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美 중간선거 ‘레드 웨이브’는 없었다
미국 중간선거는 전통적으로 ‘집권당의 무덤’으로 불린다. 여당에 대한 중간 심판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45%로 저조했다. 하지만 2022년 11월 8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여당은 비교적 선전했다.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상원에선 민주당이 100석 가운데 51석을 가져간 것이다. 연수자가 있던 조지아주의 선거 결과가 팽팽한 균형을 깨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조지아는 주법상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결선 투표를 하게 돼 있는데, 이에 따라 다시 실시된 결선 투표에서 민주당 라파엘 워녹 의원이 공화당 허셜 워커 후보를 꺾었다. 중간선거 전 각종 여론 조사와 일부 언론이 예측했던 이른바 ‘레드 웨이브(공화당 압승)’는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도 보수 성향 싱크 탱크인 미국 기업 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명예 학자 노만 오른스테인(Norman Ornstein)은 중간 선거가 끝난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어젯밤 가장 큰 패배자 중 하나는 거대한 ‘레드 웨이브’가 올 것이라는 주장을 수용한 주류 미디어와 의심의 여지없는 가짜 여론조사, 그리고 이들의 집단 사고방식”이라고 일갈했다. 신뢰할 수 없는 여론조사와 이를 무비판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수용한 일부 언론을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물론, 가장 극단적인 비판일 수 있으나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여론조사 보도
1) 여론조사기관 난립의 문제
우리나라 선거 여론조사는 일정 자격 요건을 갖춘 업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해야만 그 결과를 공표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여심위 등록 업체 92곳 중 38곳(41%)이 상근직원 3명 이하로 운영되고 있고, 분석 전문 인력은 1명인 업체가 54곳(58%)으로 절반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1) 부실 여론조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여론조사업체는 지난 21대 총선을 앞두고 실시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결과 일부를 사실과 다르게 등록해 1천 5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 업체는 이후에도 같은 달에만 여섯 차례에 걸쳐 전국 또는 지역구 단위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2)
그림 1 강연 중인 조세프 왓슨 교수
이런 문제는 미국 역시 한국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조지아대 그래디 컬리지의 조세프 왓슨 교수는 연수자가 참여한 UGA ‘Cox 프로그램’의 2022년 초청 강의에서 “미국에도 여론조사기관이 난립하면서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샘플과 조사기간에 따라 여론 조사 결과가 정반대인 경우도 허다하다. 사람들이 여론조사를 혼란스러워 하는 이유.” 라고 지적했다. 왓슨 교수은 이런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도구 가운데 하나로 ‘파이브서티에잇’이라는 통계 전문 매체를 제시했다. ‘파이브서티에잇’은 미국의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가 운영하는 통계 사이트다.
왓슨 교수는 특히 ‘파이브서티에잇’이 예측치인 여론조사 결과를 ‘실제 선거 결과’와 비교해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가령 2020년 미국 대선 마지막 3주 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실제 결과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의 우세를 점쳤던 여론조사 업체 ‘라스무센 리포츠(Rasmussen Reports/Pulse Opinion Research)’에겐 공화당 쪽으로 치우쳤다는 일종의 편견지수(Mean-Reverted Bais)를 부과하는 식이다. 예측이 빗나간 만큼 신뢰도 점수도 떨어진다. 현재 (2023년 5월) ‘라스무센’의 신뢰도는 B로 +1.4 정도 공화당에 치우쳐 있는 것으로 돼있다.
1)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실 자료 (2023)
2) 여론조사 업체 난립…과태료 처분·응답률 5% 미만에도 ‘OK’, 연합뉴스, 2024. 4.23
그림 2 라스무센이 실시했던 여론조사와 실제 결과의 차이가 표시된다.
(출처:파이브서티에잇)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라스무센’이 2000년부터 실시한 772개 모든 여론조사의 정확도도 도표로 한 눈에 볼 수도 있다. 대부분 실제 결과와 10%p 안쪽으로 차이가 나지만 2010년 하와이 상원의원 선거 땐 실제 결과와 여론조사가 무려 40.2%p나 차이가 났었다는 흑역사도 ‘박제’해 놓았다.
