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주택에는 가구를 갖춘 집(Furnished House)과 그렇지 않은 집이 있다. 물론 수요와 공급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Furnished House는 그리 많지 않다. 뉴욕 도착 직후 일곱 군데의 집을 살펴봤지만, Furnished House는 찾기 어려웠다. 설사 이런 집이 나오더라도 가난한 연수생들에겐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임대료가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결국 필요한 가구와 가전제품 등은 입주 후 구입(중고나 싸구려로)하기 마련이다.
^귀국하는 주재원, 유학생 등이 쓰던 물건을 헐값 매입하거나 ‘차고 세일(Garage Sale)’을 이용해 가구나 가전제품을 싸게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우선 중고품을 매입하려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런데 차가 없는 상황에서 기동력있게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자기가 원하는 물건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우리 가족은 다행히 한국 이민자 가정에서 쓰다 버린 식탁(너무 낡아 비닐 커버를 씌우지 않으면 바라보기조차 끔찍한)과 책장을 하나씩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용 책상과 의자, 램프(미국 주택은 방에 전등이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등의 가구와 TV 녹음기 세탁기 등 필수적인 가전제품은 따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가전제품을 살 때마다 고민했던 문제가 애프터 서비스다(미국에선 A/S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한국처럼 전화만 하면 기술자가 당장 달려오진 않더라도, 최소 1년 정도는 공짜로 고쳐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3개월 전 베스트 바이(Best Buy:가전제품 전문 할인점)에서 125달러 짜리 카피트용 청소기를 구입할 때의 경험이다. 계산을 하는데 직원이 ‘고장 수리비’를 내겠느냐고 물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갔다. 새 제품인데, 웬 수비리 타령이람.
^그의 설명은 이랬다. 자기는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일 뿐, A/S의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고장이 나면 제조사 서비스센터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땅어리가 넓은 나라다. 우리나라처럼 전화 한 통 한다고 기술자가 금방 달려오는 게 아니다. 설령 인근에 수리센터가 있더라도, 기술자를 한 번 부르려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계산대의 직원은 지금 수리비 50달러를 내면 청소기가 고장 날 경우 2년간 자신들이 무료(?)로 수리해준다고 설명했다. 뉴욕에 오래 살 것도 아닌데, 설마 고장나랴 싶었다. 제품 가격에 비해 수리비가 지나치게 비싼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No, Thank You”했다.
^2개월쯤 지났을까. 갑자기 먼지를 빨아들이는 브러쉬 롤(Brush Roll)이 작동을 멈췄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청소기를 들고 베스트 바이 고객센터를 찾았다. 지금 수리비를 내고 A/S를 받고싶다고 했지만, 규정상 안된다는 답변이었다. 고가의 부품이 망가진 경우 자신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즉 50달러는 일종의 보험료인 셈이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청소기를 분해했다. 브러쉬 롤을 모터와 연결시켜 주는 고무벨트가 잘려 있었다. 제조사 서비스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뉴욕에서 자동차로 7~8시간 걸리는 일리노이주였다. 고장난 부품을 주문(부품 값 5달러에 우송료 7달러)하면 DHL을 이용, 2주 내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더 빠른 방법은 없었다. 서킷 시티(Circuit City)에서 녹음기를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49.99달러 짜리 녹음기를 사는데, 고장 수리비로 15달러를 요구했다.
^우리 집 전화요금 고지서를 보면 ‘Basic Wire Maintenance’라는 항목이 있다. 매달 2.35달러가 자동으로 빠져 나간다. 전화가 불통될 경우 무료(?)로 고쳐주는 비용이다. 이 옵션을 선택하지 않으면 연간 28.20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고장이 난다면? 아무리 사소한 고장이라도 일단 기술자를 부르면 한 번에 50달러를 내야 한다. 공짜 A/S를 받는데 익숙한 때문일까. 수리비 문제는 여전히 고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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