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도착하고 보름 쯤 지났을 때입니다. 현지 정착을 위한 기초적인 업무를 마무리하고 슬슬 무료함을 느끼기 시작하던 중, 미국에서 오래 유학했던 친구가 ‘티제이맥스(TJ Maxx)’란 곳을 추천했습니다. 생소한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꽤나 유명한 쇼핑센터였습니다.
차로 40분 거리에 매장이 하나 있어 가봤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매장 내부의 첫모습은 난잡했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온갖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이 빼곡했는데, 질서도 없고 진열 상태도 깔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0분가량 상품을 둘러보니 왜 인기가 많은지 알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즐겨입던 브랜드 의류나 신발, 모자, 가방 등을 정가보다 적게는 30~40%, 많게는 80~90%씩 저렴하게 팔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유명 브랜드 티셔츠가 80달러에 팔리고 있었는데, 같은 제품을 네이버 국내 최저가로 검색하니 20만원이 넘었습니다. 여성용 의류는 특히 할인 폭이 컸는데, 심지어 1~2달러짜리 원피스도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어머 이건 사야 해”를 연발하며 홀린 듯 쇼핑 삼매경에 빠졌고, 2시간여 만에 500달러 넘는 돈을 썼습니다. 예정에 없던 과소비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득템’했다며 뿌듯해했습니다.
가성비 쇼핑 끝판왕
몇 달 후 이웃으로부터 티제이맥스와 비슷한 마샬스(Marshalls)라는 매장이 집 근처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보니 티제이맥스보다 규모는 좀 작았지만 가성비 좋은 상품이 즐비했습니다. 특히 현지 마트에선 구하기 어려운 한국산 화장품이 많았는데, 어떤 상품은 오히려 한국보다 저렴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티제이맥스와 마샬스 모두 TJX컴퍼니즈라는 기업이 운영하는 브랜드였습니다. TJX컴퍼니즈 산하에는 이들 외에 거실, 욕실, 주방용품을 주로 취급하는 홈굿즈(Home Goods)라는 브랜드도 있는데, 역시나 인기가 높습니다. 발품을 잘 팔면 중고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신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보물찾기’ 마케팅
티제이맥스는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쇼핑 방식입니다. 한국에도 유명 브랜드 의류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아울렛이 있지만 티제이맥스는 의류 외에 화장품, 장난감, 애견용품, 전자제품, 욕실용품, 주방용품, 조미료, 과자, 커피에 이르기까지 훨씬 다양한 품목을 취급합니다. 쇼핑센터라기보단 큰 잡화점에 가깝습니다.
티제이맥스의 강점 큰 경쟁력은 가격입니다. 백화점이나 브랜드 매장 등으로부터 이월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대량 구매해 중간 유통과정 없이 직접 전국 1000개 넘는 매장에 뿌리기 때문에 대형 아울렛보다도 가격이 저렴합니다. 단순히 가격만 따진다면 달러트리(Dollar Tree) 등 한국의 다이소와 유사한 초저가 매장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티제이맥스는 인지도 높은 중고가 브랜드 제품 중심이며, 때로는 명품 브랜드도 아울렛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판매한다는 점에서 이들 초저가 매장과는 다릅니다.
미국 현지 언론들이 티제이맥스의 성공 비결로 저렴한 가격과 함께 꼽는 것이 바로 ‘보물 찾기(treasure hunt)’ 마케팅입니다. 티제이맥스는 재고 비용을 최소화하고 트렌디한 매장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상품 회전률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안 팔리는 상품이 매대 자리를 차지한다 싶으면 과감한 추가 할인을 적용하기 때문에 정가 대비 90%까지 가격이 떨어지거나 1~2달러짜리 ‘떨이’ 상품도 나오게 됩니다.
아울렛이나 백화점 등 다른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추가 할인이 적용되는 상품을 한쪽에 모아서 판매하는 것은 흔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티제이맥스는 이런 할인 상품 코너가 매장 구석구석에 소규모로 흩어져있습니다. 모든 할인 코너를 확인하려면 매장 전체를 한바퀴 돌아야 합니다. ‘득템’을 노리는 고객들이 매장에 최대한 오랜 시간 머물면서 돈을 쓰도록 유도하는 전략입니다.
티제이맥스의 모회사인 TJX 컴퍼니즈는 최근 10년 사이 매출이 290억달러에서 540억달러로 늘었습니다. 온라인 쇼핑이 확산하면서 오프라인 기반 대형 유통기업들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세입니다. 최근에는 캐나다, 유럽 등 해외 시장으로도 활발히 진출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들에게 쇼핑하는 재미를 선사하는 경영 전략 덕분에 오프라인 기반이라는 약점이 오히려 강점으로 바뀐 것입니다. 언젠가 티제이맥스의 성공 사례가 경영학 교재에 등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