-among-nations-metro-areas/
4) 출처: KGW뉴스 https://www.kgw.com/article/news/local/homeless/new-study-housing-market-root-cause-homelessness/283-819457a7-9606-42c6-9cb3-62bd25661d2b
외부에서의 인구 유입뿐 아니라 내생적 주택수요 증가 요인도 발생했다. 오늘날 주요 대도시들이 겪는 것과 같은 세대분화와 1인가구 증가로 인한 주택수요 급증이다. 오레건 NGO단체인 ‘1,000명의 친구그룹(1000 Friends of Oregon)’의 메리 카일 맥커디(Mary Kyle McCurdy) 대표는 지역 언론과 인터뷰에서 “가족 규모가 점점 작아지고 65세 이상과 청년층이 크게 늘었다”며 “주거비가 가구 소득을 빠르게 넘어서고 있는데 이것은 토지 공급이 아닌 주택 형태의 변화로 대응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5 .
1913년 건립된 포틀랜드 주택/사진=Stephen FitzMaurice
이와 더불어 주택 노후화와 재건축의 부재도 주택 문제에 불을 지폈다. 포틀랜드는 도시에 큰 변화를 불러올 구조적 개혁 없이 느린 성장을 추구하는 이른바 ‘슬로시티(Slow City)’로 유명한데 이로 인해 100년 가까이 된 주택이 즐비하다. 부동산 개발업체 스테판 피츠모리스(Stephen FitzMaurice)에 따르면 포틀랜드 도심 주택의 35%가 1940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집계됐다. 또 1940~50년대에 건립된 주택이 10%를 차지하는 등 1950년 이전에 지은 주택이 전체의 절반에 달한다 6. 2000년 이후엔 전체 주택의 6%만 건립됐는 데 이 같은 재건축의 부재가 주택공급 부족으로 이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5) 출처: OPB뉴스 https://www.opb.org/article/2022/08/03/oregon-governor-candidates-on-housing-land-use/
6) 출처: 스테판 피츠모리스 분석 https://realestateagentpdx.com/portlands-housing-supply-dense-old-big/11233
포틀랜드 거리를 점령한 노숙자 텐트/사진=강동효
포틀랜드의 주택 문제는 더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졌다. 바로 노숙자의 급증과 이로 인한 범죄의 증가이다. 지난해 말 기준 포틀랜드의 노숙자는 5,20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 2019년에 비해 30%가량 늘어난 수치다7 . 노숙자는 약물 오남용과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이들은 약물 구입을 위해 절도, 살인 등 강력범죄와 관련되는 일이 적지 않다. 포틀랜드 지역뉴스인 뉴스네이션에 따르면 올해 3월 포틀랜드 인근 대형유통업체 월마트 2곳이 폐쇄를 결정했다. 월마트 측은 폐쇄 이유와 관련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매점 절도행위(persistent retail theft) 때문”이라고 밝혔다8 . 살인 등 강력범죄도 급증했다. 지난해 1~11월 포틀랜드의 살인사건은 90건으로 미국 서부 주요도시보다 월등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샌프란시스코(51건), 시애틀(46건), 새크라멘토(54건), 샌디에이고(49건) 등 50건 안팎이었지만 포틀랜드는 이보다 40건가량 더 높은 수치를 보인 것이다 9.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와 관련 지난해 10월 “한때 미국에서 가장 안전했던 포틀랜드가 살인 범죄율을 낮추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10
7) 출처: 스마트시티스다이브 뉴스 https://www.smartcitiesdive.com/news/portland-oregon-passed-a-controversial-homelessness-mitigation-plan-here/636760/
8) 출처: 뉴스네이션 https://www.newsnationnow.com/us-news/west/walmart-closing-portland-locations-crime/
9) 출처: koin 뉴스 https://www.koin.com/news/crime/portlands-homicide-rate-nearly-double-other-west-coast-cities/
10) 출처: 월스트리트저널 ‘Portland, Ore., Once Among Safest U.S. Cities, Struggles to Cut Homicide Rate’
달린 어반 가렛 이사(왼쪽)와 폴 라이스트너 교수(오른쪽)가 기자와 지난 1월 인터뷰를 하고 있다./강동효
포틀랜드 서부-북서부 이웃협의회 이사(Executive Director)인 달린 어반 가렛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작년에 벌어진 범죄 가운데 30%는 노숙자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며 “오레건 주정부는 수억 달러의 돈을 노숙자 문제 해결에 쓰고 있지만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 한다. 노숙자의 50%가량은 신분증(ID)이 없어 의료보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런데도 시와 주정부는 ‘모두를 위한 집(Home for everyone)’만 외치고 있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돈을 써야 한다”고 쓴소리를 냈다. 이어 “최근 장애인협회가 포틀랜드시를 상대로 8,500만달러의 소송을 제기했다”며 “(시에서 노숙자에게 제공한) 텐트가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어 장애인들이 이동할 자유를 잃었고, 이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포틀랜드시에 제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2.쏟아지는 새 주택공급 정책
