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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들어가며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 변혁을 거치고 있는 산업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코 미디어 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년 사이 전파 혹은 케이블 텔레비전 플랫폼의 쇠퇴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 빈 자리를 ‘OTT(Over The Top)’, 즉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들이 대신했다. 텔레비전 수상기가 됐든, 휴대전화가 됐든 시청하는 디바이스와 무관하게 인터넷 연결만으로 수많은 동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가장 유력한 콘텐츠 소비 형식이 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등 전통의 유수 언론들도 눈에 띄는 영향력 감소 속에 새로운 구독모델 마련에 나섰고, 그 빈틈을 각종 신생 매체들이 빠르게 채워나가고 있다. 이른바 ‘니치마켓(Nitch Market)’이라고 불리는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신생 미디어들이 생겨나고 사라짐을 반복하고 있고, 매체 간의 합종연횡, 인수합병 등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물론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 감소와 OTT의 확산, 스트리밍 콘텐츠 소비의 증가 등의 변화는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시장 규모의 차이 때문에 실험적인 미디어가 생겨나거나 신생 미디어 간의 대규모 인수·합병 같은 현상은 아직 한국에서 활성화되었다고 보기는 힘든 면이 있다. 그래서 우리보다 앞서 전면적이고 파격적인 미디어 산업의 변화를 겪은 미국의 사례를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미디어 산업 변화의 방향성을 미리 가늠해보고, 앞으로 닥칠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 어떠한 준비가 필요한지와 관련해 새로운 단서와 통찰을 얻고자 한다.
이 보고서에서는 먼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최근 미디어 환경 변화의 추세를 살펴보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실에 기반한 뉴스나 시사 콘텐츠, 그중에서도 정치 콘텐츠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떤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담아내야 가장 소구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를 알아보려고 한다. 이 문제는 보도 및 시사, 다큐멘터리 제작 역량을 갖춘 미디어에는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드라마나 영화, 예능 등의 장르로는 해외의 유수 OTT의 콘텐츠에 대항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Netflix)가 2021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입하는 제작비만 170억 달러, 우리 돈 20조 원에 해당한다. 이처럼 막강한 자본력을 내세운 콘텐츠들이 주로 영화와 드라마 장르에 집중된 점을 고려한다면, 국내 지상파를 비롯한 콘텐츠 제작사들이 이들 해외 유수 OTT와 전면전을 치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른바 ‘더 웨이브’나 ‘왓차’ 등과 같은 토종 OTT의 경우 국내 사용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만큼, 뉴스를 비롯해 예능이나 드라마, 영화 영역 외에도 시사 영역이나 팩트에 기반의 콘텐츠들을 확보할 수 있다면 여타 해외의 OTT와의 경쟁에서 차별화된 강점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위의 표에서 보듯이 2019년과 2020년 사이에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서 다큐멘터리와 리얼리티 장르가 가장 빠른 성장을 한 분야로 조사되었다. 스트리밍 시장 분석 회사 ‘패럿 애널리틱스(Parrot Analytics)’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유사 뉴스 콘텐츠(News-Adjacent Content)’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여기서 유사 뉴스 콘텐츠란 크게 3가지 정도로 분류해볼 수 있는데, 하나는 팩트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나 단편 제작물, 논픽션 다큐멘터리, 그리고 기존의 뉴스 콘텐츠이다. 패럿 애널리틱스의 알레얀드로 호야스(Alejandro Rojas)는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자들 입장에서 다큐멘터리 장르는 구독자들이 이탈하지 않고 유지하도록 해주는 매우 유용한 도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강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We have also found evidence that documentaries are increasingly becoming a useful retention tool for streamers)”1)고 말하기도 했다. 어떠한 이슈가 발생한 지 한 달 이내에 이슈를 전면적이고 심층적으로 다루는 제작물들이 구독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는 말이다.
이후에 다시 살펴보게 되겠지만, 2021년 현재 유사 뉴스 콘텐츠 서비스 강화는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이다. 기존의 드라마와 영화 스트리밍 중심의 OTT에 오리지널 다큐멘터리가 심심치 않게 제공되고 있고, 아예 시사 및 뉴스 서비스를 전용하는 OTT도 출범했거나 곧 출범할 예정이다. 2018년에 이미 폭스 뉴스가 ‘폭스 네이션(Fox Nation)’이라는 뉴스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범시킨 데 이어, 2019년에는 NBC 유니버설(NBCUniversial)도 ‘NBC 뉴스 나우(NBC News Now)’라는 뉴스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했다. 한편 CNN은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 ‘CNN 플러스(CNN Plus)’를 2022년 출범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8월에 450여 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한다고 밝혔다.2) 그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위주의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에서도 시의성 있는 시사 주제를 다룬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의 비중을 갈수록 커지고 있다. OTT 플랫폼 시대에도 기성 뉴스 콘텐츠, 나아가 다큐멘터리 등 논픽션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연구자가 보도와 다큐멘터리 장르, 그중에서도 정치 콘텐츠에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정치 콘텐츠는 사실 보도의 중심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선거철이 아니라도 정치는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끄는 뉴스 중의 하나이다. 많은 사람이 정치 뉴스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정치야말로 첨예한 갈등이 만나는 지점이며 극적인 타결이 이뤄지는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정치 콘텐츠는 대중의 주목도를 끌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 콘텐츠에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치 콘텐츠가 그 내용 면에서 포괄적이고 형식적으로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정치 콘텐츠에는 사람(정치인, 유권자, 기자 등)이 개입되고, 데이터가 관여하며, 선거라는 중요한 계기에 따라서 획기적인 변화가 수반되는 영역이다. 가장 딱딱하고 정제된 형식의 전통적인 정치 뉴스 외에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 실험이 가능한 영역이 바로 정치 콘텐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발생에 기반한 전통적인 정치부 기사를 논외로 하더라도, 데이터에 기반한 유권자 분석이나 특정 정당 간의 정책 비교부터, 후보자들의 토론, 혹은 유세 현장, 휴먼 스토리나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형식적 실험이 가능한 영역이 바로 정치 콘텐츠이다. 다양한 미디어 실험이 벌어지고 있는 미국에서 어떠한 매체가 어떠한 정치 콘텐츠 제작 실험을 펼쳐가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사례들을 수집함으로써, 정치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보는 것이 이 연구의 주된 목적이다.
1) Streamers chase current events (2021.3.30)
2) CNN announces CNN+, ‘most important launch for network since Ted Turner’ (2021.7.19)
https://www.cnn.com/2021/07/19/media/cnn-plus-launch/index.html
Ⅱ. 최근 미국의 미디어 시장변화
1. OTT 구독 시장의 과열과 미국 미디어의 합종연횡
OTT(Over The Top) 전성시대. ‘오버 더 톱’이라는 용어가 미디어 업계에 등장한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이지만, 그 사이 이미 OTT는 성숙기를 넘어 새로운 도약기에 진입하고 있다. 지금껏 OTT 하면 단연 넷플릭스(Netflix)가 주도하던 시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넷플릭스 대 여타 미디어 시장 구도에 적지 않은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넷플릭스는 2021년 1분기에 순 가입자 증가가 398만 명에 그치면서 시장의 기대치를 크게 밑도는 성과를 냈다. 반면 21세기 폭스와 마블 등을 내세운 디즈니가 2020년부터 넷플릭스보다 저렴한 월 구독료로 단기간에 1억 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했고, 2021년 2분기에는 신규가입자 면에서 아마존을 압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NBC 유니버설 (NBCUniversal)도 OTT 스트리밍 플랫폼 ‘피콕(Peacock)’을 출범시켰다. 이동 통신사업자인 AT&T도 2020년 5월에 HBO 맥스(HBO Max)를 출범했다. HBO 맥스도 2021년 실적 발표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4,1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해 애초 목표치를 2년 일찍 달성했다고 밝혔다. 비아콤 CBS(Viacom CBS)는 ‘파라마운트 플러스(Paramount Puls)’라는 새로운 OTT 서비스를 시작했다. 2021년 1분기 스트리밍 신규가입자의 11%가 파라마운트 플러스를 선택했다.3)
이처럼 우후죽순 생겨나는 OTT 스트리밍 서비스의 경쟁 구도 속에서 소비자들도 호응해 OTT 구독의 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동영상 스트리밍 OTT의 등장 이후에 콘텐츠 구독의 증가세가 얼마나 가팔랐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물론 여러 OTT가 경쟁적으로 나타나면서 2020년을 정점으로 증가세는 둔화하고 있지만, 일부 서비스의 경우 계속해서 구독자의 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OTT 서비스의 확장세 속에서 스트리밍 구독자 수가 미국 인구를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스트리밍 시장 분석 서비스인 ‘암페어 애널리시스(Ampere Analysis)’에 따르면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훌루(Hulu), HBO 맥스 등 OTT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자 총합이 미국 인구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4월 기준으로 미국 인구는 3억 3천만 명 수준인데,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자는 3억 4천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4) 또 미국인들이 평균 4개 이상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 가구가 3개에서 4개의 OTT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물론 이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새로운 OTT가 생겨나면 미국인들은 기존의 OTT를 해지하지 않고 새로운 서비스에 추가로 가입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1인당 평균 구독 OTT의 수가 4개에 육박하게 되었다.
구독자 경쟁 이면에는 거대 미디어 기업 간에 치열한 몸집 싸움이 있다. 2021년 11월 한국 상륙을 앞둔 ‘디즈니플러스(Disney Plus)’는 2021년 2분기에 신규가입자 수에서 넷플릭스를 압도하면서 OTT 업계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 2021년 2분기에 디즈니 플러스는 1,200만 명의 구독자를 새로 확보하면서, 같은 기간 단지 150만 명의 추가 구독자만을 확보한 넷플릭스를 신규가입자 측면에서 완전히 압도했다.5) 이는 일차적으로 그동안 디즈니가 축적해온 수많은 콘텐츠를 상대적으로 싼 구독료에 제공한 전략이 주요한 덕분이다. 하지만 인도를 기반으로 한 OTT 서비스 ‘핫스타(Hotstar)’, ‘21세기 폭스(21th Century Fox)’나 마블(Marble), 루카스필름(Lucas Film)과 같은 여러 콘텐츠 제작사와 ABC 같은 방송 콘텐츠, 그리고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같은 기존의 케이블 기반의 콘텐츠 제작사 등이 모두 하나의 구독 기반 서비스로 통합되면서 발생한 제작 및 유통 부분의 시너지가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결국 매체의 덩치를 얼마나 키울 수 있느냐, 그 커진 덩치에서 나오는 시너지를 어떻게 콘텐츠 속으로 녹여낼 수 있느냐가 앞으로 펼쳐질 OTT 패권 경쟁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래 표는 이 몸집 겨루기에 뛰어든 거대 콘텐츠 기업들이 각각 어떤 기업들을 품고 있는지 보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우선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콘텐츠 계의 강자 디즈니, 그리고 미국 최대의 인터넷 업체인 컴캐스트(Comcast), 그리고 이동통신사 AT&T, 전통의 뉴스 강자인 비아컴 CBS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영화사와 지상파, 케이블 채널 등을 산하에 거느리고 있다.
앞으로 주목해볼 곳은 ‘아마존(Amazon)’이다. 아마존은 기존 이커머스 사업에서 배송료 무료 회원인 프라임(Prime) 회원들에게 프라임 비디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프라임 회원 가입자만 2억 명이 넘는다. 넷플릭스와 더불어 유료 가입자(아마존 프라임 회원 가입비는 1년 119달러, 매달 12.99달러)가 2억 명을 넘긴 유일한 서비스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 가속도를 더해 아마존은 2020년 비디오와 음악 콘텐츠 부분에만 110억 달러를 투자했고, 이 중 상당수는 아마존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입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마존은 1조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입해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 프로미식축구 NFL 중계권을 단독으로 따내 스포츠 콘텐츠 제공의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마존은 또 비록 반독점을 이유로 일단 중단되기는 했지만, 영화제작사인 엠지엠(MGM) 인수를 추진 중이다.
