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수중에 한두번씩 교통사고를 경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차 없이는 집밖을 나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자동차 사고도 그만큼 빈번할 수 밖에 없다. UGA에 연수와 있는 한 교수님은 본인이 뒤에서 받히
는 사고를 당한지 2주만에 부인까지 교통사고를 당해 부부가 함께 병원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같이 연
수 온 다른 신문사 기자와 공무원도 잇달아 교통사고를 당해 한동안 병원에 다니는 번거로움을 겪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피해자이고 가해자는 연세 드신 고령 운전자인 게 공통점이다.
조지아 에덴스는 온화한 날씨 때문에 퇴직 후 이사 온 은퇴자들이 많은 편이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반사신경이 떨어지다보니 노령층 교통사고 비율이 높은 것 같다는 현지인의 설명이다. 나 역시 지난해말
플로리다 여행길에 신호대기 중에 뒤 범퍼를 가볍게 들이받히는 사고를 당했다. 놀라 나가보니 가해자는
아이를 셋이나 태운 흑인 여성운전자였다. “교회 가는 길에 음악을 듣느라 정신이 팔려 브레이크를 늦게
밟았다”며 미안해 하는 모습을 보니 차마 화를 낼수가 없었다. 다행히 뒷범퍼에 크게 이상이 없는데다
다음 일정도 있고 해서 보험증과 신분증만 확인하고 자리를 떴다. 나중에 따로 보험청구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얘기를 전해들은 한 지인은 “목돈 벌수 있는 기회였다”며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자동차
보험제도에도 한국 못지 않게 맹점이 많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소송하시죠”
교통사고 후 허리통증 정도의 가벼운 치료를 위해 들른 병원에서 소송을 권하는 의사들이 이곳에도 적지
않다. 이런 권유를 받으면 나 같은 연수자들은 변호사 선임 비용도 부담이지만 ‘과연 이 정도로 소송이
가능할까’하는 의문을 갖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변호사가 넘쳐나는 미국은 역시 ‘소송 천국’. 의사의
설명은 변호사가 가해자측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테니 피해자는 병원만 다니면 된다는 얘기다.
“변호사 선임 비용,병원 치료비는 전혀 걱정 안해도 됩니다.소송 청구를 통해 받은 보상금 중 변호사 30%,
병원치료비 30%, 피해자 30%씩 나누면 되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부담해야하는 비용은 전혀 없습니다.”
단, 소송 청구를 위해서는 피해자가 최소 10회 이상의 병원 치료 기록이 있어야 하는 만큼 한동안 병원
에는 다녀야 한다는 게 의사의 설명이다. 여기에도 ‘꼼수’가 있다. 예를 들어 에덴스에서 한국인이 운영
하는 애틀랜타 병원까지는 왕복 2시간 거리. 일주일에 3~4번씩 오가는 것은 상당한 무리다. 그렇지만
이미 교통사고 보험처리에 이골이 난 병원에서는 해결책까지 갖고 있다.
“다 안오셔도 됩니다. 한번 오실때마다 3~4회 치료를 한꺼번에 하시면 됩니다”.
이 정도 조건이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당장 경제적 부담이 없으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을 갖기
마련. 게다가 차량 파손으로 인한 감가상각과 수리비는 따로 청구한다. 이 때문에 가벼운 교통사고에
도 피해자는 최소 수천달러의 보상금을 받아낼 수 있다는 게 이곳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교통사고 보험처리를 이용한 나름의 먹이사슬은 한국 교포들의 많이 거주하는 대도시 지역에서는 일반
화되어 있다. 애틀랜타에는 한국 교민이 10만명이상 거주하고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한국 교민과 연수
및 주재원들이 찾는 병원도 몇 곳 있는데 이런 대화는 대부분 한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이뤄진다.
변호사들 역시 한국 교민 출신이다. 실제로 이런 의사의 권유로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뒷
범퍼가 가볍게 찌그러진 사고지만 변호사는 환자 통원 치료 기록 등을 근거로 최소 치료비의 3배 규모
의 위자료 소송을 가해자 보험사에 제기한 후 협상을 벌인다. 실제로 지인 중 한명은 이런 소송을 통해
약 8000달러 가량의 위자료를 받을 예정이다.
미국인들도 이런 교통사고 보험 제도의 맹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UGA의 미국인 교수님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몇년전에는 돈이 필요한 학생들이 차 뒷 유리창에 ‘I need money, please hit my butt’
라고 붙여놓고 다닐 정도로 문제가 많다”며 핏대를 올렸다.
미국 보험 보상범위도 한국보다 후한 편인 것 같다. 도로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응급실에 실려간 한 교
수님은 9000달러에 산 일본산 중고차를 폐차하고 보험사로부터 9800달러를 현금으로 받아냈다. 차량
구입 후 몇개월 동안 운행한 기간의 감각상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중고 매입가보다 더 높은 가격을
보상받은 셈이다. 한국에서 보험사 ‘봉’노릇에 익숙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썩 이해가 가지 않는 보상체계
다.
이런 미국 보험체계를 알게 된 후에는 교통사고를 당한 지인들에게 이전과 다른 조언을 해준다. 신체
나 자동차에 손상이 갈 정도의 사고를 당하면 부담갖지 말고 변호사를 구해 적극 대응하라고 권한다.
특히 피해자인 경우 사고 현장에서 쌍방간의 합의보다 반드시 경찰을 불러서 피해자임을 확인받을 것을
권한다. 한쪽의 과실이 확실하면 경찰은 가해자에게만 통지서를 주고 피해자는 인적 상황과 사고 경위
만 물어볼 뿐 별도의 통지서는 발급하지 않는다.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에 들어가면 이때 발급한 경찰
의 고지서가 가장 중요한 증거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미국 유학경험이 있은 교수님이 “미국은
길가다 넘어져도 소송한다”고 했던 말씀이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 연수중에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