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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후반의 영어 교사 로라 클리맨은 1970년대 말 인도를 4개월간 여행하며 느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털어놨다. “인도 남성들의 ‘집요함’에 놀랐다. 기차를 타거나 식당에 갈 때마다 인도 남자들이 다가와 추근댔다. 집으로 초대하겠다거나, 심지어 함께 자고 싶다고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남자도 있었다. ‘남편이 있다’고 거부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미국 여자는 어떤 남성과도 섹스를 즐기고 싶어하는 자유주의자’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아마도 60년대의 ‘프리 섹스’ 분위기가 여전히 대세인줄 착각했던 모양이다.”
^로라가 인도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날 수업의 주제가 ‘스테레오 타입(Stereotype)’이었기 때문이다. ‘섹스를 밝히는 미국 여성’을 잘못된 스테레오 타입의 예로 든 것이다. 80년대 중반 이후 에이즈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미국 등 서구인의 성생활이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 곳 방송에 비친 미국인의 섹스, 특히 젊은이들의 성생활은 ‘보수적’이라는 표현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난 해 미국에선 무려 28만 건의 DNA테스트가 시행됐다고 한다. 상당수는 유산상속을 둘러싼 친자(親子)감별에 이용됐을 것이라는 게 이 곳 언론의 추정이다. 다양한 파트너와 성관계를 맺다 보니, 아기 아빠가 누군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공중파 방송인 채널 9의 ‘제니 존스 쇼(Jenny Jones Show)’는 DNA 테스트를 통해 친아버지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종종 방영한다(채널 11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다). 두 남녀의 합의하에 DNA테스트를 실시, 아기 아버지가 맞는 지 가려주는 것이다. 최근에도 ‘Shocking, Paternity’라는 주제의 프로그램을 다뤘다.
^생후 3개월 된 딸을 둔 제이미(23)는 래리와 토미 등 과거의 남자친구 두 명을 딸의 친아버지로 지목했다. 그녀는 “같은 날 두 사람과 섹스를 한 뒤 딸을 임신했다. 둘 중의 한 명이 딸의 아버지임에 틀림없다”며 DNA테스트를 의뢰했다. 글로리아(26)는 남자친구 데이비스(37)와 관계를 맺고 1남1녀를 낳았지만, 아버지가 무책임하게 친권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DNA테스트 결과 딸만 데이비스의 친자로 밝혀졌다.
^이 방송에 출연한 10대 후반의 흑인 소녀는 비슷한 시기에 두 명의 흑인 소년(사촌간이다)과 성관계를 맺은 뒤 아이를 낳았다며, 친아버지를 가려달라고 호소했다. 20대 후반의 백인 여성 지니는 흑인 소년(17)과 관계를 맺고 딸을 낳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소년을 사랑하며, 내 딸은 그의 씨가 틀림없다”고 주장했지만, 그 흑인 소년은 “아이의 피부가 너무 하얗다. 내 딸일 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제니 존스 쇼의 다음 주제는 ‘딸의 남자친구와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은 여성들’이었다(보진 못했다). 상업방송에서 다루는 프로그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젊은이들의 성문화가 상당히 개방적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개그우먼 이영자가 진행하던 ‘결혼합시다’라는 코너와 비슷한 ‘블라인드 데이트(Blind Date)’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생면부지의 남녀가 만나 데이트를 즐기며 서로를 탐색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다. 가만히 지켜 보노라면, 미국의 청춘남녀에게 ‘성적 매력’ 만큼 이성에게 호감을 주는 요인은 없는 듯 싶다.
^데이트 과정에는 거의 항상 상대방의 ‘몸’을 ‘정밀하게’ 탐색하는 과정이 들어간다. 대개 토플리스 차림으로 수영을 하거나 자쿠지에 몸을 담그고 진한 스킨쉽을 나눈다. 누드 차림으로 샤워를 하는 경우도 있다. ‘섹스’는 처음 만난 두 남녀의 중요한 대화 소재이기도 하다. 어떤 출연자는 발정난 수캐처럼 안달복달해 지켜보는 내가 민망스러울 정도다.
^우리나라처럼 매매춘이 성행하진 않지만, 돈이나 선물을 받는 조건으로 몸을 제공하는 경우도 흔한 듯 하다. 방송도 이런 소재를 즐겨 다룬다. 실제로 직업적인 매춘부가 아니면서 용돈을 주거나 귀금속 등을 사주는 남성과 정기적으로 섹스를 나누는 여성들이 토크쇼에 종종 출연한다. 그들이 ‘죄의식’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부분의 출연자는 자신이 성을 제공하는 대가로 비싼 선물을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설명한다.
^수 년간 미국 대학에서 생활했던 한국 유학생이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동료 여대생에게서 시험 답안지를 보여주면 하룻밤을 같이 보내겠다는 제의를 받았던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남자 교수가 점수를 올려주는 조건으로 여대생과 섹스를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언론에는 남자 교수와 여대생의 섹스를 둘러싼 추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해 미국을 시끄럽게 했던 대표적인 사건이 버지나아주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의 작문강사 샘 캐쉬너씨의 ‘무용담’이다. 그는 자신의 제자였던 여학생과의 연애이야기를 ‘GQ’라는 잡지에 자랑스럽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결혼한 상태였던 여학생의 남편이 그 잡지를 보고는 충격을 받아 자살을 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로라 클리맨은 이혼녀다. 그녀 친구들도 대부분 이혼을 했다. 로라처럼 혼자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재혼을 해 새 가정을 꾸렸다. 로라는 “미국의 이혼율은 50%를 넘는다. 이혼한 남녀가 만나 전남편이나 전처 자식과 함께 새 가정을 꾸리는 경우가 미국에선 정상적으로 받아 들여진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계부나 계모와 함께 살아야 하는 자식들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었다. 일부이긴 하겠지만, 아기 아빠를 모를 정도의 문란한 성은 무너져 내리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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