최근 미디어 사업의 발전 양상을 보고 있노라면 미디어 사업은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의 테크놀로지 경쟁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미디어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은 콘텐츠의 질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아마존이나 구글, 혹은 애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의 여타 서비스를 사용해오던 소비자들을 거점으로 강력한 콘텐츠 유통망을 꾸릴 수 있는 역량이 콘텐츠 자제 경쟁력만큼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콘텐츠 경쟁이 전통적인 미디어 사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이었다면, 이제 현대 미디어 사업자들은 어떻게 구독자들을 효과적으로 붙잡아둘 수 있을지 플랫폼이 확보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등 첨단 기술력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처음 구독기반 서비스에서 시작한 OTT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로 광고 기반의 OTT로 옮아가고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아래 표를 보면 구독기반의 성장과 동시에 광고 기반의 OTT도 비슷한 속도로 성장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OTT 플랫폼이라도 광고를 시청하면 구독료를 더 싸게 해주는 식으로 광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실제로 컴캐스트의 피콕은 광고가 있는 4.99달러 요금제와 광고가 없는 9.99 달러 요금제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고, HBO 맥스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계속된다면 치열해지는 OTT 구독자 확보 경쟁에서 넷플릭스도 결국 광고를 도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만약 대부분의 OTT가 광고를 도입한다면 광고 전체 파이에서 OTT가 가져가는 영역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기성 미디어에는 그렇지 않아도 줄어들고 있는 광고를 두고 경쟁해야 할 새로운 경쟁상대가 나타난 셈이다.
OTT의 확산은 부인할 수 없는 추세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재미있는 다른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그것은 이른바 OTA 이용자의 증가이다. OTA는 ‘Over The Air’의 약자로 유료 방송 대신 기존의 안테나를 설치해 지상파 방송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시청자들은 시청 시간이 중요하지 않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는 OTT를 구독해서 자신들이 원할 때 스트리밍을 통해서 소비하고, 뉴스나 스포츠 같이 실시간 시청이 중요한 콘텐츠는 안테나를 통해 수신해 실시간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OTT와 OTA는 굉장히 현명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시청자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닐슨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0년 1억 2천만 명 정도의 미국 내 TV 시청 가구의 40%에 달하는 5천만 가구가 안테나를 통해 지상파 방송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해 전인 2019년에 비해서 29% 증가한 수치이다.6) 스트리밍 서비스 선택지가 늘어나고 구독료로 오르는 추세에서 기존에 이용하던 케이블 채널 패키지를 해지하는 대신 OTT에 탑재되지 않는 지상파 콘텐츠는 직접 안테나를 통해서 수신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OTT 플랫폼에 기반한 미디어들의 구독자 확보 경쟁은 레드오션에 가까워지고 있다. 구독자 한 명이 여러 개의 OTT 서비스에 가입하고 있다는 통계들이 나오고 있는 만큼, 앞으로 OTT 미디어가 더 생겨나더라도 구독자가 무한정 늘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OTT의 증가 이면에 OTA 이용자가 늘어나는 것은 이질적이면서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고도 현명한 시청자들의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3) 파라마운트 플러스의 성공 요인으로 파라마운트의 오리지널 콘텐츠인 ‘스타트렉’이 손꼽힌다. 실제로 신규가입자의 53%가 특정 타이틀을 보기 위해서 파라마운트 플러스를 선택했다고 답했고, 그중 24%는 그 타이틀이 스타트렉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4) Streaming subscriptions in US overtake number of people (2021.4.13)
https://www.ampereanalysis.com/insight/streaming-subscriptions-in-us-overtake-number-of-people
5) Disney outpaces streaming rivals as it doubles subscribers in a year (2021.8.12)
https://www.ft.com/content/9b705a6f-35f6-49cf-883b-0581fbf5ab48
6) Antenna Penetration Across U.S. Grows 38% Year-Over-Year and Now Reaches 40% of all TV Content Viewers 18+ (Horowitz, 2021.2.9)
https://www.horowitzresearch.com/press/antenna-penetration-across-us-grows-38-year-over-year/
2. 뉴스 기반 OTT의 출범
CNN+의 최고 디지털 책임자(Chief Digital Officer)인 ‘앤드루 모스(Andrew Morse)’는 CNN+의 출범을 두고 “1980년 테드 터너(Ted Tunner) 사장이 CNN을 설립한 이후로 가장 중요한 사업의 시작(the most important launch for CNN since Ted Turner launched the network in June of 1980)”이라고 밝혔다. CNN은 이 자체 뉴스 스트리밍 플랫폼 CNN 플러스의 출범을 위해 450여 명의 인력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CNN의 기존 채용에 견주어보아도 전례를 찾기 힘든 규모일 뿐 아니라 언론계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이례적인 일이다.
CNN이 밝힌 CNN+의 출범 시기는 2022년 3월이다. 구독료는 대략 매달 5.99달러 수준일 것으로 알려져 있다.7) CNN 플러스에는 기존에 제작물 중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라이프스타일 관련 프로그램들이 탑재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직 CNN 플러스가 정확히 어떤 콘텐츠를 제공할 것인지, 편성은 어떻게 할 것인지, 방송 콘텐츠와 차별화가 어느 정도 될 것인지 등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CNN 플러스가 채용하고자 하는 인력의 특성과 성격을 살펴보면 전체적인 윤곽을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위의 CNN이 채용공고에서 밝힌 대로라면 450명의 신규 채용 인원 가운데 200명은 기자, 250명은 디지털 제작 인력이다. CNN 플러스는 뉴스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이다. 기자들은 OTT 플랫폼에 맞는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 제작 및 취재에 투입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밖에 프로덕션 담당, 기술, 데이터 담당, 디자인 담당 등은 이를 구현해 내기 위한 인력으로 볼 수 있다.
CNN 플러스는 단순히 방송을 디지털 스트리밍을 통해 전송하는 플랫폼의 변화에 머물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OTT 플랫폼에 적합한 뉴스 소재를 발굴하고 그것을 새로운 형식에 담는 실험을 감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기존 방송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일 가능성도 크다. 예를 들면 CNN 플러스는 이 새로운 서비스 안에 커뮤니티 기능을 넣을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앵커와의 대담이나 시청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등 기술 기반의 새로운 시청자 경험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기존의 방송 조직 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능이 요구되고 많은 수의 엔지니어와 프로덕트 매니저, 디자이너 등이 필요하다. 디지털 프로덕트 관련 인재들의 채용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디지털 전환’은 늘 새로운 능력을 지닌 인재들의 결합을 전제로 한다. 기존 방송 제작에 익숙한 조직원들 역량과 기여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물론 기존 직원을 재교육하는 일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할지라도 쉽지 않은 작업임은 틀림없다. 재교육에 오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할 수도 있고 기존 조직원들의 저항이 있을 수도 있다. ‘재교육’은 비용 대비 효용 측면에서 리스크가 따르는 선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디지털 서비스 출범을 앞두고 CNN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선택을 감행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CNN 플러스를 위해 CNN은 본사가 있는 조지아주의 애틀랜타(Atlanta)를 벗어나는 모험을 동시에 감행하고 있다. CNN 플러스를 위한 물리적 공간은 뉴욕이 될 전망이다. CNN 플러스의 수석 제작 매니저(Head of Product and General Manager) ‘알렉스 맥칼럼(Alex MacCallum)’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지역에서 재능있는 제작자, 기술자, 데이터 및 디자인 업무담당자가 CNN 플러스에 합류하기를 원합니다. 그들 모두가 한 도시에 있을 필요가 있지 않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완전히 원격 근무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8) 원격 혹은 재택근무를 허용한다는 것은 디자이너나 개발자 등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 조건을 만들어주겠다는 뜻인 동시에 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위한 새로운 제작 프로세스를 마련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7) Report: CNN+ May Pull Content From HBO Max, Charge $5.99 a Month (2021.12.17)
https://thestreamable.com/news/cnn-plans-streaming-play-cnn-plus-pulls-its-star-power-home
8) “We are looking for talented product, technology, data and design employees to join from a number of different locations. Not all of the roles are based in one city. Some of them also have the opportunity to be fully remote.“
CNN이 스트리밍을 위한 자체 플랫폼 구축에 나선 것은 그간 CNN이 시도해온 시도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일 수 있다. CNN은 페이스북의 구독 비디오 서비스인 ’페이스북 워치(Facebook Watch)’를 통해 자신들이 제작한 뉴스 형식의 프로그램을 유통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 데어(Go there)’라는 프로그램이다. ‘고 데어’는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늘리겠다는 취지에서 10분 내외 길이의 짧은 뉴스 콘텐츠 형식에, 환경, 여성, 이민자 등의 다양한 주제에서 차별화된 뉴스를 제공해 왔다. 주로 CNN의 특파원들이 참여해 뉴스를 제작했다. 지금까지 모두 600여 개 에피소드가 방송됐고, 계약에 따라 페이스북 워치에 방송된 지 24시간이 지나고 나서 CNN에 공개됐다. 문제는 역시 광고였다. 이 콘텐츠가 ‘페이스북 워치’의 핵심 콘텐츠였기 때문에 페이스북은 이 콘텐츠로 유입된 사용자들을 통해 광고를 독점했다. CNN 입장에서는 비록 제작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이 콘텐츠가 가져올 수 있었던 자사 홈페이지로의 유입 혹은 모바일 앱의 구독자 증대나 광고 증가 같은 효과를 누리기 힘들었다. 결국 CNN은 2021년 2월부터 ‘고 데어(Go there)’를 모두 페이스북에서 빼고 CNN 웹페이지와 모바일 앱 등 자체 플랫폼에서 해당 콘텐츠를 서비스하기로 했다.9) 같은 콘텐츠를 페이스북 워치에 공개했을 때보다 CNN 자체 플랫폼에 노출했을 때, 1인당 시청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이스북 와치에서는 한 명의 시청자가 20초 정도의 시청 시간을 보였는데, CNN 자체 플랫폼에 올렸을 때는 평균 5분 이상의 시청 시간을 기록한 것이다. 이는 CNN 자체 플랫폼 이용자들이 해당 콘텐츠에 대한 충성도가 더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페이스북은 더 많은 ‘도달률(reach)’을 보장해줄지 몰라도, ‘몰입도(engagement)’와 ‘열독률’ 측면에서는 자체 플랫폼에 올렸을 때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CNN은 이전에도 ‘Anderson Cooper Full Circle’이라는 프로그램을 런칭한 뒤 자체 플랫폼으로 이동시켰다. 이러한 자체 플랫폼 강화 움직임이 결국 CNN 플러스 출범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달리 뉴스 분야에서 이러한 흐름이 본격화된 것은 오래된 일은 아니다. 경쟁 구도가 본격화한 것은 2018년 폭스 뉴스가 ‘폭스 네이션(Fox Nation)’이라는 구독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범시킨 시점부터라고 할 수 있다. 2019년에는 NBC 유니버설(NBCUniversal)이 뉴스 스트리밍 서비스인 ‘NBC 뉴스 나우(NBC News NOW)’를 출시했다. NBC 뉴스 나우도 향후 몇 달간 200명 이상의 신규 채용을 진행할 계획이다.10) 이 밖에도 미국 일기예보 채널인 ‘웨더채널(Weather Channel)’도 기상정보 제공을 전문으로 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출범을 공식화했다.
