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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리의 이야기, 뉴욕의 거리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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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마천루의 숲이지만 이 수백층짜리 콘크리트들이 그냥 빼곡히 서 있는 게 아니고 세로로
내달리는 Avenue와 횡단하는 Street 사이에 제각각 터를 잡고 올라 서 있습니다. 길들이 마천루
와 마천루를 잇고 이 길로 다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흐름 속에서 길과 건물들의 의미가 생
겨납니다. 이런 길 위의 일 들 가운데서도 뉴욕의 역사와 시민들이 함께 공유하는 기억을 만드
는 건 단연 축제입니다. 그냥 보면 서울보다도 좁은 길에 엄청난 인파와 자동차 행렬 속에 축제
를 치를 여유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뉴욕은 다른 대도시 이상으로 축제의 장을 펼칩니다. 그래
서 매년 같은 기간 같은 장소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축제로 뉴욕의 거리들은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닌 문화가 되는 것이죠. 뉴욕의 축제는 매 계절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서 제가 와서 있었던
몇 달 동안의 축제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Village Halloween Parade



미국만의 축제문화지만 여러 나라로 크게 퍼져나간 대표적인 것이 할로윈이죠. 미국에선 동네마
다 크고 작은 할로윈 축제가 열리는데 뉴욕에선 가장 큰 것이 이 ‘빌리지 할로윈 퍼레이드’입
니다. 당연히 젊은 뉴요커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제인데 매년 할로윈 당일 밤에 열리는 퍼레이드
로 벌써 42회를 맞이했습니다.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카페와 클럽이 많은 그리니치 빌리지의 거
리에서 할로윈 분장을 한 시민들과 각종 공연팀들이 퍼레이드를 벌이는 것입니다.

올해도 10월 31일 밤 7시부터 시작해 3시간 정도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이 축제는 분장만
하면 시민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약간의 준비만 하면 여행객들도 구경
꾼이 아닌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도 용기를 내서
끼어볼까 했는데 일단 구경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사실 행렬에 참여하는 게 장단점이 있는데 물론 축제 한가운데에 끼어서 비교적 인파에 덜 부대
끼며 뉴욕의 대로 한복판을 걷는 더 없는 기회를 누릴 수 있습니다. 반면 일단 출발점인 Canal
street에서 행렬이 시작되면 중간에 나오지도 못하고 2시간 이상 걸어야 하고 행렬 한 가운데
있다보니 역설적으로 전체 행렬들 특히 중간 중간 있는 대규모 퍼레이드차량 구경을 할 수 없다
는 게 단점입니다. 이 퍼레이드를 구경하는 인파도 엄청나다보니 좋은 자리를 잡는 건 쉽지 않고
우리 가족도 인도 안쪽에서 발을 세우고 구경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축제들보다는 구경꾼이나
행렬이나 다 같이 할로윈의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들로 거리감이 적었습니다. 행렬이가 시작되기
전부터 거리와 가까운 워싱턴 스퀘어 파크 등에 특색 있는 분장을 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로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누는 것부터가 축제의 하나였던 만큼 축제를 만드는 사람과 구경꾼의 구분
이 무의미했던 가장 친화력 높은 축제라는 게 특징이었습니다.
(축제 홈페이지 https://www.halloween-nyc.com)


San Gennaro Festival


영화 ‘대부2’편을 보면 주인공 돈 비토 콜레오네가 젊은 시절 악당 두목을 해치우며 처음으로
살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건물에 숨어 총을 준비하는 긴장한 콜레오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밖의 거리에선 카톨릭 성인의 동상을 앞세운 축제행렬이 지나갑니다. 바로 이 축제가 산 제나로
축제로 매년 9월 중순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 거리에서 열립니다. 뉴욕 이태리인들의 고향이라 할
나폴리의 성인 제나로를 기리는 축제입니다.


사실 뉴욕의 이탈리아 타운인 리틀 이탈리아는 한때는 소호 아래쪽 넓은 구역을 다 차지했지만
이제는 중국인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차이나타운 한쪽 멀베리가의 두 블럭만 남을 정도로 줄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1년에 한번 이 산 제나로 축제가 열리는 1주일 동안 만은 리틀 이
탈리아가 인파로 뒤덮인 활기찬 거리가 됩니다.


저에게는 뉴욕에 와서 처음 본 거리축제였는데 우연히 식사를 하러 갔다가 축제를 맞닥뜨린거라
그랬겠지만 약간은 소박하고 잔잔한 재미가 있는 축제였습니다. 크지 않은 리틀 이탈리아 거리가
향기 진한 이태리소시지 굽는 연기로 가득 찼고 포장마차 분위기의 야외식당 천막이 거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그리고 한 구석에선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할로윈 축제나
그 축제가 열리는 그리니치 빌리지에 비하면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도 시끌벅적한 장터 같은 느낌
의 축제입니다.


축제기간의 토요일에는 산 제나로 상을 앞세운 카톨릭 성가대와 악단의 행진이 있으니 그날을
특히 맞춰서 가시면 더 좋을 겁니다. 특히나 영화 대부의 팬들이라면 더 반가운 경험이 될 것
입니다.



