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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의 시간 – 미국 정착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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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전에 이미 말해졌다. 그러나 아무도 듣지 못했기에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앙드레 지드)


 


많은 분이 다녀갔고, 굳이 오지 않더라도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충분히 현지 사정을 알 수 있는 지역인 미국에 와서 연수기를 쓴다는 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이런 생각이 앞서지만, 모든 것은 연수 선배들에 의해 이미 말해졌지만.. 혹시라도 새로 참고할 게 있을지 모른다는 작은 용기를 내서 글을 씁니다.


 


저는 미국 동부의 델라웨어주에 있는 작은 도시인 뉴왁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부통령 조 바이든이 졸업한 델라웨어대(University of Delaware)의 방문연구원입니다.


미국에 도착한 뒤 처음 며칠은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대다수 연수자가 공통으로 겪는 일련의 과정을 보자면 이사, 휴대전화 개통, 은행계좌 개설, TV 및 인터넷 연결, 학교 등록, DMV 등록, SSA 방문 등일 것입니다. 첫 관문인 이사의 경우 저는 이전 연수자로부터 물려받은 짐을 ‘유-홀'(U-haul)을 이용해 옮겼습니다. 다행히 주변 비지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연수자는 짐이 많지 않으므로 ‘셀프 이사’용 차량 제공 서비스인 ‘유홀’이나 ‘버짓'(Budget)을 많이 이용하는 듯 합니다. 비용은 60-80달러 안팎입니다. 휴대전화는 보통 AT&T나 T-mobile을 많이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AT&T의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홈페이지와 자동전화 서비스가 편리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일정액을 미리 내고 그 한도에서 통화와 데이터를 쓰는 ‘프리 페이드(pre-paid)’ 폰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 반대 개념의 ‘포스트 페이드’ 폰도 있습니다.


은행은 각기 사정에 맞게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웰스파고'(Wells-Fargo)에 개설했습니다.


지역 은행은 해당 거주지에 지점이 많아 사는 곳에서 이용하기에 편리한 반면, 먼 지역 여행 또는 이동시에 이용할 때에는 입.출금 제한 등 제약이 있는 듯 합니다. 지역 은행을 빼면 시티나 BOA, 웰스파고 등을 많이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웰스파고의 경우 회사 모토가 ‘Courtesy’인 만큼 매우 친절한 게 장점입니다.


TV·인터넷 개설은 다소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처음에는 Verizon 상품에 가입했는데, 어쩐 일인지 한국서 가져간 ‘070 전화’와 연동이 안 되는 걸 알았습니다. 하루 만에 해약 통지하고 케이블 1위 업체인 Comcast 상품에 가입했습니다.(셀프 킷(50달러 가량)도 파는데 매우 어려우니 그냥 회사에 말해 설치하는 게 좋습니다) 듣기로는 미국에선 인터넷 전화 사용을 통신회사들이 달가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070 전화 사용이 가능한 공유기나 셋톱박스의 기능을 막는다고 하네요. 다만,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릅니다. Comcast는 그런 측면이 적다고 들었고 실제로 주변에도 그 서비스로 070을 쓰는 집이 있어서 바꿨더니 문제가 풀렸습니다.


학교 등록의 경우 대학마다 외국인 유학생·연수자를 위한 기관이 있습니다. 제가 온 대학에서는 OISS(Office for International Students & Scholars)였습니다.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는 차량 등록과 운전면허 시험 응시를 위해 반드시 거치는 기관입니다. ‘자동차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필수적인 곳입니다만, 불친절하기로 유명합니다. ‘직원과 절대 싸우지 말라’라는 게 유학생·연수자들의 ‘묵계’입니다. 전반적으로 직원들이 고압적입니다만, 필요한 서류만 꼼꼼히 챙겨가면 크게 곤란을 겪을 일도 없습니다. 차 소유권 등록의 경우 국내·국제 운전면허증과 자동차 보험증, 차 마일리지(메모한 것)를 갖고 가면 됩니다. 본인 여권과 이름·주소가 찍힌 우편물 2개 이상, 차 타이틀이 필요합니다. 매도자 서명이 있는 타이틀과 세금 납부 비용도 함께 갖고 가야 합니다. 우편물이 없을 때에는 집 계약서를 가져가면 대체 인정해 주기도 합니다. 다만 원칙은 우편물 2개 이상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J1 비자로 온 비지터는 SSN(Social Security Number)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발급 기관인 SSA(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에도 들르게 됩니다. 여권과 DS-2019, 미 국토안보부 사이트에서 출력한 I-94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J2 비자로 온 배우자가 운전면허를 받으려면 이 곳에서 Denial letter를 받아야 합니다.


운전면허 시험 응시용 Denial letter를 발급해 달라고 하면 바로 내 줍니다.


이밖에 캐나다 등 미국 이외 지역으로의 장거리 여행시 로밍 관련 사항들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구글 맵을 많이 이용하실텐데 포스트-페이드 폰을 통해 구글 맵을 사용하면 요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프리 페이드 폰은 로밍 서비스는 없습니다. 다만 프리 페이드 폰은 사전에 월 납입 요금을 정해놓았으므로 캐나다 등지에서 인터넷이나 통화가 안 될 수 있습니다. 본인 계좌에 돈을 충전해야 전화나 문자가 가능합니다. 거는 전화 뿐만 아니라 미국서 걸려오는 전화, 문자, 음성 메시지에 분당 몇십 센트가 부과됩니다. 따라서 캐나다 등지에서 통화할 일이 있다면 통신사의 고객센터나 홈페이지에서 계좌 밸런스를 맞추고 가야 합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heure entre chien et loup). 내게 다가오는 게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하기 힘든, 낮도 밤도 아닌 애매모호한 시간의 경계, 황혼을 말한다는데요.


미국에 와서 처음 며칠 간은 시차에 적응해가는 과정이어선지 ‘낮도 밤도 아닌 날들’이 계속됐습니다. 낮에 정신이 몽롱하고, 밤에는 눈이 말똥말똥하고. 매일이 황혼녘 같이 느껴지는…

여기 와있는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대략 하루에 한 시간씩 적응해 간다더군요.


미 동부와 한국의 시차가 약 13시간이니 2주 정도는 이런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젠 좀 안정감이 생겼으니 그나마 큰 발전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정착 초기는 ‘좌절과 불만(분노)’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날들을 지나 이젠 ‘인내와 기다림’에 제법 익숙해진 걸 보니 부지불식 간에 정착한 것 같아 스스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