그림 3 라스무센의 정치 편향성을 도표로 보여준다. (출처 : 파이브서티에잇)
민주당 혹은 공화당, 어느 쪽에 우세하게 조사됐었는지도 한 눈에 드러난다. 만약 선거 전 여론조사가 실제 결과보다 공화당 후보에게 우세하게 발표됐다면 그만큼 공화당 쪽(도표 오른쪽)에 점이 찍힌다. ‘파이브서티에잇’이 자체적으로 선거 예측 보도를 할 때는 물론, 언론사에서 특정 업체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거나 분석할 경우 이런 과거 데이터를 참고해 가중치를 부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파이브서티에잇’은 현재 민간 업체와 대학 등 507개 여론조사기관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선거 때마다 들쑥날쑥한 여론조사 결과와 그에 따른 신뢰도 저하 문제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때 뿐 다음 선거 때도 ‘불량 업체’의 여론조사 결과 보도를 배제한다거나 비중을 낮추는 시스템은 딱히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개별 여론조사를 그때그때 단순 인용해 보도하면서 혼란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언론사 자체적으로 ‘파이브서티나잇’의 모델을 도입한다거나 몇몇 주요 여론조사기관의 예측 치와 실제 결과를 추적 분석해보는 기획 보도가 이뤄진다면 선거 보도의 신뢰성을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이다.
2) 여론조사 인용과 분석의 문제
그림 4 트레이 후드 교수와 연수자
언론은 선거철만 되면 후보별 지지율 등락을 매주 중계하듯 보도한다. 이 과정에서 언론이 여러 여론조사 가운데 입맛에 맞는 것만 보도할 위험성이 있다. 또한 세대별‧성별‧지역별 지지율 변화까지 세세하게 분석하는데 이 경우 보도를 통해 고지하도록 돼있는 오차범위보다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리 언론의 보도 관행은 정당한 것인가. 조지아대 조사연구 센터장으로, 언론과 함께 실제 선거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트레이 후드 (M.V. HOOD) 교수와 개별 인터뷰를 통해 여론조사 보도의 한계와 한미 양국 보도의 차이점과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연수자는 우선 후드 교수에게 우리나라 방송의 여론조사 인용 보도 장면을 보여주었다. 미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 ‘필수고지 항목’의 유무였다. 우리나라는 최초 보도하는 여론조사의 경우 1.조사 의뢰자, 2.선거여론조사기관, 3.조사지역, 4.조사일시, 5.조사대상, 6.조사방법, 7.표본의 크기 8.피조사자 선정방법, 9.응답률, 10.표본오차, 11.질문내용 등 무려 11가지를 반드시 함께 노출하도록 돼있다. 미국도 미국여론조사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Public Opinion Research·AAPOR)에서 여론조사 결과 발표와 함께 공표해야 할 사항으로 우리와 비슷한 11가지 항목을 함께 공표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우리처럼 의무 사항은 아니다.
그림 5 출처만 표시된 CNN 뉴스화면
그림 6 11가지 항목이 고지된 TV조선 뉴스화면
이에 대해 후드 교수는 “(미국의 경우) 신문은 상당히 세부적으로 관련 항목을 노출하기도 하지만, TV뉴스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러지 않는다. (한국처럼) 관련 항목 노출을 강제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 더 맞는다고 보는가?’란 연수자의 질문엔 “그런 걸 감독하는 정부기관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했다. 정부 기관이 언론 보도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에둘러 말한 것인데, 이 같은 견해는 언론이 어떤 여론조사를 선택해 보도할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드러났다.
후드 교수는 “설사 언론들이 여론조사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부러 정확하지 않게, 또 편견을 가지고 보도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언론이 스스로 공정성을 무너뜨린다면 시청자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력한 언론자유도 결국 시장의 견제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언론이 여론조사를 세분화해 분석 보도하는 것 역시 후드 교수는 연수자의 예상과는 다른 답변을 내놨다. 연수자의 고민은 가령 특정 후보의 지지율을 지역별, 성별, 연령별 지지성향으로 더 세분화해 분석 보도할 경우 당초 고지했던 오차범위를 훌쩍 넘게 된다는 것이었다.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보도는 미국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지역과 연령별 조사 결과에 특히 주목하는 반면 미국의 경우 인종에 따른 지지성향 분석이 좀 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후드 교수는 “오류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이 세분화해 보도하는 것 역시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인구 특성에 따른 지지성향 역시 중요한 정보라며, 정보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다만 언론이 이를 보도할 때 오차범위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미국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선거 일주일 전 여론조사 공표 금지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후드 교수는 “여론조사는 특정한 시점에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반영하는 것이지, 누군가의 마음을 바꾸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다수가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는 방향대로 투표하는 이른바 ‘밴드 웨건 효과’의 실체가 불분명하다고도 했다. 가장 많은 정보가 주어져야 하는 선거 막판 일주일이 ‘깜깜이 선거’로 치러져 오히려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일각의 견해를 지지한 것이다.