물론 OTT 구독모델이 뉴스 콘텐츠 분야에도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아직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2021년 상황에서 이러한 흐름은 되돌리기 힘든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성 미디어 입장에서는 디지털 전환에 성공할수록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빅테크 기업에 의존하게 되는 역설을 맞게 된다. 뉴스 아웃렛 미디어에서도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범하는 것은 이러한 역설을 맞아 기성 미디어가 선택한 방향성이라고 이해해 볼 수 있다. 다음 표는 최근 뉴스를 중심으로 하는 OTT 채널의 상황을 개략적으로 정리해본 것이다.
9) CNN Ends Facebook Video Deal, Moves ‘Go There’ Daily Show to Its Own Digital Platforms (2021.2.21)
https://variety.com/2021/digital/news/cnn-ends-facebook-watch-deal-go-there-1234896864
10) NBC News Seeks to Hire 200 Employees as Part of Streaming Expansion (2021.7.27)
https://variety.com/2021/digital/news/nbc-news-now-200-jobs-live-streaming-1235028369/
○ CBSN – www.cbsnews.com/live/
– 미국 주요 방송사 중 가장 먼저 시기에 OTT 향 24시 채널을 런칭
– 아침 5시부터 밤 10시까지 속보, 라이브, 정규뉴스 등을 편성
– CBS 뉴스 프로그램을 재방송하거나 방송 콘텐츠를 재구성한 콘텐츠도 내보내며, 방송 뉴스를
동시에 스트리밍 하기도 함(편성표https://www.cbsnews.com/cbsn/ )
– 런칭 초기에는 CBS This Morning, CBS Evening News 등의 방송 자료를 많이 사용
– 2016년경부터 방송 기자들을 CBSN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등 온라인에 특화된 서비스로 본격 운영 시작
○ ABC NEWS LIVE – abcnews.go.com/Live
– 2020년 3월 기준 최근 1년간 월 시청자 200% 증가
– 2018년 런칭 이후 라이브 및 영상 클립들 중심으로 서비스해오다가 2020년 2월부터 라이브와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제작해 서비스 → 연말까지 라이브+오리지널 콘텐츠 편성을
하루 18시간까지 확대할 예정
– 50여 명의 새로운 저널리스트 고용 예정이며, ABC뉴스 특파원, 기자들을 앵커로 선임
– 미국 온라인 미디어 Vice가 HBO와 제작한 바이스뉴스 투나잇의 프로듀서도 스카우트
– 2020년 2월 민주당 아이오와 코커스를 라이브 중계, 5월 스페이스X 첫 발사 장면도
내셔널 지오그래피와 동시 중계 예정
○ FOX Nation – nation.foxnews.com/
– 타 방송사와 달리 구독기반의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월 5.99달러, 연 65달러)
– 뉴스보다는 보수 성향 골수 시청자 맞춤형 평론, 엔터테인먼트 성격의 콘텐츠를 제공
→ 라이프스타일쇼, 역사 다큐멘터리 등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 뉴스는 TV본방 후 오디오 클립으로 제공하는 등 방송 프라임타임과 주요 콘텐츠가
겹치지 않도록 편성 → Fox 뉴스의 보완재 성격
○ NBC NOW – www.nbcnews.com/now
– 2019년 5월 8시간 편성으로 공식 런칭, 향후 24시간 방송 계획 중
※ 런칭 당시 뉴욕 지하철 전체를 광고로 래핑하는 등 대대적 프로모션 진행
– 속보 발생 시 라이브로 전환, 매 정시 Briefly 프로그램 통해 헤드라인 뉴스 업데이트
– 현장에서 이동전화와 카메라를 사용해 라이브를 진행하기도 함
– 데일리 콘텐츠뿐 아니라 2020년 미국 대선과 같은 대형 이벤트 방송도 준비
– 약 20여 명의 전담 직원이 있으며 NBC 뉴스의 편성, 제작 인력들이 파견
– 주요 시청자 연령대가 20~40대로 NBC 방송 뉴스 시청자보다 어림11)
11) NBC News Now Expands Live OTT Programming (2019.5.29)
https://www.nexttv.com/news/nbc-news-now-expands-live-ott-programming
3. 퀄러티 콘텐츠 구독의 재확산
앞서 OTT 서비스가 구독기반에서 광고 기반으로 이동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지면에서는 이와는 반대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와 같은 지면을 중심으로 했던 전통적인 미디어 시장에서는 광고 의존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반면 유료 구독자는 늘어나고 있다. 로이터 저널리즘 보고서를 보면, 미국에선 2020년 온라인 뉴스에 비용을 지불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20%를 넘어섰다. 이 시기 서브스택(Substack) 구독자가 수십만 명을 넘어서고 뉴욕타임스 유료 구독자가 수백만 명을 넘어섰다. 구독기반의 미디어가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의 경우 광고 수입이 급감하면서 어쩔 수 없이 구독기반으로 방향을 바꾼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이유 외에도 종이 신문에서 탈피해, 뉴스레터나 웹사이트 등 디지털 상에서 구축한 새로운 서비스가 구축되면서 구독자를 확보하게 된 측면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워싱턴 포스트는 2020년 3백만 명의 디지털 구독자를 확보했는데 이 수치는 2016년의 3배가 넘는 구독자이다. 뉴욕타임스 역시 2020년 6백만 명의 디지털 구독자를 확보했는데, 이는 2016년 구독자의 3배 가까운 수치라고 할 수 있다.12) 이러한 구독자의 증가는 그동안 기성 미디어들이 얼마나 소비자 이탈과 광고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이들 매체는 어떻게 단시간에 이렇게 많은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물론 이들 두 매체가 보여주는 저널리즘의 수준은 최정상급이다. 하지만 저널리즘의 질만으로 급격한 구독자 증가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이들 매체는 구독자를 늘리기 위한 훨씬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필자가 미국에 와서 많이 접한 광고 중의 하나가 바로 한 주에 50센트로 뉴욕타임스를 구독할 수 있다는 광고다. 이러한 저가 프로모션으로 처음 구독자를 확보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점차 구독료를 올려 나간다. 구독자가 이탈하려고 하면 새로운 추가 서비스나 낮은 구독료를 제시해 이탈을 막는 유인책으로 사용한다. 이런 행위들은 일종의 마케팅 비용을 발생시킨다. 실제로 아래 뉴욕타임스의 예산 내역을 보면 세일즈와 마케팅에 적지 않은 비용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광고의 감소가 되돌릴 수 없는 추세라면 구독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광고의 감소를 벌충하겠다는 적극적인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주요 일간지의 구독자 확보 전략을 대행하는 업체인 ‘매서 컨설팅(Mather Consulting)’의 대표 ‘매트 린드세이(Matt Lindsay)’는 연수자가 참여한 2021년 UGA 강의에 초청 강사로 참여해 자신이 구독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는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관련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그는 “이들 업체는 어떤 구독자들이 어느 정도의 구독료에 반응하고, 어떤 구독자들은 높은 구독료를 감내하면서 장기간 구독을 이어가는지 등을 알고리즘을 통해서 분석하고 그 분석을 토대로 맞춤형 구독 패키지를 제공한다”라고 밝혔다.13)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주로 구독자 확보를 위한 각종 홍보 비용을 미디어 비용(media expense)으로 처리하는데, 2020년 2분기 1,650만 달러였던 미디어 비용은 2021년 2분기 2,900만 달러로 75.8%나 늘어났다. 우리 돈으로 3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단일 분기에 투자해 구독을 끌어 올렸다는 뜻이다. 이런 적극적인 전략을 통해 2020년 2분기 구독 전체 매출액은 1,000만 달러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독자를 충분히 확보할 수만 있다면 광고의 감소나 코로나와 같은 초유의 위기 상황도 돌파해 나갈 수 있음을 이들 언론사의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구독은 콘텐츠의 질에 비례해서 저절로 늘어나지 않는다. IT 기술을 활용하고 보다 적극적인 마케팅 기업을 도입하지 않으면 요즘과 같은 매체 환경 속에서 구독자를 늘리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물론 이러한 구독자 증가 추세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지만, 국내 언론사들도 구독을 늘리기 위해서 보다 적극적인 필요하다는 점을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의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물론 한국의 경우 네이버를 필두로 한 포털이 뉴스 도달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에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자체 구독자 확보는 더 만만치 않은 여건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부 매체를 중심으로 질 높은 기사를 기반으로 구독 증가를 꾀하는 움직임이 관찰되고 있는 만큼, 미국에서 구독자를 확보하려는 기성 매체들의 전략을 좀 더 주시해서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12) Trump bump: NYT and WaPo digital subscriptions tripled since 2016 (2020.11.24)
13) Keith Herndon 교수 강의 중 (UGA Grady College 2021년 가을학기)
4. 크리에이터(creator) 기반의 새로운 플랫폼의 출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같은 레거시 미디어들은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새로운 구독 확보에 나섰다면 아예 구독을 염두에 둔 새로운 미디어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미디어 산업에서 구독자가 소비자이고 이들이 소비하는 상품이 콘텐츠라면, 구독자를 모으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당연히 콘텐츠의 질은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미디어 내부의 제작 역량을 갖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체의 외연을 허물어서 외부의 역량 있는 제작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갖추는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유튜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가 동영상 제작 기반의 플랫폼이라면, 유튜브의 활자판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 미디어가 바로 ‘서브스택(Substack)’이다. 서브스택은 간단하게 정리하면 구독자 기반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그에 최적화된 플랫폼으로서 설계한 미디어이다. 아래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서브스택의 구독자 증가 속도는 놀랍다.
서브스택은 각 분야에서 조예가 깊은 개인들이 그 분야와 관련된 글을 올리고, 해당 분야에 관심 있는 소비자들이 그 개인에게 구독료를 내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형태의 플랫폼이다. 실제로 글을 올리는 저자와 플랫폼 운영자인 서브스택은 구독료를 85대 15 정도로 배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브스택 내에서 많은 구독자를 확보한 필자들은 당연히 더 많은 수익을 얻는 구조이다. 이는 광고를 드러내기 쉬운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와는 다른 지점이다. 유튜브에서는 광고 수익을 동영상 제작자와 나누는 것이라면, 서브스택에서는 구독료를 저자와 플랫폼이 배분한다.
서브스택의 성공 요인 중의 하나가 서비스 출범 초기에 각 분야에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이른바 ‘셀렙’들을 필자로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서브스택의 첫 작가가 ‘빌 비숍(Bill Bishop)’이라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는 마켓워치라는 미디어의 공동 창업자로, 3만 명의 무료 구독자를 거느린 뉴스레터 운영자였다. 그는 서브스택에 ‘Sinocism’이라는 타이틀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기존 구독자들을 기반으로 바로 막대한 구독료를 얻게 됐다. 이러한 사례의 가능성을 본 서브스택은 이후 유명세 높은 작가들을 잇달아 영입하게 됐고 이것이 성공의 발판을 제공하게 된 셈이다. 켈리 드와이어(Kelly Dwyer), 다니넬 멜로리 오트버그(Daniel Mallory Ortberg) 같은 미국 내 저명한 작가들이 서브스택에서 활동하고 있다.
