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기 전부터 가장 궁금했던 점 중에 하나가 왜 아직도 미국에서는 개인수표를 상당히 쓰고 있는지 입니다. 개인수표는 한국인 시각에서 보기에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금을 지불할 때 직접 수표를 써주기도 하지만 직접 대면하지 않는 지불(예 : 집 렌트비 지불)의 경우 등기우편으로 보내야 하니 실제 지급액보다 이래저래 소소한 비용이 들기 마련입니다. 수표 지급 금액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데 간단한 서명만 하면 되기 때문에 분실할 경우 부정사용할 우려도 없지 않죠. 또 자칫 수표 발행인 계좌에 잔고가 부족해서 수표를 받은 사람이 지급을 받지못한 경우 (수표가 지급되지 않고 돌아간다는 뜻에서 ‘bouncing’ 이라고 표현) 수표 발행인은 20~25달러 정도의 페널티까지 물게 됩니다. 이메일이 보편화된 세상에 우편을 고집하는 듯한 미개한 사회(?)가 아닌가하는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한국에서는 계좌이체나 신용카드, 체크카드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왜 이렇게 불편하게 쓰고 있는지는 실제 생활을 해보면서 필요성을 어느 정도 느끼게 됐습니다.
우선, 미국에서는 은행간 계좌이체를 한국처럼 신속하고 낮은 수수료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실시간 계좌이체가 기본이고, 사용자 편의에 따라 예약이체를 예외적으로 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실시간 계좌이체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속합니다. 특히 타행으로 보내는 계좌이체는 1~2일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같은 은행이라고 해도 다른 주에 기반을 두고 있던가 법인이 다를 경우 등으로 ABN No. 가 다를 경우 타행으로 간주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 대형은행들도 있지만 미국에는 2군, 3군 은행들도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현지 계좌 인터넷뱅킹을 이용해 이런 은행의 계좌로 약 2000달러를 송금할 일이 있었는데, 은행에서 확인 전화를 해서 원시적으로 계좌이체 내역을 일일이 확인을 요청해 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계좌이체시에 15~20달러 안팎의 높은 수수료가 붙는 것은 기본이죠. 미국 내 계좌이체가 한국에서 미국계좌로 송금하는 비용보다 비싼 경우도 있습니다. 참고로 은행 정식 명칭에 ‘national’ 이 붙어있지 않은 은행은 전국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라이선스가 없는 은행입니다.
이렇게 계좌이체가 복잡한 반면, 개인수표는 시간은 더디지만 비용이 오히려 저렴한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 은행 인터넷뱅킹 서비스 중에는 ‘e-payment’ 라는 메뉴가 있습니다. 이 서비스는 개인수표를 전자식으로 발행하는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수령인 이름과 주소, 금액을 입력하면 은행에서 이를 기입해서 우편으로 수령인에게 수표를 보내주는 서비스입니다. 약 3~5일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비용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 이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과연 제대로 수표가 보내진 것이 맞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절차가 간단했습니다. 상대방 계좌번호 등을 쓸 필요가 없고 이름, 주소, 금액만 입력하면 되기 때문이죠. 매월 정기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렌트비, 전기료, 인터넷요금 등은 자동출금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한 개인수표를 이용해서 낼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세금탈루를 막기 위해 신용카드, 체크카드 사용이 장려되고 소득공제까지 주고 있지만 미국은 신용카드 사용이 한국만큼 활발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개인수표를 쓰게 되는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죠. 한국에서는 금지하고 있는 신용카드 수령 거부 상점, 음식점을 미국에서는 매우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에서 절대 금지하고 있는 현금, 신용카드 가격 차별화가 미국에서는 흔합니다. 대부분의 주유소에서 휘발유 판매시 신용카드 가격은 갤런당 0.10~0.20달러 정도 비싸게 받기 때문에 카드 리워드가 특별히 있지 않는 한, 카드로 지불하는 것이 손해일 때가 많습니다. 신용카드 이용자들이 신용공여(결제시까지 지급유예) 혜택을 누리기 때문에 그만큼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반면 데빗카드는 상당히 활발히 쓰이고 있는 편입니다. 다만 데빗카드의 경우 사용금액 외에 0.50달러 정도 수수료가 붙는 경우가 있으니 사용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 수수료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체크카드 사용시 신용카드처럼 쓰면 됩니다. 마트, 백화점 등에서 결제시 결제수단이 신용카드인지 데빗카드인지를 물어보는 화면이 뜨거나 계산원이 물어보는데 이 때 체크카드라도 신용카드로 처리해달라고 하면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행에서도 비공식적으로 이렇게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 미국 현지신용카드를 발급받을 때 한국과 다른 점이 여러 면이 있으니 확인이 필요합니다. 미국 내 크레딧이 없는 유학생, 연수생에게 미국 현지 신용카드는 잘 발급이 되지 않지만 뉴욕지역의 경우 우리은행의 현지법인인 우리아메리카, 씨티은행 일부 지점(맨하튼 코리아타운지점, 한국인 매니저 있음),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신용카드를 발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용카드 발급시 대금 결제 계좌 등록이 필수이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카드 대금 고지서가 날라온 뒤 당연히 카드발급은행 계좌에서 출금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연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동출금을 별도로 신청해야지 매월 출금이 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경우 카드 대금 고지서를 보고 개인수표를 써서 보내거나 은행을 직접 방문해야 합니다.
입출금이 자유롭고 이자가 거의 붙지 않는 한국의 보통예금에 해당하는 계좌를 미국에서는 ‘체킹 어카운드’라고 부릅니다. 한국에서는 계좌유지 수수료, 최소 잔고 유지금액 등의 제한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미국은 상황이 아주 틀립니다. 대부분 은행들이 계좌유지수수료로 10달러 안팎으로 기본적으로 부과하고 실적에 따라 이를 면제하는 식으로 ‘체킹 어카운트’를 개설해줍니다. 폐쇄 수수료도 있습니다. 3개월~6개월 이내에 계좌를 없앨 경우 은행 입장에서 손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10~25달러 정도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은행에 우량고객이 되면 면제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은행 이용 시에는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계 은행들은 이런 수수료 면제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입니다. 특히 미국 뉴욕/뉴저지, 워싱턴, LA 지역의 경우 한국에서 사전 계좌개설이 가능한 우리은행(우리아메리카은행)을 이용할 경우 수수료를 상당히 절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