포틀랜드의 이 같은 주택 문제와 범죄 급증은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에서 ‘핫 이슈’로 작용했다. 40년 이상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오레건 주지사 선거가 공화당과 박빙 양상으로 흐른 것이다. 공화당 주지사 후보인 크리스틴 드라잔은 노숙자와 범죄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드라잔은 민주당 출신의 당시 주지사인 케이트 브라운과 민주당 주지사 후보인 티나 코텍을 싸잡아 책임론을 펼쳤다. 드라잔은 “도심에 득시글한 노숙자를 줄일 생각 없이 노숙자에게 안주할 수 있는 텐트를 지급한 ‘텐트 티나(Tent Tina)’가 포틀랜드를 망쳤다”며 공세에 나서는가 하면 수십만 가구의 신규 주택을 오레건 전역에 건립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내놓았다. 민주당의 코텍 역시 앉아서 당하고 있진 않았다. 코텍은 “지난해 말 기준, 오레건주서 11만 1,000가구의 주택이 부족하다”고 진단한 뒤 “이보다 더 많은 주택공급을 하겠다”고 맞받아쳤다. 중간선거는 줄곧 박빙 양상으로 흘렀는데 포틀랜드와 유진 등 오레건주 대도시에서 유권자의 표심을 잡은 코텍이 총 6만 6,000표차로 최종 승리했다. 드라잔은 서부, 남부, 중부 오레건 대다수 지역에서 승리했지만 대도시 포틀랜드에서 민주당의 아성을 못 무너뜨리며 고배를 마시게 됐다.
코텍은 새 오레건 주지사로 선출된 이후 가진 첫 기자 간담회에서 대규모 주택공급 계획부터 내놓았다. 그는 “향후 10년간 오레건에서 총 36만 가구를 건립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당초 부족하다고 진단한 주택의 3배가 넘는 규모이다. 코텍은 연간 3만 6,000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매주 주택협의회에 직접 참석한 뒤 주택건립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건설 촉진을 위한 여러 제안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11. 또 노숙자 감소를 위해 포틀랜드 등 노숙자가 많은 지역은 절대 수치를 줄이는데 모든 자원을 집중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포틀랜드를 비롯한 오레건 지역은 이에 따라 상당한 규모의 신규 주택이 공급될 전망이다.
11) 출처: 오레건라이브 뉴스 https://www.oregonlive.com/business/2023/01/kotek-homebuilding-target-is-ambitious-potentially-costly-and-politically-fraught-experts-say.html
3.포틀랜드의 주택정책에 있어 이웃협의회의 역할
포틀랜드의 주택공급은 계획과 설계부터 이웃협의회(Neighborhood association)의 역할이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 코텍 주지사 역시 이웃협의회의 의견을 자주 들으며 지역사회에서 수용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포틀랜드에는 7개 지구에 총 94개의 이웃협의회가 존재한다. 이웃협의회는 포틀랜드 지자체가 지난 1974년 주요 정책에 대해 시민 참여를 촉진하고 시와 주민 간 의사소통을 개선하기 위해 설립한 기구이다. 선출된 정치인이 지역 주민 모두의 이익과 의견을 대변하지 못 하는 만큼 도시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자는 목적에서 도입한 것. 주민자치 성격의 독립적 비영리 단체인데 포틀랜드 시 공무원이 기초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일부 직원을 배치해 운영하기도 한다. 이웃협의회는 토지 이용, 주택 공급, 지역사회 시설, 교통과 환경 개선, 안전 등 주거 환경과 관련한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시와 밀접하게 협의하며 정책적 조언을 한다. 40년 간 이웃협의회는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렸고 도시 지역 문제를 조직하고 해결하는 주요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센트럴시티2035 공청회에 참석한 시민들/포틀랜드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20년 확정한 포틀랜드의 장기도시계획이다. 포틀랜드는 향후 15년간의 장기 도시계획과 주택공급, 교통망 확충 등을 담은 ‘센트럴시티(Central City) 2035’를 약 10년간 구상해 최종 확정했다. 이 계획은 지난 1988년 세웠던 기존 도시계획이 인구증가와 기후변화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2010년에 처음 구상됐다. 약 5년간 각종 협의회를 통해 기초연구서 작성과 주민공청회, 토론 등을 마쳤고 거버넌스를 확립해 의회와 공공에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이웃협의회가 참여해 각 지역별 개발에 적극적 의견을 내놓았다. 최종 확정된 장기도시계획안을 보면 전체 토지 가운데 3%를 개발대상에 포함해 도시 주거의 30%를 확장하는 방안이 담겼다.