선거 개표 방송
중간 선거 당일 미국의 주요 방송 매체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총동원해 개표방송 경쟁을 벌였다. 닐슨 통계에 따르면 이날 저녁 황금 시간대(오후 8시~11시)에 약 2540만 명이 주요 방송사 13곳의 TV 생방송을 통해 개표를 지켜봤다. 황금 시간대 시청률 1위는 보수 매체로 알려진 FOX로 720만 명이 시청했다. ABC가 330만 명, MSNBC가 320만 명, NBC가 310만 명, CNN이 260만 명, CBS가 250만 명으로 뒤를 이었다. 진보 성향 채널은 비교적 많은 반면, 보수 성향의 보도 전문 채널은 사실상 FOX가 유일하다는 점이 작용한 듯하다. 진보 성향의 보도 전문 채널로 경쟁 구도인 MSNBC와 CNN의 경쟁에선 이번이 MSNBC가 CNN을 앞지른 첫 번째 선거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3)
전체적으론 4년 전인 2018년 중간 선거 때보단 시청인구가 30% 정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적 이변이 적었던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보인다. TV를 통해 선거 개표방송을 보는 인구도 노령화되고 있다. 닐슨은 선거 당일 시청자의 절반이 넘는 65%가 55세 이상 시청자들이었다고 밝혔다.
미국 개표 방송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타 방송사와의 차별성을 보여주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었다. 빠르고 정확한 분석이란 콘셉트는 대부분 비슷했지만 그것을 시각화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3) A rare win for MSNBC over CNN in the election night ratings battle, New York Times, 2022. 11. 9
1) MSNBC의 ‘코나키 캠’
그림 7 MSNBC 유튜브 캡처
MSNBC의 앵커 겸 기자인 스티브 코나키는 선거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보여주는데 집중했다. 특히 다른 방송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코나키의 모습을 PIP(화면 속의 작은 화면)로 계속해서 보여주는 ‘코나키 캠’이 눈길을 끌었다. 서류 더미 사이에서 정신없이 자료를 찾는 코나키의 모습과 이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없냐고 농담을 던진 진행자의 멘트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2) NBC뉴스의 ‘스튜디오 드론’
NBC뉴스는 방송 시작 전 분주하게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기자와 스태프, 화려한 세트를 입구 에서부터 드론이 위아래로 훑어가며 생동감 있게 보여주었다. 드론 카메라는 우리 방송에서도 이제 흔히 사용하고 있지만 스튜디오 내에서 사용한 장면이 사용되는 건 드문 일이다. 특히 드론이 이동할 때 드론 화면 특유의 떨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했던 것으로 보아 고성능 드론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3) CNN의 ‘킹 맵’
CNN의 간판 스타 중 한 명인 ‘존 킹’이 미국의 선거 현황판을 뒤로 하고 선거 결과를 분석했다. 우리 선거 방송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다만 우리는 주로 앵커가 질문을 하면 화면이 현황판을 분석하는 기자로 넘어가고 해당 기자를 계속해서 보여주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는 반면, CNN은 방송을 진행하는 앵커가 ‘존 킹’에게 선거 상황을 물어보며 걸어가고 그 진행자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따라가는 ‘카메라 워크’가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화면은 이후 진행자와 존 킹의 문답을 ‘투 샷’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정치뉴스 팩트체크
그림 8 포인터재단을 찾은 연수자
언론의 본질은 ‘팩트체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방송 뉴스 대부분은 굳이 ‘팩트체크’ 형식의 뉴스 코너를 별도로 마련해 보도하고 있다. 언론의 ‘팩트체크’ 기능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미디어 비평 매체가 한국 언론의 ‘팩트체크’ 부실을 지적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반례로 드는 것이 미국의 팩트체크 교육기관인 ‘포인터 재단’이다. 플로리다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위치한 ‘포인터 재단’을 찾아 ‘정치 팩트체크’의 방향을 물었다.
