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 사례를 중심으로 문화일보 김병채 연수기관: 조지아대
1. 연구 배경
한국에서 피의사실 공표 문제는 오랜 논란의 역사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사 중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 범위와 한계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 사건 이후 검찰은 2010년 1월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제정했다. 이를 통해 원칙적으로 수사 중인 사건은 공개가 금지되고, 중대한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를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 예외성이 인정될 때만 사건 내용을 공개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됐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많은 피의자들이 특검과 검찰이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린다고 주장했고,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때 다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조 전 장관 수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던 2019년 12월 기존의 ‘인권보호를 위한수사공보준칙’은 폐지되고,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새로 생기게 된다. 각 검찰청마다 배정된 전문공보관이 사건 공개 관련 업무를 전담하고, 주요 사안에 대해선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 절차를 거쳐 공개 여부를 결정하게 됐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형사사건 공개금지 관련 규정은 다소 완화된다. 2022년 7월 ‘형사사건의 공보에 관한 규정’으로 이름이 변경됐고, 전문공보관뿐 아니라 필요할 경우 차장검사 등이 티타임 등의 형식으로 공보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2023년 12월에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피의사실 공표가 도마에 오르게 된다.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이 목숨을 끊은 것이다. 경찰의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혐의 사실과 주요 수사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한국은 경찰, 검찰 등이 피의자의 혐의 사실을 외부로 알릴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법 조항까지 있지만, 해당 조항이 없는 나라보다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수 기간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왜 같은 논쟁이 반복되는지 진단해 보고, 개선점을 찾아보는 것을 연구의 목표로 삼았다.
2. 미국 사례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 기소 보도 분석 기소 당시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하는 큰 사건이지만, 검찰의 요청으로 2025년 4월 2일 법원이 공소 기각을 결정했다.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 법무부는 기소가 시장 선거에 너무 가깝게 제기됐고, 담당 검사가 부적절한 모습을 보였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단속에 대한 시장의 협력을 방해한다는 이유 등으로 공소를 취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검사들이 사퇴하는 등 반발이 있었다. 법원은 부적적할 이유라는 것을 지적하면서도 기소를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법무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건을 종결했다.
연수 기간 동안 미국 언론에 범죄 혐의로 보도된 대표적인 유명인으로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이 있었다. 미국 연방 검찰은 2024년 9월 24일 애덤스 시장을 부패 혐의로 기소했다. 현직 뉴욕시장이 기소를 당한 것은 최초 사례였고, 미국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주요 언론들은 검찰 수사 상황을 적극적으로 취재해 보도했다.
애덤스 시장은 2014년 브루클린 자치구장 재임 시절부터 2021년 뉴욕시장 선거 기간까지 외국인 기부자들로부터 불법적인 선거자금과 여행 혜택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다. 기소 내용에는 뇌물 수수, 선거자금 부정 수수, 외국인 기부 수수 등이 포함돼 있었다. 특히 검찰은 애덤스 시장이 튀르키예 정부 및 사업가들과 공모해 불법적인 자금을 기부 받고, 튀르키예 항공 등으로부터 고급 여행 등을 제공받았다는 내용을 공소장에 포함시켜 주목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애덤스 시장이 어떤 특혜를 받은 의혹이 있는지 기소 전에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2023년 11월쯤부터 ▲애덤스 시장의 휴대전화가 압수되고 ▲애덤스 시장이 항공사 좌석 업그레이드 등을 대가로 튀르키예 정부에 혜택을 제공했는지를 미 연방수사국(FBI)가 수사하고 있고 ▲애덤스 시장이 다른 국가들과도 뇌물성 거래를 했는지 FBI가 수사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러한 보도의 취재원은 해당 사안을 잘 아는 익명의 관계자라고 뉴욕타임스는 밝혔다. 이 같은 보도 방식은 한국과 큰 차이점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에서도 수사 내용을 아는 익명의 취재원을 통해 수사 단계에서 구체적 혐의 사실이 보도되는 것이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압수수색 등으로 수사 개시 사실 등은 공개될 수밖에 없고, 이후 수사가 장기화될 경우 ‘사안을 잘 아는 관계자’를 통해 언론에 수사 내용이 공개된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사례였다.

