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남북한, 한민족은 물론 세계 정치·경제에 있어 중요한 이슈다. 통일은 민족적·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역사적 사명이자 과제다. 우리나라 경제는 장기 침체의 초입에 서 있다. 90년대 6~7%였던 잠재성장률은 2000년 이후 3%대로 떨어졌다. ‘저물가-저성장’의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일자리는 줄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3704만명) 이후 감소세로 돌아선다. 한반도 통일은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룰 경제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남북한 통일 이후 인구 8000만명의 내수 경제가 가능해진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력, 북한의 노동력과 지하자원이 결합할 수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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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경제 재도약의 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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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시대에 앞서 고민할 문제가 북한의 경제 개발이다. 경제적으로 낙후한 한반도 북부 지역을 개발하는 것은 통일과 맞물려있다.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34조원으로 한국의 70년대 수준이다. 동서독 통일 당시와 비교하면 남북한의 격차가 동서독의 차이보다 크다. 서독의 명목 GDP는 동독의 9.7배 수준이었지만 한국의 명목 GDP는 북한의 42.5배에 달한다. 낙후된 북한경제 수준을 고려할 때 통일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추정된다. 이를 재정이나 해외 원조를 통해서만 해결하긴 불가능하다.
그동안 북한을 경제적으로 개발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 주도하에 북한의 협조를 토대로 하는 방안이 대부분이었다. 이 방안들의 경우 실제 통일 흐름이 현실화됐을 때나 가능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한국이 경제력 우위를 토대로 북한 개발을 하려해도 북한당국이 한국의 참여를 제한하면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특히 ‘북한 개발’과 ‘지원’을 남북한만의 문제로 국한할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 북한을 우리가 바라는 방식대로 개발하려면 북한에 대한 통치권을 확보하거나 대규모 원조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사실상 흡수 통일과 같다. 북한 개발이라기보다 통일 후 한반도 경제 발전 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개발지원(development assistance)’에 관한 국제관례에 어긋난다. 개발지원은 수원국의 경제 사회개발 목적을 위해서만 공여돼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의 대원칙이다. 지원을 통한 대가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개발지원으로 대가를 바라면 ‘개발 지원’이 아니라 ‘정치적 거래’로 분류된다.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우리의 대북지원이 근본적 한계에 부딪혀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대북지원을 국제협력과 연계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물론 북한 개발을 위한 국제적 지원은 북핵 문제 해결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성공적 북한 개발을 위해선 북한이 현행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편입되는 게 필수적이다. 국제 경제 협력은 국제 경제 체제를 토대로 이뤄지며 북한이 이 체제 밖에 있는 한 ‘개발 지원’ 자체가 불가능하다. 반대로 북한 개발을 위한 국제협력 노력이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 결단 및 이행을 촉진하는 인센티브가 될 수도 있다.
현재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1250달러로 추정된다. 1인당 GDP를 20년뒤 1만 달러 수준으로 올리려면 약 5000억달러가 필요하다. 이중 북한 내 인프라 산업부문 육성에 약 175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재원 마련 방식은 해외 원조 자금(ODA), 정책금융기관 활용, 민간투자 등이 있다. 대규모 재원은 민간투자로 조달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 개발 초기 민간 투자가 이뤄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체제 전환국에서 볼 수 있듯 초기 개발은 대외 원조에 기대야 한다. 정부와 세계 연구기관은 해외 ODA를 통해 20년간 170억 달러 정도를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국제 기구 | 조달 규모(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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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WB) | 94억달러 |
아시아개발은행(ADB) | 58억달러 |
국제통화기금(IMF)·UN 등 | 20억달러 |
해외 ODA의 경우 우선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차관 제공을 고려할 수 있다. 또 주목할 곳이 국제금융기구다. 북한개발에 자금 지원을 할 가능성이 있는 대표적 국제금융기구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이다.
IMF는 국제수지상 위기에 처한 회원국에 대한 긴급자금을 지원해주는 한편 빈곤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정책 기반 양허성 개발자원 자금을 공여한다. UN가입국중 미가입국은 북한, 안도라 등이다.
세계은행과 ADB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개발을 위한 지원을 제공한다. 세계은행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국제개발협회(IDA)로 구성되는데 IBRD는 중소득국에 대한 개발금융을 담당한다. IDA는 이보다 소득이 낮은 빈곤국에 대한 양허성 자금을 지원한다. IDA에는 IBRD 회원국만 가입할 수 있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IFC)는 개도국 민간 기업에 대한 투융자를 담당한다. 체제 전환국의 민간 부문에 대한 개발금융 지원을 해주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도 있다. 국제금융기구의 북한개발지원이 이뤄지면 초기에는 공적 지원에 중점을 두는 IMF와 세계은행이 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IMF는 기본적으로 기금(FUND)이기 때문에 회원국의 지분을 결정하는 출자금과 IMF가 보유한 금이 주요 재원이 된다. 다만 IMF가 저소득 국가에 대한 양허성 자금지원을 하는 경우 재원조달 창구가 일반적 IMF 재원 조달과 다르다. 저소득국에 대한 양허성 자금지원은 공짜로 주거나 원금은 회수하더라도 이자나 수수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선진국이나 신흥경제국의 기부금(출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기부금은 신탁기금 형태로 IMF가 관리하면서 필요할 때 지출한다.
