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루틴 만들기
미국에서의 연수도 어느덧 중반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설레고 새로웠던 연수 초반을 지나 이제는 익숙함 속에 초조한 마음도 조금씩 들기 시작합니다.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한국에 돌아갔을 때 후회가 적을까 하는 생각합니다. 평소 하고 싶었던 것들에 도전하고 건강한 루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이곳에서 아이와 단둘이 지내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학교에 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매일 아침 손을 흔들며 스쿨버스를 떠나보낸 이후엔 약간의 해방감과 함께 나름대로 분주한 일과가 시작됩니다.
사진 설명 : 집 근처의 공립도서관
독서(관심 분야 원서 읽기)
이곳에서는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도 댈 수 없기에 독서 습관을 붙이려고 노력합니다. 재미 교포 출신 작가들의 ‘Pachinko’(파친코)나 ‘Crying in H Mart’(H마트에서 울다) 같은 책들은 한국 정서가 깔려 있기에 소설이지만 원서로 읽기에도 큰 부담이 없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 간 4세대에 걸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파친코’의 경우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 같은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해 읽는 내내 흡입력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H마트를 자주 가는 저로선 교포 2세 작가의 ‘H마트에서 울다’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제가 연수중인 조지워싱턴대 세미나가 인상적이어서 강연자들의 저서를 찾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가을 조지워싱턴대에서 한국 내 반중 정서의 흐름과 이것이 한미 동맹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강연했던 스탠포드대 신기욱 교수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도 흥미로웠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2016~2017년 촛불집회 이후 2022년 대선까지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다룬 최신 저서로 양극화와 포퓰리즘, 상대 진영을 적대시하는 정치 극단주의를 짚은 책입니다. 신기욱 교수가 당시 세미나에서 이 책이 한국어 번역판으로도 곧 나올 예정이라고 소개했는데 지금쯤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지워싱턴대 북한 인권 세미나 강연자로 나온 로버트 킹 전 미국 북한인권특사가 자신의 신간이라며 소개한 ‘북한의 난제: 인권과 핵안보의 균형’(The North Korean Conundrum: Balancing Human Rights and Nuclear Security)도 구매해서 읽는 중입니다. 북한 인권과 비핵화 협상 간의 균형에 대한 인사이트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미셸 오바마의 ‘The light we carry’도 전작 ‘Becoming’에 이어 재밌게 읽었습니다. 선배 여성 멘토를 만난 느낌이랄까요. 이 책 출간 당시 워싱턴 DC에서도 북콘서트를 열길래 티켓 예약을 알아봤지만 가격이 무려 300달러에 달하기에 북콘서트는 포기했습니다. 조선일보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집어든 수전 케인의 ‘Bittersweet’는 우리가 종종 느끼는 슬픔과 우울함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줬습니다. 집 근처 공립도서관에 가면 복잡하기 짝이 없는 미국 대선 시스템, 대통령제와 미국 민주주의 역사를 알기 쉽게 다룬 책들도 많이 나와 있어서 대여해서 읽곤 합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접한 미 의회의 ‘9.11 보고서’(2004년 발간)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워낙 두꺼워 발췌독을 했지만, 9.11 테러 사건 전후 상황과 역사적 맥락을 되도록 객관적인 입장에서 상세하게 다룬 미 기관들의 집요함에 감탄했습니다.
연수기간 여행을 많이 하게 되는데 아는 분으로부터 추천받은 ‘DK eyewitness’ 출판사의 미 도시별 가이드북 시리즈도 참고가 많이 됐습니다. 단순 가이드북이라기보다는 그 도시의 역사나 랜드마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틈틈이 소개돼 있어 읽는 그 자체로도 재미있습니다. 뉴욕, 워싱턴DC 등 주요 도시별로 책이 나와 있습니다.
운동
원래 미국에 오면 수영을 취미로 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동네 렉 센터(레크리에이션 센터의 줄임말)에는 성인 대상으로는 저녁 강좌 밖에 없어서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저로서는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12월 초 그룹 피트니스에 등록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시간대를 선택해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Orangetheory’라는 이름의 피트니스인데, 미국 전역에 1000곳 넘는 지점이 있다고 합니다. 수업을 가게 되면 고강도 인터벌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1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일주일에 숨이 차는 고강도 운동을 몇 번 하나’, ‘일주일에 산책 같은 가벼운 강도의 운동을 몇 번 하나’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0회’를 적었던 저로선 몇 년 만의 운동인지 모르겠습니다. 심박수 모니터링 밴드를 팔에 차면 수업에 참여한 멤버들의 심박수 현황과 칼로리 소모량이 앞의 전광판에 나타납니다. 자신의 최고 심박수의 84~91% 정도를 ‘오렌지 존’, 그 이상을 ‘레드 존’이라고 하는데, 이 두 구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수록 운동 효과가 커진다는 것이 이곳의 설명입니다. 운동을 시작한 초반에는 저질 체력을 인증하듯 제 이름이 있는 전광판 부분만 ‘레드 존’으로 수시로 바뀌어서 마치 비상등이 켜진 냥 민망했지만, 이제는 안정적으로 ‘오렌지 존’에 머무를 때가 보다 많습니다. 일주일에 3-4회씩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근육도 체력도 늘어나는 듯한 변화를 느낍니다. 이제 겨우 시작이니 질리지 않고 최대한 습관으로 이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진 설명 : 링컨메모리얼 호수에서 오리들에게 모이를 주는 딸
한국에서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던 저로선 아이와의 소소한 루틴 만들기도 즐겁습니다. 다음날 등교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주말 밤이면 디즈니나 마블 영화를 한편씩 보다가 자는 것이 루틴이 됐습니다. 조명을 어둡게 하고 거실 소파에 앉아 아이와 꼭 붙어 있는 그 시간이 평화롭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시간이 나는 주말마다 워싱턴DC의 링컨 메모리얼 앞에 있는 호수에 가서 오리들에게 모이를 주기도 합니다. 준비해 간 빵을 조금씩 잘라 던져 주면 순식간에 대여섯 마리가 모여들고, 신난 아이 모습을 보는 제 마음도 덩달아 즐거워집니다. 아이 겨울방학을 맞아 조지타운대 근처 포토맥 강변 아이스 링크에서 자주 탔던 스케이트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