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내린 눈으로 버지니아 주는 ‘주 비상사태’를 선언했습니다.”
오늘 아침 방송 뉴스와 신문은 어제 저녁 1인치(3cm 정도) 내린 눈에 대한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
했다. 저녁 6시부터 10시 정도까지 3~4시간 내린 눈이 도로에 쌓이고, 얼면서 도로 곳곳에서 사고가
났고, 일부 도로는 아침까지도 여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워싱턴DC 주변 Beltway
(둥근 모양으로 띠를 두르는 도로) 등에서는 밤새 운전자들이 도로에 갇혀 있었다고 보도했다. 일부
는 30분 퇴근길을 9시간 걸려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버지니아 주지사는 ‘State of emergency’를 선포하고, 특히 폭설과 강풍이 예고돼 있는 내일
부터는 여행 계획을 미루고, 되도록 실내에 머물 것을 요구했다. 또, 집 앞에 쌓인 눈과 상점 앞
인도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을 경우 물리는 과태료도 올리겠다고 말했다. 정전과 고립 상황에 철저
히 대비할 것도 요청했다.
어제의 눈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내린 눈이 아니었다. 기상청에서는 눈이 내릴 정확한 시각까지 예보
했고, 뉴스에서는 저녁 퇴근길이 혼잡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예측은 정확히 현실이 됐다. 서울
시내와 비교하면 워싱턴DC와 버지니아, 메릴랜드 주는 평소 퇴근길 러시아워도 그리 복잡하거나 힘들지
않은데, 눈이 내린 길은 상황이 달랐다. 차들이 뒤엉키고, 차량들은 그대로 도로에 얼어 붙은 채 움직일
줄 몰랐다. 일부 사람들은 도로에 차를 버리고 걷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모든 뉴스와 신문 기사에는 또 빼놓지 않고 단서가 붙었다. “이건 아직 시작도 아니다. 오는 금요일부
터 주말까지는 미 동북부에 강풍과 함께 폭설이 예고돼 있다. 지역별로는 최고 2 feet (60cm)까지 눈이
내리고 40mph의 강풍이 불 것이다. 또 한 번의 ‘snowmageddon’(스노우 아마겟돈, 스노우로 인한
아마겟돈)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참, 미국의 대부분의 주에서는 고속도로에서 ‘snow chain’ 사용이 금지돼 있다. 워싱턴DC, 버지
니아, 메릴랜드 모두 마찬가지다. 아주 위험한 상황에서는 제한적으로 자동차 바퀴에 chain 사용이 가능
하지만 고속도로에서는 금지된다. 눈이 아무리 내려 쌓이고 도로가 다 얼어 붙어도 바퀴에 체인을 감을
수 없다. 고속도로를 상하게 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바퀴에 chain을 감은 차량을 볼 수 없다.
그럼 어떻게 미끄러지는 것, 눈에 처박히는 것을 방지하냐고 물었더니 “눈이 많이 내릴 때는 되도록
차를 몰지 마세요.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경우에는 스노우 타이어나 4륜 구동 자동차를 운전하시고요.”
라 답했다. 미국에서는 세단보다 4륜 구동 SUV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단순히 여행을 많이 다녀서
는 아닌가 보다 깨달았다.
“Fairfax county 교육청은 오늘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립니다.
언제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어제 밤 늦게 받은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 메시지에는 오늘 학교가 2시간 늦게 시작할 예정이니 앞으로의
추가 전달사항을 주의해 살펴달라고 돼 있었다. 아이는 이 소식에 “앗싸! 늦잠 자도 되겠네.” 라며 좋
다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새벽 6시에 날라온 긴급 문자와 이메일은 오늘 하루 휴교한다는 내용이었
다. 도로 곳곳이 여전히 얼어 있어 학생들 등하교 길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휴교한다는 설명이었다. 집이
큰 도로변에 있는 학생들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숲에 있거나 좁은 길, 외진 곳에 사는 학생들이 등하교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일 것이다. 실제로 밖에 나가보니 큰 길은 이미 눈을 다 치웠고, 동네나 상가의 인
도, 차로는 모두 깨끗하게 눈이 치워져 있거나 염화 칼슘을 잔뜩 뿌려놓은 상태였다.
‘눈 3cm 내렸다고 학교를 쉬면 겨울에 학교 갈 날이 며칠이나 될까. 그러게 왜 한겨울에 방학을 하지 않
을까?(한국은 1월이 겨울방학이지만, 미국은 겨울방학은 크리스마스 전후 열흘 정도만 방학을 하고 대신
여름방학이 석 달로 길다.)