실제로 서브스택에서 활동하는 상당수의 필자는 기성 매체의 기자들이기도 하다. 현재 서브스택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자들의 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자기 팬을 확보한 많은 기자가 서브스택으로 옮겨가고 있을 정도로 서브스택은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서브스택을 통해서 정치 관련 글을 쓰고 있는 ‘매트 엘리엇(Matt Elliot)’는 캐나다 토론토 지역지인 ‘토론토 스타(Toronto Star)’에도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는 복스(Vox)와의 인터뷰에서 “900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월 5달러의 구독료를 받는다고 하면 이 기자는 매달 450달러의 수입을 얻고 있는 것이다. 또 인사이더의 정치 담당 기자인 ‘아담 렌(Adam Wren)’ 역시 서브스택에 관련 기사를 쓰고 있는데 “서브스택이 상당한 부수입을 주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4)
서브스택은 미디어의 주도권이 ‘조직’에서 ‘개인’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매체이다. 유튜브에서 많은 구독자를 확보한 개인들이, 신뢰와 권위를 가졌던 매체의 영향력을 넘어서고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14) Substack will spend $1 million to support “up to 30” local news writers (2021.4.15)
서브스택과 관련해 공영방송인 KBS가 참고할 부분은 서브스택이 경제, 정치, 환경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하는 필자를 거느리고 있지만 동시에 지역 뉴스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브스택은 지역 뉴스 크리에이터들에게 콘텐츠 제작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올해 1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브스택이 특정 영역의 크리에이터에게 제작비를 지원하는 것은 이번 사례가 처음이라고 한다. 이러한 파격적인 시도 이면에는 지역 관련 소식이 서브스택의 콘텐츠를 차별화하는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실제로 지역뉴스에 대한 구독은 규모는 적을지 모르지만 서브스택의 뉴스 레터 형식의 이메일을 열어보는 사람들의 비율이나 구독자들의 충성도 면에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인다. ‘서브스택 로컬’의 도입 페이지를 보면 “보조금이나 자선적 차원의 펀딩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자생할 수 있는 로컬 뉴스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지금은 이름을 ‘메타(Meta)’로 변경한 페이스북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페이스북은 ‘저널리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21년 2월 서브스택 형태의 뉴스 레터를 시작한다고 밝혔다.15) 이 서비스는 페이스북과 계약한 독립된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뉴스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개방형 뉴스 레터를 기반으로 한다. 페이스북은 크리에이터들에게 제작비 등을 지원하고 크리에이터들이 자율적으로 제작한 콘텐츠를 플랫폼을 통해 유통한다. 페이스북은 이 서비스를 통해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해서 소비자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한편으로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 성과에 대한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이 분석 결과를 토대로 향후 콘텐츠 제작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더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이 서비스는 서브스택의 서비스와 많이 닮아 있다. 기존의 기자들 가운데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콘텐츠 제작자들을 지원함으로써 플랫폼에 더 많은 사람을 유입시키겠다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저널리즘 프로젝트의 홈페이지에는 3가지 주요 임무가 설명되어 있다. 그 첫 번째는 뉴스를 통해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다. 저널리즘을 질적으로 향상하고, 공동체 기반의 뉴스를 위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뉴스 생산 조직과 함께 일하고 거기에 투자하겠다는 말이다. 두 번째로 뉴스룸에 소속된 전 세계 기자들을 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페이스북은 온라인 코스를 제공하거나 뉴스룸을 직접 방문해 저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중요한 기사들을 생산하기 위한 사회적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론을 교육하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이 밝힌 세 번째 임무는 파트너십을 통해서 저널리즘의 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왜곡된 정보와 맞서 싸우고, ‘미디어 리터러시(News Literacy)’를 북돋우며, 새로운 시도를 지원하며, 저널리즘을 개선하기 위해서 뉴스 제작자와 비영리 단체들과 함께 파트너십을 맺겠다는 뜻이다. 모두가 좋은 내용이지만 그 핵심은 역시 플랫폼 안에서 보다 좋은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이용자들이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 속에서 더 신뢰할만한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저널리즘을 초토화했던 것이 여러 뉴스를 한꺼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News aggregator)로서의 빅테크였다면 이제 빅테크가 망가진 저널리즘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물론 이 이면에는 빅테크 기업 간의 구독자 확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5) Facebook unveils ‘Bulletin,’ a newsletter subscription service (2021.6.21)
https://www.nytimes.com/2021/06/29/technology/facebook-newsletters-bulletin.html
5. 틈새시장 공략하는 미디어 : 정치 전문 미디어의 선전
구독자를 확보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당연하게도 질 높은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특정 분야에 대한 심층적인 내용을 제공하려는 시도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심층 콘텐츠는 많은 수의 소비자들에게 소구력을 갖기가 어렵다. 구독기반의 미디어가 이른바 ‘니치마켓(Nitch Market)’, 즉 수요는 있으나 아직 충분한 공급이 없는 분야를 파고드는 경향성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도 심층적인 기사를 뉴스레터 형식으로 제공하고 구독료를 받는 형태의 저널리즘이 상당수 생겼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들을 꼽으라면 ‘북저널리즘(book journalism’, ‘더밀크(The Millk)’, ‘미디어고토사’, ‘폴인’ ‘퍼블리’ 등이 있을 수 있다. 북저널리즘의 경우 심층 저널리즘을 표방한다. 즉 주제를 막론하고 주요한 발생 이면의 맥락과 관련된 포괄적 정보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반면 더밀크는 뉴욕증시 중심의 투자와 관련된 콘텐츠, 미디어고토사는 해외 미디어와 관련된 뉴스를 주로 제공한다. 이들 미디어는 모두 특정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그 대가로 구독료를 받는 형태의 미디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틈새시장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미디어의 경우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특히 한국의 매체들은 미디어 시장 규모의 한계 때문에 성장에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의 경우 막대한 시장을 바탕으로 한국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콘텐츠 수요가 있는 만큼 전문화되고 특성화된 미디어 스타트업들이 많이 생겨나는 추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들이 바로 정치 관련 매체들의 성장이다. 스포츠나 정치 통계 분야의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 정치 분야의 폴리티코(Politoco) 혹은 악시오스(Axios) 등은 모두 주목을 받기 시작한 지 10년 남짓 된 매체들이지만 그 영향력과 시장 가치는 기성 매체를 압도할 정도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독일의 악셀 슈피링어(Axel Springer)가 2007년 설립된 폴리티코(Politico)를 인수하기로 했다. 인수가격은 공식 발표되지 않았지만 10억 달러 수준으로 알려질 정도로 높은 시장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들 매체들의 성공 비결과 특징은 이어질 장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최근에는 폴리티코 출신의 베테랑 기자들(Jake Sherman, Anna Palmer, John Bresnahan)이 펀치볼(Punchbowl)이라는 신생 미디어 스타트업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펀치볼은 미국 정치 전문 미디어 폴리티코의 베테랑들, 특히 플레이북이라는 인기 높은 뉴스레터를 성공시켰던 멤버들이 만든 뉴스레터 기반 미디어이다. 워낙 쟁쟁한 멤버들이 뛰쳐나와 창업한 덕분에, 제2의 Axios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 상황이다. 월 구독료도 월 30달러에 이를 정도로 높은 편이다. 이들 매체의 성공 요인은 이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미디어 혁신의 시대에도 정치 콘텐츠는 여전히 잠재적 시장 가치를 가진 블루오션이 될 수 있음을 이들 매체의 선전은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정치나 투자, 스포츠 분야에서만 이러한 특성화된 미디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스낵처럼 즐길 수 있는(snackable content)’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것은 가볍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를 말한다. 10대 여성 대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에 전문화되어 있는 ‘웨스트브룩(Westbrook)’같은 매체부터 카운티나 주 단위의 중고교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로컬 스포츠 스트리밍 채널까지 틈새시장을 노린 미디어는 이로 샐 수 없을 만큼 많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취향과 관심이 계속 생겨남에 따라 그러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니치 미디어는 계속 진화와 소멸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Ⅲ. 정치 콘텐츠의 변화와 역할
1. 데이터의 활용
정치 뉴스가 정치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발생을 기본으로 한다. 가령 정치 세력의 이합집산, 정치인의 발언, 선거 결과 등은 정치 뉴스의 기본적인 소재이다. 이러한 발생 소식이 전통적인 정치 뉴스의 대다수였다면, 플랫폼의 고도화, 조사기술의 발전, 모바일 기기나 SNS의 확산 등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새로운 형태의 정치 관련 뉴스가 생겨나고 있다.
통계 전문가인 네이트 실버가 이끄는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는 그 최전선에 있다. 이 매체는 정치 전문 매체임이지만, 정치에 접근하는 방식은 기존 매체와는 전혀 다르다. 정치와 둘러싼 각종 데이터를 활용해 여론과 정치 행위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이 챕터에서는 파이브서티에이트가 활용하고 있는 데이터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이러한 데이터는 어떠한 방식으로 처리되는지,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 데이터에 기반한 정치 기사는 어떤 모습을 띠는지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파이브서티에이트는 2020년 선거를 앞두고 이 매체는 주요 대선후보가 매 분기 신고해야 하는 선거자금 모금(fund-raising) 규모를 분석해 2020 미 대선 국면에서 단시간에 인기를 얻고 있는 후보가 누구인지 분석하는 기사를 내어놓았다.
이 기사는 후보별로 이른바 ‘큰손(Big-Donor)’의 기부금 규모와 ‘소액 기부자(Small-Donor)’로부터 받은 기금액을 나누어 분석함으로써, 어떤 후보가 어떤 계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며 눈길을 끌었다.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는 온라인상의 언급량과 화제성을 전문적으로 분석해 민심을 알아보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매체는 선거철이 되면 온라인 언급량 분석업체인 ‘유고브(YouGov)’의 자료를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을 거의 일 단위로 분석하는 ‘반응형(interactive) 기사’를 발행하는 한편 민주당 대선후보들의 프라이머리 승리 가능성을 예측하는 기사도 지속해서 업데이트했다.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는 스스로 데이터를 생산해 내기보다 기존에 나와 있는 데이터들을 가져서 와서 비교하고 통합하면서, 하나의 데이터만 가지고는 얻어내기 힘든 통찰을 제시하기도 한다. 2021년 말 이 매체는 텍사스 낙태 금지 법안과 관련해 기존의 관련 데이터들을 한곳에 모아서 비교함으로써 상당수의 미국인이 실제로는 낙태와 관련해서 강력한 지지나 반대 견해를 지니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새롭게 보여주었다.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는 선거철에만 데이터를 분석한 기사를 내놓은 것은 아니다. 지속해서 데이터에 기반한 기사를 생산한다. 최근에는 2020년 대선 이후 치러진 조지아주의 상원의원 선거와 버지니아 선거와 비교해 향후 대선을 점쳐보는 기사16)를 내놓았다. 대선 직후 치러진 조지아주 상원의원 결선투표에서 기존 공화당 상원의원이 점하고 있던 2석을 모두 민주당이 가져왔다. 조지아 1선거구에서는 30대 초반의 존 오소프(John Ossoff) 후보가 공화당의 70대 현직 의원 데이비드 퍼듀(David Perdue)를 득표율 50.5% 대 49.5%로 꺾었고, 조지아 2선거구에서는 라파엘 워녹(Rapahel Warnock) 후보가 역시 현직 의원인 켈리 뢰플러(Kelly Loeffler)에 50.9% 대 49.1%로 승리하여 조지아 역사상 최초의 흑인 상원의원이 되었다. 덕분에 상원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석은 동석인 50 대 50이 되었지만, 가부동수일 경우 상원 의장 역할을 하는 해리스(Harris) 부통령 당선자가 표결을 할 수 있기에(평소에는 부통령은 표결권이 없다) 민주당이 상원에서도 다수당이 될 수 있었다.
