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정치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전례 없는 확산이다. 2000년대 후반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중의 고통이 가중되고, 이에 따라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포퓰리즘은 때마침 불어 닥친 디지털·SNS혁명을 타고 전 세계를 강타했다. 급기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포퓰리즘으로 인한 정치 지형의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기존 정당의 쇠퇴가 이어지고 있고, 포퓰리스트들은 선거에서 득표율을 대폭 끌어올리며 약진할 뿐만 아니라 일부 국가에서는 정권을 움켜쥐고 있다.
포퓰리즘의 대두는 정치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뉴스·미디어 업계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포퓰리즘이 본격화된 이후 뉴스·미디어 사용 형태가 바뀌었을까. 아니면 뉴스·미디어 사용형태가 바뀐 것이 포퓰리즘의 확대에 영향을 미친 것일까.
물론 뉴스와 미디어가 사람들의 정치적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찾기도 어렵다. 하지만 간접적인 방법은 있다. 사회 내의 한 그룹이 뉴스에 접근하고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이 다른 그룹과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포퓰리즘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 미디어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포퓰리즘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뉴스를 접하고 어떻게 뉴스와 상호작용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매체에 의존하는지 등의 문제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는 포퓰리즘과 뉴스·미디어 이용 행태 간 상관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영국·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주요국들과 미국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연구소는 ‘대부분의 선출직 공무원들은 나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와 ‘중요한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국민들에게 물어야 한다’는 두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기준으로 응답자를 ‘포퓰리즘 성향’과 ‘비(非)포퓰리즘 성향’ 두 그룹으로 분류했다. 두 질문 모두에 대해 동의한다고 답한 그룹을 포퓰리즘 그룹으로, 나머지 그룹을 ‘비포퓰리즘 그룹’으로 나눈 것이다.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응답자 비율은 나라별로 달랐다. 네덜란드(49%), 영국(45%), 노르웨이(49%), 덴마크(42%) 등은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응답자 비율이 절반 이하였던 반면 슬로바키아(71%), 그리스(71%), 포르투갈(73%), 크로아티아(77%) 등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응답자 비율이 3/4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의 경우 조사 대상자의 54%가 포퓰리즘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분석 대상 국가 대부분에서 포퓰리즘 성향과 태도는 노년층과 저소득층,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흔하게 나타났다.
조사 결과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여러 나라에서 일관되고 뚜렷한 미디어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TV뉴스 선호다. 포퓰리즘의 대두가 온라인 미디어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분석과는 달리 뉴스에 관한 한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뉴스, 특히 TV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퓰리즘 성향 응답자 중 46%가 TV를 통해 주로 뉴스를 접한다고 답한 반면 비포퓰리즘 성향 응답자 40%만이 TV를 주요 뉴스 공급원이라고 답했다. SNS를 포함한 온라인에서 주로 뉴스를 접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포퓰리즘 성향 응답자가 42%, 비포퓰리즘 성향 응답자가 45%였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TV뉴스 소비행태 조사 결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로컬TV, 네트워크TV(ABC·CBS·NBC 등), 케이블TV(CNN·폭스뉴스·MSNBC 등) TV 뉴스의 주요 소비자는 예외 없이 50대 이상 연령대였다. 최종학력이 고졸 이하인 계층이, 연소득 3만 달러 이하인 계층이 그렇지 않은 계층보다 TV 뉴스 의존도가 높았다. 포퓰리즘 성향이 노년층과 저소득층,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흔하게 나타나며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TV 뉴스를 선호한다는 로이터연구소 분석과 일맥상통한다.
TV뉴스만큼은 아니지만 온라인 뉴스 접속은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여전히 중요하다. 유럽의 경우 뉴스 관련 주요 웹사이트나 뉴스 앱에 직접 접속하는 것은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31%)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35%) 모두에게 온라인 뉴스를 접하는 가장 선호되는 방법이다. 그러나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24%)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19%) 비해 소셜 미디어를 더 선호한다. 이같은 경향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소셜 미디어는 포퓰리즘 성향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뉴스를 접하는 수단으로 보다 더 각광받고 있는 반면 비포퓰리즘 성향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것에 대한 뚜렷한 선호는 발견되지 않는다.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빈도도 높을 뿐만 아니라 뉴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고 뉴스를 타인과 공유하는 것에도 적극적이다. 유럽의 경우 소셜 미디어 상에서 뉴스를 공유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포퓰리즘 성향 그룹은 25%였던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19%에 불과했다. 뉴스에 대해 본인 의견을 언급하는 비율도 포퓰리즘 성향 응답자들이 4%포인트 높았다.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뉴스를 접하는 통로로 주로 이용하는 소셜 미디어는 페이스북과 유투브다. 로이터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로 뉴스를 볼 때 페이스북을 이용한다고 답한 비율이 50%에 달했고, 유투브 이용비율은 25%로 조사됐다. 비포퓰리즘 성향 응답자들은 41%가 페이스북을 이용한다고 답했다고 유투브를 꼽은 비율은 23%였다.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페이스북과 유투브를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다.
두 그룹의 소셜 미디어 선호도는 페이스북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리처드 플레처 로이터 연구소 연구원은 “두 그룹 간 소셜 미디어 이용 행태의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며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지난 1년간 페이스북 사용 시간이 늘었다고 말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페이스북 사용 시간이 줄었다고 응답했다”고 지적했다.