세계은행중 중소득국에 대한 개발금융을 지원하는 IBRD의 재원조달은 회원국의 출자금보다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차입금에 의존한다. IBRD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발행, 저리의 자금을 조달한 뒤 조달 이자율에 약간의 수수료만 추가한 이자율로 중소득국에 개발자금을 지원한다. 세계은행의 양허성 자금지원 창구인 IDA의 재원조달은 대부분 선진국 및 신흥경제국의 출연금으로 이뤄진다.
양허성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적격국가 여부는 1인당 소득, 도서국가 여부, 대외채무 상환능력, 국가 신용도 등에 따라 결정된다. IMF는 ‘빈곤감축 및 성장지원기금(PRGT)’을 통해 만성적 국제수지 적자 및 외채 문제를 안고 있는 저소득국을 지원한다. PRGT는 구조조정을 통해 수원국의 지속적 경제성장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장기 저리로 개발자금을 지원하는 양허성 융자제도다.
PRGT는 저소득국가에 대한 맞춤식 지원을 위해 산하에 확대신용지원금융(ECF), 스탠드바이신용지원금융(SCF), 신속신용지원금융(RCF) 등 3개 융자제도로 구성된다. PRGT 수혜대상국은 2012년 기준 1인당 GDP가 1175달러 이하인 저소득 회원국 중 국제금융시장에 안정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국가다. 1인당 GDP가 1175달러를 넘더라도 도서국가 등 소국들은 1인당 소득이 2350달러 밑이면 대상이 된다.
세계은행의 경우 IBRD와 IDA 등 독립된 2개 기구의 지원 조건이 다르다. IBRD의 경우 1인당 GNI가 2012년 기준 1175~6925달러 이하인 중소득 개발도상국을 주대상으로 한다. IDA는 1인당 GNI가 1175달러 이하의 저소득 개발도상국을 지원한다. 다만 소규모 도서국가는 1인당 GNI가 많더라도 IDA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 소득이 1175달러를 밑돌더라도 국가 신용도가 높으면 IBRD와 IDA 자금을 모두 받을 수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좋은 예다.
그룹 | 특성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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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RD-only | IBRD만 수혜 가능 | 1인당 GNI 1175~6925 달러 국가 신용도가 높아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입이 어느 정도 가능한 국가 |
Blend | IBRD와 IDA 둘 다 수혜 가능 | 1인당 GNI 1175 달러 이하지만 신용도가 높아 IBRD 자금 이용도 가능한 국가 1인당 GNI 1175달러 이상이지만 신용도가 낮은 국가 |
IDA-only | IDA만 수혜 가능 | 1인당 GNI 1175달러 이하 신용도가 낮아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입이 불가능한 국가 |
IDA는 저소득국에 대한 35~40년 만기의 장기 개발 자금을 지원한다. ‘IDA-only’ 국가의 경우 거치기간 10년 포함 40년이고 IDA와 IBRD 자금 둘다 받을 수 있는 ‘Blend’ 국가의 경우 거치기간은 같고 상환 기간은 35년이다. IDA 자금 지원은 무이자이고 양허성 자금 지원 외에 무상지원도 공여한다. 또 IDA 자금 지원은 IMF의 양허성 자금지원제도인 ECF에 비해 정책수준사항이 덜 엄격하다는 ‘장점’을 갖는다.
IMF의 확대신용지원금융(ECF) | IDA 양허성 자금 지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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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 | 저소득국에 대한 양허성 자금지원 | 저소득국에 대한 양허성 자금지원 |
자금지원한도 | IMF 쿼터의 140~185% | 국별 기본배분액+성과배분액 (성과배분액은 인구, 1인당소득 등 복합 가중) |
상환 기간 | 5년 6개월~10년 | 30~40년 |
이자율/수수료 | 이자율 0.5% 인출 수수료·청약수수료 없음 | 무상지원 이자율 0%+취급수수료(0.75%)+미인출액 약정수수료(0.2~0.5%) |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려면 먼저 IMF 문턱을 넘어야 한다. IMF에 가입해야만 세계은행의 IBRD 가입을 신청할 수 있고 IBRD 회원국이 돼야 IDA와 IPC 등 세계은행그룹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 ADB도 별도의 가입조건과 가입절차를 갖고 있지만 국제경제 체제를 고려할 때 IMF 미가입국이 ADB에만 가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EBRD의 경우 민주주의 제도 채택, 시장경제 체제 전환 등 체제 전환을 전제 조건으로 두고 있는 반면 IMF는 특별한 자격 요건을 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신규회원국 가입 때 경제 규모 등을 토대로 IMF 쿼터를 배정하는 만큼 신규 회원국은 외환보유액, 무역액, 국민소득 등에 관한 경제 통계를 제출해야 한다.