센트럴시티2035의 세부계획은 북북동 쿼드란트(N/NE Quadrant), 서부 쿼드란트(West Quadrant), 남동 쿼드란트(Southeast Quadrant), 윌러밋 강 산책로 공간(Willamette river greenway inventory) 등 총 6곳에 대한 개발안을 담고 있는데 이 중 포틀랜드 다운타운이 자리한 서부 쿼드란트는 가장 관심을 받는 내용이다. 서부 쿼드란트는 모두 7개 지역을 포괄하고 있는데 펄(Pearl) 지구, 구도심/차이나타운(Old town/China town), 도심(Downtown), 웨스트엔드(West End), 구스 할로우(Goose Hollow), 남부 도심 및 대학지구(South Downtown/university), 남부 수변지역(South Waterfront)이 그것이다.
도심 핵심 지역에 대한 개발안을 담은 이 계획을 확정하는데 정부, 시민단체, 민간개발자, 토지 소유주 등이 참여했고 이들은 1,000시간 이상, 16개월 이상 협의를 진행했다. 이 계획안은 토지 개발과 관련해선 수변공원 개발을 비롯해 상업지구, 사무지구 개발, 주거지 개발 등의 핵심 내용을 담았다. 또 2035년까지 2만 가구 공급과 3만개의 일자리 개발을 이루겠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포틀랜드시는 2010년 기준 일자리 8만7,800개, 주거지 2만700가구에서 2035년 일자리 11만 8,800개, 주거지 4만3,700가구 공급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서부 쿼드란트 개발에 있어 이웃협의회 역할을 살펴보면 계획을 수정, 보완, 심의하는 이해관계자자문위원회(SAC)에 이웃협의회 대표가 여럿 참여했다. SAC는 총 33인으로 구성했는데 이웃협의회를 비롯해 사업자협의회(Business associatons), 토지 소유주, 교통개발당국, 환경당국, 의료공급자 등이 주요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온오프라인 협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최종 컨셉과 계획안에 이를 반영했다. 또 정기적인 미팅을 통해 논의를 발전했을 뿐 아니라 총 110회가 넘는 주민 모임(Community meetings)도 진행했다. 이와 더불어 여론조사, 설문, 전문가 토론회(Charrette) 등을 통해 지역 의견을 수렴했다. 회의록을 살펴보면 이들은 의견수렴을 통해 주택공급과 일자리 확대가 계획안의 핵심(the core of plans)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개발계획이 역사지구의 보존, 원주민의 존속, 환경자산의 보호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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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록을 살펴보면 이들은 의견수렴을 통해 주택공급과 일자리 확대가 계획안의 핵심(the core of plans)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개발계획이 역사지구의 보존, 원주민의 존속, 환경자산의 보호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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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와 관련해선 일반 시민들이 이를 끊임없이 감시하며 투명성 강화 조치를 요구한 점도 눈에 띈다. 시민들은 SAC에 참여한 주민 대표와 관련해 포틀랜드에 토지를 소유하거나 건물을 보유한 이해당사자라는 점을 문제로 제기하기도 했다. 포틀랜드시 옴부즈맨에는 이 같은 이해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포틀랜드시는 결국 지난 2016년 조 젠더 대표 계획자(Chief Planner) 명의로 SAC 모든 위원에게 이행충돌회피 서약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또 각 종 협의회에 시민들의 공개참여도 보장해 갈등 요인을 줄였다.
