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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나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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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 Wait, Wait”


“미국 하면 떠오르는 말은?”
미국의 한 일간지에서 내놓은 질문에 각양각색의 답변들이 쏟아졌다. 그리스에서 온 한 젊은이는
“ketchup”이라고 답했고,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이민자는 “everything”이라고 대답했으며, 보
스턴에 사는 미국인은 “contradiction”이라는 의미심장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이 질문을 놓
고 일본과 중국, 이란 등지에서 온 몇몇 지인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의 대답은“huge”
였다. 사람은 물론 벌레까지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들보다 갑절은 더 크다 보니 선택한 단어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들었던 답변들 가운데 가장 피부로 와 닿았던 말이 바로 “wait”였다. 미국
에 처음 와서 느꼈던 가장 큰 불편함 중의 하나는 어느 것도 그 자리에서 곧바로 해결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 전까지 사람이 살던 집임에도 불구하고 전기는 물론 수도 같은 필수 서비
스도 신청한다고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짧게는 하루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도 미리 이런 사실을 챙기지 못해 꼼짝없이 사흘 동안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밤이면 암흑 속에 촛불을 켜고 수도가 안 나와 용변을 보기 두려웠던 날들을 한국에서는 상상이나
했겠는가. 백 번 양보해 공공적인 서비스의 영역은 그렇다 하더라도 상업적인 영역에서조차 번번히
기다림이 이어지다 보면 성미 급한 한국 사람들은 인내의 한계에 부딪히기 일쑤다. 전화로 연결되
는 각종 고객센터는 단연 압권이다. 은행, 기업, 병원 등을 가리지 않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한방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실로 하늘의 별 따기다.


한번은 병원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가 어렵사리 연결된 상담원의 “Wait a second”라는 말을
듣고 꼬박 1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미국에서 말하는 “Wait a second” 또는 “Wait a minute”
이 결코 초, 분 단위의 말 그대로 ‘잠시’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기까지 또 한참의 시간이 필
요하다.


“우리에게는 낯선, 그들에게는 익숙한”


“wait”라는 답변을 내놓은 사람은 나보다 조금 앞서 미국에 온 한 일본인이었다. “wait”라는
답변이 나오자 그 자리에 있던 우리들-정확히 말해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이었다-은 무릎을 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미국에서 겪었던 각종 기다림의 경험들을 쏟아냈다. DMV의 악명 높은 기다림에
서 정수기 회사의 느려터진 고객 서비스에 대한 불만까지 다양한 불만이 쏟아졌다. 자기 나라에서
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그 얘기를 다 듣고 난 미국인의 반응은 달랐다. 다소간 불편함이야 있겠지만, “함께 살아
가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충분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나는 그만큼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밖에 없지 않겠냐는 논리였다.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
이었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게다가 온갖 편법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종종 길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이 나에게 돌아올 충분한 보상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서비스 제공자의 농땡이나 누군가의 새
치기로 인한 손해일 것이라고 습관처럼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실상도 그러했을 것이고. 그래서 우
리는 미국의 기다림이 그토록 불편했고, 우리의 불편함이 미국인들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루 20명 VS 50명”


얼마 전 속이 불편해 병원을 찾을 일이 생겼다. 미국에 온 김에 미국 병원을 한번 가보리라 마음 먹
고 제법 규모가 있는 인근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예약부터 난관이었다. 상담원 통
화가 어려울뿐더러 미국에선 어이없게(?)도 휴대폰까지 잘 안 터진다. IT 강국에서 온 우리 같은 사
람들은 정말이지 환장할 정도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몇 차례 메시지를 남겼지만 불량한 핸드폰 수
신문제로 몇 번 전화가 엇갈리는 사이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간신히 지인의 지인을 통해 의
사를 직접 접촉한 후에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정상적인 과정으로 진료를 보려면
한 두달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규모가 좀 있기는 하지만 뭐 그리 대단한 유명 병원도 아닌데
유별나다 싶다 하던 차에, UCLA에 같이 연수를 와 있는 한 한국 의사에게서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한국 의사들은 하루에 5~60명을 진료하는 것이 보통인데, 미국 의사들은 하루 십 수명 정도를 진료하
는 것이 고작이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환자 1인당 할애되는 시간이 길다는 얘기다. 규모가 큰 종합병
원일수록, 용하기로 소문난 병원일수록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짧아 증상을 채 다 설명하지도
못하고 진료가 끝나 못내 아쉬웠던 한국에서의 경험이 머리 속에 겹쳐졌다.


“SLOW BUT SAFE”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변해가는 현대사회에서 ‘속도’는 참으로 중요한 명제
다. 그러나, 제어되지 않는 ‘속도’는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일쑤다. 세월호 참사는 과연 몇몇 부패
한 관리들과 이익만 추구했던 몰염치한 선사의 탓이었을까. 대형참사가 날 때마다 ‘후진국형 인재’
라는 지적이 이어지지만 정작 무엇이 ‘후진국형’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반성도 그에 따른 개선의
시도도 이뤄지지 않는다. 천천히 간다면 다소 늦게 도착할지언정 적어도 더 안전할 수 있다.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성장만이 살 길’이라는 식의 속도전의 구호를 그만두고, 이제 기다림을 배워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