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국유화로 리턴하는 영국

by

크리스마스 선물로 상하수도료 60만원(300파운드)이 날라왔다. 메리 크리스마스!

2025년 8월 6일부터 12월 25일까지 딱 142일, 약 다섯달치 요금이었다. 우리 집에 60만원을 고지한 템즈워터는 런던과 영국 남부를 담당하는 상하수도 회사다.

영국으로 이주한 지 다섯달 만에 받은 고지서였다. 영국은 상하수도료를 일년에 두 번 고지한다길래 언제쯤 오나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날 아침 이메일을 열어보곤 황당했다. 60만원이라고? 한국에선 전기료와 가스료 정도가 겁날 뿐 물값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크게 오르내리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60만원, 한달에 12만원이라니, 수도 파이프 어디선가 물이 새서 줄줄 흘러내린 것일까.

그림 1 템즈워터의 수도료 청구서 갈무리

떨리는 눈으로 고지서를 읽었다. 아내와 아들, 그리고 나까지 3인 가족이 약 다섯달 동안 소비한 물은 56m3 였다. 쉽게 말해 56톤. Fresh Water(상수도) 요금은 톤당 2.4743파운드에 고정요금(기본료) 24.88파운드가 붙는 구조였다. Waste Water(하수도) 요금은 톤당 1.5480파운드에 고정요금 50.66파운드가 붙는다. 이렇게 계산하면 56톤의 물 사용료는 상수도 163파운드, 하수도 137파운드 합쳐 300파운드가 됐다.
    
혹시 너무 물이 많이 계량된 것은 아닌지, AI에게 물었더니 영국에서 3인 가족이 쓰는 물 사용량으로는 보통 수준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긴 플랫에 살고 있어서 어디선가 물이 샜다면 벌써 아랫집에서 누수로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비싼 요금을 내야 할 만큼 영국 상수도 물의 품질이 압도적이지도 않다. 외려 석회질이 많다고 해서 정수기로 내려먹는 물이었다.

한국에서 이전에 내던 상하수도료와 비교해봤다. 평소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서울시 아리수 누리집을 찾아 들어가니 가정용 요금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게 해놨다. 계량기 구경을 20mm로 하고 한달치 사용량 약 19톤을 넣으니, 26730원이 나온다. 그동안 서울에서 보던 숫자와 얼추 비슷하다. 상수도 기본요금 3000원, 상수도 1만1020원, 하수도 9120원, 물이용부담금 3230원을 합친 금액이다.  

그림 2 서울시 아리수 누리집 갈무리

영국 상하수도료가 이렇게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의 수도 소비자 단체인 CCW는 2025년 2월 이런 성명을 내놨다. “템즈워터 고객들은 이미 급격한 요금 인상에 직면해 있는데, 회사가 더 큰 폭의 인상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분노할 것이다.” 템즈워터가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고도, 2025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요금을 평균 35% 인상하겠다는 안을 당국으로부터 승인 받자 나온 성명이다.

35%?
영국의 수도 규제 기관인 오프와트(Ofwat)는 이정도 요금 인상은 수도회사의 요구를 전부다 반영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프와트의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블랙은 이렇게 코멘트했다.

“수도 요금은 각 가정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2025/26년 평균 인상률은 26% 또는 123파운드로 예상된다.” (While water bills will vary depending on the circumstances of each household, the average increase forecasted for 2025/26 will be 26% or £123.)

“요금이 인상되고 있지만, 향후 5년간 승인된 1040억 파운드 투자는 더 깨끗한 강과 바다를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고 고객에게 장기적인 식수 공급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While bills are rising, the £104bn investment we have approved over the next five years will accelerate the delivery of cleaner rivers and seas and help to secure long-term drinking water supplies for customers.)

식수 공급 등을 위한 시설 개선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선 올해만 26% 등 요금인상이 불가피 하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수도요금을 걷어 번 돈으로 시설 투자를 안하고 뭘 한 거지?

그림 3 템즈워터 인스타그램 갈무리

그 답은 영국 방송 BBC의 기사를 통해 찾을 수 있었다.
“템즈워터는 152억 파운드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으며, 내년 5월말까지 운영자금을 조달할 현금 밖에 보유하지 못해 생존 가능성에 대한 의문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템즈워터의 최고경영자인 크리스 웨스턴은 “고객에게 이중으로 요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수년간 요금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https://www.bbc.co.uk/news/articles/cx2lgl9kypno)

템즈워터의 경영은 심각한 상황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난해 보도한 기사를 보면, 환경청 실적 평가에서 템즈워터는 다른 수도회사들보다 못한, 별점 1개를 받은 유일한 회사였다. 2023-24년에 심각한 하수 오염 사고가 14건에서 33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면서 템즈워터 경영진은 지난 20년간 누수 되는 하수관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하수 처리 시설에 대한 투자를 충분히 하지 않고 배당금만 지급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https://www.theguardian.com/business/2025/oct/23/english-water-ratings-record-low-sewage-pollution)

