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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생활기53(강아지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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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내게 영어를 가르쳤던 로라 클리맨은 40대 후반의 이혼녀이다. 그녀의 늙은 부모는 개 두 마리를 키우며 살고 있다. 로라는 “자식이래야 결혼 13년 만에 낳은 내가 유일하다. 외동딸을 낳고 키우던 몇 년간을 제외하곤, 개는 항상 우리집 식구였다. 지금도 내 대신 자식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다. 부모님이 연로하시지만, 슈퍼에서 개 먹이를 사다 먹이지 않고 직접 요리를 해 먹일 정도로 끔찍이 위한다”고 말했다.



^뉴욕에 폭설이 내린 며칠 전 한 동물협회가 ‘겨울철 애완동물 관리법’을 발표했다. 치와와 보스톤 테리어 등 털이 짧은 개는 외출할 때 스웨터나 코트를 입힐 것, 자동차 부동액을 길에 흘렸을 경우 애완동물이 먹지 않도록 깨끗이 청소할 것, 개나 고양이의 발에 염화칼슘이 묻지 않도록 조심할 것, 자동차 출발할 때 엔진 밑에 애완동물이 없는지 확인할 것…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미국의 개는 ‘인간’ 이상의 대접을 받고 있다. 미국의 개 관련 시장(음식, 장난감, 의류 등)은 그 규모가 연간 200억 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대도시 지역마다 ‘펫코(PETCO)’와 같은 개 전용 슈퍼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개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게 현실이다.



^미국인들에게 ‘개(Dog)’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최근 미국 작가 윌리 모리스(Willie Morris)가 쓴 ‘MY DOG SKIP’(1996년 ‘Random House’ 간행)이라는 자서전적인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그 해답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1940년대 미시시피강변의 작은 도시에 살던 소년 윌리와 애견 스킵(Skip)의 어린 시절 회고담이다(영화로도 만들어 질 만큼 미국에선 꽤 알려진 책이다).



^윌리와 그 친구들, 다른 개들과의 교류를 설명한 내용에 비춰 볼 때 윌리와 스킵의 우정은 ‘평균적인’ 미국인의 개사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싶다. 그렇다면 ‘평균적인’ 개와 인간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윌리에게 스킵은 친구요 형제다. 형제끼리 함께 자고 함께 먹는 것은 기본이다. 영화도 함께 보고, 야구도, 사냥도, 낚시도 함께 한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 청년 윌리가 11살 된 ‘늙은’ 개 스킵과 이별을 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자.



^“영국행 장학금을 받았다. 3년간 헤어져 지내야 한다. 그(스킵)에게 작별을 고하러 뒷마당으로 갔다. 역까지 데려다 줄 부모님은 집 앞에 기다리고 계셨다. 그는 우리가 뛰놀던 느릅나무 밑에 누워 있었다. 옆에 가만히 앉았다. 그가 항상 목을 어루만져 주길 원하던 바로 그 장소다. 스킵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 보았다. 그리곤 머리를 내 무릎에 얹은 뒤, 부드럽게 코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나를 처음 만난 강아지 시절 그랬던 것 처럼. 그에게 말했다. 가야 한다고, 너를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다시 얼굴을 쳐든 스킵이 내 볼을 핥기 시작했다. 나는 “고마워, 보이(Boy:스킵의 다른 이름)”라고 속삭인 다음, 뒤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차가 집에서 멀어져 갈 때, 나도 모르게 머리를 뒤로 돌렸다. 스킵이 잔디 앞으로 조금 걸어나오는가 싶더니, 가만히 주저앉아 나를 응시했다. 나도 스킵이 작은 점으로 변할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한 달 뒤 옥스포드대학으로 전화가 왔다. 아버지였다. “스킵이 죽었단다.” 부모님은 스킵이 평소 좋아하던 내 야구복으로 그를 감싼 뒤 마당에 묻었다고 했다. 교문을 나선 나는 중세풍의 잿빛 도시를 혼자 거닐었다. 멀리 고색창연한 탑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지분거리는 비를 맞으며 그와 함께 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의 개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죽음에 관해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스킵은 내 형제였다. 부모님은 그를 우리의 느릅나무 밑에 묻었다고 했지만, 그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는 내 마음 속에 묻혀있기 때문이다.”



^개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우리나라의 ‘보신탕 문화’에 대한 그들의 ‘경악’과 ‘분노’를 이해할 만도 했다. 하지만 해마다 수십 만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는 지구촌 현실에서 보면, 그들의 개 사랑이 ‘사치’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양 과잉 탓에 다이어트 음식을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 미국의 개들을 볼 때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안치환의 노래가 생각난다.