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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증 제 1호 편지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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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증 제 1호 편지를 받다.

지난 가을,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딸아이의 반 학급대표 학부형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담임 선생님의 생일을 맞아 어떻게 선생님을 기쁘게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메일을 읽다가 파안대소했다. 이 선생님은 스타벅스와 아마존 카드를 좋아한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선물 고르기가 어렵다면 이라는 전제를 달았으니 선물 가이드라인인 셈이었다. 게다가 생일 아침에는 아이들에게 꽃 1송이를 가져와야 한다는 할당까지 했다. 김영란법에 익숙해진 내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30달러짜리 스타벅스 카드를 선물했다. 아이의 손에 꽃과 함께 들려 보냈는데 선생님이 사양 한 번 없이 환하게 웃으며 받았다. 반 아이들 중 선물을 하지 않는 아이는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미국 사람들 청렴하다더니 선물을 강요하네’ 라며 시니컬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선생님으로부터 카드를 받았다. 보내 준 기프트 카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인데 잘 쓰고 있다.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누가 어떤 선물을 줬는지 기억하고 감사 카드를 보내는 문화는 낯설었다. 한국 법원에서 일하다 온 한 학부형은 이 카드는 본인의 뇌물 혐의를 스스로 인정한 증거 1호로 법정에서 쓰일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사진)1학년 둘째 딸아이 담임선생님의 감사 카드. 지나가는 말로 잠깐 얘기한 포틀랜드 가족 여행도 기억하고 있었다.

첫째 6학년 담임선생님의 경우는 발렌타인 데이 선물을 받은 다음날, 아이들 앞에서 선물을 흔들며 이건 누가 준건지 물어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 위해서이다.

미국의 선생님에 대한 ‘열린’ 선물 문화를 보며 30여년 전 학생시절 촌지 문화가 떠올랐다. 없는 살림에 담임선생님 진로상담이 잡히면 어머니는 봉투에 얼마를 넣을지 고민했다. 넉넉한 살림이건 아니건 액수의 차이일 뿐 ‘닫힌’ 선물 문화는 횡횡했다. 고3 담임을 한번 하면 차 한 대 뽑는다는 얘기가 학생들 사이에 돌건 돌지 않건 진로를 무기로 한 담임선생님의 학부모 상담은 자주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선생님께 카네이션 한 송이 제대로 달아주지 못하는 지금의 김영란법이 정답같지는 않다. 뒤가 아닌 공개된 장소에서 감사를 표하고 이를 기쁘게 받고 기억해주는 미국 학교의 선물 문화가 경직된 한국의 그것보다는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참고로 생일, 크리스마스, 발렌타인 데이, 학생 개별 상담 등 선생님에 대한 감사표시를 할 경우는 많다. 고로 처음부터 오버하지 말고 30달러 전후의 기프트 카드로 감사함을 전하는 것이 주는 우리나 받는 선생님이나 부담이 없어 보인다. 또 아무런 이유 없이 생뚱맞게 주는 선물에는 선생님들이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고 하니 ‘묻지마’ 선물은 자제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