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서 무능한 은행 직원(뱅크오브아메리카, BOA)을 만나 겪어야 했던 고생담을 전해드렸는데
이번엔 신용카드 만들기와 사용하기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 경험을 빌어 미국의 신용카드 문화
를 들여다보고, 이 글의 주요 독자라 할 수 있는 연수 준비생들에게 정보도 드리려고 합니다.
미국에선 가급적 빨리 신용카드를 만드는 게 좋습니다. 똑같은 돈을 쓰더라도 데빗(체크)카드는 아무런
혜택이 없지만, 신용카드는 캐쉬백으로 현금을 돌려주고 신용점수도 쌓이니까 일석이조입니다.
미국 도착 한 달만에 만든 신용카드
은행 계좌를 트고 데빗(체크)카드를 만든 지 얼마 안 돼서 BOA ‘캐시 리워드 카드’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미국에 온 지 6개월이 지나야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다고 들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
에 상담을 해봤는데 사용한도 2000달러짜리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물론 사회보장번호-SSN-
이 필요합니다) 미국에 도착한 지 한 달만이었습니다. 마트에서 장 한 번만 봐도 100달러, 200달러는
금방이라 2000달러 한도는 너무 낮게 느껴졌지만 미국에서 신용이 전혀 없는 저에게는 감지덕지한 일이
었습니다.
한도 제한은 휴대전화 앱으로 해결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클릭 두 번이면 결제(Make Pament)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한도가 다 되어간다 싶으면 미리 2000달러를 결제해서 한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진짜 현금을 돌려주는 캐쉬백
놀라운 점은 이 카드가 리워드를 현금으로 준다는 점이었습니다. 쓰기도 어려운 포인트 적립으로 소비자
를 우롱하는 국내 카드사들과는 딴판이었습니다. 구매 금액 대비, 주유 3%, 식료잡화 2%, 그 외 모든 거
래 1%, 이런 식으로 현금이 쌓이는데 필요할 때마다 통장에 입금할 수도 있고, 한달에 한번 자동으로 입
금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캐쉬백’인 셈입니다.
사용금액마다 달라지겠지만 저 같은 경우 한 달에 70달러가량 돌려받더군요. 미국에 와서 차량 등록 늦게
했다고 벌금, 소화전 앞에다 주차했다고 벌금 등등 돈을 뜯겨만 봤지 현금으로 보상받는 경우는 처음이라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미국 카드의 명실상부한 캐쉬백 서비스가 미국인들의 지독한 ‘현금 사랑’과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티브이 광고에서 ‘SAVE MONEY’라며 달러 뭉치를 흔드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티브이 광고에서 돈 다발을 흔들었다간 배금주의를 유포한다는 비난은 물론이
고 천박하다는 이유에서라도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겁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종주국이자 실용주의 철학
으로 무장한 미국인들은 현금 흔드는 걸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더군요.
‘6개월 룰’을 실감하다
다시 카드 얘기로 돌아오죠. 캐쉬백은 좋은데 카드가 하나밖에 없으니까 영 불편하더군요. 미국은 VISA나
MASTERCARD 둘 중 하나만 받는 곳이 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월마트가 운영하는 회원제 창고형 마트
샘스클럽(SAM’S CLUB)이 VISA를 받지 않습니다. 마침 제 BOA 카드가 VISA였습니다. 게다가 아내도
따로 카드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샘스클럽 마스터카드를 신청한 게 미국에 온 지 5달만인 지난해 12월
이었습니다.
결과는 거부. 심사를 담당하는 Synchrony 은행의 답변은 신용점수가 낮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기간이 너무 짧다고 하더군요. 말로만 듣던 6개월 룰을 실감한 셈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신청했던 아마존
카드도 발급을 거부당했습니다.
신용카드에서 자존심 찾지 말자
자존심이 상하더군요. 나중에 깨달았지만 신용카드 발급 거부를 자존심의 문제로 받아들인 건 전형적인
한국식 사고 방식입니다. 미국은 개인의 신용카드 사용실적과 연체 여부 등을 점수화해서 관리하기 때문
에 다른 요소는 평가 대상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지, 돈이 얼마나 많은지는 중요하
지 않습니다. 체킹 어카운트에 아무리 많은 돈을 쌓아놓고 있더라도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으면 신용이
쌓이지 않거든요.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카드를 신청하는 것도 카드 발급 거부 사유가 됩니다.
아무튼 이 무렵이었습니다. 캐피탈원(CAPITAL ONE)이라는 은행이 신용카드를 신청하라는 내용의 우편
물을 보내기 시작하더군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무한테나 카드 발급해주고 연체료 뜯어먹고 사는 은행이
라는 글이 있더군요. 무작위로 우편을 보내기 때문에 이미 카드를 만든 사람한테도 계속 카드를 만들라고
우편을 보낸다는 글도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캐피탈원은 예금 순위로 미국에서 5~8위정도 하는, 나름 이름있는 은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신
용카드 마케팅은 좀 공격적으로 하나 봅니다. 어쨌든 이 카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발급해준다는
점 말고는 별 장점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신청하지 않았죠. 신청 권유 우편은 지금도 계속
배달되고 있습니다.
마일리지 빵빵한 제휴카드들
1월 들어서는 신용이 좀 쌓인 덕분인지 카드 두 개를 발급받았습니다. 둘 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인
데, 하나는 델타항공, 다른 하나는 힐튼호텔 제휴카드입니다. 델타 카드는 석달 동안 1000달러만 쓰면
델타항공 마일리지 6만마일을 주고, 힐튼 카드는 포인트 적립 방식이 좀 복잡한데, 아무튼 포인트를 숙박
권으로 교환해 줍니다. 델타항공은 대한항공과 같은 스카이팀 소속이어서 대한항공에서도 마일리지를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힐튼 카드는 연회비가 없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이제 도미 6개월이 지나는 2월에는 미국 교포들의 ‘완소 카드’로 불리는 체이스 대한항공 카드를 만들
려고 합니다. 카드의 정식 명칭은 ‘Chase Sapphire Preferred’인데 첫 석달 동안 4000달러 이상 사용하
면 대한항공 마일리지 5만마일을 준다고 합니다.
제가 원래 이재에 밝은 편도 아니고, 재테크는 귀찮아서 절대 안하는 사람이었는데 낯선 땅에 오니 이렇
게 바뀌네요. 매일 통장 잔고 확인하는 게 주요 일과 중 하나일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신용카드에 관해 잘 정리한 사이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마일모아닷컴(www.milemoa.
com)이라는 곳인데요, 카드부터 항공사까지 각종 마일리지를 총망라한 정보 창고입니다. 그럼 현명한
소비생활로 쓸 데 없는 외화 낭비를 줄이고 가족의 평안도 이루시길 바란다는 말씀 전하면서 글을 마치겠
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