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만나는 노숙자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얼마 전 버지니아에서 30년 넘게 사신 아버지의 친구를 찾아뵙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하다 몇 년 전 접고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계시는 그분은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가 지나가면 한인 소상공인 상당수가 망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하셨다. 그분은 “내가 30년 전에 이민 왔으니 다행이지 몇 년 전에 왔으면 아마 이번 코로나 사태 때문에 쫄딱 망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셨다.
아저씨 말씀처럼 코로나 락다운이 끝나고 미국 전역이 문을 열고 있지만 당장 인근에 있던 점포 상당수가 코로나 이후 아예 문을 닫아버린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있었던 오락실 겸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 ‘척키치즈'(Chuck E. Cheese’s)도 최근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고 하니 소상공인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코로나 대확산 여파로 미국이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우울한 뉴스를 보다가도 고개를 돌려 거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면 서울에서는 더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고, 아파트 뒷마당의 야외 수영장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주민과 물놀이에 신난 아이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트레이더 조에서 산 코코넛 아몬드 크림을 섞은 커피 한 잔을 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창밖을 내다보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선물한 삶의 여유를 즐겨온 나에게는 어제와 다를 게 없는 하루이지만 당장 이번 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이곳의 많은 사람에게는 인생 최악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문득 자주 다녔던 아파트 근처 식당의 종업원들이나, 예쁜 필기구가 많아 종종 들렀던 작은 문구점의 아르바이트생들, 연수 기관 사무실에서 종종 마주쳤던 히스패닉 청소부 아저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모두가 코로나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어쩌면 미국 전역이 록다운 될 때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을 가능성도 크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을지, 살던 집에서 쫓겨나 거리로 나앉은 건 아닌지 상상이 이끄는 대로 생각이 흘러가다 보면 아무 걱정 없이 이렇게 연수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게 괜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어디에서나 그렇듯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는 몇 개월 일을 쉰다고 삶이 무너진다는 건 지나친 과장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한 달 벌어 한 달을 버티는 이곳의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는 당장 피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이다. 지난여름, 25년 만에 다시 찾은 워싱턴 DC의 거리 곳곳을 노숙자들이 장악한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이번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 전역의 노숙자 인구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곳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 노숙자 지원단체가 우리 학교에서 작은 행사를 열었던 적이 있다. 정규 수업 대신 전교생이 절반으로 나뉘어 교내 대강당에서 1시간 동안 노숙 경험자들의 인생 스토리를 듣는 자리였다. 노숙자들은 주로 약물 중독자이거나 게으른 사람들이라는 학생들의 편견을 깨고 노숙자 지원 프로그램 참여를 끌어내려는 취지로 열린 행사였던 것 같다.
그날 들었던 여러 노숙자의 인생 이야기 가운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던 한 흑인 남성의 경험담이다. 이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그가 내가 동경하던 한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탓에 더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노숙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금융업에 종사하며 부인과 어린 딸을 둔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아내와 딸을 잃었고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술독에 빠져 지내다 결국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주택 대출금을 몇 달 간 내지 못해 집도 잃고 친척과 지인의 집을 전전하다 결국 거리로 나앉았다는 사연이었다.
당시 내게 충격이었던 건 그 사람이 멀쩡한 사회인에서 노숙자로 전락하는 데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는 데 1년이라는 방황의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 ‘어른들의 세계’가 너무 팍팍하다고만 생각했었다. 어른이 된 뒤 알게 된 이 세상은 잠시라도 방심했다가는 언제든, 누구든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무서운 곳이다.
미국의 노숙자 중에는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들도 많지만, 전쟁에서 돌아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다가 가족과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 퇴역 군인, 부모·보호자의 학대를 피해 거리로 나온 청소년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상당수라고 한다. 내가 매일 아침 워싱턴 DC의 연수 기관으로 향하는 거리에서 만났던 노숙자들을 빈손으로 보내지 못하고 메릴랜드의 한 노숙자 무료 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던 것도 그때 노숙자들의 인생 스토리에서 받은 충격 때문인지도 모른다.
코로나19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미국에서는 어쩌면 그때 그 노숙자 흑인 아저씨처럼 한때 멀쩡한 사회인이던 수많은 사람이 가진 것을 모두 잃고 거리로 내몰릴지도 모른다. 수년 뒤, 다시 이 동네를 찾았을 때 혹시나 지금 내가 아파트나 슈퍼마켓에서 마주치는 익숙한 얼굴들을 거리에서 다시 보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도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거리로 나앉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 같아 걱정이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거리에서 노숙자가 내미는 손에 1천원, 1달러 한 장이라도 건넬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어느 거리에서든 노숙자와 마주쳤을 때 슬그머니 피하지 않고 활짝 웃으며 따뜻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 지폐 한 장이 어쩌면 그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