Macy’s Thanks Giving Parade


매년 11월의 넷째 목요일인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미국인들에게는 복합적인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우리의 추석 이상으로 미국인들도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저녁 식사를 같이 하러 모입니다.
제가 연수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2,3일전부터 다들 고향을 갈 계획들로 이야기꽃을 피웠
습니다. 당일이 되자 뉴욕의 대부분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전형적인 우리 추석의 모습
이죠. 하지만 반대로 무척이나 바빠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쇼핑센터들이죠. 거의 모든 소
매업종이 대대적인 할인행사에 들어가고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블랙 프라이데이부터 그 주 일요일
더 나아가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이어지는 대목이 시작되는 중요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추수감사절의 축제이면서도 상업적 성격을 한 번에 보여주는 행사가 바로 메이시 백화점의 추수
감사절 퍼레이드입니다. 지상최대의 쇼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영화나
만화 등에 등장하는 각종 캐릭터로 만든 대형 풍선들, 전국 각지에서 뽑힌 악단, 치어리딩팀, 서
커스팀들이 모두 참여합니다. 게다가 유명 가수들도 대거 참여해 행진이후 쇼까지 진행합니다.




 행진하는 코스는 센트럴파크 서쪽의 77번가부터 시작해 뉴욕 미드타운을 훑고 내려와 34번가 메이
시스 백화점 앞에서 끝나는 약 3마일에 가까운 거리입니다. 해마다 3백만 명이 행진이 진행되는
거리에서 직접 관람하는 거대한 행사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IS의 파리테러 직후 였기 때문에 혹시
나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여느 해보다 더 많은 경찰력이 동원돼 대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오히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예상보다는 사람이 적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행진이 시작
하는 시간인 오전 9시에 맞춰 행진 코스 중간쯤인 콜럼버스 서클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예상은 빗
나갔습니다. 한 달 전 할로윈 축제때도 인파가 엄청났지만 이 메이시스 퍼레이드에 비할 바는 아
니었습니다. 이미 행진이 지나가는 양옆의 인도는 사람이 가득 차 경찰들이 진입자체를 막았고 한
블록 옆 인도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행진로와는 수십미터 떨어져 건물사이로
작게 볼 수 있는 위치들도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행진을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들을 맡기 위해선 최소한 3시간 전, 즉 아침 6시전에는 나와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결국 먼발치에서 아이가 예전에 좋아했던 토마스 기관차나 앵그리버드 풍선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정도로 추수감사절의 오전을 마감했습니다. 이 축제를 가까운 거리에서 즐기려면 정말
부지런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퍼레이드 안내 홈페이지 http://social.macys.com/parade/#home)


Broadway Bites


여행의 중요한 즐거움은 먹을거리입니다. 그런데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음식들을 한 자리에
그것도 야외에서 보고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그런 먹을거리 벼룩시장이 바로 브로드
웨이 바이츠입니다. 브로드웨이 33번가의 그릴리 스퀘어 파크(Greeley Square Park)에서 봄부터
가을 사이에 시즌별로 열립니다. 2015년 가을에는 10월 3일부터 11월 13일까지 열렸습니다.



길거리에서 파는 먹을거리 장터 형식이지만 뉴욕의 유명식당들도 참여하고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의
음식으로 선택의 폭도 넓습니다. 미국, 멕시코, 중남미, 일식과 중식, 그리고 한국음식까지 다양한
데 각 나라의 전통적 음식이라기보다는 젊은 요리사들의 감각이 들어간 새로운 메뉴들이 많습니다.


뭣보다 뉴욕에서 가장 중심가이자 걷기 편한 거리인 브로드웨이의 한 가운데 쯤에서 열리는 장터라
그야말로 뉴욕을 걷다 들어가 즐겁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다만 형식은 야외장터지만
음식 값은 그리 싸진 않습니다. 물론 뉴욕의 평균적인 식당들과는 비슷하고 팁도 안줘도 되는 점에
선 저렴한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http://urbanspacenyc.com/broadway-bites/)


이렇게 소개한 거리축제들은 뉴욕의 여러 축제 가운데 일부fj 제가 연수 온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겪은 것만 소개한 겁니다. 이외에도 각종 기념일과 기독교 축제일 마다 거리행진이나 축제가 이어
집니다. 특히나 타임스퀘어, 브라이언 파크, 링컨센터 등 뉴욕의 문화중심지이자 광장을 가진 곳
에서는 작은 거리공연부터 대규모 행사까지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이벤트가 사람들을 모으고 있습
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글의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뉴욕의 각 거리마다 각각 고유한 축제가 있고
그것이 그 거리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적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는 점이었습니다. 그리니
치 빌리지의 대학생들과 예술가들의 젊은 감각과 할로윈 퍼레이드가 감각적으로 이어지고 성 제나로
축제 리틀이탈리아 거리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특정한 축제가 특별한 어떤 날,
그리고 특정 거리의 고유한 이야기가 돼야 한다는 것, 일면 당연하지만 아직 그렇게 자리잡지 못한
축제들을 여러 곳에서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뉴욕의 거리축제를 보면서 느껴
본 단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