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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또 다른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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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또 다른 속 이야기

1. 여름 알래스카에는 연어가 찾아온다. 2년 전에 자기가 태어났던 바로 그 계곡 골짜기에 돌아와서는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서 알래스카를 찾았다. 가기 전까지는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연어들처럼’의 가사처럼, 뭔가 역동적이고 장엄한 장면을 목격하게 될 줄 알았다.

2. 그런데 내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영 그런 상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발데즈라는 도시에 만들어진 인공부화장 앞에는 숫자를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연어떼가 몰려들었다. 부화장으로 가는 좁은 길을 찾아서 연어들은 뛰고 또 뛰었다.

그런데, 이 부화장 입구의 주인은 연어가 아니고 따로 있었다. 갈매기들이었다. 공중을 빙빙 돌다가 내려와서는 부리로 이 연어를 쪼고 맛보고 저 연어를 쪼고 맛보고, 쉴 새 없이 노려대고 있었다. 연어들은 공격을 당하는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계속 입구 쪽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지켜보니까, 현실은 더 참혹했다. 연어의 눈만 파먹는 갈매기들이 적잖았다. 살보다 더 맛이 있어서 그랬을까, 가장자리에 몸은 그대론데 눈만 빠진 채로 퍼덕거리는 연어들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갈매기들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저 먼 바다에 나가서 2년을 그 고생을 하고 이제 겨우 고향에 돌아와서 알만 낳고 죽겠다는데, 그걸 못 참고 저렇게 중간에 자기 배만 채우나, 그것도 꼭 눈만 파먹어가면서,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다가 더해서, 물개들도 연어떼 사이에 들어와서는 맘껏 헤엄치면서 식탐을 채웠고, 그날은 보지 못했지만 곰들도 종종 나타나서는 포식을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연어는 동네북 같은 존재였다.

3. 그런데 갑자기 우리 주변 분위기는 사뭇 다른 걸 깨닫게 됐다. 우리 말고는 주변에 다들 백인들이었는데, 이 장면을 즐기듯이 “어썸” “원더풀” 같은 감탄사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표정들도 마치 다시 못 볼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만났다는 듯 밝았다. 뭐야, 지금 나만 연어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고, 이 미국 사람들은 갈매기 편을 들고 있는건가, 순간 뭔가 머리를 EOfl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나중에 이 지역을 소개하는 유튜브 동영상들을 찾아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정말 지역 축제 소개를 나온 리포터들처럼 밝은 표정으로 이 모습들을 전하고 있었다. 어서 와서 갈매기들이 맛있게 연어를 먹는 장면을 보세요, 뭐 이런 식이었다.

4. 궁금해졌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주변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다 나와 비슷한 반응들이었다. 유독 한국사람들만 연어 편, 약자 편을 드는 것인가, 미국 사람은 다르게 생각하는게 맞나, 토론을 해보기로 했다.

현재 미국 육군에 근무 중인 장교와 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당시 상황을 담은 동영상 등을 보여주면서, 나는 연어들한테 동정심이 드는데 어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오 리얼리?”란 답이 돌아왔다. 자연현상이지 않느냐, 자연은 어차피 약육강식인데, 별스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 뒤에 덧붙인 한마디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5. “연어에게도 기회가 있었는데, 갈매기가 되지 못한 건 자기 잘못이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접근이었다. “아니 연어가 태어나길 물고기로 태어났는데 어떻게 갈매기가 되느냐” 되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쏘 왓?” 그래서 어쩌라고 정도의 반응이었다. 똑같이 시간과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것을 살릴지 못 살릴지, 개인차가 나는건 본인의 책임이라는 이야기였다.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그걸 어떻게 다 감안해서 봐주느냐, 그렇기 때문에 동정심도 느끼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자연을 개척하면서 살아왔던 미국의 역사가 녹아있는 동시에, 한번도 약자인 적 없었던, 갈매기에게 뜯기는 연어의 운명을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나라의 국민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이었다.

6. 대화를 마치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찾아들었다. 국제사회는 냉엄한 곳이다. 필요해서 함께 하는 것이지, 우리가 불쌍해서 도와주는 나라는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만에 하나 힘을 제 때 키우지 않다가 곤경에 처했을 때, “기회가 있었는데 왜 갈매기가 되지 못했냐”라고 묻는다면 어쩔 것인가 하는 아찔함도 들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눈 쪼인 채로 퍼덕이던 연어의 모습이 한동안은 머릿 속에 계속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