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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정치를 가로막는 극단적 정치 팬덤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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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정치를 가로막는 극단적 정치 팬덤에 대한 연구 국민일보 최승욱 연수기관: 조지아대

1. 들어가며

“예수는 나의 구원자이며,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다” 1

이 문구는 올해 3월 9일 미국 조지아주의 롬(Rome)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공화당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 유세장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한 백인 남성이 쓰고 있던 모자의 문구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다가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더욱 거칠고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특히 개신교의 색채가 짙어 ‘바이블 벨트’(Bible Belt)로 불리는 미 남부의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층은 종교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 대선이 6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 미국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중범죄 형사 사건에서 유죄 평결을 받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사건 재판에서 배심원들이 그의 34개 범죄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평결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죄 평결이 나오면 미 대선 국면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6월 중순 현재 어긋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트럼프 팬덤’은 더 강하게 결집하고 그들의 목소리는 훨씬 더 과격해지는 분위기다. 이로 인해 미국 사회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 2021년 1월 6일 미 의회 의사당 습격 사건 직전의 양상을 보인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연구조직 ‘Advance Democracy’에 따르면 지난 5월 뉴욕 형사법원에서의 유죄 평결 이후 이번 재판을 이끈 후안 머천(Juan Merchan) 뉴욕주 지방법원 판사와 앨빈 브래그(Alvin Bragg) 뉴욕시 맨해튼 지방검사장, 그리고 유죄 평결을 내린 배심원들의 신상과 이들에 대한 협박성 메시지를 담은 소셜미디어에 다수 게재됐다.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의 글뿐 아니라 일부 배심원의 자택 주소로 보이는 포스트도 여럿 등장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해 불리한 평결을 내렸다는 이유로 국가의 사법 시스템을 공개적으로 공격한 셈이다.

미 방송사 NBC가 자체 분석한 보도에 따르면 이들 게시글 중 상당수는 2021년 1월 6일 ‘미 의회 의사당 습격’에 관여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와 지지단체의 웹사이트에서 보인 것이라고 한다. NBC는 “2020년 선거가 조작됐다는 트럼프의 거짓말에 근거해 위협을 가했던 이들이 이번엔 미국의 사법제도가 조작됐다는 그의 거짓 주장에 근거한 위협적 행동을 선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2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또 성조기를 거꾸로 내걸고, 이를 촬영한 사진을 쇼셜미디어에 올렸는데,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도 성조기를 거꾸로 단 사진을 게시하기도 했다. 성조기를 거꾸로 거는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2020년 대선 패배 후 ‘선거를 도둑맞았다’며 항의의 뜻으로 한 행동이다. 3

2. 트럼프 팬덤은 신념 공동체

연수기간 동안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트럼프 팬덤’을 실제로 만나는 일이었다. 이번 미 대선 구도가 일찌감치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의 양자 대결로 정리됐으나, 바이든 대통령의 극단적 지지층은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를 위해 ‘슈퍼 화요일’(Super Tuesday)4 경선이 열린 지난 3월 5일 자동차로 5시간 거리인 테네시주 채터누가시에서 열린 공화당 경선(프라이머리) 현장 세 곳을 찾았다. 요란한 선거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현장은 매우 차분했다.

현장에서 만난 공화당 유권자 13명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유권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유권자들은 공통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들의 ‘신념’(Belief)을 대변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었다.

전자부품 회사에서 근무하는 50대 데이비드씨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가 믿는 것을 그대로 말한다. 우리가 믿는 것은 신앙을 토대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가 적임자라고 믿는다”고 확신했다.
이른바 ‘사법리스크’에 대한 질문에 그는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일단 그가 당선되고 나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지금 그에게 지워진 혐의는 모두 그를 질투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얘기”라고 일축했다.