회사가 시설을 개선하는 데 돈을 쓰지 않았는데도 돈줄이 말라버린 것은 어디선가 회사 파이프라인에 구멍이 생겼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누수의 원인으로는 대주주의 이익 챙기기가 꼽혔다. 2024년 나온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보면, 영국 상하수도 회사들이 1990년 이후 주주에게 보내는 배당금으로 730억파운드(약 128조원)를 썼고, 순부채는 610억 파운드 수준으로 치솟았다는 데이비드 홀 그리니치대 교수의 분석도 나온다.
 
템즈워터의 문제는 영국의 공공 인프라 민영화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80년대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수상이 집권하던 시절, 영국은 수도 및 폐기물 처리 부문 전체를 민영화했다. 대처 수상은 50억 파운드에 달하는 부채를 탕감한 뒤 15억 파운드의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그리고 더 필요한 수십억 파운드의 투자를 민간 부문에서 조달하기를 원했다.

민영화를 했던 1989년 당시의 템즈워터는 부채가 없었지만, 최근 제무재표를 보면 차입금과 부채를 포함한 총 부채가 228억 파운드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호주의 인프라펀드 맥쿼리(한국에서도 논란을 일으켰던 그 맥쿼리)가 템즈워터의 주인으로 있었을 때 부채 규모가 급격히 증가했고, 이후 2017년 템즈워터를 매각할 당시 회사의 부채는 100억파운드를 넘어섰다. 노조 등은 맥쿼리가 대출과 배당금 형태로 수십억 파운드를 빼돌렸다고 주장한다.
(https://www.bbc.co.uk/news/articles/cgleg70r7rno)

정부가 돈을 쓰지 않겠다는 민영화 이후 시설 투자 미흡과 큰 폭의 요금 인상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시민들은 공공 인프라를 기업에 맡긴 게 그동안 혜택을 준 것인지 의구심을 안고 있다. 얼마 전 집 보일러를 교체하기 위해 온 영국인 엔지니어는 높은 공공요금의 뒤에는 민영화가 있다고 콕 집어 이야기했다.

10년이 넘은 오래된 보일러를 새 보일러를 교체한 뒤 그에게 얼마나 가스비를 절약할 수 있을지 물어보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신형 보일러 교체로 20% 정도 열효율이 높아지니 계속 오른 가스비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다. 그러면서 그는 영국의 가스 뿐만 아니라 전기, 철도 등 공공요금이 너무 비싸고, 이것은 정부가 모두 외국에 팔아치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림 4 집주인이 바꿔준 신형 보일러

상하수도료 300파운드 청구서와 추운 겨울에도 켜지 못하는 가스 보일러를 경험하며, 영국 시민들은 이런 부담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시험대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서 런던으로 나갈 때 항상 타는, 런던 남부의 열차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는 Southwestern Railway가 그 시험대였다.

2024년 영국 노동당은 30년 전에 민영화시킨 철도가 잦은 지연과 높은 운임으로 시민들을 실망시키자 이를 민영화 30년의 실패로 규정하고, 철도를 재국유화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2025년 5월25일 런던 남쪽을 맡고 있는 철도 회사인 Southwestern Railway를 공공소유로 전환시켰다. DfTO(Department for Transport Operator)가 임시 운영을 한 뒤 점차 다른 회사들까지 Great British Railways(GBR)로 통합시키기로 한 것이다. 영국 인프라 스트럭처 민영화의 상징인 철도가 다시 재국유화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영국 정부는 “망가진 철도망을 개혁하여 30년간의 분열을 종식시키고, 여객 서비스를 공공의 통제하에 되돌리고 승객을 철도의 중심에 두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림 5 영국의 구형 기차가 역에서 신형 기차를 앞지르고 있다.

노동당 정부는 이의 효용성을 증명하기 위해 2026년 잉글랜드 철도요금을 동결하겠다고 2025년 11월 밝혔다. 영국 철도가 민영화된 1996년 이후 첫 요금 동결이다. 정부는 이번 조처로 통근요금이 비싼 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연 300파운드 이상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시민이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도록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코레일과 SRT를 통합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는 기사를 봤다.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 SRT는 수익률이 높은 반면, KTX 뿐만 아니라 수익성이 낮은 지방 노선도 운영해야 하는 코레일의 경영 부담이 가중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노선을 나눠서라도 철도를 민영화하겠다는 이전 정부의 구상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셈이다.  

그림 6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청구서는 반드시 온다. 대처와 ‘제3의 길’을 걸은 영국의 변화는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높은 수도료와 철도 재국유화 추진은 면밀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30년 민영화 역사를 되돌리는 영국의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