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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이냐 도시락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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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과 일종의 ‘협약’을 맺었습니다. 미국 학교에 왔으니 최대한 미국 급식을 먹는다는 게 골자입니다. 일단 첫 열흘은 적응 기간입니다. 메뉴가 무엇이든 모든 점심을 급식으로 해결하며 미국 초등학교에선 어떤 음식이 나오는지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이후엔 ‘하이브리드 방식’이 적용됩니다. 한 달 치 식단표를 살펴본 뒤 ‘도시락을 가져가고 싶은 날’을 고르되, 한 달에 최대 열흘로 상한선을 그었습니다.

학교에서 보내주는 급식 식단표. 금요일엔 보통 피자가 나오고, 치즈버거나 치킨샌드위치, 핫도그 등도 단골 메뉴로 등장합니다.

반찬 투정이나 편식을 하지 않는 아이인데도 급식에 대한 불만을 점점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짠맛 말곤 아무 맛이 안 난다”, “똑같은 메뉴가 너무 빨리 되풀이된다”, “양이 너무 적다”는 박한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너희 반에서 매일 도시락을 가져오는 학생은 몇 명쯤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반 친구들의 70%가 날마다 도시락을 먹는다”고 답했습니다. 너도 그러고 싶냐는 질문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들 엄청 간단히 싸 오니까 엄마도 크게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는 친절한 조언을 덧붙이면서요.

영양 점수는 ‘pass’, 인기 점수는 ‘fail’

미국 학교 급식은 정말 그토록 엉망진창일까요? 그래서 부모가 매일 도시락을 챙겨 주는 게 좋을까요? 1995년부터 2021년 사이 연구 10여 편을 메타 분석한 논문1에 따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학교에 도시락을 가져온 미국 학생들의 절반 정도는 스낵류와 단 음식(쿠키, 머핀 등)을 점심으로 준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도시락에 채소가 포함된 비율은 17%에 그쳤습니다. 도시락은 학교 급식과 비교해 영양 측면에서 점수가 밀렸습니다. 연방 정부의 식단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하는 급식보다 포화지방과 탄수화물 함량은 높은 반면, 단백질과 철분, 섬유질 함량은 낮았습니다. 집에서 영양 균형까지 따져 건강한 도시락을 싸 주는 건 여간 품이 드는 일이 아닌 데다, 아이가 그나마 잘 먹는 것으로 마련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빚어진 결과로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희 아이는 친구들이 가장 많이 가져오는 점심으로 ‘런처블(Lunchable)’을 지목했습니다. 크래프트하인즈(Kraft Heinz)의 런처블은 플라스틱 칸막이 용기에 크래커와 치즈, 햄 등을 담아 포장한 제품으로, 마트에서 사다가 아이들의 책가방에 쏙 넣어주면 되기 때문에 인기입니다.

대형마트 냉장 코너에 가면 ‘런처블’로 대표되는 도시락 대용 식품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급식이 상대적으로 영양가가 있다고 해도 실제로 얼마나 섭취되는지는 의문입니다. 큰 변수는 ‘잔반’입니다. 초등학교 점심시간, 열량과 영양소의 ¼ 이상이 버려지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급식에 나온 채소의 31%는 쓰레기통에 들어갔습니다.2 다양한 영양소를 풍부하게 넣은 급식을 준다고 해도, 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셈입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맛을 버리다

미국 전역의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학생들의 점심 식사는 올해로 80주년을 맞는 ‘전국 학교 점심 급식 프로그램(National School Lunch Program, 이하 NSLP)’에 따라 제공됩니다. 1946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NSLP에 서명하면서 “어떠한 국가도 어린이보다 건강하거나, 농민보다 부유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제도의 목적이 ‘어린이’의 건강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급식을 통해 잉여 농산물을 처리함으로써 가격 폭락을 막고 ‘농민’을 살리는 것이기도 하다고 확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NSLP를 관리하는 연방 부처가 교육부나 복지부가 아닌 농무부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린이보다는 농민 쪽에 좀 더 비중이 실려 있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NSLP에서 ‘어린이’의 위치는 1980년대 초 ‘작은 정부’를 표방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더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연방정부의 학교 급식 예산이 45억 달러에서 30억 달러로 크게 깎였습니다. 토마토 케첩을 채소로 분류해서 기존의 채소 반찬을 대체하고, 그만큼 비용을 절감하자는 발상도 이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케첩은 채소” 방안은 반발 여론에 부딪혀 철회됐지만, 레이건 정부의 전반적인 복지 축소 기조는 공고했습니다. 학교 급식에서는 ‘요리’ 과정이 상당 부분 사라졌습니다. 대신, 공장에서 제조돼 냉동 상태로 배송된 음식을 학교에선 데우기만 하는 시스템이 정착했습니다. 학교는 냉동고와 오븐을 갖춘 채, 배식을 맡을 소수의 인력만 두면 되므로, 시설비와 인건비를 동시에 아낄 수 있습니다. 적은 예산을 쥐어짜 싼값에 급식을 내놓는다는 목표 아래, 학교 식당은 거대 식품기업들의 가공식품으로 가득 차게 됐고, ‘맛’은 기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교에서 직접 음식을 조리하는 걸 꺼리게 된 데엔 다른 배경도 있습니다. 식재료를 이용해 ‘진짜 요리’를 하다가 자칫 식중독 사고라도 발생하는 경우엔, 소송이 잦은 미국에서 엄청난 후과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01년 워싱턴주 케네윅의 핀리 학군은 식중독 사고 손해배상 소송에서 45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학군 연간 운영 예산의 절반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습니다. 판결 이후 해당 학군의 학교 급식에서는 고기를 익혀 만든 음식이 자취를 감췄고, 미리 조리된 제품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가난하면 급식 먹는다’는 편견