뉴욕타임스는 애덤스 시장이 기소된 직후에는 공소장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언론사 홈페이지에 공소장이 그대로 공개되는 것은 한국의 보도 관행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은 아무리 유명인이라고 하더라도 국회를 통해서 익명화된 공소장만 제공받을 수 있고, 이를 홈페이지에 그대로 공개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뉴욕타임스는 사건 관계자들의 실명이 나와 있는 공소장을 자세한 주석까지 달아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수사 대상자의 반응에서도 한국의 사례와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각각 확인할 수 있었다. 애덤스 시장 변호인은 기소가 제기된 직후 법원에 검찰의 수사 정보 누설에 대해 심리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약 1년 간 수사 진행 상황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언급하며 이로 인해 대중에게 애덤스 시장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애덤스 시장 측이 가장 문제 삼은 부분은 공소장 공개 하루 전, 변호인에게 기소 사실이 통보되기 전에 이미 기소됐다는 기사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애덤스 시장 변호인은 “당시 기소 사실을 알았을 사람은 검찰, 대배심원, 법원 직원 등 세 집단뿐”이라며 “세 그룹 중 검찰만 다음 날 추가 세부 사항을 발표할 것을 알고 있다”고 사실상 검찰을 기사의 취재원으로 지목했다.
뉴욕타임스는 애덤스 시장 측의 주장에 대해 “시장의 혐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히기 위해 쉴 새 없이 독창적인 보도를 했다”며 “제보된 정보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법원도 기소 사실 유출 등에 대해 심리를 진행하지 않았다.
수사 대상자의 반응과 언론기관의 대응 등은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수사 내용 유출에 대해 자세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수사 대상자의 반발로 수사 내용 유출 조사가 이뤄질 경우 언론 자유 위축 주장이 제기될 것이 뻔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애덤스 시장 측도 공소장 공개에 대해서는 전혀 반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수사가 일단락되는 기소 단계에서는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공소장 공개에 대해서도 당사자가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반발하는 경우가 많고, 수사기관도 이를 의식해 국회에 제한적으로 공소장을 제공할 때 사람 이름 등 고유명사는 철저하게 익명화한다.
3. 한국의 비교 사례
앞서 미국 언론의 경우 유명인이 기소되는 사건에서 공소장을 언론사 홈페이지에 여과 없이 공개한 사례를 언급한 바 있었다. 명확한 비교를 위해 한국에서 피의자 기소 시 공소장 공개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공소장을 예로 들면 법무부가 국회에 익명화한 공소장을 제출하고, 이를 국회의원이 언론에 공개하는 식으로 공소장이 대중에 알려진다. 언론사가 입수하는 원본은 국회제출용이라는 워터마크가 크게 찍혀 있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대통령마저도 익명화하고, 등장인물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공소장을 읽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언론사들은 공소장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것이 별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언론사들이 해석을 곁들여 기사로 요약하는 방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과거 공소장은 물론 구속영장도 기자들이 전면 열람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 전만 해도 법원에 접수된 모든 공소장과 발부된 구속영장을 기자들에게 복사해 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2010년 수사공보준칙이 생긴 이후에도 제한적으로 공소장과 구속영장 열람이 가능했지만, 개인 신상 공개 우려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점점 공개 범위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영장과 공소장을 아예 열람할 수 없게 됐다. 대신 기자들은 검찰이 법무부를 통해 국회에 제출한 공소장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국회에 제출된 공소장은 고유명사를 전부 익명화했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이후 취임한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일부 사건의 경우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국회에도 공소장을 제출하지 말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법무부는 2020년 2월 공소장 국회 자료 요구에 대해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린 후 제출한다는 내부 지침을 마련했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22년 8월 공소제기일로부터 7일 후 국회에 공소장을 제출하는 것으로 지침을 변경했다. 이에 대해 언론과 학계 등에서는 공소장 공개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4. 이론적 검토
미국 조지아대 연수 기간 동안 실제 형사 사건 공개 보도 사례와 함께 이론적인 검토도 병행했다. 이 과정에서 조지아대 저널리즘 스쿨인 그래디 컬리지의 카이저 로우(Kyser Lough) 교수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로우 교수는 그래디 컬리지 산하 콕스 인터내셔널센터 CAM(Cam and Media) 프로그램에서 미디어 앤 소사이어티(Media and Society) 트랙 담당 교수로 연수생들에게 필요한 자료와 조언을 제공했다. 연수 기간 동안 솔루션 저널리즘을 집중 연구하는 로우 교수와 교류하면서 언론이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수사 중인 사건의 공개와 관련된 대표적 규정은 ‘연방검찰매뉴얼(U.S. Attorneys Manual)’에 언급돼 있다. 매뉴얼 7장 ‘언론관계(Media Relations)’ 편은 형사사건 공개와 관련된 원칙을 밝히고 있다. 해당 편을 통해 법무부 장관은 공보 업무를 총괄하는 홍보담당관(Director of the Public Affairs, OPA)을 두도록 하고, 연방 검찰청별로 언론 전담 담당자도 지정한다.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사항만 공표하고 수사 중인 사건은 언급할 수 없도록 한 조항도 포함돼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안으로써 법집행당국이 적절한 조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나 공공의 안전, 이익, 복지를 위해서 필요할 경우 예외적으로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언급하거나 확인해 줄 수 있는 것으로 돼 있다.