16) What 2021’s Biggest Upset Elections Tell Us About The Losing Parties (2021.12.6)
반면에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주로 분류되어온 버지니아의 경우에는 공화당 후보인 글렌 영킨(Youngkin)이 민주당의 맥컬리프(McAuliffe)를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조지아주에서는 공화당이 점유하고 있던 의석을 민주당이 차지한 반면, 민주당 강세주에서 공화당 주지사가 배출되는 상반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파이브서티에이트가 주목한 부분은 대선 당시 이들 지역에서 나타난 표심과 대선 이후 치러진 이 두 선거에서 표심에 어떤 차이가 생겨났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 기사는 동일 지역구의 득표율을 비교함으로써 2020 대선에서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훨씬 많은 득표를 한 선거구에서 영킨이 매컬리프와 비교해 훨씬 많은 표를 얻었음을 확인했다. 영킨은 버지니아의 트럼프가 큰 득표를 하지 못한 주요 선거구에서도 민주당 후보보다 더 많은 득표를 거두면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반면에 조지아주의 경우에는 비록 2석의 상원 의석을 모두 민주당 후보가 가져갔는데, 가령 퍼듀(Purdue) 공화당 의원의 경우엔 트럼프가 우세했던 선거구에서 모두 패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네이트 실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존재가 대선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오히려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서 1월호 조지아주지사 선거가 치러질 당시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여전히 대선 승리를 주장했던 점이 오히려 조지아주의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4월에 치러진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의 경우 그러한 트럼프의 주장은 이미 다 기각된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바이든 정부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동해 다시 공화당 후보의 당선이 가능했다는 것이 네이트 실버의 분석이다.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를 운영하는 네이트 실버는 자신의 저서 ‘신호와 소음’17)에서 무수한 정보들 속에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소음’을 제거하고 ‘신호’를 찾아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예측에 실패하는 것은 정보의 부족 때문이라기보다는 정보의 과잉 때문이다. 이처럼 넘치는 정보가 우리 판단에 장애를 일으킨다고 그는 지적한다. 양으로 보면 정보 대부분이 ‘신호’가 아니라 ‘소음’이라는 것이다. 21세기에 발생한 참사의 상당수가 소음에 가려 제대로 된 신호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실버는 주장한다. 예를 들면 9.11 테러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 등 일련의 사건에서 사전 예측을 가능하게 해주었을 많은 ‘신호’들이 있었음에도 이들 ‘신호’ 대부분이 ‘소음’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실버는 특히 선거와 관련한 뉴스들에 문제점이 많다고 봤다. 그는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선거 기사 대부분은 신호를 찾아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저 지면을 메우기 위한 ‘필러(filler)’일 뿐이라고 꼬집는다. 실버가 정치 관련 기사에서 신호를 찾아내기 위해서 데이터를 활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데이터의 등장과 조사기법의 발전 덕분에 데이터 저널리즘의 활용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화 조사나 설문과 같은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SNS 분석, 검색량 분석, 빅데이터 조사, 공론조사 등 새로운 방법론이 검증하고 있다. 포털에서 생산되는 정치 관련 각종 검색어 추이, SNS상에서 나오는 특정 후보에 대한 호감도, SNS상에서 정치인과 주변 그룹이 맺고 있는 네트워크 정도 등 지금까지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수많은 정보가 생산되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네이트 실버가 지금까지 시도했듯이 여태껏 ‘소음’에 불과했던 이들 정보로부터 어떻게 의미 있는 ‘신호’를 발굴해내고, 이를 새로운 저널리즘의 원천으로 활용하느냐 하는 일이다.
17) 네이트 실버, 신호와 소음(서울: 더퀘스트, 2021)
2. 내용보다 형식 : 악시오스(Axios)의 사례
정치 뉴스는 어렵다. 이 지점을 파고들면 뉴스의 전달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에 와닿게 된다. 온라인과 모바일 플랫폼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에 ’어떤 뉴스를 생산할까‘ 만큼 중요한 문제가 ’어떻게 뉴스를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지점을 파고든 것이 바로 정치 전문 매체 악시오스(Axios)이다. 2016년 탄생해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매체로 성장한 는 ‘똑똑한 간결성(smart brevity)’이라는 원칙에 따라 군더더기 정보를 다 떼고 꼭 필요한 내용만 압축하는 방식으로 모든 기사를 기본 300단어를 넘지 않게 서비스하고 있다. 물론 더 심층적인 정보와 기사의 맥락까지 이해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더 자세한 정보들은 별도의 영역에 제공한다. 모든 기사에는 이 문제가 ‘왜 중요할까(why it matters)’ 같은 핵심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간결하니 읽기 쉽고, 읽기 쉬우니 기억하기 쉽다. 모바일 기기에 최적화된 글쓰기다. 군더더기는 빼고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준다.
물론 악시오스의 강점이 ‘차별화된 글쓰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어느 매체보다 특종을 자주 터뜨린다. 작년 11월엔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사면 관련 특종을 터뜨렸다. 임기 두 달 남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 봐주기를 폭로한 것이다. 트럼프가 1월 초 발생한 의사당 난동 주범은 자신의 지지자가 아니라 안티파(ANTIFA, 극좌파)라고 주장했다는 특종 보도 역시 악시오스 작품이다. 하지만 악시오스의 사례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뉴스, 특히 정치 뉴스처럼 어려운 뉴스의 경우에는 내용 못지않게 전달방식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형식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언론 수용자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정치 뉴스의 전달방식과 관련해 주목해 볼 사례를 하나 더 든다면 바로 ‘팩트 체크’이다. 선거철이 되면 여러 매체는 후보자들의 발언 등을 검증하는 팩트 체크를 기획한다. 미국 3대 팩트체크 매체 가운데 하나인 ‘팩트체크(FackCheck.org)’는 2003년 출범한 이래 선거기간과 비선거기간을 구분해 선거기간에는 후보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비선거기간에는 의회 내 활동에 초점을 맞춰 상시적인 팩트체크를 수행한다. 워싱턴포스트는 팩트체크에만 특화된 ‘팩트체커(FactChecker)’라는 별도 조직을 운영하고 있으며 트럼프의 공약들을 이행/파기/추진 중/교착/타협/미평가의 6개 등급으로 평가했다. 또 2009년 팩트체크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폴리팩트(Politifact)’는 ‘진실척도(Truth-O-Meter)’라는 형식을 통해 선출직 공직자, 후보자, 정당 지도자 등 정치인의 주장을 6단계로 검증한다. 사실(True)/대체로 사실(Mostly true)/사실반 거짓반(Half true)/대체로 거짓(Mostly false)/거짓(False)/새빨간 거짓말(Pants on fire) 등으로 검증의 단계를 세분화하고 있다. 주요 정치인의 발언을 거짓 혹은 참으로 칼로 물 베듯 이분화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한 시도이다. 팩트 체크 매체들이 선보이고 있는 정치 뉴스 전달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는 점을 덧붙여둔다.
3. 스트리밍 영상 콘텐츠
OTT 스트리밍의 콘텐츠 하면 통상 막대한 제작 비용이 투입되는 시즌제 드라마나 혹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같은 것이 떠오른다. 하지만 최근 나온 데이터를 보면 OTT 구독자 유치 경쟁이 심화할수록 구독자들을 잡아둘 수 있는 강력한 유인책이 바로 뉴스와 다큐멘터리 장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스트리밍 시장 분석 회사 패럿 애널리틱스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유사 뉴스 콘텐츠(news-adjacent content)’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자료를 내놓았다.18) 패럿 애널리틱스의 알레얀드로 호야스는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자들 입장에서 다큐멘터리 장르는 구독자들이 이탈하지 않고 유지하도록 해주는 매우 유용한 도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강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패럿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2021년 3월 사이에 이들 OTT 업체들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물은 63% 정도 증가했는데, 이는 같은 시가 142%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 다큐멘터리와 시사물에 대한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 수치였다.
실제로 주요 OTT는 다큐멘터리 적인 성격을 가진 시리즈물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넷플릭스는 영화배우 등 유명인들이 관련된 미국 대입 스캔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Operation Varsity Blues’를 선보였다. HBO 맥스(HBO Max)와 넷플릭스는 각각 ‘Fake Famous’, ‘The Social Dilemma’라는 제목의 시사 제작물을 방영했는데, 이들 작품은 모두 선거를 앞두고 가짜 뉴스 확산의 진원지가 된 SNS의 위험성을 다루었다. ‘쇼 타임(Showtime)’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 의사당 폭동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Kingdom of Silence’라는 다큐멘터리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에 의해서 살해된 의혹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 문제를 다루었다. 디스커버리 플러스(Discovery+)도 게임스톱(GameStop)의 이슈를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해 호평을 받았다.
18) Streamers chase current events (2021.3.30.)
CNN도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어떤 정치 콘텐츠가 소구력을 지닐 수 있는지 좋은 사례를 내어놓았다. CNN은 지난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정치 다큐멘터리 한편을 선보였다.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여한 대선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취재하는 ‘전담(embedded)’ 여성 리포터나 카메라맨 10명을 주로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이 프로그램은 기자들의 취재 현장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민주당 후보들의 경선 과정을 비추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취했다. 정치인들을 취재하는 여기자들의 개인적인 모습과 가족들, 또 생활인 혹은 엄마, 또는 딸로서의 모습까지 함께 영상 속에 녹여 넣었다.
CNN은 이러한 방식을 취함으로써 딱딱한 정치 콘텐츠에 재미와 훈훈함을 불어넣었다. 정치인들의 일상을 쫓아가는 리포터들과 카메라맨들의 모습, 그리고 아이오와 코커스 등을 취재하는 모습, 방송 전 스탠바이 모습 등을 후보들의 모습과 실제 이들의 방송 리포팅 화면 등과 함께 편집한 이 프로그램은 기존의 정치프로그램과 확연하게 차별화된다. 특히 여성으로서 또는 흑인으로서 혹은 라틴계 여성 카메라맨으로서 그들의 느껴온 삶의 문제들을 보여주고, 그 문제들이 그들이 정치를 취재하는 동력이 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정치는 정치를 취재하는 리포터와 카메라맨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무엇이라는 점을 이 다큐멘터리는 보여준다. 이러한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온 더 트레일은 새로 출범한 HBO MAX에서 가장 많이 소비된 정치 콘텐츠가 될 수 있었다.
디즈니플러스나 넷플릭스를 넘볼 강력한 OTT 강자로 꼽히고 있는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도 예외가 아니다. 아마존 프라임은 영화나 드라마 관련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전면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지만, 다큐멘터리 시사물 분야에서는 비교적 활발하게 제작물을 방영하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 ‘올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All-In, The Fight for Democracy)’도 OTT가 선거를 앞두고 내어놓은 오리지널 콘텐츠로 주목을 받았다.
