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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자원봉사 사회의 빛과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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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그리고 아빠의 무관심.
흔히 자녀의 학업 성적을 결정짓는 3요소로 불리는 것들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저는 비교적 제 몫(?)을 다해온 편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의 학교 생활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 방과 후 다닐 학원 등을 챙기는 건 온전히 와이프의 몫이었습니다. 2년여간 제가 아이 학교를 찾은 건 입학식을 포함해 단 두 번이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확고한 지론이 있었습니다. ‘학습과 시험도 운동만큼이나 타고난 재능에 좌우된다. 재능이 60%, 본인의 의지 30%, 부모의 투자는 10% 정도다. 그나마 그 10%도 수확체감이 매우 크다. 그러니 과잉투자는 지양하자.’

하지만 대부분의 아빠들이 그렇듯 첫번째 고비인 ‘영어유치원 전투’에서 간단하게 패한 뒤 가급적 자녀 교육에 대한 언급은 삼가왔습니다. ‘명예로운 고립’을 택한 것이죠.

그런데 미국에 온 뒤 상황은 급반전됐습니다. 무엇보다 아이의 학교를 거의 매일 갑니다. 픽업때문만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뻔질나게 부르기 때문입니다. 개학전 오리엔테이션, 방과후 학교(애프터스쿨) 설명회, 학교 정원 가꾸기 행사, 오픈 하우스 등 개학한 지 한달이 채 안됐지만 공식 학부모 초청만 4~5번이었습니다. 여기에 귀가하는 아이의 가방 속에는 부모들에 각종 자원봉사와 기부를 요청하는 안내문이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들어있습니다.

이런 안내장을 받으면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디에, 얼마나 참여해야 할 지 감이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괜히 빠졌다가 우리 아이가 불이익을 받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도 슬그머니 듭니다. 궁리 끝에 찾은 답은 ‘중간만 하자’ 였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큰 아이가 다니는 메리 스크록스 초등학교의 경우 지난해 학생 1인당 75달러의 학부모 기부금을 모았다고 합니다. 우리 돈으로 8만원 조금 넘는 돈이니 그리 큰 부담은 아닌 셈입니다.


메리 스크록스 초등학교 입구에 붙어있는 학부모회 참여 독려판. 연말 시청 앞에 등장하는 ‘사랑의 온도탑’을 연상케 한다.

남은 일은 ‘청구서’ 별로 적당히 배분해 보폭을 맞추는 일입니다. 미국 초등학교들이 기부금을 모으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가장 큰 몫은 학부모-교사 협의회(PTAㆍParent Teacher Association)에 직접 내는 기부금이 차지합니다. PTA는 거의 모든 학교에 설치된 공식 학부모 참여 기관입니다. 전국 협의회(National PTA)가 1897년에 결성됐다고 하니 100년이 훨씬 넘는 전통을 가진 조직입니다. 또다른 모금 방식은 인근의 상점과 제휴해 상품권을 판매하는 것입니다. 예컨데 학부모가 학교 앞 슈퍼의 상품권 100달러 어치를 학교를 통해 사면, 상품권 사용액의 5~6%가 학교에 기부금으로 돌아가는 식입니다. 이밖에도 학교 로고가 새겨진 T셔츠 판매, 중고책 장터, 걷기 대회 등을 통해 돈을 걷습니다.


학교 기부금 모금에는 상품권 판매도 한 몫한다. 교내에 붙어있는 제휴 상품권 안내 게시판.

이런 기부와 자원봉사의 가시적인 댓가는 학부모의 발언권일 겁니다. 지난해 PTA 회의에 직접 참석해 본 한국인 학부모에 따르면 사친회 수준을 예상하고 갔다가 교사와 학부모간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고 합니다. ‘역시 선진국 답구나’하고 고개를 끄떡이게 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의문도 생깁니다. 이곳도 맞벌이 가정이 상당수인데 기부야 그렇다치고 그많은 자원봉사나 학교 행사에 학부모들이 적극 참여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겁니다. 실제 지난주 열린 교실 공개 행사 때 참석한 학부모 숫자는 한국과 비교해봐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큰 아이의 학급의 경우 모두 22명이 정원인데 이날 참석한 학부모 수는 많이 봐도 10명 안팎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접했습니다. 요지는 학교가 학부모들에 대해 요구하는 게 너무 많고, 그러다 보니 여기에 응하지 못하는 부모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어 문제라는 겁니다. 미국에서 자원봉사 등 학교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학부모는 평균적으로 전체의 25% 정도에 그친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원봉사가 여유있는 계층들이 주로 하는 일종의 ‘사회적 신분’처럼 되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전직 PTA 회장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대놓고 “자원봉사 요구에 당당하게 ‘NO’라고 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네요.

PTA의 세도 점차 사그러드는 분위기입니다. 1960년대 1200만명을 웃돌던 전국 회원 수가 요즘은 500만명 수준으로 쪼그라 들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라면 미국의 가장 좋았던 시절이네요. 가장 한명이 직장에 나가면 4~5인 가구가 충분히 중산층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요.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보수적인 남부에서조차 ‘노는 남자와 일하는 여자’가 크게 늘었으니 말입니다.

활발한 기부도 그 빛만큼 이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공적 투자가 부족해 보이니 말입니다. 사실 기부금의 대부분은 학교 기자재나 교직원의 복리 비용에 쓴다고 합니다. 의무교육이라면 원칙적으로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일이죠. 당장 미국 교사의 처우만 봐도 그렇습니다. 얼마전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기도 하더군요. 교사 봉급으로는 대학 학자금 대출을 갚기가 쉽지 않으니 우수한 학생들이 교직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주변의 한국인 학부모는 주말에 동네 몰에 들렀다가 아르바이트로 점원 일을 하는 담임을 목격하기도 했다네요. 성적이 우수한 여학생들이 교대로 쏠리는 우리와는 반대 방향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지요.

앞서 언급한 NYT 기사의 결론은 한마디로 ‘기본에 충실하라’ 입니다. 학교 일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학부모의 역할은 가정에서 이뤄진다는 겁니다. 구체적 ‘팁’을 읽어 보면 이것만 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두루 참고할 만한 것 같아 덧붙입니다.

1. 아이에게 제대로된 질문을 하라.
-학부모가 학교 일에 많이 참여한다고 아이의 성취도가 높아진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가정에선 다르다. 학부모의 개입이 큰 역할을 한다. 부모가 높은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자녀가 알게 하라. 그러자면 질문을 구체적으로 해야한다. 단순히 “학교에서 어땠어?”라는 식으로 묻지 말라. 대신 “오늘 수학시간에 배운 것 중 흥미로왔던 게 뭐니?” 혹은 “과학시간에 뭘 했니?”라고 물어라. 아이가 배운 것을 얘기하게 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라.

2. 애들을 충분히 재워라.
-요즘 학교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학부모의 참여가 부족한 게 아니라 학생들의 잠이 부족한 것이다. 아이들이 숙제를 마치고 제 시간에 잠들게 하고, 제 시간에 맑은 정신으로 등교하게 하라. 모든 학부모들이 이를 정확히 지키면 학교는 보다 행복해질 것이다.

3. 선생님을 만나라.
-선생님과 관계를 쌓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당신이 누군지 알게 하고 이렇게 말하라. “아이가 학교 생활을 잘 하기 위해 당신과 최대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