이웃협의회는 실제 계획에 있어서도 여러 변화를 주는 주체적 역할을 했다. 대표적 사례가 대형 가로수의 보존이다. 계획안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6년 주민 일부와 환경단체는 대형 가로수의 절단 및 제거에 대해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이에 공청회가 열렸고 최종 보고서는 대형 가로수에 대한 보존 방안을 담은 수정본으로 변경됐다. 폴 라이스트너 포틀랜드주립대학교 행정학 교수는 이와 관련 기자와 인터뷰에서 “포틀랜드시는 대규모 토지 사용(Land use)과 교통정책(transportation) 변화와 관련해선 이웃협의회와 논의해야 한다”며 “이웃협의회 가운데 상당수는 여기서 모범적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4. 주택규제 논의에도 목소리내는 이웃협의회
이웃협의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또 다른 행정은 포틀랜드의 주택 규제이다. 가장 대표적인 규제는 ‘존(zoning)’ 제한이다. 미국의 주요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무분별한 도시확장과 개발을 막기 위해 주거지역(Residential zones), 상업지역(Commercial zones), 고용 및 산업지역 (Employment and industrial zones), 복합지역(Mixed zones) 등으로 구분해 관리 중이다. 주거지역은 또 밀도와 층고제한을 기준으로 1~5존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다.
포틀랜드에 건립 중인 주택. 기존 2층 주택단지(오른쪽) 옆에 3층 아파트(왼쪽)가 건립되고 있다./강동효
지난 2019년 오레건주는 인구 1만명 이상의 도시에서는 단독주택 지역(zoning)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2020년 포틀랜드 시의회는 주거용 부지에 2가구 주택 건립을 확대하는 규제를 입법화했다. 도시내 대부분의 주택용지에 대해 세대주가 2명인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법 규정(Residential Infill Project)을 바꾼 것이다. 단독주택만 지으려고 할 경우 기존 6,500제곱피트(604㎡) 이하일 경우 허용했는데 앞으로 2,500제곱피트(232㎡) 이하로 규정을 강화했다. 이전까지 포틀랜드시 주택용지의 70%가량이 1가구용 단독주택이었는데 이를 다가구 주택으로 바꾸도록 한 것이다. 클로에 어들리(Chloe Eudaly) 포틀랜드 시의원은 현지언론 인터뷰에서 “이 같은 규정의 변경과 주택공급 친화적인 여러 정책이 효과를 발휘해 앞으로 20년간 도심에 2만 4,000가구가 추가로 공급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규제는 단독주택 건립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며 도시 전역에 그간 실종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는 중간 주택(middle housing)이 존재하도록 문을 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12
토지주들에게 메가톤급 여파를 불러올 수 있는 규제였지만 생각보다 반발이 크지 않았다. 이는 이웃협의회와 지속적으로 교감을 하면서 규제 정책을 입안했기 때문이다. 포틀랜드는 공청회와 정기적인 협의회 등을 통해 규제 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했고, 토지 소유주 중 상당수는 이에 호응했다. 마이클 앤더슨(Michael Andersen) 사이트라인 인스티튜트(Sightline Institute) 연구원은 “거주지 채우기 프로젝트(RIP)는 지역 시민단체의 제안에 의해 처음 제기됐고 6년 간 지역사회와 정치인들이 보류하고 재검토하고 한 끝에 결국 성사됐다”며 “이 법안이 통과되기 직전 시의회 청문회 상황을 보면 찬성자가 반대자보다 6배 많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시의회에 참석하고 증언하고 정치인에게 편지를 쓰고 공무원을 설득해서 공공정책을 바꾸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포틀랜드에는 그간 3층 주택 건립이 허용되는 부지가 많지 않았는데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서 3층 주택이 지어질 것”이라며 “이에 따라 새로운 주택이 더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새로운 주택건립과 관련해 이웃협의회의 의견이 최우선 반영되는 경우도 보편적이다. 지난 2018년 포틀랜드 시의회는 도심내 프레몬트 지역(Fremont)의 17층 아파트 건립과 관련해 이웃협의회의 의견을 반영해 판정을 번복하기도 했다. 토지주는 당초 건축계획안을 제출했을 때 이 건물이 조망권을 침해한다는 지역주민의 반발에 따라 건립을 허가하지 않았다. 토지주와 이웃협의회는 이를 두고 소송전까지 벌이기도 했는데 후에 토지주가 건축 도면을 변경해 주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시의회는 건축설계안을 조정한 토지주와 개발업자에게 개발을 허가했고, 토지주는 이웃협의회에 소송과 관련한 비용을 보존해주고 화해에 나섰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펄지구에서 진행한 일부 계획은 이웃협의회의 반대로 인해 좌초되기도 했다. 개발업자는 교회 주차장 일대를 아파트로 개발하는 계획안을 내놓았는데 지역주민의 반대가 이어졌다. 이는 저밀도 존이었던 해당 지역에 대해 고밀도 개발을 허가해야 하는 내용이었는데 전적으로 시의회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웃협의회의 거센 반대로 인해 당초 계획한 것의 절반도 안 되는 28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립으로 규모가 대폭 줄어드는 방안으로 확정됐다.