4. 출구조사
선거 콘텐츠의 최전선에 출구조사가 있다. 선거 과정에서 축적된 정보들이 결국은 선거 당일 개표 결과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출구조사 협의체인 NEP(National Election Pool)를 본떠 한국에서 지상파 공동출구조사 풀(KEP:Korea Election Pool)을 만든 지 이제 10년이 흘렀다. 한국의 출구조사도 운영방식과 조사방법론 두 측면에서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할 시점이 되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 3사 사장단 회의에서 이미 올해 총선에서 출구조사 시행에 대한 강한 회의론이 나왔다. 75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0총선 출구조사 비용을 투입하면서 특히 총선에서 반복되는 의석수 예측 실패 리스크를 감내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이다. 이러한 회의론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 출구조사가 직면한 주요 문제점을 중심으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출구조사 운영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한국의 출구조사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먼저 거의 40%에 육박하는 사전 투표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출구조사를 비롯한 여론조사에서 숨어있으면서도 일관된 편향성을 보이는 유권자 그룹의 규모와 편향의 정도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악화하고 있는 지상파 재정 상황 속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조사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출구조사와 관련된 일반론을 잠깐 살펴보자면, 미국에서는 2003년 이래 출구조사 수행 풀인 NEP(National Election Pool)가 결성되었다. 이 컨소시엄에는 ABC, CNN, NBC, CBS, Fox news, 그리고 AP 등 모두 6개 언론사 및 통신사가 참여해 왔다. 이들은 ‘에디슨리서치(Edison Research)’라는 조사업체에 출구조사를 위탁해 왔다. 그러던 것이 2017년 AP 와 폭스뉴스(Fox new)가 자체적으로 대안적인 조사 방법을 도입하겠다며 20년 동안 함께 출구조사 작업을 해왔던 NEP를 탈퇴하면서19) 이제 함께 NEP를 구성해 출구조사를 수행하고 있는 언론사는 4곳으로 줄어든 상태다. NEP는 전통적인 방식의 선거 당일 면접원의 대면 조사를 고수하고 있다. 에디슨 리서치의 부회장인 조 렌스키(Joe Lenski)는 “언제나 투표자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투표했는지 물어봐야 하는 공간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해서 출구조사의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인 입장을 보인다. 반면 AP 와 폭스뉴스는 기존의 출구조사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인 새로운 방식의 조사에 대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AP나 폭스뉴스의 방식이 아직 기존의 대안을 완전히 대체할 정도로 검증된 방법은 아닐지라도 이들이 어떤 시도를 하고 있는지, 그 성공 여부에 관심을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19) Is this the beginning of the end of the exit poll? (2017.12.9)
https://www.politico.com/story/2017/12/09/exit-polls-election-day-frustration-287913
(1) 늘어나는 사전 투표의 문제
2017년 한국 대선에서 사전투표율은 26.1%였다. 2020년 총선에서 사전투표율은 더 높아져 26.7%였다. 4명 중 1명이 사전 투표에 참여한 셈이다. 코로나 등 상황에서 사전투표율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도 사정이 비슷해서, 2020년 대선에서 사전 투표자와 우편 투표는 1억 명을 훌쩍 넘어섰다.
한국에서는 출구조사 수행 컨소시엄인 KEP는 선관위로부터 사전투표자의 지역, 성별, 연령 등 인구통계학적 자료를 받는다. 선거 당일에 출구조사를 통해 조사된 해당 셀의 조사 결과를 이 사전투표자에게 그대로 투영해서 전체 선거 결과를 예측한다.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는데 사전투표자와 선거 당일 투표자의 투표 성향이 비슷하거나 일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개표 결과는 사전투표자와 선거 결과가 일치하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사전투표자의 경우 선거 당일 투표자에 비해서 훨씬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전 투표자에 대한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 CNN과 ABC 방송 등은 조기 현장 투표와 우편 투표에 대한 예측치도 출구조사에 반영하는 등 기존의 방법론을 수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CNN은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텍사스 같은 중요한 주에서 조기 현장 투표자의 큰 비중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 한 달간 8개 주의 조기투표소를 임의로 선정해 선거일에 했던 것과 같은 직접 인터뷰를 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출구조사엔 모든 주의 우편 투표자에 대한 전화 조사도 포함된다”라고 했다. ABC도 “출구조사는 선거일 전 투표자를 빠뜨리기 때문에 모든 유권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위해선 이들을 데이터에 포함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조기 투표자에 대한 데이터를 출구조사에 반영해 “완전한 모습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선거 전문 매체 파이브서티에잇(538)은 “대유행 관련 변화가 출구조사를 더욱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들고, 올해는 (결과를) 오도할 수 있다”라며 “538은 적어도 선거일 밤까지는 출구조사를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출구조사 방송사 컨소시엄에 들어가지 않은 폭스뉴스의 의사결정 디렉터인 아논 미쉬킨(Arnon Mishkin)은 “폭스가 (출구조사에서) 철수한 것은 출구조사가 2016년 40%를 기록했던 조기투표조차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더 많은 조기투표가 올해 선거의 출구조사를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6년에 주요 방송사 4곳은 개표 초기 출구조사를 토대로 힐러리가 트럼프를 이길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트럼프 선거 참모인 코레이 르완도스키(Corey Lewandowski)와 데이비드 보시(David Bossie)는 최근 출간된 책에서 “오후 5시가 조금 지난 시점에 ABC뉴스의 크리스 블라스토(Chris Vlasto)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11개 경합 주 중에서 8곳에서 트럼프가 5~8% 포인트 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너무나 절망적인 소식이었다”라고 전하고 있다.
2016년 출구조사의 실패 이후 CNN과 ABC 방송 등은 기존의 대면 조사 관행을 유지하되 여러 보완책을 모색했다. 그중 하나가 우편 투표자에 대한 전화 조사이지만, 이 역시 오류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실제 사전 투표나 우편 투표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 전화 조사에서 투표했다고 거짓 응답했을 경우 예측치에는 큰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NEP를 탈퇴한 AP나 Fox News는 새로운 방법론을 실험했다. 2017년 11월에 있었던 뉴저지와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폭스뉴스는 더욱더 폭넓은 조사를 위해서 실험적으로 투표자와 비투표자 모두를 대상으로 전화 조사와 인터넷 인터뷰를 실행했다. 투표자와 비투표자 사이에 어떠한 인구통계학적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예비조사였다. AP의 경우엔 투표 당일 대면 조사 대신, 휴대전화에 있는 위치추적 기술을 이용해 투표소를 떠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 조사를 시행했다. 이 조사는 투표당 일 출구조사와는 달리 조사원이 없이 수행되는 덕분에 저비용일 뿐 아니라, 사전 투표일에 투표소를 다녀온 사람들까지 조사대상을 확장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였던 데이빗 페이스(David Pace) 뉴스 에디터는 이 프로젝트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프로젝터는 휴대전화의 사용자 위치정보(geolocation)를 사용해, 조사참여자들이 투표 당일이나 사전 투표일에 투표장에 다녀왔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일단 이 정보가 확인되면 그들의 휴대전화로 출구조사 질문지를 받아서 답변할 수 있게 고안했습니다.” 20) 이러한 실험을 토대로 2018년 중간선거부터 AP는 기존의 대면 조사(in-person)를 벗어난 새로운 조사방법론을 통해서 선거 결과를 예측했다. 아직 그 구체적인 방법론이 확립됐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러한 시도는 사전 투표 등이 크게 늘면서 기존의 출구조사의 한계점이 분명해지면서 나온 자구책 성격이 강하다.
AP 와 폭스뉴스는 새로운 방법론은 찾기 위한 실험을 약 10년 전부터 시도했는데 이를 위해서 시카고 대학(The University of Chicago)의 NORC라는 연구센터와 함께 ‘AP VoteCast’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웹사이트에는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방법론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단서가 공개되어 있다. “보트 캐스트는 출구조사가 맞고 있는 새로운 도전을 극복하고 선거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등록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무선확률 표집을 통해 표본을 모으고, ‘수신 동의(opt-in)’ 한 대규모 온라인 패널을 세심하게 측정하는 두 가지 방법을 혼용해 최선을 결과를 내려고 한다. 무선확률표집에 의한 조사의 정확성, 그리고 조사에 동의한 수많은 사람들(패널)을 신속하게 인터뷰하는 조사의 규모 두 가지 말이다. 보트 캐스트는 투표소에서 진행되는 대면 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투표 당일 이전에 70% 이상의 투표가 이미 이뤄진 코로나 상황에서 치러진 2020년 선거에서 등록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아내기에 매우 유리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 AP 와 NORC는 보트 캐스트의 방법론과 결과, 그리고 긴 시간 동안 이뤄질 지속적인 보트 캐스트 방법론의 개선에 최선을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21)기존의 출구조사 콘소시엄과 결별을 단행한 AP와 폭스뉴스가 과연 기존 출구조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어떠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낼지, 또 ABC, NBC, CNN 등 기존의 출구조사 풀에 소속된 언론사들은 2016년, 2020년 선거에서 맞았던 새로운 도전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20) Is this the beginning of the end of the exit poll? (2017.12.9)
https://www.politico.com/story/2017/12/09/exit-polls-election-day-frustration-287913
21) AP VoteCast
(2) 오류 편향의 문제
최근 출구조사와 관련해서 늘어나는 사전투표 문제와 함께 대응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특정 유권자 그룹이 조사에서 과소표집 되는 문제이다. 어떤 선거에서는 보수 층이 숨고 다른 선거에서는 진보 층이 숨는다. 이 문제가 가장 여실이 드러나는 선거가 바로 총선이다. 대선이나 지방선거에서는 선거구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대선에서는 전국이 하나의 선거구고, 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장의 경우엔 18개 시도 단위가 하나의 선거구이다) 이러한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총선에서는 지역구의 숫자만 해도 250개에 이르기 때문에 특정 진영의 과대표집이나 과소표집이 예측의 실패로 이어진다.
실제로 방송 3사는 대선이나 지방선거에서 족집게 예측은 해온 것과는 정반대로 총선 출구조사에서는 1당 예측에 성공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출구조사는 엉터리 조사였는가? 전체 의석수 대비 당선자 예측 성공 비율을 보면 그렇게 말하기는 힘들다.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2012년 총선에서는 246곳의 지역구 가운데 17곳, 2016년 총선에서도 252곳의22) 지역구 가운데 17곳의 지역구에서 당선자 예측에 실패했다. 두 총선에서 모두 적중률은 93%가 넘는다.23) 당선자 예측에 실패한 17곳의 선거구는 대부분 1.2위 득표율 차이가 5%포인트 이내의 고경합 선거구였다. 2016년 총선에서는 1‧2위 득표율 차가 5%포인트 이내였던 선거구가 모두 69곳이었고 1‧2위 득표율 차이가 1%포인트 이내인 초고경합 지역구도 13곳이나 됐다. 통상 총선에서 수도권 지역구의 최소 표본오차가 ±2.3%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론적으로 1‧2위 득표율 차가 5%포인트 이내인 지역구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예측이 불가능한 셈이다. 총선에서 일부 지역구의 경우 단 몇 백 심지어 수십 표 차이로 당선자가 갈리는 곳도 있음을 떠올려보면, 득표율 차이가 표본오차 내인 선거구에서의 예측 실패는 표본추출을 통해 모집단을 추정하는 통계적 기법의 근본적 한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역구에서 당선자 예측 오류는 불가피한 점이 있다. 그러나 일부 지역구의 예측 오류에도 불구하고 전체 1당 예측에는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하는 최우선 과제는 ‘오류의 편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만약 10곳의 지역구에서 당선자 예측에 실패했을 경우에 5곳에서는 민주당 의원 당선을 예측했지만 개표 결과 자유한국당 의원이 당선되었고, 나머지 5곳에서는 자유한국당 의원 당선을 예측했지만 개표 결과 민주당 의원이 당선되었다면 결국 예측 실패의 방향성이 서로 상쇄되면서 전체 의석수 예측에는 성공할 수 있다. 과거 의석수 예측 실패가 고스란히 1당 예측 실패로 이어진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몇몇 지역구에서 당선자 예측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지역구에서의 예측 실패를 야기한 오차가 특정한 방향성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총선 예측과 실제 개표 결과를 표시한 다음 표를 보면 이해가 쉬워진다.24)
22) 2016년 출구조사 대상 253곳의 선거구 중 경남 통영고성 선거구는 무투표 당선 선거구로 예측 대상선거구에서 제외되었다.
23) 실제로 1위와 2위 득표율에 대한 예측 오차도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 있다. 총선에서 1‧2위 예측오차의 합은 2008년 총선에서 3.59%포인트였던 것이 2012년 1.81%포인트로 줄어들었고 2016년 총선에서는 1.49%포인트로 감소하였다.
