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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도시, 파리 임장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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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리의 얼굴을 만든 ‘오스만 프로젝트’의 유산

파리 시내를 걷다 보면 마주하는 일관된 석조 건물들, 이른바 ‘오스만 양식(Immeuble Haussmannien)’은 단순한 건축 스타일을 넘어 파리의 정체성 그 자체다.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의 명을 받은 조르주 외젠 오스만 남작은 전면적인 도시 개조 사업을 단행했다. 미로처럼 얽힌 중세의 불결한 골목을 허물고 탁 트인 대로를 냈으며, 건물의 높이와 자재, 외관의 비율까지 엄격히 규제했다.

이 규제는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파리의 스카이라인을 지키는 엄격한 법적 근거가 된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전통을 고수하는 이들의 고집은, 결국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으로 보존하겠다는 국가적 자부심과 연결된다. 1년의 연수 기간, 반드시 이 오스만 건물에 살아보겠다는 욕망을 안고 파리로 향했다. 하지만 낭만은 늘 현실이라는 거친 벽 앞에 서기 마련이다.

파리 16구 오스만 양식 아파트 건물 전경

2. ‘대문자 P’ 기자의 무대책 파리 상륙기

고백하건대, 필자는 “어떻게든 되겠지”가 삶의 모토인 대문자 P다. 지난해 7월, 달랑 3일 치 호텔 예약 후 파리로 향했다. 악명 높은 렌트 상황을 몰랐던 것은 아니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앞섰다. 결과는 냉정했다. 모두가 도시를 비운다는 유럽의 장기 휴가철까지 겹치며, ‘내 집, 내 침대’에 몸을 누이기까지는 꼬박 한 달이 걸렸다.

① 54번의 문 두드림, 30번의 발품
입국 직후 SeLoger, Bienici 등 현지 부동산 앱부터 깔았다. 한 달간 정확히 54곳에 메시지를 보냈고 30곳의 집을 직접 봤다. 유난하다고 해도 할 수 없었다. 덕분에 파리 시내 지리를 샅샅이 훑었으니 후회는 없다.

프랑스의 렌트 절차는 까다롭다 못해 경건하다. 매물을 찾으면 일종의 세입자 지원 서류인 ‘도시에(Dossier)’를 제출해야 한다. 여권 사본, 체류 자격 증명, 소득 증빙, 2차 보증은 기본이며, ‘심사 경쟁력’을 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까지 첨부하는 일이 허다하다. 필자의 서류는 PDF로 15장에 달했다. 중개인의 1차 심사를 통과해 집을 방문하고, 집주인의 최종 승인이 떨어져야 비로소 계약서에 사인할 기회가 생긴다. 마지막 관문인 ‘에따 데 리외(Etat des lieux·입주 전 상태 점검)’까지 마치면 통상 1~2주가 속절없이 지나간다.

② 보증의 지옥, 그리고 ‘민사 계약’
외국인 입장에서 렌트 계약의 가장 큰 난관은 보증이었다. 프랑스는 세입자 보호가 강력해 집세가 밀려도 주인을 마음대로 내쫓을 수 없다. 주인들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월세 3배 이상의 소득을 증명하는 현지 보증인을 철저히 요구한다. 외국인 단기 거주자에겐 막막한 조건이다.

대안은 임대인 입장에서 규제가 덜한 ‘민사 계약(Bail civil)’을 맺는 것이다. 월세와 중개 수수료는 다소 높지만, 외국인에게 문턱이 낮다. 현지 보증인 대신 1년 치 월세를 은행에 묶어두는 ‘은행 보증’이나 민간보증회사를 이용하는 방식에도 비교적 우호적이다. 필자는 민간보증회사를 선택했다. 스타트업인 GarantMe 등이 주로 쓰인다.

엘레베이터 구조부터 제각각인 파리 아파트들

③ 낭만과 생존 사이, 기상천외한 파리의 집들
파리는 20개 행정구역별로 거주 환경이 천차만별이다. 초기엔 욕심이 많았다. 오스만 건물이되 엘리베이터와 관리인(Gardien)이 있고 채광이 좋은 집을 원했다. 한국에선 당연한 조건들이 이곳에선 사치다. 석회 가득한 수돗물을 음용할 수 없어 매번 생수를 사서 날라야 하고, 수령인 부재 시 사실상 택배를 받을 수 없고, 도둑이 기승을 부리는 도시에서 관리인과 엘리베이터는 낭만이 아닌 생존이다. 수백 년 된 건물을 개조하다 보니 입구는 화려해도 내부는 곰팡내가 진동하는 집도 태반이었다. 이런 집들도 월세가 수백만 원에 육박하는 것이 파리의 현실이다.

파리 16구 오스만 양식 아파트 건물 전경

3. 에펠탑의 낭만과 맞바꾼 ‘빙하기’ 하녀방

30번의 임장 끝에 파리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16구에 둥지를 틀었다. 무려 에어컨이 있고, 창밖으론 에펠탑이 반쯤 걸리는 ‘기적의 매물’이었다. 하지만 예산과 타협하기 위해 포기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하녀방(Chambre de bonne)’ 층이라는 점이었다.

과거 하인들이 기거하던 꼭대기 층 방 6개를 터서 12평 남짓으로 개조한 이 집의 월세는 2천100유로(한화 약 360만 원). 치안 걱정을 덜고 내부 구조가 마음에 쏙 들었으니, 100년 넘은 배수관, 좁고 어두운 복도 등은 견딜 수 있었다. 다만 꼭대기 층 특유의 추위는 복병이었다. 온수관으로 건물 전체를 데우는 중앙난방은 7층에 닿기 전 속절없이 식어버렸다. 겨우내 집 안에서 입김이 나왔고, 경량 패딩은 문신이나 다름없었다.

이 불편함은 역설적으로 파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했다. 왜 그들이 날이 개면 득달같이 거리로 나와 공원, 식당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데에 집착하는지 몸소 깨달았달까. 내 인생에서 가장 추웠으나 낭만적이었던 겨울을 보낸 이 집은 일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