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7개월 째. 영어 실력은 부족하지만 환경에 익숙해진 덕분인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조금이나마 생긴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도 비례해서 커지더군요.
‘미국 사람들은 왜 사소한 일에도 ‘awesome’ ‘beautiful’ ‘wonderful’을 연발하는 것일까’ ‘아침 저녁, 심지어 대낮에도 조깅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왜 한편에선 적잖은 수의 고도비만 환자들이 눈에 띄는가’ ‘처음 마주친 사람에게도 목례를 하거나, ‘Hi’ ‘Hello’라고 인사를 건네는 건 인심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가식일까‘ 등등.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이 들곤 합니다.
최근엔 새로운 관심사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미국은 어떻게 건강기능 식품 천국이 됐을까’라는 생각입니다. 귀국할 때 ‘오메가 3’를 사다 달라는 어머님의 부탁을 듣고, 인터넷과 드러그 스토어를 뒤지다보니 호기심이 커지더군요. 비타민 밖에 몰랐던, 저로선 다양한 종류와 가격의 건강보조제들의 존재가 신기하기만 합니다. 관심을 갖게 되니, 생필품을 사러 주말마다 들렀던 ‘코스트코’의 한 코너에 건강기능식품들이 가득 쌓여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인식됐습니다. 기능식품으로 유명한 ‘GNC’대리점은 심지어 대학가의 몰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목은 떠오르지 않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인공이 갖가지 영양제를 한 웅큼 삼키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납니다.
#약품 천국 미국
드러그 스토어 체인인 CVS에서 자사브랜드의 건강기능식품을 선전하기 위해 내놓은 팸플릿을 보면 미국 사람들이 복용하는 건강 보조제들의 종류가 대략이나마 정리가 됩니다. 심장에 좋고 암 예방에도 좋다는 ‘오메가 3’(fish oil로 불립니다)와 ‘코엔자임’, 모발에 좋다는 ‘비오틴’, 관절에 좋다는 ‘글루코사민’과 ‘마그네슘’ 등. 비타민도 다 같은 비타민이 아니더군요. A는 눈과 피부건강, B는 신경계, C는 면역체계 심장 및 관절, D는 뼈 건강과 면역, E는 혈액순환 등에 좋다고 합니다.
하루에 필요한 각종 보조식품들을 알약들을 한 봉지에 모아놓은 멀티비타민을 코스트코에서 발견했을 때는 ‘이 약 한번 잡숴봐’를 외치며 만병통치약을 선전했던 옛날 약장사들이 생각나더군요. 어린이의 머리를 좋게 한다는 DHA는 어머니들의 필수품이랍니다.
실제로 크고 작은 회사들에서 약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같은 종류의 약품이라도 회사마다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오메가3’만 해도 NORDIC이나 CARLSON 같은 브랜드의 제품은 NATURE MADE, NATURE BOUNTY같은 대중브랜드의 제품에 비해 2개 이상 비싸더군요. 저가 브랜드 일수록 ‘자연’을 내세우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네요.
조금 오래된 통계지만 2004년 기준으로 미국의 건강기능식품 시장(145억 달러)은 세계 2위인 일본(74억 달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컸습니다. 의학기자를 해보지 않아 전문적 지식은 없지만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봅니다.
<코스트코에 쌓여있는 갖가지 건강보조 식품>
#왜 이렇게 약을 좋아하나–편식 때문?
제 생각이지만 육류만 찾는 편식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주 집으로 배달되는 그로서리 팸플릿은 먹음직한 고기, 햄, 소시지, 치즈 등 기름진 음식을 중점적으로 소개합니다. 육식을 즐길수록 야채 소비량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겠죠. 아이스크림, 콜라나 사이다 같은 소프트드링크 등 달콤한 음식들도 넘쳐납니다.
<아이오와의 그로서리 스토어인 Hyvee의 전단지, 큼지막한 햄버거 사진이 실렸다>
몇 년 전 ‘몸에 좋은 음식일수록 맛은 없는 법이다. 나이가 들수록 맛없는 음식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말을 되살리자면 달고 기름진 것만 좋아하는 미국 사람들의 식생활은 그리 바람직한 것은 못되겠죠. 당연히 식생활 만으론 영향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어려울 수 밖에 없구요.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풀 뜯어먹는 식생활로 바꿀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건강기능 식품으로 모자른 영양소를 보충하려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건강기능 식품이 고육지책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선은 거의 먹지않는 미국인들이 ‘오메가 3’를 중요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겠지요.
드러그 스토어가 비교적 큰 규모의 편의점 역할을 하는 생활환경도 원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집 가까이에 위치한 드러그 스토어에서 가격대별, 종류별로 다양하게 마련된 건강식품을 손쉽게 접할 수 있으니까요. 한편으론 가벼운 생필품을 사러 갔던 사람이 상점에 전시된 갖가지 건강보조 식품에 눈길을 주는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음료수를 사기 위해 들어간 CVS에서 오메가3 ‘BUY1 GET1’행사를 하는 것을 보고 충동구매한 경험이 있습니다.
농담같은 말이지만 사소한 일에도 감동하고 호들갑을 떠는 미국인들의 품성도 ‘건강식품 확산’에 일조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예컨대 한쪽에서 어떤 보조제의 효과가 좋다고 법석을 떨게 되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 제품에 눈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실제 잘 팔리는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인터넷 반응을 보면 과장되고 호들갑스런 반응들이 많습니다. 다음은 머리가 나고 손톱이 튼튼해진다는 비오틴(biotin)이란 건강기능 식품에 대한 고객들의 호들갑스런 평가입니다.(아마존)
“I’ve only been taking these Biotin supplements for 2 1/2 weeks, but I can already tell a difference” “Product works great! I have been using it for a month and I’ve seen significant difference in my skin, nails, and hair”. 결국 이 글을 보고 저도 아마존에서 비오틴을 주문하고 말았습니다.
#효과는 어떨까. 부작용은 없을까.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저도 몇 가지 식품을 구매해서 가족들을 대상으로 효과를 실험중입니다. 온 가족이 건강식품 두가지를 각각 복용중입니다. 아내는 중간수준의 오메가 3와 젤리로된 비타민, 딸아이는 머리를 좋게 해준다는 ‘DHA’와 씹어 먹는 비타민, 저는 저가의 오메가 3와 비오틴을 복용중입니다.
밤낮으로 음주에 시달리면서도 비타민도 챙겨먹지 않았던 제가 지금은 알코올 프리의 ‘생간’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식사 때마다 약 두 알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습니다. 가끔은 각종 알약들을 한 웅큼씩 삼키는 미국인들이 크나큰 목구멍에 경의를 보내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뒤져보니 우리나라에서도 건강식품 선호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하네요. 미국에서 각종 보조식품들을 구매해서 국내로 되파는 구매대행 서비스도 성업중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물론 무작정 먹는 건강기능식품이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말도 있지요. 각각의 제품에 포함된 성분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고, 장기간 복용은 일부 영양소의 과잉을 일으켜 오히려 몸에 해로울 수도 있다고 하네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만 그래도 기왕 먹기 시작한 건강식품들을 줄일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