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노병 이야기

by

미국에 있다보면 먼저 말을 걸어오는 미국인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제 경험으로는 크게 두 부류입니다.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들, 또 하나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입니다.
노인분들이야 어디서든 젊은 사람과 얘기하길 좋아하시니 당연한 현상일 겁니다.
반면 참전용사는 다소 뜻밖이었습니다. 전쟁이 발생한 지 60여년이 흘렀는데도 이 곳 미국에서 참전용사를 꽤 자주 만나기 때문이죠.

지난 해 12월 중순 미국 남서부 여행에서는 4명의 참전용사를 만났습니다.
3명은 한국전쟁, 1명은 베트남전쟁이었죠. 베트남전에 참전했다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 역시 베트남전 참전국이었던 까닭에 낯선 한국인에게도 친근감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그들은 젊은 시절 참전했던 나라에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요? 그 경험은 각자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요?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문득 지난 12월 만난 베트남전 참전 용사를 떠올렸습니다.
제가 사는 패어팩스카운티 세인트마크 성당 내 영어스쿨의 송년 파티장.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자와 수업을 듣는 외국인들 등 150명 남짓이 모였습니다. 우리반 테이블에서 ‘Bruce Troutman’이라는 노신사 한분을 소개받게 됐습니다. 금발이 백발로 변한 은발, 185c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덩치, 고령에도 눈빛이 맑은 분이었습니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제가 한국에서 온 기자란 걸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행사가 중간쯤 진행됐을 때 그 분이 메모지 한 장을 주셨습니다.
‘1970~1971년, 청용부대, 이동용 장군, … ’
그리고 제게 사연을 설명했습니다.

“제가 베트남전에 참전했었습니다. 미군 기술자문관 자격으로 한국의 청용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당시 부대장이었던 이동용 장군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이 장군은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항을 끼친 인물입니다. 살아계신지 알수 있을까요? 살아계신다면 연락할 방법을 좀 알아봐주세요. 베트남전 당시의 고마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
그의 표정은 간절했습니다. 그는 미국 내에서 몇 차례 수소문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바쁜 생활 탓에 적극적으로 이 장군을 찾아나설 여유가 없었던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날 밤 저는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 검색부터 시작했습니다.
첫 검색에서 너무 쉽게 이 장군의 소식을 알 수 있었습니다만…이미 고인이셨습니다.
그것도 30여년 전에 말입니다. 돌아가신 사연은 더 가슴 아팠습니다.
병을 앓던 아들의 죽음 직후, 아직 한창일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더군요.
진정한 해병대 사령관으로 불리며 존경받던 분이었기에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브루스 트라우트만씨는 이 장군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있다고 했고(아마 사진일 듯합니다), 이 장군 혹은 유족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한 터라 수소문을 했습니다.
해병전우회, 국방부, 해병대, 재향군인회 등에 연락해보았습니다.
몇 가지 소식과 관계자분의 조언을 종합해, 유족과 굳이 연락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트라우트만씨에게 어떻게 소식을 전해야할 지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사실대로 전하면 상처를 받지 않을까.
-젊은 시절, 아름답고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야할 텐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여긴다면 알 자격도 되지 않을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소식을 알게 될 수 있을텐데.
몇 가지 옵션을 두고 고민한 끝에 담담하게 사실을 이메일로 전했습니다.

며칠 후 답장을 받았습니다.
‘우리 삶은 환경(상황)과 감정의 혼합입니다. 이 장군은 내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셨습니다. 그가 그의 투쟁으로부터 안식을 찾았기를 빕니다’

사족을 좀 달아볼까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미국을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했습니다. 한국을 도와준 초강대국이라고 배웠죠.
대학에 와서는 그렇지 않다고 다시 배웠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며 한국전 참전도 마찬가지라고 말이죠. 그러다 사회에 나와서는 또 다른 시각을 갖게 됐습니다.
몰랐던 사실이나 새로운 측면을 알게 될 때마다 인식은 변하기 마련인가 봅니다.

이번 연수의 경험도 미국에 대한 인식과 세계관을 조금이나마 바꿔놓을 것 같습니다. 아마 그 경험의 중요한 부분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중후장대한 역사, 정치, 외교의 밑바탕에는 그것을 몸으로 겪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모습은 너무 다양해서 한가지 관념이나 시각에 지우쳐 판단하다간, 오류를 범하기 십상일 것입니다.

트라우트만씨는 지난 이메일에서 식사를 제안했습니다. 그가 어떤 경험과 생각을 갖고 있는지 찬찬히 들어볼 작정입니다. 위대한 장군의 명복을 비는 자리도 될 것입니다.

*동아일보 이은우 차장은 2010년 7월부터 미국 워싱턴DC 조지타운대에서 연수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