금요일부터 이 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Blizzard가 예고돼 있어 적어도 다음 주 초 2~3일은
또 휴교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일주일간 예기치 않은 겨울방학이 덤으로 생긴 셈이다. 아이들은 좋겠
지만, 직장에 나가야 하는 엄마들은 갑작스레 사람 구하느라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이런
아이들 휴교가 갑자기 생기면 그저 반갑게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나도 한숨이 나왔다. 이렇
게 갑작스런 휴교로 부족해진 수업일수는 여름방학을 줄이고 수업하는 방법으로 대체한다고 한다. 지난
2010년에도 버지니아와 워싱턴 DC에 폭설이 내려 학교는 3주 휴교했고,(여름방학이 한 달 짧아졌다고 한다)
은행, 상점 등도 열흘 동안 문을 닫은 역사가 있다고 하니 폭설에 대하는 대응 방식이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눈 3cm 내렸다고 학교 문을 닫고, 봄에 너무 덥다고 학교를 쉬는 미국… 섭씨 30도가 넘는 찜통 더위에도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한 겨울에 추워도 히터도 제대로 틀지 못해 학생들이 담요를 무릎에 덮고 수업을
듣는 한국의 교육 현장, 어느 쪽도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 폭설과 혹한이 예상되면 곧바로 비상회의를 소집해 학생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최선의
판단을 빠르게 내려서 정확하게 전달해 혼선을 최소화하는 이들의 발 빠른 재난상황 대처방법, 그리고
그에 대해 한 마디 없이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학부모들의 태도는 놀랍고 부러웠다.
‘사재기’와 ‘철저한 준비’ 사이
1월 20일 오후 1시쯤(폭설 예고 3일 전)
지난 화요일(19일) 아침부터 강력한 Blizzard가 미국 북동부 즉 워싱턴DC와 버지니아, 메릴랜드, 뉴욕
등을 덮친다는 기상 예보가 나왔다. 어제 장을 보러 나갔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평소 평일보다 대략 30
~40%는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었고, 장을 보는 품목도 화장지, 물, 빵과 우유, 양초, 담요 등 재난
상황 대비 품목이 주를 이뤘다.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다. 계산을 하려는 줄도
평소 긴 연휴를 앞둔 주말보다도 훨씬 길었다. 쇼핑하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정전이 되거나 폭설로 눈이
많이 쌓이면 일주일 정도 장보러 나올 수 없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며, “일주일 정도 온 가족이 먹고
사용해야 하는 품목들을 사고 있다.”고 했다. 또, 상점 종업원에게 물었더니 평소에 트럭 3대 분량의
필수품이 들어 온다면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5대 분량을 들여올 예정이라고 했다. 오후 들어서는 스프나
저장할 수 있는 캔 식품, 달걀과 우유, 두부 등이 곳곳에서 동이 났다.
20일 오후 5시쯤 동네 식품점
사재기는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다른 것은 물건을 잔뜩
사는 일반 시민들이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정부와 미디어, 대중의 시각이었다. 연일 아침 뉴스에
‘Stocking up before the storm’ 소식을 전하면서 이를 잘못된 행동으로 비판한다기 보다는
준비해야 한다는 시선으로 전하면서 오히려 사재기를 부추긴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뉴스마다 ‘폭설 대비 요령’을 안내하면서 빼놓지 않는 게 일주일 정도 고립될 경우 먹을 음식과 화장
지 등 필수품을 반드시 준비할 것을 요구했고, 등이나 손전등, 전자제품에 사용할 수 있는 여분의 건전
지와 정전됐을 때 음식을 할 수 있는 버너나 휴대용 가스렌지, 히터 등도 구비해 놓을 것을 당부했다.
폭설과 기상재난상황은 철저한 준비만 한다면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구름과 blizzard 이동
경로에 대한 상세한 보도와 함께 언론들은 간단히 몸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 만들기 방법, 눈
치우는 방법 등을 자세히 안내했다. 역시 땅이 넓어 이웃 간의 거리가 있고, 큰 도로변이 아닌 깊숙이
사는 사람들, 지은 지 오래된 단독주택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긴장을 훨씬 덜하는 분위기다.
이렇게 잔뜩 음식도 사놓고 눈 치울 장비도 구비했는데 폭설이 안 오면 그걸 다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
니 답했다 “동네 주민들끼리 그 음식들 다 가져와서 파티한 적도 있어요.”라며 웃었다. 점점 이곳을
향해 다가 오고 있다는 초강력 눈폭풍이 얼마나 강력할지, 내일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해 주말 내내 내릴
것이라는 눈이 준비하는 인간들에게 어떤 자국을 남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