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뉴욕생활기 34 (항공권 할인 경쟁)

by

^



미국에선 비행기가 대중교통 수단에 속한다. 950개 도시에 1,000개 이상의 공항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기 때문이다(경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소규모 공항까지 합치면 그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다). 뉴욕에서 워싱턴이나 보스톤, 심지어 시카고, 디트로이트 등지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 치안당국이 9.11 테러사건을 막지 못한 것은, 하루 수천 편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미국 현실에서 불가피했다는 분석이 그래서 제기된다.

^항공 수요가 많은 만큼 항공사 숫자도 엄청나다. 큰 항공사만 30개가 넘는다. 당연히 생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뉴욕-LA 왕복요금의 경우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은 1인 당 360 달러를 받지만, 아메리칸 트랜스 에어라인(ATT)은 238 달러를 받는다(주간 정상요금 기준). 서비스도 항공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워낙 경쟁이 심하다 보니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1년에도 몇 개씩 항공사가 파산하는 게 미국 현실이다.

^여름 휴가철이 끝나는 9월초부터 추수감사절 연휴(11월22~25일) 직전인 11월 중순까지는 전통적인 항공업계의 비수기. 노스웨스트는 9월에 접어들자 마자 11월 중순까지 항공 요금을 40% 할인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나이티드, 델타, 아메리카 에어라인 등 미국의 주요 항공사들도 경영난 해소와 온라인 티켓팅 활성화를 위해 여행사의 항공권 판매 커미션을 최고 50 달러에서 20 달러(왕복 기준)로 대폭 삭감했다.

^9.11 테러사건은 이처럼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항공사들에게 치명타로 작용했다. 수 만 명의 항공사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파산 위기에 빠진 항공사들은 연방정부에 손을 벌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공사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요금을 할인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자구책도 없는 실정이다.

^뉴욕-서울 왕복 항공권은 불과 599 달러(약 78만 원:노스웨스트 이코노미 기준, KAL과 아시아나는 830~840 달러 수준). 우리 가족이 6월 하순 뉴욕에 올 때는 KAL 편도요금이 78만 원(600 달러),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은 62만 원이었다. 8월 말 LA 처남 집에 다녀올 때 뉴욕-LA 왕복 항공권(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은 1인 당 360 달러. 최근 운항 편수를 40% 가량 줄여 정상요금을 받고 있지만, 불과 보름 전만 해도 150달러에 불과했다.

^5시간 걸리는 장거리노선인 뉴욕-라스베가스 왕복 요금도 테러사건 직후 99 달러까지 떨어졌다(요즘은 200 달러 안팎). 항공사들은 추수감사절 연휴가 빨리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예년과 같은 여행 특수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여행업계도 고사 직전이다. 요즘 TV에선 자메이카 관광상품을 홍보하는 CF가 끊이지 않는다. 리조트급 비치호텔에서 6박7일을 보내는 상품이 불과 459 달러(약 59만 원). 놀랍게도 왕복 항공료가 포함돼 있다. 두세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가격이다.

^며칠 전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에서 이메일을 보내왔다(우리 가족은 ‘UA 마일리지 클럽’ 회원이다). 12월 15일까지 자사 비행기를 타는 고객에겐 지금의 두 배에 해당하는 마일리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내선 기내식을 국제선 기준으로 상향 조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요금은 떨어지는데 부대비용은 늘어나고, 그래도 고객은 늘지 않으니, 항공사들은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