5.자발적 주택건립까지 나선 이웃협의회
이웃협의회는 수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주택 건립에 나서기도 했다. ‘위샤인(WeShine)’이라는 명칭의 비영리 단체(NG)는 오레건주 세일럼과 유진 사이의 해일시(Halsey) 인근에 마이크로 빌리지(Micro Village)를 조성 중이다. 이들 공간은 집이 없는 사람과 노숙자들을 위해 최대 2년간 거주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위샤인이 밝힌 거주자 우대 조건을 살펴보면 유색인종 등 소수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하고 무주택자 가운데 가장 소외되고 취약한 계층에 대해 거주기회를 준다. 개별 집은 64제곱피트(6㎡)의 공간에 작은 베란다(파티오), 창문, 트윈침대, 접이식 책상과 테이블 등 거주에 필요한 최소의 살림살이가 제공된다. 화장실과 샤워실, 주방과 식당은 별도의 건물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형태다.
위샤인이 건립한 ‘마이크로 빌리지’/사진=weshine
위샤인은 현재 마이크로 빌리지와 관련 상하수관과 울타리 설치 등에 대해 지자체의 허가를 받고 건물을 건립 중이다. 위샤인의 이사인 존 맥머너스는 이와 관련 오레건 퍼블릭 브로드캐스팅(Oregon Public Broadcasting)과 인터뷰에서 “마이크로 빌리지를 건립하기 위해 수많은 토지 소유자를 설득해야 했고 이에 따라 해일시 북동쪽에 첫 빌리지를 건립하게 됐다”며 “포틀랜드 주요지역에서도 이를 지지하는 주민이 많은 만큼 도심 내에서도 ‘님비주의(혐오시설 설치 반대운동)’를 이겨내고 마이크로 빌리지를 건립하는 것이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마을이 이를 복제하고 진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3
마이크로 빌리지는 건립하는 데 약 35만 달러(약 4억 7,000만원)가 소요된다. 연간 운영비도 비슷한 규모가 들 것으로 평가된다. 맥마니스 이사는 “레이건 대통령 이후 공공주택 서비스에 대한 미국 정부의 투자가 중단됐고 이것이 임대료 상승과 맞물려 노숙자 문제를 양산했다”며 “마이크로 빌리지는 텐트에서 생존하는 것과 저렴한 아파트로 이주하는 것 사이의 ‘가교 역할(Bridge)’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앞으로 몇 년간 10개의 마이크로 빌리지는 건립하는 것이 우리 목표”라고 밝혔다.
폴 라이스트너 포틀랜드스테이트대학 행정학과 교수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시민들과 이웃협의회 사람들은 정부나 공무원이 갖지 못 한 창의성(Creativity)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며 “과거에 야산에 일부 무주택자들이 야영을 하면서 살기도 했는데 이웃협의회가 참여하면서 이들의 위생과 식사를 지원하고 규칙을 정해 자치적으로 안전을 구축하도록 도움을 준 것이 초기 시작점이다. 무주택자들의 이러한 커뮤니티들이 역량을 구축하도록 돕는 것이 이웃협의회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13) 출처: 오레건퍼블릭브로드캐스팅 뉴스 https://www.opb.org/article/2022/08/26/weshine-nonprofit-opens-its-first-micro-village-in-portland/
6.이웃협의회의 한계와 여전한 주택난
포틀랜드는 주택정책과 관련 이웃협의회와 밀접하게 협의하며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포틀랜드시와 이웃협의회의 관계도 완전한 조화를 이루진 못 하고 있다. 시와 이웃협의회는 최근 노숙자 문제에서 두드러지게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달린 어반 가렛 이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지자체는 노숙자 문제 해결에서 이웃협의회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무엇이 필요한지 잘 모른다”며 “최근 포틀랜드 시장이 도시 내에 최대 200명씩 수용 가능한 노숙자 합숙소를 6곳 만들겠다는 의견을 냈는데 그 소식을 듣고 나는 거의 울 뻔했다. 지자체는 어느 곳을 수용지로 활용해야 할 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는데 이웃협의회와 4시간 동안 논의하면서 겨우 2곳의 수용 가능한 장소를 찾았다. 시 공무원의 일방적 추진 방식은 절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이웃협의회를 ‘패싱’하려는 시의원의 시도도 벌어졌다. 포틀랜드 시의원인 민거스 맵스의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인 애덤 라이언즈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포틀랜드의 시 조례에는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이웃협의회와 시민참여를 보장한다는 내용의 조항 ‘챕터 3.96’이 존재한다”며 “한 시 의원이 3.96 조항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를 하려다 이웃협의회의 반발을 샀고 결국 이는 실패로 끝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포틀랜드 조례와 오레건주의 법률이 시민참여를 보장하고 이를 장려하는 것인데 이를 깡그리 무시한 행위였고 이는 시민사회에 전혀 용납되지 못 했다”고 덧붙였다. 