조지아주 공화당 경선을 사흘 앞둔 지난 3월 9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조지아주 롬 유세 현장에서 만난 ‘트럼프 팬덤’은 훨씬 더 강한 정치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설 시간은 오후 6시였는데, 행사장은 오전 11시부터 이미 만석이었다. 유세가 열린 포럼리버센터는 서 있을 공간조차 없을 정도로 지지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유세장은 지지자들의 기대와 흥분, 환호성으로 채워져 마치 대형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이곳에서 만난 백인 유권자들 역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신념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한국(서울)에서 1년간 파견 근무를 했다는 퇴역 군인 핸더슨씨는 “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오직 트럼프만이 내 믿음을 대변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번(2020년 대선)에 선거를 도둑질 당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등장 전 7시간 가까이 이어진 지지연설에서는 불법이민자 범죄에 대한 강한 성토와 국경 장벽 재설치, 미국 세금의 자국 내 사용, 총기 규제 완화 등 강경한 보수 성향 발언이 쏟아졌다. 그럴 때마다 행사장을 가득 채운 백인들은 환호했다. 이어서 연단에 등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들이 환호하던 메시지를 정확히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트럼프 팬덤’을 만족시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는 나의 ‘슈퍼 팬’들에 대한 강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자 지지자들은 유세장이 흔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죄 평결 이후 더 강하게 결집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6월 6일 미국의 인생 상담쇼 ‘닥터 필 쇼’ 진행자인 필 맥그로와의 인터뷰에서 “그들(법원)의 끔찍한 결정이 내려진 뒤 4억 달러가 (선거 후원금으로) 들어왔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가끔은 복수가 정당화될 수 있다”며 ‘정치보복 시사’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덧붙였다.

실제 유죄 평결 후에 만난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부분 법원에 대한 강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애틀란타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50대 백인 여성은 “미국의 사법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졌다. 트럼프 같은 대부호에게 13만불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배심원들은 그 돈이 포르노 배우에게 갔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3. 공화당 내부서도 우려…자정 노력 외 해법은 요원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 극단적 지지층의 극우적·폭력적 언행은 각종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공화당 하원의원은 연수자와의 면담에서 “미국 사회가 날이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는 것은 미국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양극화되기 때문”이라며 “사람들이 한 진영의 터널에 갇히고 나면 계속 한쪽의 주장만 보고 듣게 되고, 이로 인해 점점 더 극단적 주장에 빠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당신이 누군가를 정치적으로 지지한다면 이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책 때문이어야 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층은 그렇지 않다”면서 “이렇게 정책과 가치가 아닌 개인만 보고 투표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며, 이런 문제가 올해 대선을 앞두고 미국 내에서 굉장한 이슈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선진국으로 평가되는 미국의 정당 정치에서도 극단적 정치 팬덤을 통제·규제하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이 의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 혹은 정당이 지지자를 통제하는 방법은 따로 없다”면서 “강성 지지층이 워낙 큰 목소리를 내기에 이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지만, 이들이 유권자의 절대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단순히 재선을 위해 이들의 목소리에 경도되는 것을 스스로 자제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강성 지지층의 볼륨이 사실상 매우 작은 규모에 불과하다는 것과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지지층의 대부분은 극단적 팬덤이 아니라는 것을 언론에서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바디 상’(Peabody Award)5 프로그램 디렉터인 제프리 존스(Dr. Jeffrey P. Jones) 박사도 연수자와의 면담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존스 박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얼마 전 ‘There will be a blood bath’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대선 후보가 ‘내가 (선거에서) 진다면 평화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민주주의가 이뤄지겠냐”면서 “이 시대의 언론인의 당면 과제는 우리 사회가 현재 처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정확히 짚어줘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 언론은 지난 10여 년의 경험을 통해 이제는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언론의 역할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면서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언론이 나서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언론의 꾸준한 지적이 있어야만 ‘21세기의 파시스트’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1 원문은 “Jesus is My Savior, Trump is My President”
  • 2 “Trump supporters try to dox jurors and post violent threats after his conviction”, NBC, 2024년 5월 31일
  • 3 “The upside-down American flag goes mainstream as a form of right-wing protest”, NPR, 2024년 6월 3일
  • 4 미국 10여개 주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 후보 경선(프라이머리·코커스)가 동시에 열리는 2월 말~3월 초 사이의 화요일로 올해는 3월 5일 버몬트주와 조지아주, 미시간주 등 15개 주에서 동시에 실시됐다.
  • 5 ‘방송계의 퓰리처 상’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피바디 상은 1941년 창설 권위 있는 언론 상이다. 라디오, 텔레비전, 케이블 등 전자 미디어 상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개인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미국 내 방송계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