24) 1대 총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 워크숍 자료집
예측이 실패한 17곳 가운데 13곳에서 민주당 의원의 당선을 예측했는데 개표 결과 새누리당 의원이 당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한국당 의원의 당선을 예측했지만 민주당 의원이 당선된 지역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예측이 모두 한 방향으로 틀려버린 것이다. 추가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이 출구조사에서는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조사를 거부하거나 거짓으로 조사에 응하는 방식으로 숨어버림에 따라 새누리당 표가 과소추정되었을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그 결과 민주당이 지역구에서만 5석 차이로 1당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크게 빗나가게 되었다. 새누리당은 당초 예측보다 13곳을 더 얻게 되었고, 민주당은 예측보다 13곳을 더 적게 얻었으니 결국 26석의 오차가 생기면서 1당 예측에 실패하고 말았다.
미국에서도 선거에서 특정한 정치색을 가진 집단이 과소표집 되는 비슷한 편향이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조사업체에게 가장 아픈 기억은 2016년 트럼프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힐러리가 줄곧 앞섰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트럼프가 승리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여론조사업계는 2016년 실책을 스스로 분석25)하고 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여러 새로운 방식을 내놓았다. 그 결과 2018년 상하원의원 선거에서는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이 정확히 선거 결과를 예측해 내기도 했다. 당시 조사업체들은 예측조사가 틀린 이유로 트럼프 주요 지지자인 백인 저학력층(소위 샤이 트럼프)에 대한 과소표집 문제를 꼽았다. 또한 전국단위 여론조사와 주별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26) 방식의 선거제도 사이의 간극 문제도 지적됐다. 특히 주별 여론조사의 경우 2016년 선거에서는 대졸자와 고졸자 사이의 지지자 양극화가 심각했는데, 대졸자가 여론조사에 더 잘 응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나머지, 트럼프를 주된 지지자였던 고졸자들이 과소표집 되면서 트럼프의 열세가 예측되는 오류가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인구밀집지역인 도시에서 과대표집이 되고, 트럼프 지지자들이 비교적 많이 분포하는 인구밀도가 낮은 교외지역에서 과소표집이 될 경우 주별 후보 지지도에 큰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아울러 힐러리에 대한 비호감도가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에서도 작용해 상대적으로 힐러리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타났다는 지적도 있었다.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선거 결과 예측에 활용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라는 점이 2016년 선거 이후에 더욱 부각되었다.27)
2016년 미국여론조사협회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받은 스콧 키터(Scott Keeter)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 선임조사고문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론적으로는 응답률이 높을수록 편향 가능성이 낮아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응답률이 매우 높아도 편향성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며 “편향성은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사에 응답할 가능성이 큰지’와 ‘조사기관이 그러한 종류의 사람들을 가중치를 통해 교정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 설명했다. 또 교육을 더 많이 받거나 정치에 더 관심 있는 집단에 속한 이들은 다른 사람보다 여론조사에 더 잘 답변하는 특징이 있다”며 “이런 요소를 고려해 적절한 가중치를 줘서 여론조사 수치를 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매우 놀랍게도 이러한 가중치 조정이 매우 낮은 응답률을 보인 여론조사에서도 효과를 발휘한다”고 덧붙였다.
조사를 통해 특정 정치집단이 가진 편향을 파악하기기는 매우 힘들다. 하지만 스콧 키터의 지적은 가중치 조정이 편향을 수정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가중치 조정은 양날의 검이다. 잘 사용될 경우 특정 집단의 과소표집, 혹은 그들의 포착되지 않은 정치적 편향성을 개선할 효과적인 방법이 되지만, 자칫 잘못 사용될 경우 기존의 오류를 더욱 가중시킬 수도 있다. 더구나 가중치를 잘못 적용해 오류가 더 커질 경우 가중치 적용을 결정한 의사결정자는 더 큰 설명의 책임을 지게 된다. 결국 어떤 방향으로 어느 정도 크기의 가중치를 적용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26) 한 주를 선거구로 하여 주내에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그 주에 할애된 모든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는 대통령 선출 방식
27) Pew Research Center, A Field Guide to Polling: Election 2020 Edition.
https://www.pewresearch.org/methods/2019/11/19/a-field-guide-to-polling-election-2020-edition/
(3) 비용의 문제
출구조사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법에는 크게 2가지 정도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지상파 3사로 제한해온 출구조사 풀에 참여하는 언론사의 숫자 N을 늘리는 방식과, 정교한 사전 경합도 조사를 실시하고 경합도가 높은 지역구만을 선별적으로 골라 출구조사를 실시함으로써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해봄직 하다. 하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출구조사 풀을 확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2017년 이후 출구조사 수행 조사 컨소시엄에서 AP와 Fox News가 탈퇴하면서 현재는 단 4곳만 전통적인 출구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그만큼 개별 언론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늘어난 셈이다.
때문에 기존의 대면조사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이는 새로운 조사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같은 전면적인 출구조사 보다는 전화조사 등으로 대체된 선별적인 출구조사를 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상황에서 출구조사를 수행하고 있는 에디슨 리서치는 2500개에 이르는 조사 투표소를 골라내는 정교한 샘플링 방법이나 무응답자의 편향을 보정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유권자 등록이라는 한국에는 없는 제도가 존재하고 미국에서는 대면 여론조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미국 주요 선거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약 10만 명 정도를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예측의 정확도 확보해 왔다. 또 미국에서는 대선의 경우 50개 주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지만, 중간선거의 경우에는 통상 50개주 가운데 절반이 약간 넘는 26개 주에서만 출구조사가 진행한다. 각 주마다 많게는 수십 명을 뽑는 연방 하원의원 선거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보면 가장 많은 출구조사 비용이 드는 총선의 경우, 250개에 이르는 모든 선거구에 대해서 대면조사를 실시하는 대신, 1‧2위 후보간 격차가 큰 지역구는 배제하고, 비교적 접전이 예상되는 선거구를 별도로 판별해 이들 선거구에 더 많은 조사 자원을 투입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하겠다.
5. 여론조사
2021년 11월 프랑스 최대 지역일간지 ‘우에스트 프랑스(Ouest France)’가 2022년 대선에는 지지 정당 혹은 후보자 관련 여론조사에 대해 그 어떤 보도도 싣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럽 각국에 여론조사 보도와 관련해 큰 논쟁이 일었다. 이 신문의 편집국장, 프랑소와-자비에 르프랑은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는 “여론조사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론조사를 마치 진실인 양 언론이 대대적으로 호도하는 것에는 반대한다”28) 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서 프랑스 내부에서는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는 용기 있는 결단이라는 입장과 너무 이상적인 도덕적 판단이라는 입장이 맞서기도 했다.
우에스트 프랑스의 결정 이후 ‘르 몽드’의 전 편집국장 ‘뤽 브로뇌르’의 여론조사에 대한 심층 보도를 내놓았다. 그는 수백 개의 설문 조사에 참여한 후 온라인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수행되고 있는 여론조사의 불투명성을 해부했다. 조사기관들이 “실질적인 통제 없이 인터넷에서 모집한 패널들을 대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는 대신 낮은 보수를 제공한다”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이에 ‘르 몽드’는 자체적으로 엄정하고 투명한 방식의 여론조사 방법을 고안하기로 했다.
프랑스 언론에서 오간 여론조사 관련 논쟁은 한국에도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먼저 여론조사는 더 엄밀한 기준에서 수행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고품질의 여론조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기존의 조사들에 대한 공개적인 평가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고품격의 조사가 이뤄지더라도 그 결과에 대한 해석을 경솔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28) The “Ouest-France” newspaper will not publish political polls before the presidential election (2021.10.25)
(1) 엄격한 조사 기준
우선 휴대전화의 보급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낮은 응답률’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여론조사 연구기관인 퓨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전화 조사 응답률은 1997년 36%였지만, 2020년에는 6%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29)
문제는 한국의 경우 많은 선거 여론조사가 1~10% 정도 응답률을 보이는데, 이 응답률을 개념이 국제기준으로 환산하면 더 낮아진다는 사실이다. 지금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응답률’의 정의는 미국 여론조사의 응답률과 다르다. 한국에서는 ‘전화 연결이 된 사람들’ 중에서 ‘끝까지 설문에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을 계산해 ‘응답률’이라고 부른다. 가령 표본 수 1,000명을 조사 완료했는데, 이 조사의 응답률이 10%라는 뜻은 10,000명이 전화를 받았고, 그중에 1,000명이 조사에 끝까지 응하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통상 10,000명이 전화를 받게 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수, 가령 100,000 명의 유효한 번호가 필요하다.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개념화한 것이 ‘접촉률’이다. 가령 100,000개의 유효한 번호에 전화를 걸어 10,000명이 전화를 받았다고 하면 접촉률이 10%가 된다. 1,000명이 조사에 끝까지 응하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통상 10,000명이 전화를 받게 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수, 가령 100,000 명의 유효한 번호가 필요하다.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개념화한 것이 ‘접촉률’이다. 가령 100,000개의 유효한 번호에 전화를 걸어 10,000명이 전화를 받았다고 하면 접촉률이 10%가 된다.
한국에서 말하는 ‘응답률’은 분모가 전화를 받은 수이고 분자가 답변을 완료한 번호의 수인 반면, 미국여론조사협회(AAPOR)에서 정의하는 ‘응답률’은 분모가 조사대상인 유효한 번호이고 분자는 응답을 완료한 번호의 수가 된다. ‘전화 연결이 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화 연결이 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고려해야 ‘응답률’로 부를 수 있다는 게 미국여론조사협회의 입장이다. 즉 전화 연결이 되든, 되지 않든 여론조사기관이 전화를 시도했던 모든 사람 중 끝까지 응답한 사람의 비율을 계산해야 ‘응답률’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미국여론조사협회(AAPOR)에서 사용하는 응답률(response rate)은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응답률에 접촉률(contact rate)을 곱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곱하면 ‘적격 응답자 중 조사에 성공한 비율’이 된다. 미국여론조사협회에서는 한국에서 말하는 ‘응답률(Response Rate)’을 ‘협조율(Cooperation Rate)’30)로 부른다. 당연히 같은 기준을 적응해 미국 기준의 ‘응답률’을 구하면 분모가 훨씬 커지면서, 한국의 ‘응답률’은 훨씬 낮아진다. 아래 표는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29) A Field Guide to Polling: Election 2020 Edition (2019.11.19)
https://www.pewresearch.org/methods/2019/11/19/a-field-guide-to-polling-election-2020-edition/
“While evidence suggests that well-funded, telephone-based surveys still work, they have become much more difficult and expensive to conduct. Difficult because the swarm of robocalls Americans now receive, along with the development of call blocking technologies, means that lots of people don’t answer calls from unknown numbers. Response rates have gone from 36% in 1997 to 6% today.”