플레처 연구원은 “이같은 사실은 포퓰리즘 정당들이 기성 정당들보다 페이스북에서 더 활발히 활동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고 말한다. 포퓰리즘 정당 지지자들이 기존 정당 지지자들에 비해 페이스북에 더 많은 게시물을 올리고, 자신들의 지지 정당이 올린 콘텐츠와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경향들을 종합해 볼 때, 소셜 미디어에서는 포퓰리즘 성향의 관점과 아이디어들이 실제보다 과도하게 표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포퓰리즘의 성장이 소셜 미디어 확산의 결과물이라고 결론짓기는 어렵지만, 기성 미디어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 뉴스 소비에 있어 소셜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를 더 높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상당히 다른 매체 선호도를 보인다. 영국의 경우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상업TV와 타블로이드 신문을 선호하며, 비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공영방송과 브로드시트(Broadsheet) 신문(연예·오락 위주인 타블로이드 신문과 대비되는 진지한 신문)을 선호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ITV, 더 미러, 익스프레스, 더 선을 보다 자주 이용한다. 비포퓰리즘 성향의 사람들은 파이낸셜타임즈(FT), 채널 4, 텔레그래프, 더 타임즈, 가디언, BBC를 통해 뉴스를 볼 가능성이 더 높다.
플레처 연구원은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언론을 신뢰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비율이 높았는데, 이는 언론의 주요 어젠다가 고학력 계층의 요구를 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고, 이로 인해 주류 언론에 대한 신뢰도와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분석했다.
브레이트바트(Breitbart) 등 이른바 ‘대안 언론(Alternative Media)’들 대부분이 포퓰리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실제로 최근 수 년 간 포퓰리스트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공영 방송사들을 포함한 주류 언론들은 포퓰리스트들로부터 공격의 표적이 되어왔다.
대안 언론들은 자신들의 명분에 맞게 사실을 과장하거나 사실을 교묘하게 조작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가짜 뉴스(Fake News)’의 온상이라는 비판도 받아왔다. 여기에 페이스북이 알고리즘을 바꾸는 등 소셜 미디어들이 가짜 뉴스와 극단적이고 편파적인 뉴스의 확산을 막고자 실질적인 조치들을 취하면서 대안 언론들의 입지가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실제로 대안 언론들은 그 모든 비판과 소셜 미디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탄탄한 입지를 자랑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대안 언론 뉴스에 접근하기가 보다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용률은 오히려 상승했다. 미국의 경우 지난 한 주간 대안 언론 매체를 이용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이 2018년 20%에서 2019년 22%로 2%포인트 상승했다. 매체별로는 브레이트바트가 7%로 전년 대비 동일했으나, 데일리 콜러(Daily Caller), 더 블레이즈(The Blaze) 등의 이용률이 1%포인트 상승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대안 언론들의 이용률이 높지는 않지만, 인지도는 훨씬 높다는 점이다. 브레이트바트의 인지도는 44%에 달했고, 데일리 콜러와 더 블레이즈의 인지도는 각각 27%와 31%였다. 이는 대안 언론의 영향력이 단순히 이용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살펴 본 대로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뉴스·미디어에 대한 인식과 소비 행태는 포퓰리즘을 성향을 갖지 않은 사람들과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로 불리는 기성 언론들에 대한 불신이 높다. 기성 언론들이 자신들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뉴스 매체에 목말라 있다. 기성 언론에 대한 불만이 높은 만큼 대안 언론이나 당파적 언론, 소셜 미디어 등으로 눈을 돌리게 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도 그렇다. 정치·사회적으로 포퓰리즘의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이 같은 성향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뉴스 채널로서의 소셜 미디어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신문과 방송 등 기성 언론 매체들은 객관성과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해 최소한의 팩트 체크와 뉴스 검증 시스템, 이른바 ‘게이트 키핑’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는 그러한 과정이 아예 없거나 혹은 취약하다. 소셜 미디어에서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이유다. 이 같은 이유로 유럽 주요 국가들은 잇따라 소셜 미디어를 겨냥한 규제를 내놓고 있다. 독일의 경우 가짜뉴스를 공표할 경우 500만 유로에서 최대 5000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률을 제정해 적용 중이다.
기성 언론의 몰락과 소셜 미디어의 부상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언론재단 조사에 따르면 특히 유투브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지난 1주일 동안 유튜브에서 뉴스 관련 동영상을 시청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 응답자의 40%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이는 덴마크(8%)와 영국(10%), 노르웨이(13%) 등의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또한 국내 유튜브 이용자 중 45%가 지난 1년 동안 이용이 늘었다고 응답한 반면 이용이 줄었다는 응답자는 12%에 머물렀다.
특이한 점은 59%의 응답자들이 인터넷상의 가짜뉴스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답할 정도로 소셜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황에서도 유투브가 급속도로 세를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이로 인한 문제점들도 두드러지고 있는 추세다. 구독자를 늘리고 ‘좋아요’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방송은 갈수록 자극적이 되어가고, 근거 없는 뉴스와 작위적인 정보들이 마구 유통된다. 명예훼손과 인격침해도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뉴스 소비 시장에서 소셜 미디어의 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는 추세라면, 이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진국들이 인터넷 상에서 가짜뉴스와 명예훼손 등의 문제를 막기 위해 취하고 있는 정책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영국 등의 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대책은 크게 3가지다. 우선 자율규제다. 즉 포털 등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모니터링 인력·조직을 두고 사이버 폭력을 막는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빅데이터 등의 신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둘째, 법률을 제정해 강력하게 규제하는 방안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영국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밖에 민주국가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영방송의 내적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공영방송의 신뢰와 시청률을 높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