비록 실패로 종결됐지만, 이는 포틀랜드 지자체와 이웃협의회 간 갈등 요소를 간접적으로 내비치는 사건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포틀랜드의 주택문제 역시 높은 주거비를 고려하면 ‘여전한 난제’로 남아있다. 포틀랜드는 특히 2020년부터 올 초까지 집값이 폭등세를 보였다. 주택시장분석업체인 렌트홉(Renthop)에 따르면 1침실(Bedroom) 기준 포틀랜드의 임대료는 지난 2021년 4월부터 그 해 7월 사이 30% 이상 급등했다. 월평균 임대표가 1,300달러수준이었는데 1,700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이후 2년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다 지난 4월부터 상승폭이 줄었다. 2베드룸 역시 2020년에 급등한 이후 2021년 봄에 한 차례 조정을 받았지만 이후 다시 상승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포틀랜드의 생활비도 미국 평균보다 높은 실정이다. 미국데이터전문업체 페이스케일(Payscale)에 따르면 포틀랜드의 생활비는 미국 평균보다 24%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포틀랜드는 미국 평균과 비교하면 수도전기 등 공공비용(-8%), 식료품(8%) 등은 양호하지만 주거비용이 62%나 높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포틀랜드로 이주하면 주거비용이 약 9.8% 상승하고, 심지어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이사하더라도 주거비가 약 6.7% 오른다고 평가됐다. 또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이주할 경우 주거비용이 무려 74%,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오면 96.8% 상승한다고 분석했다. 주거 안정화를 위한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집값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 규제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라이언즈는 이와 관련 “여론조사를 보면 정부에 대해 시민들이 얼마나 좌절했는지 알 수 있다”며 “주택 공급과 노숙자 문제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택건립과 관련해선 자율성을 더 부과하고 도시성장의 경계에 대한 규제도 유연하게 해야 한다”며 “포틀랜드에서 15마일(24km)만 이동하면 주변이 농장이다. 개발 여지는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달린 어반 가렛 이사 역시 “포틀랜드에서 노숙자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인도적 관점에서라도 주택개발 허가를 받는데 400일이 넘게 걸린다”며 “이는 정부의 거버넌스가 여전히 분절돼 있고 행정체계가 전문가적(Professional)이지 못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나오며
포틀랜드의 주택정책과 행정시스템은 우리나라에 주는 교훈이 적지 않다. 대규모 도시계획과 주택공급, 각종 규제정책을 설립하고 시행하는데 있어 이웃협의회와 소통하며 사회적 갈등을 줄여가는 것은 포틀랜드의 최대 장점으로 평가된다. 각종 행정정책은 이 같은 주민과의 소통, 협업 과정으로 인해 시간이 상당 부분 소요되는데 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인식하고 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정책 초기부터 활발하게 소통하다 보니 주택공급과 각종 규제에 있어서도 격렬한 반대와 시위로 이어지는 경우가 나타나지 않는다. 행정소송 등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내놓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실험에 대해 과도한 제한을 하지 않는 것도 장점으로 평가된다.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이크로빌리지’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앞으로 성공 가능성이 기대되는 시민 운동의 하나이다. 이 같은 시민 운동의 근저에는 지자체의 강한 반대와 규제가 없다는 점이 작용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민운동의 한 축을 열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좋은 벤치마킹 모범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포틀랜드 역시 지자체와 이웃협의회 간 갈등 요소는 존재하며, 주택건립과 관련 규제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이는 행정체계가 복잡하게 분화되고 이해관계자가 다수 존재하는 대도시의 전형적 특성인데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에 대해선 추가적인 연구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