30) Response Rates – An Overview
특히 응답률이 낮은 ARS 조사의 경우엔 문제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미국 CNN 방송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녹음된 설문 문항을 기계가 들려주는 방식(robocall)의 전화 여론조사 결과는 보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전화 조사는 ‘조사원이 직접 통화해(live interview)’ 응답을 얻은 것만 리포트에 사용하겠다고 했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수치이기 때문이라는 게 CNN의 설명이다. 한국에서도 한국기자협회가 마련한 ‘여론조사 보도 가이드라인’에는 조사의 정확성과 낮은 응답률 등의 이유로 ARS 조사를 인용해 보도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물론 응답률이 높다고 더 좋은 조사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조사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 ARS 조사가 오히려 솔직한 응답을 끌어내기 때문에 전화 면접원 조사보다 더 정확하다는 반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과서적으로 보면 표본의 수보다는 표본이 모집단을 대표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본의 대표성을 확보하기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 무작위로 선정된 샘플의 수를 늘리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로 미국 내 대표적인 사회조사 기관인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는 응답률이 높다고 더 좋은 여론조사라고 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응답률이 4% 아래로 내려가 1%대까지 떨어진다면 그 조사의 정확성을 담보할 증거를 찾기 힘들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32)21대 국회의원 선거 1117개 여론조사들의 ‘국제 기준 응답률’은 평균 3.9% 수준이라는 점33)을 볼 때, 낮아지고 있는 응답률을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해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미국여론조사협회는 접촉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일단 접촉을 시도했던 번호에 대해 여러 차례 재통화를 시도해, 최대한 미응답 번호의 숫자를 줄일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지표조사(NPS)가 5회 재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재접촉을 5회나 하기 위해서는 결국 조사 기간이 늘어나야 하고, 이는 조사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면접조사를 하거나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 역시 결국 비용 증가를 수반한다. 결론적으로 양질의 여론조사를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값싼 여론조사가 난무하는 이유는 선거철에 주요 후보의 지지율 변화에 관한 기사가 가장 많이 소비되는 콘텐츠이기 때문일 것이다. 적은 비용을 투입해 많은 조회수를 거두려는 우리 언론의 상업주의와 엄밀한 조사 결과를 얻기보다는 일단 기사를 쓰고 보자는 무책임한 태도가 그 이면에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한국보다 엄격한 ‘응답률’ 개념을 사용하고, 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론조사와 관련된 한국의 기사 작성 관행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31) 헤럴드 경제, “10%가 3.9%로”…‘국제기준’으로 너무 낮은 응답률 (2020.5.4)에서 발췌
32) A Field Guide to Polling: Election 2020 Edition (2019.11.15)
https://www.pewresearch.org/methods/2019/11/19/a-field-guide-to-polling-election-2020-edition/
“The good news is that Pew Research Center studies conducted in 1997, 2003, 2012 and 2016 found little relationship between response rates and survey accuracy, and other researchers have found similar results. The bad news is that it’s impossible to predict whether this remains true if response rates go down to 4%, 2% or 1%, and there is no sign that this trend is going to turn around as peoples’ technology habits continue to evolve.”
33) 위의 헤럴드경제 기사 참조
(2) 과소표집의 문제
2020년 대선에서 미국의 여론조사업체들도 앞서 지적한 2016년의 실패를 교훈삼아 많은 개선책을 마련했지만, 예측이 꼭 성공했다고 보기만은 힘든 점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플로리다주에서 박빙, 혹은 바이든의 우세를 점쳤지만 실제로는 플로리다에서는 트럼프가 압승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여론조사가 정확하지 않았던 이유로 플로리다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히스패닉계 유권자나 쿠바계 라틴 인구 등의 여론을 정확하게 읽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바이든의 우세를 점쳤던 다른 경합주에서도 여론조사보다 두 후보간의 격차가 많이 좁혀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러스트 벨트(Rust Belt)’ 주에서는 바이든이 크게 앞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개표 결과 격차는 조사 결과 만큼 크지는 않았다. 16년의 경우엔 당선자 예측에 실패했기에 그 실패가 더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2020년에는 당선자 예측에는 성공해 큰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세부사항을 보면 역시 여론조사의 정확도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그나마 여러 여론 조사 업체 가운데 가장 적중률이 높았던 곳은 IBD/TIPP 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이 조사업체는 2016년에도 트럼프의 깜짝 당선을 예측해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IBD/TIPP가 다른 여론조사와 차이점을 보이는 부분은 어느 부분에 가중치를 두는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등록된 투표자들 중 어느 누가 대선 때 투표를 할 것인지 가능성을 계산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높아진 사전 및 우편 투표 때문에 투표장에 나온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해온 출구조사가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IBD/TIPP의 이같은 접근법은 주목해볼 필요성이 있다.
(3) 조사에 대한 공개 평가
상당수의 한국 언론들이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오차범위 내의 후보자 지지율의 변동이 엄청난 기사 가치가 있는 것처럼 다루는 기사를 쏟아낸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지지율 조사인데도 결과는 천차만별일 때도 많다. 애써 그 이유를 설명해 보지만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비슷해 보이는 여론조사라도 하더라도 조사의 질에는 큰 편차가 존재하며 좋은 조사와 나쁜 조사는 다르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론조사는 어떤 표본틀을 사용하는지, 어떤 조사 방식으로 조사를 하는지에 따라 그 여론조사의 신뢰도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비록 신뢰도가 반드시 실제 여론의 추이를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고, 실제로 선거 결과와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여론조사가 좋은 여론조사인지 나쁜 여론조사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준(가령 응답률, 접촉률, 재응답률 등)은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그러한 판단이 없이 모든 여론조사를 동일한 하나의 여론조사로 취급한다는 데 있다. 선거철이 되면 포털에는 선거와 관련된 기사와 각종 여론조사를 한 사이트에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선거페이지를 운영하는데, 이 페이지에는 모든 언론사의 여론조사가 단순히 하나의 점으로 표시될 뿐이다. 수십만 원이면 수행이 가능한 집 전화 대상 ARS 조사나,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해 면접원들이 수행한 수억원 짜리 정교한 여론조사나 동일한 여론조사 한 건으로 취급되고 마는 것인 현실이다.
물론 한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 https://www.nesdc.go.kr/portal/main.do ) 선거철에 실시되는 모든 선거여론조사를 등록하고, 조사에 사용된 표본틀‧조사방법 등 일체의 내용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주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표본틀을 사용하거나, 의도적으로 여론을 조작하기 위한 조사 등 문제가 될 만한 선거여론조사를 적발하고 각종 제재를 부과하는 것을 주요 활동으로 하고 있어서, 그밖에 개별 여론조사가 얼마나 좋은 조사인지 그 신뢰도를 평가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선거 전문 매체인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의 시도는 참신해 보인다. 파이브서티에이트는 2012년 오바마 당선을 유일하게 예측해 유명세를 얻은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가 네이트 실버(Nate Silver)34)가 운영하는 여론조사 및 정치 뉴스 전문 매체로 최근 ABC에 인수돼 운영되고 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이 매체는 선거철이 되면 이뤄지는 각종 여론조사를 모두 가져와 표시하고 각종 조사에서 나타난 수치의 평균을 구한다. 물론 단순 평균은 아니고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평가해 신뢰도가 높은 조사에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고 신뢰도가 낮거나 전체 분포에서 ‘이질적인 수치(outlier)’는 배제하는 방식으로 여론을 추론해 내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네이트 실버는 개별 조사의 방법론과 샘플 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여론조사의 신뢰도에 따라서 A, B, C 등의 등급을 매기고 이를 공개한다. 아래 표에서 보면 ABC가 20201년 9월 21일에 실시한 여론조사는 A 플러스 등급을 받은 것으로 알 수 있다.
34) 지난 2008년과 2012년 미국 대선은 이미 선거에 있어서 빅데이터 활용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는지 입증해 주었다. 당시 네이트 실버(Nate Silver)는 2008년 대선에서 뉴욕타임스의 자매 블로그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를 운영하면서, 미국의 50개 주 중 49개 주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했고, 총선에서도 상원 당선자 35명 전원을 적중시켰다. 2012년 대선에서 수많은 여론조사기관이 롬니의 승리를 예측한 가운데, 그는 빅데이터 분석에 기초해 오바마의 승리를 예측했고, 50개 주의 결과를 모두 맞히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파이브서티에이트가 제공하는 이런 서비스를 보다 보면, 여론조사를 볼 때 어떤 기관에서 조사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과 개별 여론조사보단 여론조사의 평균을 보는 것이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위의 표에서 보면 라스무센이라는 기관에서 2020년 9월에 수행한 조사에서는 바이든이 트럼프를 1% 포인트 차이로 이기고 있는 결과나 나왔는데, 파이브서티에이트는 이 조사에 대해서 C 플러스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당시에 이 조사에 근거해 ‘트럼프-바이든 여론조사 지지율 박빙’ 등의 기사들이 나왔는데, 파이브서티에이트는 이 결과가 당시에 수행된 다른 여론조사의 평균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고, 이 조사에 사용된 조사방법론이 그다지 신뢰할만하지 않다는 점을 다른 여론조사와의 비교평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라스무센은 트럼프 지지율이 타 기관 대비 평균적으로 6~10% 정도 높게 잡히는 여론조사 기관이었으며, 18년 상·하원 선거에서는 홀로 공화당 승리를 예측하면서, 홀로 예측에 틀린 조사기관이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조사의 특성 때문에 2016년에 트럼프 당선을 예측했고, 그 이유로 신뢰도가 낮지만 여전히 인용되고 있는 조사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KBS가 다른 언론사 등에서 시행한 여론조사에 대해서 이러한 등급 평가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철이면 매번 우후죽순 마구잡이로 여론조사가 시행되고 있고, 그 여론조사에 근거해 여론 추이에 중요한 변동이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주는 기사가 양산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볼 때, 조사업체 및 학계와 함께 조사의 신뢰도 등을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에 따라서 여론조사와 관련된 기사를 작성하는 새로운 시도가 우리 언론에 필요한 시점이다.
Ⅳ. 나오며
지금까지 미국 미디어 산업의 혁신 방향을 살펴보고, 급격한 변화 속에서 시사 및 뉴스 콘텐츠, 특히 정치 콘텐츠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미국 미디어 산업계의 지각변동은 그 어떤 영역보다도 전면적이고 혁명적이다.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타임스 같은 전통의 언론사들이 영향력을 급격하게 상실했고, 방송사들도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빈자리는 OTT로 상징되는 새로운 미디어 산업의 강자들이 대신했다. 수요는 있었지만 공급이 부족했던 시장을 적극적으로 파고들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낸 신생 미디어 스타트업도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추세를 정확하게 읽는 것은 미디어 스타트업을 꿈꾸는 창업자에게뿐 아니라 기성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성 미디어의 영향력은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지만, 미디어 산업 자체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새로운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느냐에 따라 기성 미디어에도 새로운 기회가 올 수 있다. 한국에서도 미디어 산업 변화의 물결은 거세지만 아직 미국에서 관찰되고 있는 것처럼 전면적인 변화가 밀어닥쳤다고 보기에는 조금 남은 시간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한국에서는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에 맞서 더웨이브나 왓차 등 토종 OTT가 힘겨운 구독자 싸움을 벌이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적 콘텐츠, 특히 본 보고서에서 살펴본 정치 콘텐츠 등 시사나 다큐멘터리 콘텐츠는 토종 OTT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한 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해본다. 물론 다큐멘터리나 시사 콘텐츠라고 해서 기존의 제작 문법을 고수하는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다. CNN의 ‘온 더 트레일(On the Trail)’ 사례에서 살펴본 것처럼 참신한 소재의 발굴과 스트리밍 시청에 적합한 프로그램 형식 개발이 필요하다. 이 부분 역시 지속해서 미국의 사례를 발굴하고 참조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본 보고서에서는 출구조사와 여론조사 관련해서 미국에서 최근의 추세를 다루어보려고 노력했다. 미국에서는 휴대전화의 보급, 사전 및 우편 투표의 증가 등의 변화로 출구조사와 여론조사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분명해졌지만, 아직 새로운 대안이 명확해지지는 않은 상황이다. 2020년 선거를 앞두고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가 이뤄졌고 그러한 시도는 계속되겠지만 아직은 그 방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정도의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어떠한 새로운 방법론이 뉴노멀로 자리 잡을 것인지는 여전히 관심을 두고 지켜보아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