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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트럭을 몰다니… 미국 이사 끝판왕 ‘유홀’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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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트럭을 몰다니… 미국 이사 끝판왕 ‘유홀’ 체험기

“뭣이 중한데… 아껴야 잘 산다.”

아내의 이 철학으로 인해 미국 초기정착 생활은 육체노동의 연속이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임대하우스는 세탁기, 냉장고 등 대형가전만 갖춰져 있다. 침대, 소파, 식탁 등 가구는 본인이 마련해야 한다. 새 제품을 사서 배송한다면 돈이야 들겠지만, 노동에서는 해방된다. 하지만 아내가 “1년 거주할 건데 뭣 하러 새 제품을 비싸게 사느냐”며 중고품 매입을 고집하면서 내겐 노동의 신세계가 열렸다. 이건 마치 데스크가 다음 주 기획 시리즈 한번 하자고 말을 툭 던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우리가 처음으로 마련한 가구는 거실 소파였다. 이것만 유일하게 새 제품을 구매했다. 마트에서 할인해서 판매했는데 아내는 배송비를 절감해야 한다며 직접 차에 싣자고 제안했다. 이게 과연 준중형급의 SUV에 들어갈 수 있을까. 차량 뒷좌석을 눕힌 뒤 마트 직원과 함께 낑낑대며 밀어 넣었는데 박스 포장된 소파는 약간의 여유 공간을 남기며 깔끔하게 들어갔다. 집에서 박스 포장을 벗기니 소파임에도 조립의 과정이 필요했다. 팔걸이 부분이 분리돼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팔걸이가 박스 안에 담겨있지 않았다. 박스 구성품을 제대로 넣지 않았다고 판단, 다시 차에 실어 반품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이걸 또 어떻게 박스에 넣어서 차에 실으려나.

일련의 반품 과정이 너무 번거롭다는 생각에 나는 적극적으로 팔걸이가 소파 구성품에 포함돼있을 것으로 믿고 뒤지기 시작했다. 절실한 바람이 통한 것일까. 소파 본체를 유심히 살펴보니 바닥면에 굳이 필요 없어 보이는 지퍼가 있었고 지퍼를 열어보니 그 안에 팔걸이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소파 바닥면 공간이 비어있었고 그 자리에 팔걸이를 고이 숨겨 놓은 것이다. 공간 구성 측면에서야 칭찬할 일이지만 이걸 몰랐던 소비자는 몹시 당황할 일이었다. 일련의 소동 끝에 거실의 소파 구비는 무탈하게 끝이 났다.

우리의 두 번째 구비 품목은 퀸사이즈 침대와 식탁이었다. 침대는 당연히 준중형 SUV에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는 ‘오버사이즈’ 품목이다. 이걸 어떻게 나르느냐고 하니 아내는 현지인에게 전해 들었는데 ‘유홀(U-HAUL)’이란 업체에서 밴을 빌리면 된다고 했다. 이 무슨 데스크스러운 언행인가. 그냥 툭 던져놓고 해결은 나보고 하라니. 구글맵 앱을 켜서 유홀을 검색해 찾아갔다. 친절한 여직원이 맞아줬는데 “차량 예약을 했느냐”고 물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어떤 종류의 차량을 찾느냐”고 물었고, 나는 “퀸사이즈 침대를 나를 정도의 차량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자 점원은 내게 ‘카고 밴(Cargo van)’을 추천했다. 카고 밴이 도대체 어떤 종류의 차량인가 감이 안 잡혀 되물었더니 사진을 보여줬는데 우리나라서 병원 구급차로 흔히 활용하는 유형의 차량이었다. 그녀는 본인이 일하는 지점에는 현재 이용할 차량이 없다며 인근 지점으로 전화하더니 차량 예약을 도와줬다.

