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알려진대로, 런던 살이는 팍팍하다. 벌이가 마땅치않은 학생들에겐 더 그렇다. 모아둔 돈, 한국서 부쳐준 돈이 과장을 조금 보태 숨만 쉬어도 빠르게 사라진다.
그래서일까. 영국엔 유독 ‘학생 할인‘이 많다. 현재 런던대 석사 과정 중인데, 다행히 대학원생에게도 같은 혜택이 주어진다.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개별 브랜드는 물론 asos, the hut 같은 패션 쇼핑몰들도 ‘student discount’를 10~20%가량 제공한다. 아마존도 대학 이메일을 인증하면, 6개월간 무료 멤버십을 제공한다. 무료 혜택 이후에도 멤버십 가격의 절반인 월 4.49파운드(원래 8.99파운드)만 받는다.
서점에서 책 살 때,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심지어 콧대높은 애플스토어에서도 10% 할인이 있다. 드럭스토어로 유명한 Boots도 대학 학생증을 멤버십과 연동하면 상시 10% 추가 할인을 제공한다. 영국인의 생명줄같은 펍에서 맥주 한 잔 들이킬 때도 학생에겐 20%의 할인이 주어진다. 도미노피자는 학생 할인이 무려 50%다. 한국도 일부 학생 할인이 있긴 하지만, 영국은 그 규모와 범위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혜택이 매우 너그럽다.
할인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학생 이메일 인증을 해야 가입 가능한 ‘Student Beans’ ‘Unidays’ 같은 앱을 깔면 각종 할인 정보와 코드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펍에서 쓸 경우, Student Beans 앱에서 펍 메뉴를 골라 ‘Use Instore’를 누르면 12자리의 영문, 숫자 코드가 나타난다. 바에서 주문할 때 이를 불러주면 된다. 한 번 쓰면 30분 지나야 또 쓸 수 있다(이 사람 저 사람에게 빌려주는걸 막기 위해서인듯하다).
또 유럽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ESN 카드(가입비 12.5유로)를 만들면, 유럽 저가항공 라이언에어 10% 할인과 20kg 수하물 무료 추가 혜택이 연간 4차례 제공된다. 라이언에어를 한 번만 타도 본전을 뽑는 훌륭한 혜택이다.
이뿐 아니다. 연간 수신료가 무려 159파운드(약 27만원)에 달하는 공영방송 BBC도 학생은 무료로 볼 수 있다. BoB란 사이트(https://learningonscreen.ac.uk/ondemand)를 통해서다. 실시간 시청은 안되고 이미 지난 방송만 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꽤 유용하다. 제휴된 120여 영국 대학 소속이라면 학생 인증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다.
이젠 소비를 하기 전, 구글에 ‘사이트명 + student discount’를 쳐보는게 일상이 됐다. 물가가 비싸기로 소문난 영국에서, 졸업 후 본격적인 소비층이 될 대학생을 단골로 끌어들이려는 브랜드들의 치열한 물밑작전을 보는 느낌이다.
학생 할인만큼이나 어린이 우대도 인상적이다. 일단 런던 내 모든 대중교통이 무료다. 만 10세까지 튜브(지하철)를 비롯해 버스, 기차를 공짜로 탈 수 있다.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4~5학년까지다. 한국의 어린이 혜택(만 5세까지 무료) 대비 두 배 길다. 이렇다보니 자녀와 함께 다니는게 부담스럽지 않고, 주말엔 어디라도 데리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정량화하긴 어렵지만 런던 어딜가나 어린이와 함께 있으면 늘 양보를 받고, 상대가 배려해준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노키즈존’ 같은 건 생각하기 어렵다. 유모차를 자주 끌고 다니는데, 보도와 도로 그리고 건물이 연결되는 그 어느 지점에서도 동선이 끊기지 않는다. 리프트(엘리베이터) 혹은 경사로가 예외없이 설치돼 있다. 도로 공사 중이라도 임시 경사로를 반드시 만들어둔다. 유모차가 물 흐르듯 활보할 수 있다. 유모차와 함께 버스 정류장에 서면, 차량 바퀴가 보도턱에 닿을만큼 기사가 이층버스를 바짝 붙여준다. 이런 접근성과 배려는 곧 사회의 수준이다. 유럽 다른 도시를 다녀봐도 런던이 독보적이었다.
영국의부가가치세는 20%로 높다. 그래서 웬만한 물품이 다 비싸다. 다만 어린이들의 옷, 신발은 놀랍게도 세금이 0%다. 부모들이 자녀 옷만큼은 부담없이 살 수 있게 세금을 면제해주는 것이다. 옷 가게 영수증을 살펴보다 우연히 그런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 유니클로, H&M, M&S 같은 패션 매장에 가보면 유독 어린이 옷은 싸다는 인상을 받는다.
영국 정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부가가치세 면제 대상 어린이 기준은 만 13세까지로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14세 생일이 지나면 어른들과 신체 사이즈와 비슷해진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한다. 정부 홈페이지에 어린이 옷, 신발의 기준이 되는 사이즈까지 세세하게 명시해뒀다. 저출산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한국이 참고할만한 정책이 적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