맛의 부재와 학생들의 외면을 넘어, 급식을 둘러싼 뿌리 깊은 편견도 급식의 인기를 낮추는 요인입니다. NSLP엔 3단계 체계가 정립돼 있습니다. 가구의 소득이 연방정부가 설정한 빈곤선(Federal Poverty Line)의 130% 이하면 무상, 130% 초과~185% 이하면 할인된 가격, 나머지는 유상으로 급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학교 급식이 ‘모든 학생이 누리는 혜택’이 아니라 ‘가난한 학생만을 위한 복지’로 인식되는 이유입니다. 급식을 먹는 아이들에겐 ‘저소득층’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급식을 먹는 행위는 수치스러운 일이 되고 맙니다.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무료로 급식을 제공해 낙인 효과를 줄이자는 의견이 미국에서도 점점 지지를 얻고 있지만, 얼마나 더 확산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오바마 행정부 때 영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주도한 ‘건강 급식’ 운동만 보더라도, 공화당을 위시한 우파 진영으로부터 ‘유모 국가(nanny state)’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삶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행태라며 폄훼한 건데, 이런 논리라면 ‘보편적 무상급식’ 역시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간주될 여지가 충분합니다. 연방정부 차원의 보편적 무상급식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잠시 전국적으로 도입됐다가 2022년 가을 중단됐습니다. 지금은 전체 50개 주 가운데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도, 메인 등 9개 주만 자체 입법을 거쳐 보편적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현실 학부모의 고뇌

최근, 가족을 초대해 함께 점심을 먹는 학교 행사가 열려서 현장 취재 느낌으로 참석했습니다. 음식의 맛이나 질과는 별개로, 식판과 숟가락, 포크가 다 일회용품이라는 것부터 충격적이었습니다. 여러 번 쓸 수 있는 용품을 일일이 수거해 세척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식당에서 음식 냄새를 거의 맡을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주방에서 식재료를 볶거나 끓이는 작업이 줄어드니, 요리할 때 풍기는 향도 약해진 모양입니다. 아이도 “한국에선 급식실 근처 복도에서 좋은 냄새가 나면 다들 ‘오늘 맛있는 거 나오나 봐’ 하고 좋아했는데 미국에선 그런 게 없다”고 아쉬워했습니다. 음식은 어땠냐고요? 너무 부정적인 것만 예상했던 탓인지, 저는 솔직히 이 정도면 먹을 만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아이는 “오늘은 급식이 매우 잘 나온 날”이라며, “자주 먹으면 질린다”고 손사래를 쳤지만요.

저는 배식대에서 나초칩과 닭고기, 치즈 딥, 피코 데 가요, 옥수수, 통조림 과일을 받아 왔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배식 줄에 선 학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도시락을 먹고 있었습니다. 행사를 위해 학교를 찾은 다른 가족들도 집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왔거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 온 눈치였습니다. 엄마와 아빠, 아이 모두 급식을 먹는 가족은 저희가 유일해 보였습니다. 급식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낮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간곡한 요청을 모르는 체할 정도로 심지가 굳은 엄마는 못 돼서 미국 생활 초기의 협약은 일찌감치 흐지부지됐습니다. 그러나 학교 식당에 다녀온 뒤로, 저의 마음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배식대에 올라온 음식을 빠짐없이 집으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구성이라 앞으로 다시 급식만 먹게 해도 될 듯한데, 아이가 이건 맛이 없고 저건 지겹다며 차 떼고 포 떼서 식판을 절반만 채우는 광경을 제 눈으로 보고 말았거든요. 아이는 심지어 꽤 많은 양을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아이는 배식대에서 치즈버거와 옥수수, 바나나만 가져왔습니다. “미국 급식은 부실하니 도시락을 싸 달라”는 시위용인가 의심도 됩니다.

결국 저는 오늘 새벽에도 아이의 도시락을 쌌습니다. 현장체험학습 날, 정성스럽게 만 김밥이 만드는 족족 다 풀어져 버리자 숟가락으로 떠서 먹으라고 했던 몇 년 전 엄마는 이제 없습니다. 미국에서 매일 도시락을 준비하며 김밥쯤은 뚝딱 만들 실력을 쌓은 덕입니다. 그러나 학교 급식이 미덥지 않아 부모가 도시락을 챙겨 보내야 하는 현실이 바람직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맞벌이 가정의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더 그렇습니다.

  1. Song, S., Tabares, E., Ishdorj, A., Crews, M., & Dave, J. (2024). The Quality of Lunches Brought from Home to School: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Advances in Nutrition, 15(8), 100255. 
  2. Fox, K., Gearan, E., Cabili C., Dotter, D., Niland, K., Washburn, L., Paxton, N., Olsho, L., LeClair, L., & Tran, V. (2019). Final Report Volume 4: Student Participation, Satisfaction, Plate Waste, and Dietary Intakes. School Nutrition and Meal Cost Study, U.S. Department of Agriculture, Food and Nutrition Service, Office of Policy Sup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