1) 정치 뉴스 팩트체크 대상 선정 문제
정치 뉴스의 팩트체크 대상은 정치인의 말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말은 ‘주장’과 ‘사실’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론 진실이 아니더라도 교묘하게 몇 가지 사실만 섞은 거짓 정보를 공개적으로 유포하면 일부 지지자들의 도움을 얻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둔갑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정치뉴스에 있어서 팩트체크는 상당히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특정 정치인에 대한 검증이 빈번할 경우 편파 논란에 휘말리기 마련이다. ‘검증 대상 선정’ 문제에 대한 연수자의 질문에 ‘포인터 재단’에서 만난 ‘폴리티팩트(PolitiFact)’4)의 케이티 샌더스는 ‘포스 밸런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기계적인 균형보다는 권력자에 대한 감시에 더 우선을 둔다.”는 것이다. 가령 트럼프가 현직 대통령으로 있을 땐 트럼프의 발언을 더 많이 바이든이 현직으로 있을 땐 바이든의 발언이 더 많이 검증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만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는 ‘의견’ 또는 ‘예상’은 선택에서 배제한다.”고 덧붙였다. 일종의 ‘시스템적인 해법’을 듣길 기대했던 연수자로선 너무 이상적인 답변이었다.
특히 미국과 한국 모두, 정치가 양극단으로 분열된 양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그 같은 선의가 대중과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질지 수 있을까. 실제로 2016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공화당 지지자가 민주당 지지자보다 ‘팩트체크’에 덜 호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5) 우리나라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있다. 6)‘팩트체크’란 용어 자체에 이미 일정 부분 정치적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는 것이다. 레거시 미디어의 ‘팩트체크’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주장을 더 믿으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역시 포인터 재단에서 만난 ‘국제팩트체킹 네트워크(IFCN)’의 에녹 냐리키는 연수자의 이 같은 지적에 “분명 그런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일반적 상식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팩트체크’는 유용한 도구”라고 했다. 냐리키와의 문답에도 ‘팩트체크’의 위기, 아니 ‘언론의 위기’인 시대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2) 포인터재단 방문을 통해 알게 된 ‘팩트체크’ 툴
▶ mapchecking.com
우리나라에선 각종 집회 때마다 참가인원 규모를 두고 주최 측과 집회 반대 측의 주장이 매번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경찰도 공식 집계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참고할 만한 툴이 있다. mapchecking.com이란 사이트로 전 세계 지도를 기반으로 인원 밀집도에 따라 집회 참가자 추정치를 계산해 주는 사이트다. 이에 근거하면 서울 광화문 광장엔 최소 인원 2100여 명에서 최대 10만 8천여 명이 운집할 수 있다.
▶ suncalc.org
각종 사진의 진위를 검증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툴이다. 사진이 언제 어디서 찍혔는지를 알면 해당 시간, 해당 위치에서의 그림자 길이와 각도를 보여준다. 사진 속에 나타나는 그림자와 실제로 일치하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4) ‘폴리티팩트’는 정치인의 말을 ‘미터기’처럼 총 6단계로 등급을 나눠 보여주는 팩트체크 툴 ‘트루스오미터(Truth-O-Meter)를 운영하고 있다.
5) Brendan Nyhan, Jason Reifler. 2016. “Estimating Fact-checking’s Effects”
6) 김형지, 정은령, 김은미, 양소은, 이재우, 강민지. 2020. “가짜뉴스와 팩트체크 뉴스 노출 집단의미디어 이용과 뉴스 인식, 그리고 리터러시 관계”
나오며-강력한 자유와 엄중한 책임
미국의 선거‧정치 보도 역시 한국과 유사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정책 검증 부족, 속보 경쟁, 부정확한 여론조사 인용 등이다. 가짜뉴스에 대한 고민도 비슷하다. FOX뉴스는 2020년 대선에서 개표 조작이 있었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보도하여 1조 390억 원의 손해 배상 판결을 받았다. CNN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를 방송하며 그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다만 연수 과정에서 느낀 건 미국 언론은 가짜뉴스에 대한 배상 책임 못지않게, 우리 기준에서 봤을 땐 과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율성을 부여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때마다 찬반 논쟁을 벌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마가렛 설리번 전 워싱턴포스트 미디어 칼럼니스트는 PBS 뉴스가 마련한 대담에서 미국 중간선거 보도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특히 개별 여론조사가 틀리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다. 시청자들에게 현장 기사를 더 많이 전달해야 하고 ‘경마식 보도(horse race)’를 줄여야 한다.” 언론이 미래에 대한 예측 보다는 현재에 대한 보도에 중점을 둬야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예측이 빠진 정치 뉴스가 가능한 것일까. 정치의 본질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바꾸는 과정이고 언론은 이를 위해 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포인터재단 방문 과정에서 ‘폴리티팩트’ 케이티 샌더스가 했던 말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자는 전문가가 아니다. 전문가에 대한 접근성이 강한 사람이다.” 정치 뉴스에서 분석과 예측 보도가 불가피하다면 언론이 취해야 할 중요한 자세는 스스로 예측 보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