유홀은 트럭이나 이삿짐 운반용 차량 등에 특화된 렌터카 회사이다. 승용차 렌트는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삿짐 운송, 간단한 자동차 수리 등 대부분의 일을 본인 스스로 처리하는 미국식 문화에 딱 맞는 전문업체인 셈이다. 이용요금은 크게 3가지가 합쳐져 부과된다. 첫 번째는 차량 이용요금인데 하루 기준 19.95달러가 부과된다. 이는 1시간을 쓰든 10시간을 쓰든 24시간 내에선 똑같이 부과된다. 두 번째는 이용 거리에 따른 요금이다. 나는 침대와 식탁을 넘겨받기 위해 각각 두 곳을 방문해 총 39마일을 이동했는데 총 42.51달러가 부과됐다. 1마일당 1.09달러인 셈이다. 세 번째는 기름값이다. 사용한 만큼 부과되는데 나는 11.7달러를 내야 했다. 이외에도 보험(10달러), 환경비용(1달러) 등이 합쳐져 총 86.16달러를 지불했다.

유홀은 트럭 이외에도 다른 차량을 통해 끌 수 있는 트레일러 또는 토잉 시설물(Towing equipment)도 대여한다. 미국 도로를 달리다 보면 차량 뒤에 유홀 광고판을 단 견인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대형 RV차량 뒤에 일반차량을 끌고 갈 수 있도록 하는 견인 장치물도 유홀에서 빌려준다. 차량에 넣을 수 없는 각종 품목이나 승용차 그 자체를 끌고 다닐 수 있도록 해주는 장비와 이동시설물을 대여하는 셈이다.

그렇게 나의 유홀 경험은 시작됐다. 당일 이용 가능한 차량이 있는 유홀 지점으로 가서 차량 인수를 했는데 렌터카와 절차는 같았다. 운전면허증을 확인하고 차량 손상 등을 대비한 선불금을 부과했다. 차량 키를 넘겨받은 뒤 차량에 탑승했는데 생전 처음 몰아보는 트럭이라 상당히 긴장됐다. 차량 기어는 오토여서 운행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전장이 길다 보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사이드 미러가 상단과 하단 2중으로 됐는데 처음에 이것이 적응되지 않았다. 상단 미러 위주로 보다 옆 차량이 사각지대에 온 걸 알아채지 못하고 차선을 바꿔 부딪힐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두어 차례 가슴 철렁한 순간을 겪고 난 이후에야 사이드 미러의 하단을 주시하는데 익숙해졌다. 하단은 옆 차량의 사각지대 직전까지 움직임을 보여줘 차선 변경 시 위험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렇게 해서 침대와 식탁을 실었는데 차량 공간이 넓어서 그런지 넉넉하게 실렸다. 집까지 조심스럽게 운전하고 돌아온 뒤 가구를 내렸고 차량을 반납하고서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아내는 내가 유홀 미션을 잘 수행하자 이번에는 아이 책상과 침대를 중고로 매입했다며 다시 한 번 트럭 임차를 주문했다. 한번 경험하긴 했지만, 트럭을 모는 건 심적으로 부담이 상당해 가급적 우리 차량으로 나르자고 제안했다. 마침 줄자로 재보니 책상과 침대는 준중형 SUV에 실리는 수준이었다. 책상은 상판과 서랍장이 분리된 형태로 실었고 침대 역시 하단을 분리해 차에 실을 수 있도록 조정했다. 매트리스가 관건이었는데 다행히 트렁크를 닫아도 운전석 머리 받침에 조금 못 미칠 정도여서 운송이 가능했다.

남은 품목은 식탁용 의자 4개였다. 아내는 중고 식탁과 의자를 별도로 구매했고, 식탁 의자는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은데다 트렁크에 충분히 실리는 수준이어서 본인이 직접 차에 싣고 왔다. 그렇게 2주일 만에 필요한 품목을 대부분 중고물품으로 마련해 집을 꾸렸다. 이제 더 구매할 대형품목이 없는 만큼 유홀에서 트럭을 빌려야 할 일은 없었다.

미국에 와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봤지만, 이 가운데 트럭 운전은 손꼽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요즘도 운전하다 보면 도로에서 심심찮게 유홀 광고판을 단 트럭과 견인운송물을 보게 된다. 그때마다 긴장하면서 트럭을 몰던 순간이 떠오른다. 하긴 이때 아니면 언제 또 내가 트럭을 몰아보겠나. 뭐든 본인 스스로 해결하려는 미국인의 자기 주도적 일 처리 문화로 성행 중인 유홀. 한국에선 성공하기 힘든 사업일 텐데 미국에선 동네마다 지점이 한 곳씩 들어설 정도로 성공한 사업이라는 점이 놀랍고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