미국 연방검찰 매뉴얼에 규정된 사건 공개와 관련된 조항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핵심 조항들은 이미 한국에서도 관련 규정을 만들 때 차용해 온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언급했든 한국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 이후 검찰은 2010년 1월 수사공보준칙을 만들면서 원칙적으로 수사 중인 사건 공개를 금지하고, 중대한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를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 예외적으로 사건 내용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이후에는 검찰청별로 공보담당관을 별도로 지정하고, 다른 검사는 언론에 사건에 대해 언급할 수 없도록 원칙을 정했다. 이 규정은 앞서 말했듯 다소 완화된 상태다.
연수 전 개인 적으로 미국은 한국보다 형사사건 공개,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된 논란이 비교적 적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연수를 진행하면서 규정이 제정된 배경 자체가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우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사건 공개에 대한 규정은 총기난사 등 강력범죄와 방송사의 실시간 범인 추적 등의 사례를 염두에 둔 측면이 강하다. 최근 한국에도 도입된 ‘머그샷’(범죄자 식별 사진) 등이 미국에서 먼저 시행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인구밀도가 낮고 CCTV 등 범죄 추적 인프라가 열악하기 때문에 강력범죄 사건 해결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공개수사로 전환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한국은 실시간 범인 추적 사례가 훨씬 줄어들고 유명인에 대한 수사 상황 보도가 문제가 되고 있는 반면 미국에서는 여전히 공보의 중점이 실시간 범인 검거 상황에 있었다.
5. 결론
한국과 미국의 수사 중인 사건 공개에 대한 규정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연수 기간 동안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언론 공보 담당자를 지정해 창구를 일원화한다. 이를 통해 국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담당자 외에는 언론 접촉을 차단해 수사 상 비밀을 유지한다. 예외적으로 사건 내용을 공표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둔 것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수사 대상자가 기소될 경우 관련 사항을 공표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양 쪽이 모두 가지고 있다.
반면 언론에 사건이 보도되는 방식은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 사건에서 미국 언론은 공소장을 직접 홈페이지에 실명으로 공개하며 자세한 해석도 곁들였다. 한국에서는 이미 기소된 사건에 대한 보도도 불확실한 부분이 많았다. 일단 공소장에 익명의 사건 관계자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공소장을 본다고 해도 사건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정치적인 인물이 사건에 연계됐을 때 형사 사건 공개에 관한 규정이 몇 차례 개정됐다. 정치권의 필요와 일시적 여론에 의한 규정 마련과 수정이 이뤄졌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더 차분한 자세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사건 공개 규정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 관련 논의가 이뤄진다면 공소장을 신속하게, 자세하게 공개하는 방식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수사 내용을 아는 익명의 관계자가 등장해 언론의 단독 보도로 이어지는 모습은 한국이나 미국에서 차이점이 없었다. 다만 유명 인물이 수사 대상이 됐을 때 언론이나 여론의 주목도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사건이 적은 편이고, 정치권이 이에 대해 개입하는 정도도 한국보다는 덜 했다.
수사기관은 수사 상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언론은 사건의 본질에 더 다가가고 쉽고 성역 없이 취재하고 싶다. 여기서 충돌 지점은 생길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선을 명확히 긋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당장 한국 수사기관이나 언론이 노력해야 할 부분은 있다. 수사기관은 압수수색이나 공개수배 등으로 사건이 외부로 알려졌을 때 신속하게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 논란이 된 사건들은 사건이 장기화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언론 역시 수사 내용은 원칙적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야 하고, 수사기관의 법 집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보도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되새겨야 한다.
수사기관과 언론 모두 기본을 다시 생각한다는 전제 아래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수사 사건 보도 범위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이뤄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