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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 후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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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방학(?)을 이용해 남미의 주요 국가를 여행했는데 천성적인 게으름 탓에 이제야 후기를 올리게 되네요. 4주 동안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5개 국가를 다녀왔습니다. 넓은 대륙을 4주만에 일주하기는 불가능해 한 나라당 가장 핵심적인 곳 두군데만 찍어서 다녀왔습니다. 수도와 그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 한 곳만 둘러보는데도 시간이 모자랐죠.

◆주요 일정
페루 리마에 남미의 첫 발을 내디뎠지만 리마는 건너뛰고 바로 쿠스코로 갔습니다.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와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피추’를 둘러보고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거대한 지상화를 경비행기를 이용해 하늘에서 내려볼 수 있는 나스카까지 다녀왔습니다. 볼리비아에서는 수도인 라파즈와 잉카제국보다 앞선 시대였던 티와나쿠의 유적, 거대한 소금사막이 압권인 우유니를 돌아다녔습니다. 우유니에서 바로 국경을 넘어 칠레의 산페드로에서 잠깐 머문 뒤 수도인 산티아고로 향했고 짧은 체류이후 곧바로 아르헨티나로 이동했죠. 아르헨티나에서는 거대한 빙하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엘 칼라파테와 엘 찰텐,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을 지나다녔습니다.마지막으로 이과수 폭포와 상파울로(브라질의 수도는 브라질리아이지만 이곳은 전형적인 행정도시여서 관광차 방문하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미 최대의 도시인 상파울로를 다녀왔죠.)를 돌아보고 미국 워싱턴DC로 귀환했습니다. 짧게 다니느라 쿠스코와 우유니에서만 3일 정도 머물렀고 나머지는 하루나 이틀씩 체류했습니다. 이동과 관련한 시간을 줄이기위해 비행기가 가능한 구간은 항상 비행기를 이용했습니다.

◆잉카 제국의 심장, 쿠스코
쿠스코는 페루와 브라질, 볼리비아, 칠레 북부지역까지 아우르던 잉카제국의 수도였습니다. 16세기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 일행이 쿠스코에 입성했을 때 그들은 왕궁과 신전을 장식했던 많은 양의 황금에 잠시 넋을 잃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복자인 그들은 왕궁과 신전의 황금을 떼어내 자신들의 잇속을 채리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폐허로 변해버린 왕궁과 신전 위에 자신들의 성당을 건설했습니다. 태양의 신전인 코리칸차(사진 1)의 옆모습을 보시면 잉카의 석재기술을 볼 수 있는 바닥 부분(코리칸차)과 스페인 풍으로 지은 윗부분의 성당(산토도밍고 성당)이 확연히 구별되실 것입니다.



(사진 1)

재미있는 사실은 쿠스코에 대지진이 났을 때 잉카제국이 쌓아올린 부분은 문제 없었는데 윗부분은 모두 파괴되었다는 것이죠. 잉카인들은 아무렇게나 돌을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 바위에 요철(凹凸)을 만들어 아귀가 딱 맞도록 했습니다. 12각의 돌(사진 2)을 보시면 ‘종이 한 장 들어갈 틈이 없다’는 잉카의 석재기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냥 쌓아올려도 될 것을 12각이 만들어지도록 멋을 부린데다 아귀가 딱 맞아떨어집니다. 놀라운 잉카인의 석재기술이죠.



(사진 2)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피추
미국의 역사학자인 빙험(Hiram Bingham)은 산 위에 도시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깎아지른듯한 절벽을 기어 올라가 수풀로 우거진 마추피추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마추피추 유적은 마추피추(늙은 봉우리라는 뜻)와 와이나피추(젊은 봉우리라는 뜻)라는 두개의 봉우리 사이에 있는 작은 둔덕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산 밑의 주거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공중 도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도 발견하지 못했고 그 덕분에 파괴되지 않아서 잉카문명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죠. 조그만한 신전과 주거지, 경작지(계단식 밭)를 갖춘 도시로 자급자족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사진 3)



(사진 3)

마추피추 봉우리쪽으로는 정글로 향하는 잉카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지금도 3박4일의 정글 트레킹을 거쳐 마추피추로 들어오는 루트로 이용되고 있죠. 반대로 와이나피추쪽에는 조그마한 성채가 하나 있습니다. 마추피추를 지키기 위한 목적이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깎아지른듯한 절벽에 지어진 성채(사진 4)들이 가히 예술이라 할만합니다.



(사진 4)

특히 축대 위에 만들어놓은 계단(사진 5)을 보면 잉카인들의 석재기술에 또 한번 놀라게 되죠.



(사진 5)

지금은 마추피추 푸에블로라는 마을까지 기차가 이어져 있습니다. 그곳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지그재그로 만들어놓은 길을 올라가 마추피추 유적에 다다르죠. 와이나피추 봉우리에서 보면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길이 보이는데(사진 6) 예전에는 굿바이 보이(Good Bye Boy)라고 해서 페루 전통 복장을 한 소년이 내려가는 버스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지름길로 내려가 다음 지그재그길에서 같은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는 했답니다.



