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수 생활 동안 거주하고 있는 미국 조지아주는 이른바 ‘선 벨트(Sun Belt)’ 지역 중 한 곳이다. 선 벨트는 북위 37도 이하 지역을 일컫는 용어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인구가 급증하고 각종 산업이 발전한 지역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주, 텍사스주, 플로리다주 등이 대표적이고, 네바다주,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 등도 선 벨트에 포함된다. 이 지역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던 요인은 온화한 기후로, 건국 초기부터 인구가 집중돼 있었던 북동부에 비해 훨씬 날씨가 따뜻하다. 조지아주 대부분 지역은 가장 추운 1월에도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이 글을 쓰는 2월 초 거주지의 낮 기온은 20도를 넘나들고 있다.
선 벨트는 인구가 크게 늘면서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 됐고, 최근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 벨트라는 용어가 언론에 자주 등장해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해졌다. 대통령 선거를 좌우하는 7개 경합주 가운데 선벨트로 분류되는 조지아주, 네바다주, 애리조나주, 노스캐롤라이나주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따뜻한 날씨로 정체성이 규정되는 선 벨트 지역이 이번 겨울 들어 때아닌 눈폭탄을 맞았다. 2025년 1월 21일 강력한 겨울 폭풍이 미국 남부를 덮치면서 해변 관광지로 유명한 플로리다주 펜사콜라에 7.6인치의 눈이 내렸다, 1895년 3인치가 이 지역 최대 적설량이었는데 이번에 기록을 갈아치웠다. 텍사스주 휴스턴도 1960년 이후 처음으로 약 3~4인치의 눈이 내렸다.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눈보라 경보가 발령됐다.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로 유명한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도 약 8인치의 눈이 내렸는데 앨러스카주 앵커리지보다 많은 1월 적설량이었다. 이제 미국 뉴올리언스는 여름에는 허리케인, 겨울에는 눈 피해를 대비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조지아주도 2025년 들어 비교적 큰 눈이 두 번 내렸다. 조지아주 최대 도시인 애틀랜타 지역을 기준으로 쌓이는 눈이 내린 건 7년 만이었다. 더구나 한 달에 두 번 큰 눈이 내린 사례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원래 따뜻한 지역이기 때문에 하루 이틀 있으면 눈이 대부분 녹긴 하지만, 한국에 있을 때보다 눈에 훨씬 민감해 진다. 두 차례 눈이 왔을 때 자녀들 학교가 모두 휴교를 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 때는 많은 눈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정도의 강설량에도 학교가 문을 닫았다.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 특성 상 학생뿐 아니라 교사, 직원들까지 차를 타고 먼 길을 이동해야 하는데 위험하기 때문이다. 서울처럼 대중교통 이용을 권고할 수도 없고, 공무원들이 지역 구석구석 도로까지 염화칼슘을 뿌릴 수도 없다. 공무원들이나 주민들 모두 눈을 치워본 경험도 없고, 각종 장비도 부족해 제설 능력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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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은 선 벨트 지역에서 겨울에 비가 아닌 눈이 내리는 이유로 기후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차가운 공기를 잔뜩 품고 있는 북극의 소용돌이가 제트 기류에 의해 억제되는데 이 제트기류의 힘이 약해지면 찬 공기가 과거보다 더 남하한다는 것이다. 북극의 온도 상승이 소용돌이와 제트 기류의 상호 작용에도 영향을 미치고 차가운 공기가 더 남쪽 지역까지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분석은 아직 정립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고, 더 많은 사례 연구가 필요하다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 분명한 사실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 최근 들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2025년 1월 LA 지역 산불도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다. 2017년과 2018년에도 캘리포니아주에 큰불이 나 주택 수천~수만 채가 불타 사라졌다. 2021년에는 콜로라도에서 역시 수천 채의 주택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기후 분석가들은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역사 상 가장 높은 기온과 장기간 이어진 가뭄을 원인으로 주목하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그동안 허리케인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 지역도 허리케인 헬렌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허리케인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던 조지아 내륙 지역에도 경보가 내려졌고, 역시 그날도 조지아 대부분의 학교는 문을 닫았다.
이러한 변화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는 곳은 보험 회사였다. 산불 등 대형 재난이 빈발하면서 보험 회사들의 손해가 커졌고, 피해가 발생할 지역의 높은 지역에서 주택 보험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이다. 2024년 12월 발표된 미국 상원 예산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전역 200개 이상 카운티에서 미갱신 비율이 3배 이상 증가했다. 미갱신이 집중됐던 곳은 산불이 잦은 캘리포니아주와 뉴멕시코주의 산악지대, 허리케인 피해가 발생하는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 해안 지역이었다. 미국에서는 보험 회사가 주택 보험을 받지 않으면, 모기지를 이용해 주택을 구입할 수 없다. 주택 구매자가 줄어들면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고, 재산세 수입도 줄어들고 미국 연방이나 주 정부의 재정이 빈약해질 수 있다. 기후 위기가 민생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수의 미국 언론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한국 언론도 기후 변화를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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