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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생활기 23 (추가테러의 공포에 떠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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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거주하던 한 아프가니스탄 청년이 지난 8월 돌연 자취를 감췄다. 그는 깊이 사귀던 미국 소녀에게조차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다만 사라지기 전 날 밤 여자친구에게 다음 두 가지를 신신당부했다. 9월 11일 맨해튼 다운타운에는 절대 가지 말 것. 할로윈 데이(10월 31일 밤 벌어지는 미국의 연례축제) 쇼핑은 가급적 10월 30일이나 그 이전에 하고, 축제 당일엔 쇼핑몰에 가지 말 것.”



^영어 선생 로라 클리맨(Laura Kleeman)이 지난 금요일 수업시간에 해준 얘기다. 며칠 전 친구에게서 e메일로 전해들은 내용이라고 한다. 탄저균 감염환자가 계속 발견되는 등 추가 테러 공포가 미국 전역을 감싸면서 출처 불명의 루머가 난무하고 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다음 공격목표라는, 테러사건 직후 나돌던 루머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상당수 입주 사무실들이 이미 다른 건물로 이전했거나 이전을 서두르는 실정이다. 평소 관광객들로 붐비던 뉴욕의 명물이 빈 사무실이 늘어나는 ‘유령 건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4만 명 가량 상주하던 월드 트레이드센터가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맨해튼의 고층빌딩 임대료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회복 기미를 보이던 소비심리도 다시 꽁꽁 얼어붙었다.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 여행업계는 이미 풍비박산이 났다. 9월초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에 ‘마일리지 카드’를 신청했건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대량 감원으로 기본적인 영업활동마저 어려움을 겪는 모양이다.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도 최근 1만2,000명의 직원을 감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뉴욕의 한인 관광, 여행업계는 개점휴업 상태다. 테러사건 이후 예약 취소율이 90%에 이른다고 한다. “IMF때가 차라리 나았다”는 한숨들이 끊이지 않는다.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주인 집 아저씨는 “매출이 30% 가량 줄었다. 9월 하순 이후 다소 회복되는가 싶더니, 탄저병 환자가 연달아 발견되면서 손님이 다시 줄었다”고 말했다.



^맨해튼 록펠러센터에 있는 NBC방송사의 여직원이 탄저균에 감염됐다는 소식은 제2의 테러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공포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더욱이 주요 통신 수단인 우편물이 테러에 이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민들의 일상 생활까지 위축되는 모습이다.



^미국은 땅이 워낙 넓어 우편이 중요한 통신 수단으로 기능한다. 전화 전기 가스 등 공과금 통지서는 물론 신용카드 사용내역, 교육청의 각종 공지사항, 지역 업체들의 광고성 우편물, 무료 정보지, 전화번호부, 신문, 잡지 등이 모두 우편으로 배달된다. 우리도 공과금을 우편(개인수표 동봉)으로 보낸다. 그런데 생화학 테러공포가 번지면서 처음 보는 우편물이나 이전과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우편물은 모두 휴지통으로 처박히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지식인 사회에선 생화학 테러에 대한 공포가 과장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딕 체니 부통령과 존 애시크로프트 법무장관 등이 생화학 테러에 대해 ‘선동적인’ 발언을 계속하는 것은 포괄적인 반테러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의도라는 지적이다. 진실이 어디에 있든, 미국인들의 ‘공포’는 상당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