(사진 6)

밑에 다다르면 소년이 버스에 올라 팁을 받아갔다고 하는데 소년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돈벌이에 열중인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서인지 지금은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수수께끼의 지상화, 나스카
서기 400년대에 해안가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나스카 문명은 사막처럼 이뤄진 넓은 평원에 그림을 새겼습니다. 벌새, 원숭이, 거미 등 다양한 그림들이 넓은 평원에 그려져 있지만 크기가 워낙 커서 지상에서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 모습을 또렷이 확인할 수 있죠. 16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림이 선명한 것은 이 지역이 1년 내내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았고 사막에 가까운 지형이라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덕분(?)입니다. 지금도 나스카인들이 하늘에서만 내려봐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그림을 땅에 어떻게 그릴 수 있었는지는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지상화 가운데는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한 수수께끼의 그림이 있는데 페루인들은 이것을 ‘우주비행사(ustronaut)’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우주복과 공 모양의 헬멧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그 당시에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 그런 그림을 남긴 것일까요?
한가지 아쉬운 사실은 2011년의 첫날 나스카의 지상화를 둘러보면서 찍은 많은 사진들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점입니다. 볼리비아 라파즈로 향하는 도중에 카메라를 잃어버려 이날 찍은 모든 사진을 찾을 수 없었죠. 다행스러운 것은 2010년까지 찍은 사진들은 메모리칩을 교체한 덕분에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쿠스코와 마추피추의 사진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 라파즈
볼리비아의 수도인 라파즈는 해발 3500m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분지로 이뤄진 이곳은 남미에서 가장 못사는 국가 가운데 하나인 볼리비아의 수도라 그런지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무리요 광장 모퉁이에 위치한 대통령궁에도 몇명의 근위병이 지키는 것이 전부입니다.(사진 7) 주변에는 달 표면을 닮았다고 해서 달의 계곡(La Valle de la lunar)이라고 불리는 분지가 유명합니다.



(사진 7)

라파즈에서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는 15세기 잉카문명 직전의 문명이었던 티와나쿠의 유적도 있습니다. 티와나쿠는 약 1000년 정도 이어졌다고 하는데 남아있는 유적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노트리트라 불리는 거대한 석상들(사진 8)이 유명한데 날개를 단 전사의 모습을 새긴 태양의 문(사진 9)이나 180개의 얼굴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 반지하 신전(사진 10, 11)이 저에게는 더욱 볼만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 8)



(사진 9)



(사진 10)



(사진 11)

지금도 티와나쿠의 유적은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앞으로 티와나쿠의 놀라운 문명을 새삼 발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광활한 소금 사막, 우유니
수만년 전 바다 밑이었던 지형이 융기해 해발 3500m 높이로 우뚝 솟은 뒤 바닥에 고인 바닷물이 마르면서 1만2000㎢(제곱킬로미터)의 거대한 소금사막이 만들어졌습니다. 20억톤에 달하는 소금으로 뒤덮인 지형은 마치 모래가 잔뜩 깔린 모래사막처럼 아무런 풀도 자라지 못하는 불모의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유입되는 강이 없어서인지 멀리 보이는 지평선까지 보이는 것은 하얀 소금의 결정체뿐이죠.(사진 12) 우유니 소금사막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우기에 비가 내렸을 때입니다.



(사진 12)

넓은 소금사막위에 얇은 수막(빗물이 약간 덮은 모습을 상상하시면 됩니다)이 형성되면 사막은 마치 호수처럼 보입니다. 멀리 내다보면 하늘과 물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죠. 마치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갈릴리 기적처럼 호수위를 걸어다니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아쉽게도 제가 방문했을 무렵에는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비가 내리지 않아 그같은 광경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우유니에서 시작하는 대부분의 여행 투어는 당일치기로 소금사막을 둘러보고 우유니로 돌아오거나, 아니면 2박3일 코스로 첫날은 소금사막을 둘러보고 둘째날과 세째날은 에두아로드 아바로아 자연보호지역을 여행한 뒤 칠레로 국경을 넘거나 우유니로 돌아오는 가이드 투어를 합니다. 소금사막 안에는 소금으로 지어진 호텔(실제로는 한국의 여인숙 수준입니다만)이 있습니다. 넓은 소금사막의 바닥을 벽돌 모양으로 파내면 바로 소금 벽돌이 되는데 그 벽돌로 의자나 테이블, 침대(사진 13)를 만들었죠.



(사진 13)

시험삼아 혀를 대어봤더니 매우 짠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여행사들은 바쁜 일정때문에 소금호텔을 잠깐 구경하고 바로 다음 관광지로 안내합니다. 그러나 저는 소금호텔에서 하루 묵기로 했죠. 운이 좋아서인지 그날 호텔의 손님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덕분에 한밤중에 소금사막을 홀로 돌아다닐 수 있었죠. 3500m 고원이어서인지 하늘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별이 총총 빛나고 땅에는 보이는 끝까지 온통 하얀 소금뿐이었습니다. 아무런 생명체도 살지 못하는 외계의 한 행성에 홀로 남겨진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일출(사진 14) 역시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사진 14)

소금사막을 지나면 넓은 고원에 몇개의 염호와 풍화작용으로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는 바위들이 있는 평원을 만나게 됩니다. 바람에 의해 밑부분이 깎여 마치 버섯 모양으로 만들어진 바위(사진 15, 16)는 이국적인 풍경을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사진 15)



(사진 16)

* 위 글과 관련해 궁금한 점 있으면 메일(redael@hankyung.com)로 연락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