IMF 상임이사회가 가입희망국과 협의해 쿼터 등을 총회에 보고하면 전 회원국을 대상으로 서면투표가 진행된다. 총 투표권의 2/3 이상을 보유한 과반수 가입국이 참가해 이들이 행사한 투표권의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가입이 이뤄진다. ADB의 경우 총 투표권의 3/4 이상을 보유하는 2/3 이상 가입국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ADB 회원국의 투표권은 일본과 미국이 각각 12.84%, 12.74%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두 나라가 반대하면 북한의 ADB 가입은 불가능하다.
향후 북한이 국제경제 체제에 편입된다면 북한이 양허성 자금지원 대상국이 될 것은 확실하다. 2012년 현재 북한의 1인당 GNI는 1250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다만 북한이 IMF 등 국제기구에 가입한 후 북한의 경제 규모를 시장 환율로 다시 환산할 경우 소득 수준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단 북한은 IMF 기준 PRGT 수혜 대상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은행으로부터는 IDA 자금 지원만 받을 수 있는 ‘IDA-only’ 국가로 분류될 것이다. 국가신용도가 낮고 국제금융시장에 접근할 만한 위상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각 기구가 요구하는 일정한 정책수준 사항을 이행해야 한다. 특히 IMF의 양허성 자금인 PRGT를 받으려면 거시경제 안정화, 빈곤감축을 위한 보고서 작성 등 전반적 경제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수행해야 한다. 국제기구와 협력 경험이 없는 북한이 IMF에 가입하더라도 실제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PRGT의 인출한도는 회원국 쿼터는 140~185%. 북한이 IMF에 가입할 경우 쿼터는 8000만 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를 토대로 하면 북한은 PRGT를 통해 연 최대 1억1200만~1억4800만 달러의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계은행의 IDA 자금 지원과 ADB의 ADF 자금 지원은 각 기구의 배분기준에 따른다. IDA의 경우 한 나라에 연간 공여가능한 양허성 자금 지원 최대치는 북한의 경우 북한의 인구가 2500만명이므로 약 5억 달러다. 실적평가점수가 좋지 않으면 5000만~2억 달러를 넘기 힘들다. 20년 기준으로 하면 100억 달러에 육박한다.
ADB의 경우 북한의 낮은 1인당 소득과 열악한 채무상환능력 등으로 ADF 자금 지원 대상국이 된다. ADF는 IDA보다 지원 규모가 적다. 연간 대북 지원액은 3000만~1억 달러 수준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에 가입해 회원국으로 의무를 준수하고 협조관계를 유지한다면 북한은 연간 2억~4억 달러의 양허성 자금 수혜가 가능할 전망이다. ADB를 통한 조달금액(20년)은 60억원 수준이다.
성공적 북한 개발을 위해선 남북한 경제협력 못지않게 해외 자본의 북한 유입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선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이 매우 중요하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던 베트남이 경제성장궤도에 올라서게 된 직접적 계기는 1990년대 진행된 베트남 정부와 국제금융기구와 협력관계 재건과 2000년 미국과 무역협정 체결이었다. 베트남은 IDA의 자금 78억 달러를 2003년부터 10년간 지원받으며 경제발전의 종자돈으로 사용했다.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 첫 단계도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이며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서 배제되면 현재의 국제경제질서 하에서 거의 모든 것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일본등과 국교정상화나 무역협정체결 등은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성공적 북한 개발을 위해선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최대한 빨리 가입해 북한이 경제 사회 개발을 위해 필요한 장기 저리의 양허성 자금을 받도록 우리 정부가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현재 우리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이 최우선 선결 과제라는 입장이다.
다만 북한의 개발, 개혁을 위한 첫걸음은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외교·안보적 중요성을 무시할 순 없지만 북핵 문제에만 매몰되기보다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 노력 등 경제적 접근을 통해 외교·안보적 해법을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 PRGT Interest Rate Mechanism-Extension of Temporary Interest Rate Waiver; IMF Policy Paper; December 14, 2012
- Financing for Developement: Enhancing the Financial Safety net for Developing Countries; IMF Policy Paper, June 11, 2015
- Update on the Financing of The Fund’s Concessional Assistance and Debt Relief to Low-Income Member Countries, IMF Policy Paper, April 3, 2015
- Summary update on IBRD and IDA lending projections, 2012
- IMF 공식 사이트(www.imf.org)
- 세계은행 공식사이트(www.worldbank.org)
- 장형수, ‘국제금융기구의 개발지원 메카니즘과 북한개발지원’, 북한개발연구센터, 2013
- 장철수·이창재·박영곤, ‘통일 대비 국제협력과제 : 국제금융기구 활용방안을 중심으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998
- 장형수·김석진·임을출, ‘북한경제발전을 위한 국제협력체계 구축 및 개발지원 전략 수립 방안’,통일연구원,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