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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No) 마스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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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No) 마스크 생활

*** 마스크로부터의 해방?!

“아빠, 저 사람들은 왜 마스크를 안 써?”
연수지인 미국에 도착하고 맞은 첫 주말,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나갔다가 자동차 뒷좌석에서 밖을 바라보던 딸아이가 물었다. 7월 말, 화창한 샌프란시스코 날씨 속에 사람들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했다. 가족과 함께 놀러간 산타크루즈의 한 놀이공원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3분의 2는 되는 듯 했다. 한국에서 막 도착한 시점에 시차 적응만큼이나 적응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당시-지금도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코로나19 확진자수 폭증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최고단계로 격상된 상태였다. 한국에서 종종 마스크를 챙기지 않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려야했던 경험이 떠오르면서 미국의 ‘마스크 생활’이 궁금해졌다.

적어도 실외에서만큼은 미국은 ‘노(No) 마스크‘ 세상이었다. 동네 근처 공원에 있는 작은 놀이터에 갔을 때 마스크를 쓴 사람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마스크를 벗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내 마스크 착용도 관대한 편이었다. ‘백신 접종을 끝냈고 증상이 없다면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는 문구를 내건 음식점이나 카페도 가끔 눈에 띄었다. 실내 마스크 착용은 8월 3일부터 변화가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델타 변이 등에 따른 코로나 확진자수 급증에 실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실외는 여전히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9월 말 연수 학교인 버클리대를 찾았을 때 학교 입구에서 있는 마스크 착용 관련 안내 표지판이 눈길을 끌었다.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지만(Indoors : REQUIRED) 실외는 선택 사항(Outdoors : OPTIONAL)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 백신 접종 자신감+‘실외 미착용’ 미국 연방정부의 권고

왜 마스크를 쓰지 않을까.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설사 상황이 나아진다고 해도 변이 바이러스나 돌파 감염의 위험성은 여전해 마스크 착용은 권장할 만한 일이었다. 올해 1월 미국에 먼저 정착한 아내 말에 따르면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상황이 지금과는 달랐다고 한다. 실외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이 마스크를 썼고, 마트 등에서 거리두기가 확실하게 지켜진 것이 올해 초 풍경이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마스크 풍경’이 바뀐 배경에는 백신 접종이 있는 게 아니었을까. 코로나 백신 접종의 자신감이 마스크를 과감하게 벗어던지게 한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선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50개 주 가운데 절반인 25개 주와 수도 워싱턴DC에서 성인의 절반 이상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쳤다. 상대적으로 백신 물량이 넘쳐나는 미국에서는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수월하게 백신을 맞을 수 있다. 미리 예약을 해둔 덕분에 연수자는 입국 다음 날 1차 접종을 했다. 화장품, 잡화 등을 파는 소매점 CVS 안에 있는 약국에서였다. 약국에서 백신 접종을 한다는 것에 놀랐고, 의사나 간호사가 아닌 약사가 주사를 놓는다는 점도 생소했다. 신원 확인 대비용으로 여권을 들고 갔지만 여권 확인 절차는 없었다. 예약을 한 까닭인지 이름과 생년월일 정도만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백신이 남아돌 정도로 물량이 풍부했던 만큼 미국에서는 백신 접종자수도 빠르게 늘어났다. 그에 비례해 마스크를 벗어던지는 사람들도 늘었을 것이다. 백신 접종에 더해 올해 5월부터 시행된 미국 정부의 마스크 규제 완화책도 ‘노 마스크’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5월 13일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정책을 발표했다. 백신 접종 완료자는 실외는 물론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어도 괜찮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다만 미 보건당국의 마스크 지침은 델타 변이의 유행 탓에 두달 만에 강화됐다. 미 CDC는 7월 27일 코로나19 전염률이 높은 지역에서는 백신 접종 완료자도 실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권고했다. 단 실외는 예외였다. 정부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 실외에서만큼은 너도나도 갑갑한 마스크를 벗어던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 마스크의 정치화

미국 학교들은 올해 가을 새 학기부터 전면 등교로 전환됐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그동안 비대면 수업과 부분 등교를 했었다. 전면 대면 수업이 이뤄짐에 따라 어린 학생들의 건강 안전 문제는 미국 사회의 관심사가 됐다. 자연스레 마스크 착용도 화두였다. 델타 변이 확산으로 연방정부가 실내 마스크 착용을 권고한 상황에서 학교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마스크 착용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마스크 착용을 두고 일부 주에서는 잡음이 일었다. 주 정부의 독립성이 보장된 미국 사회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여기에는 민주당 대 공화당이라는 정파적 대립도 녹아있다. 몇몇 주지사는 연방정부의 마스크 지침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상당수의 교육청이 연방정부의 권고를 따라 마스크 착용 의무화 방침을 정하자 의무화 금지 조처를 내렸다. 마스크 착용을 학부모와 학생 선택에 맡기자는 것이었다. 아이오와, 오클라호마, 사우스캐롤라이나, 유타, 테네시주 등이 대표적이었다. 모두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이끄는 주였다. 반면 캘리포니아, 뉴저지, 버지니아, 켄터키 등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있는 곳은 마스크 착용 의무화 지침을 따랐다. 결국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학교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금지한 5개 주를 상대로 시민권 침해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마스크 의무화 금지가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했는지를 미 교육부가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에 걸리면 중증을 앓을 위험이 큰 장애 학생들이 마스크 의무화 금지 때문에 대면 수업으로 복귀하지 못했는지가 핵심이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마스크가 정치적 도구로 변질되는 모습에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 ‘위드 코로나’ 속 미국

마스크 착용 선택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미국은 ‘위드 코로나’(with corona)가 이미 진행 중이다. 실내외를 막론하고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공연이나 축제가 열리고 있다. 아침에 즐겨듣는 지역 방송 라디오는 캐나다 출신 가수인 마이클 부블레 공연 티켓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했다. 당첨된 애청자와의 통화에서 ‘공연 티켓 4장을 주겠다’고 말하는 라디오 진행자 멘트를 한동안 아침마다 들을 수 있었다. 마이클 부블레 공연은 9월 29일 저녁 샌프란시스코의 실내 경기장인 체이스 센터에서 펼쳐졌다. 미국 전역을 도는 콘서트인데 코로나19 때문에 미뤄진 일정을 소화하는 모양이었다.
정착지인 캘리포니아 주 월넛크릭 시에서는 9월 말 ‘월넛크릭 페스티벌’이 열렸다. 작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행사가 취소됐는데 올해는 예정대로 연다는 것이 이웃 주민의 말이었다. 축제를 위해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 작은 놀이동산이 꾸려졌다. 한낮 뜨거운 열기를 피해 놀이기구들은 저녁 5시부터 가동됐는데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공원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태반이 마스크를 벗어던진 채 말이다. 연수자 가족도 축제장을 찾았으나 마스크는 착용했다. 돌파 감염의 위험성이 여전한데다 두 딸은 아직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축제나 행사들이 조금씩 열리고는 있으나 미국 역시 코로나19 이전의 생활로 복귀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위드 코로나’ 과정이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축제를 즐길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그날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